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마치 제온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브리엘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 제온이 슬쩍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였다.
브리엘이 바라보는 대상은 바로 핫심 용병대의 남자였다.
제온에 의해 처참히 망가지고, 결국은 숨이 끊어진 남자.
목뼈가 부러진 채 혀를 길게 내빼고 있는 남자의 얼굴엔 생전 느꼈던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제온이 남자에게 뽑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뽑아내고 죽이는 장면을 브리엘은 모두 지켜봤다.
일반적인 아이였다면 그런 제온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을 테지만, 브리엘은 평범하지 않은 데다가 수많은 고난을 겪어 이런 장면에 매우 익숙했다.
또한 하이 엘프인 그녀의 정신은 또래 아이들보다 몇 배나 굳건했다. 그 때문에 제온이 벌인 참극 앞에서도 멀쩡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 그녀는 멀쩡한 게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제온에게 죽은 남자들은 그녀를 납치해 온 인간 사냥꾼들이 맞았다.
브리엘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가 그들에게 부모를 잃고, 납치당해 사방으로 팔려 나갔다.
그나마 브리엘의 사정은 나았다.
마약을 만드는 것 외에 육체적인 학대는 없었으니까.
순도 높은 마약을 제조할 수 있는 연금술사였기에 나름 소중히 대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그녀처럼 운이 좋지 않았다.
미치광이 마법사에 팔려 가 실험체가 된 아이, 검투 노예로 팔리거나, 마수를 길들이려는 테이머에 의해 먹이로 던져진 아이들도 다수였다.
그렇게 팔려 간 다른 아이들은 모두 비참한 삶을 이어 가다가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핫심 용병대에 잡혀갔는지 몰랐다.
그중엔 엘프도 다수 있었다.
웃긴 건 죽기 전까지도 남자가 브리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브리엘 같은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브리엘은 특별한 엘프가 아니라 수많은 노예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남의 인생을 처참하게 망가트린 주제에 기억조차 못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브리엘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때 가이아가 아공간 밖으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아공간 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다가 브리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조심스럽게 나온 것이다.
―삐이이!
그 순간 가아이가 위로하지 않았다면, 분노에서 헤어 나오는 데 한참 걸렸을 것이다.
브리엘이 가이아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어, 그래! 괜찮아. 고마워, 가이아!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아공간으로 들어가.”
―삐?
“응! 정말이야. 그러니까 안에서 지켜봐 줘. 이런 더러운 곳에 잠시라도 너를 있게 하기 싫어.”
―삐이!
가이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제온의 아공간에 들어갔다.
정령 생명체인 가이아에겐 하수로의 환경이 견디기 힘들 만큼 최악이었다.
어미인 모비딕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자랐다면 모르지만, 지금은 순수한 기운만 접촉하고 흡수해야 할 때였다.
“후우!”
브리엘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녀가 제온에게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계속 추적해야지.”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어.”
브리엘이 조그만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자는 죽기 전 헬브린 용병대가 일라이와 계약한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일라이가 무엇 때문에 백 명이나 되는 노예들을 구하려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여전히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일라이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려면 헬브린 용병대의 대장인 핫심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제온이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헬브린 용병대에게 쫓기던 제토야였다.
제토야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뿔 악어 크루를 순식간에 전멸시킨 남자들을 제온은 파리 잡듯 죽였다.
제토야가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전투 능력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제온의 아공간에서 가이아가 살짝 나왔던 모습을 인지조차 못 했을 정도였다.
“아, 아!”
무언가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제토야가 연신 입만 뻐끔거렸다.
제온과 브리엘은 제토야가 처음 접촉하는 외부인이었다.
제토야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런 제토야에게 바깥세상은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항상 이 구질구질한 곳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의 육체는 어두컴컴한 지하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진짜 악어처럼 습기가 어느 정도 유지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몇 차례나 밖으로 나가길 시도해 봤지만, 지독한 고통만 맛보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영원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제토야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
다른 아이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각성해서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쳐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 제토야에게 외부에서 온 제온은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붉은 뿔 악어 크루를 모두 죽인 헬브린 용병대보다도 말이다.
제온이 제토야에게 물었다.
“네 이름은?”
“제……토야요.”
“제토야?”
“네!”
“좋은 이름이군. 나는 제온이다. 이쪽은 브리엘이라고 하지.”
“제온, 브리엘!”
제토야가 멍하니 두 사람의 이름을 되뇌었다.
“보다시피 우리는 지상에서 왔다. 이들을 쫓고 있지. 그래서 네 도움을 받고 싶다.”
“어떻게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다오.”
“안내해 드릴게요. 대신 조, 조건이 있어요.”
“조건? 네가 조건을 걸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제온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제토야를 바라봤다.
