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저보고 그들을 찾아 달란 말입니까?”
“염치없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왜 저죠?”
제온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 구역은 네오 서울에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였다.
당연히 인원도 많고, 각성자 수도 엄청났다. 그렇게 많은 전력들이 있는데 하필 외부인인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에 대한 보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제온 님이기 때문입니다.”
“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이미 스캐빈저들과 여러 번 마주치셨더군요. 당연히 스캐빈저의 생리와 움직임에 대해 네오 서울의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일라이 님이 접촉하는 이들도 스캐빈저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 찾아낼 거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보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제부터는 북 구역의 치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온의 협조를 구하려면 솔직히 말해야 했다.
“저희 같은 이종족은 스캐빈저들이 경계하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스캐빈저와의 접점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흠! 그것도 그렇겠네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캐빈저라는 족속들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몇 배나 경계심이 강하다. 같은 인간도 의심하는데, 이종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엘프와 수인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스캐빈저들은 귀신같이 그들을 구별한다.
대부분의 스캐빈저들에게 이종족은 협상할 존재가 아니라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북 구역에서도 스캐빈저들을 말살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대응했다.
이런 이유로 북 구역 각성자들이 스캐빈저에게 은밀히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라이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보린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저도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부탁이라면?”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그냥 빚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인자인 일라이의 반란에 관계된 일이었다. 보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지켜봐 온 제온의 성향상 북 구역에 문제가 될 부탁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제온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브리엘 때문에라도 스캐빈저들을 추적해야 했는데, 북 구역에서 대가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네오 서울을 지배하는 세력 중 하나인 북 구역에 빚을 지울 수 있다면 제온에게도 이득이었다.
“스캐빈저는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혹시 스캐빈저들을 추적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북 구역에 요청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러죠.”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보린이 후련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녀가 나간 후 브리엘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갔어?”
“갔어!”
“왜 말도 없이 찾아오고 난리야. 엘프 불편하게 말이야.”
“일부러 피한 거지?”
“뭐, 얼굴을 마주쳐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얼굴을 보는 엘프는 맨디 하나면 충분해.”
“그래!”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엘은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엘프들과 접촉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성향을 잘 알기에 제온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브리엘의 등 뒤에서 가이아가 머리를 삐쭉 내밀고 있었다. 방 안에서 가이아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정령 생명체인 가이아를 들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엘프라면 말이다.
엘프들은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이아를 손에 넣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보린이 들어오기 전 가이아의 존재감과 향기를 완전히 지웠다. 그래서 보린이 가이아의 존재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엘프가 반란이라니? 일라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왜? 엘프 세계에선 반란이 흔치 않나 보지?”
“흔치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없어. 엘프는 자연에 순응하는 족속이고, 한번 정해진 질서에 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
엘프들은 정해진 법칙과 규율에 절대로 반항하지 않는다.
불합리하면 불합리한 대로 순응해 살아가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엘프들이 규율을 깬 건 이제까지 딱 한 번뿐이야.”
“언젠데?”
“쿠라얀이 멸망했을 때. 그때 엘프들도 쿠라얀과 함께 사라졌어야 해. 하지만 정해진 운명을 거역하고, 생존을 택했지. 그 결과 지구까지 망하게 했어. 엘프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원죄지.”
멸망이 예정된 세계.
그 세계에 살던 모든 존재들의 운명도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쿠라얀의 생명체들은 운명을 거부했고, 새로운 세상에서 이어 가려 했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지구는 멸망에 가까운 격변을 겪었고, 구십 프로 이상의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했다.
대지 대부분은 모래로 변했고, 겨우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고단한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엘프와 이종족들의 욕심에 두 세계가 모두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브리엘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엘프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인간을 향한 증오가 가득했기에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온에게 구함받은 후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또 빈민가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니 이종족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깊은 원죄를 짊어진 종족. 나 또한 그중의 하나. 내가 어떻게 인간들 앞에서 고개를 떳떳이 들겠어.’
―삐이!
브리엘이 침울한 표정을 짓자, 가이아가 가슴지느러미로 그녀를 조심스럽게 보듬어 안았다.
가이아가 웃는 표정으로 브리엘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꼭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마워!”
―삐!
“네가 있어 다행이야.”
―삐이이!
“응!”
가이아 덕분에 브리엘은 금방 활력을 되찾았다.