겁을 잔뜩 집어먹어 벌벌 떠는 주제에 조건을 내거는 제토야의 패기 어린 모습이 흥미를 끈 것이다.
“저, 저도 알아요. 조건을 걸 입장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 왜?”
“저, 절박하니까요.”
“뭐가 절박하다는 거냐?”
“저희에겐 전기가 필요해요.”
“전기?”
“이 오염된 지하를 조금이라도 정화하려면 전기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마력 발전기를 구해 주세요.”
예상치 못한 제토야의 말에 제온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토야가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할 줄 알았다.
제토야처럼 평생 어둠에서 산 이들에겐 지상의 거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온이 다시 물었다.
“마력 발전기가 필요하다고?”
“네! 조그만 거라도 좋아요. 제발 마력 발전기를 구해 주세요. 그럼, 뭐든지 할게요.”
제토야가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오 서울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도깨비 시장에서 구입했던 마력 발전기가 탈취당한 일이 있었다.
‘그들도 악어였지. 두목 이름이 크로커라고 했나?’
그들은 모두 제온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그들도 마력 발전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엔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이렇게 어린 소년의 입으로 다시 한번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생각을 정리한 제온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마력 발전기는 나도 구할 수 없다. 더 이상 도깨비 시장에 공급되지 않거든.”
“그런…….”
제온의 냉정한 말에 제토야가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거짓 희망을 줄 순 없었다.
그때였다.
“내가 만들 수 있어.”
브리엘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온이 놀라 브리엘을 바라봤다.
“뭐?”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어떻게? 너는 구조도 모르잖아?”
“알아!”
“너, 설마…… 집에 있던 거 뜯어본 거냐?”
“미안!”
브리엘이 얼굴이 벌게져 푹 숙였다.
제온이 없을 때 그녀는 ‘지켜보는 눈’이 장착된 마력 발전기를 몰래 뜯어봤다.
그 때문에 제온의 집이 일시 무방비 상태가 됐었다.
만일 그때 적이 쳐들어왔다면 브리엘은 죽은 목숨이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마력 발전기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한 후 다시 재조립했다.
다행히 마력 발전기는 멀쩡히 작동했다.
제온은 알지 못하는 브리엘만의 비밀이었다. 뭐, 이젠 제온도 알게 됐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만들 수 있단 말이지?”
“응! 재료만 구하면 만들 수 있어.”
“필요한 재료는?”
“돈은 조금 들겠지만, 도깨비 시장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됐네.”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토야를 바라봤다.
“그렇단다.”
“정말 마력 발전기를 만들 수 있어?”
제토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브리엘을 바라봤다.
브리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들 수 있어. 마정석까지 구해 주지는 못하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마정석을 구할 방법이 있나 보네. 어쨌든 내 대답은 ‘가능하다’야. 대신 네가 우리를 도와줘야겠지?”
“도울게. 뭐든지 도울게.”
“그럼 우리를 저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그런데…….”
“설마 이제 와 못 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저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괜찮겠어?”
“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야. 그들 전부가 덤벼도 제온의 상대가 못 되니까. 너도 봤잖아? 제온이 얼마나 강한지.”
“으음!”
“무서우면 하지 마. 너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놈들을 찾을수 있으니까. 대신 너는 마력 발전기를 받지 못하겠지.”
브리엘의 차가운 말에 제토야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니야! 할게. 내가 안내해 줄게.”
“시간이 없어. 빨리 안내해.”
“응!”
제토야가 앞장섰다.
제온과 브리엘은 그의 뒤를 따르며 대화했다.
“어떻게 마력 발전기를 뜯을 생각을 한 거야?”
“궁금하니까.”
“너도 참 대단하다.”
“어쩔 수 없어. 천성이라서.”
“구조는 완벽하게 파악한 거야?”
“응! 내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게 보호 마법진이 걸려 있었지만, 이 몸 앞에선 소용없지. 히히!”
브리엘이 히죽 웃었다.
마력 발전기는 네오 서울 마도 공학이 집약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보호도 철저히 했다.
모듈별로 보호 마법진을 새겨 넣어, 함부로 열어 보면 자동 폭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호 마법진도 브리엘의 뛰어난 마도 연금술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브리엘은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그 모든 보호 마법진을 해제했고, 백 년 동안 네오 서울이 쌓아 온 기술력을 습득했다.
제온이 말했다.
“네가 마력 발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마. 네오 서울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너를 제거하려 할 테니까.”
“응! 다른 곳엔 절대 떠들지 않을게.”
“그래!”
제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뛰어난 동료를 둬도 문제였다.
다른 이들이 브리엘의 능력이 이렇게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욕심을 낼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일이 끊이지 않는군.’
이것도 자신의 업보인 듯싶었다.
너무 강한 힘을 가졌기에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브리엘의 말처럼 운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제토야는 점점 더 깊고 어두운 통로로 그를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