제온이 미소를 지으며 로브를 입었다.
“나가려고?”
“북 구역에서 의뢰도 받았으니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려고.”
스캐빈저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아르고스의 눈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르고스의 눈이 무능한 게 아니라면, 그만큼 스캐빈저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직접 움직여서 알아보는 게 제일이었다.
브리엘이 고깔모자를 눌러쓰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가.”
“괜찮겠어?”
“뭐가?”
“트라우마 같은 거 말이야.”
“아직도 조금 두렵긴 한데 언제까지 떨 수만은 없잖아. 떨쳐 내야지.”
브리엘의 씩씩한 대답에 제온이 미소 지었다.
“많이 강해졌네.”
“강해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니까. 왜, 이상해?”
“아니, 대견해서 그래.”
“그래? 헤헤!”
브리엘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두 사람이 나갈 준비를 하자 가이아는 알아서 제온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빈민가는 낮보다 밤에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낮 동안 해를 피해 집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경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제온과 브리엘은 일단 클렉시 영감의 가게로 향했다.
저녁도 해결할 겸 그간의 성과를 알고 싶어서였다.
가게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클렉시 영감이 그들을 맞이했다.
“왔느냐?”
“소식은 없었습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라. 브리엘도 거기 앉고.”
클렉시 영감의 말에 두 사람이 앞자리에 앉았다.
“아직 식사 전이지?”
“네!”
“배고파!”
두 사람의 대답에 클렉시 영감이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그릇 두 개를 내놨다.
그릇에는 국밥으로 추측되는 음식이 들어 있었다.
언뜻 보면 개밥 같았지만, 현시대에 국밥처럼 효율 좋은 음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번거롭게 반찬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네!”
“응!”
제온과 브리엘이 수저를 들었다.
후륵!
일단 국물부터 맛봤다.
역시 맛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실력이 더 는 것 같았다.
“맛있네요.”
“맛있어!”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클렉시 영감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았다.
“먹으면서 들어라. 며칠 동안 아르고스의 눈을 돌렸지만, 특별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신촌이나 동대문, 구로와 천호동, 어디에서도 스캐빈저들에 대한 정보는 따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이상하지? 분명 낯선 놈들이 들어왔으면 표가 났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혹시 아직 안 들어온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그럴 리 없어요.”
“나도 안다. 그래서 다시 관점을 바꿔 생각했다. 놈들도 자신들이 네오 서울에 들어온 순간 다른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곳을 찾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곳이…… 있군요.”
제온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클렉시 영감의 가게 아래엔 오수를 지하로 흘려보내는 오수관로가 있었다.
오수관로를 따라 아래로 들어가다 보면 하수로가 나온다.
제온은 이미 하수로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마력 발전기를 훔쳐 갔던 크로커와 악어들을 추적해 하수로로 들어갔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잠시도 머물기 힘들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각성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하수로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많은 인원이 머물 수 있겠네요.”
“맞아! 악어들이 사는 하수로엔 아르고스의 눈이 닿지 않아. 놈들이 정말 네오 서울에 들어왔다면 하수로에 있을 확률이 높아.”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문제는 지하 하수로가 너무 광대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정말 놈들이 하수로에 숨어든 거라면 아르고스의 눈으로는 찾아낼 수 없어.”
“제가 직접 들어가 봐야겠군요.”
클렉시 영감이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요.”
“쯧!”
결국 클렉시 영감이 혀를 찼다.
하수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역해졌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제온 대신 아르고스 눈의 조직원들을 하수로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었지만,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르고스의 눈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때는 수많은 이들 사이에 섞여서 정보를 수집할 때였다.
하수로처럼 고립된 공간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거라. 내가 힘써 구해 볼 테니까.”
“그렇게 할게요.”
“후우! 그냥 조용히 좀 살았으면 좋겠는데, 쉴 틈이 없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 하수로에 들어갈 생각이냐?”
“말 나온 김에 바로 들어가려구요.”
“당장?”
“미뤄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요.”
“하여간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클렉시 영감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이야 쉽지만, 더러운 지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어림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쿠웅!
바닥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제온과 브리엘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닥에 신경을 집중했다.
“누구 없어요?”
그 순간 클렉시 영감 가게 지하 오수관로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각성자인 제온과 브리엘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브리엘이 수저를 놓으며 일어섰다.
“지하에서 누군가 도움을 청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