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제토야를 따라 붉은 뿔 악어 크루의 본거지에 도착한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갈라진 배에서 흘러내린 내장과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제……기랄!”
제토야가 친구들의 시신을 계속 보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돌렸다.
좋든 싫든 십수 년을 함께 살아왔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셈이다.
그런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자니 속이 거북해지면서 토할 것 같았다.
제온이 제토야에게 말했다.
“힘들면 나가 있어라.”
“아니에요. 참을 수 있어요.”
제토야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때 브리엘이 말했다.
“떠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바닥엔 헬브린 용병대의 것으로 보이는 짐들이 몇 개 나뒹굴고 있었다.
짐을 챙겨 가지 못할 만큼 급하게 떠났다는 뜻이었다.
제온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후! 위기 감지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군.”
“그럼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았단 말야?”
“그건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동료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위기를 미리 알아차린 것만은 분명해.”
“아니, 동료가 오지 않으면 찾아봐야 하는 거 아냐?”
“이들은 그런 일반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이들의 사고, 감각은 모두 생존에 맞춰져 있어.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다면 동료의 죽음 따윈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지.”
제온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사막을 떠돌면서 온갖 인간 군상을 다 봤다고 자부하는 제온조차 이런 집단은 처음 봤다.
전형적인 약강강약이지만, 여느 스캐빈저들보다 교활하고, 마수보다 포악했다.
자신들보다 강한 자는 철저히 피하지만,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에겐 더할 수 없이 잔인했다.
마치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은 세상에 남겨 두지 않겠다는 듯이 미친 듯이 물어뜯는다.
거기에 위기 감지 능력이 뛰어나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근거지를 옮겨 버린다.
“쉽지 않은 숨바꼭질이 되겠군.”
제온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하수로였다.
이런 하수로에서 놈들을 추적하는 것은 제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제토야가 말했다.
“내가 찾을 수 있어요. 이 하수로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놈들이 어디로 숨었든 상관없어요. 반드시 내가 찾아낼 수 있어요.”
“놈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꼬리조차 보지 못할 거다.”
“할 수 있어요. 아니, 해낼게요. 반드시!”
전의를 불태우는 제토야의 모습에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추적은 너에게 맡기마.”
“대신 약속 꼭 지켜요.”
“마력 발전기?”
“네!”
“반드시 지키지.”
“믿을게요.”
원래 누구도 믿지 않는 제토야였지만, 눈앞의 남자에겐 묘하게 믿음이 갔다.
이유는 그도 몰랐다.
다만 적어도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할 존재가 아니란 것만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제토야는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다.
사막에선 제온이 추적의 일인자였지만, 더러운 지하 하수로는 제토야가 일인자였다.
제온이 모래를 이용해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해 추적한다면, 제토야는 지하 하수로에 가득한 습기를 이용해 목표물의 위치를 특정한다.
“킁킁!”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서 공기 중 냄새를 맡는 제토야.
그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에 냄새가 섞였어요.”
“이 악취 속에서도 냄새가 구별되는 거냐?”
“마음만 먹으면 수백 가지 냄새 속에서도 원하는 냄새를 구별할 수 있어요.”
“진짜야?”
“그쪽처럼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겐 특유의 건조한 냄새가 있어요.”
“건조하다?”
“네! 특히 사막에 오래 나가 있던 자들의 냄새일수록 푸석한 느낌이 있어요. 오른쪽 통로에 그 냄새가 섞여 있어요.”
“그거 대단하네.”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제토야가 냄새로 헬브린 용병대를 추적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토야가 오른쪽 통로로 들어가며 말했다.
“지금부터 달릴 테니까 뒤처지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라.”
“달리기나 하라고.”
제온과 브리엘이 동시에 대답한 그 순간 제토야가 무서운 속도로 하수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제토야는 지하 세상에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마치 도마뱀처럼 그의 손과 발은 벽과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때문에 물방울이 맺힌 벽을 평지처럼 질주할 수 있었다.
이 능력으로 제토야는 자신을 추적하던 헬브린 용병대 각성자들의 추적을 오랫동안 피할 수 있었다.
“와아!”
오죽했으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질주하는 제토야의 모습에 브리엘이 감탄사를 터트렸을 정도였다.
제온도 그런 제토야의 능력에 감탄했다.
‘저 정도면 아예 새로운 인류라고 봐야겠군.’
지하 세계에 최적화된 새로운 종류의 인간.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는 동물임이 분명했다.
“이쪽이에요.”
제토야가 천장에서 내려와 왼쪽 통로로 향했다.
통로를 달리는 내내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실시간으로 공기 중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멀지 않았어요. 금방 따라잡을 거예요.”
“알았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수십 번의 갈림길을 지나쳐 왔다.
그사이 지하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체감상 거의 수십 미터는 더 지하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온 혼자라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으악!”
제토야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앞쪽에서 누군가의 희미한 비명이 들렸다.
제온이 속도를 높이며 말했다.
“나 먼저 가마.”
그는 순식간에 앞서가던 제토야를 지나쳐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토야가 잠시 멍하니 제온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와!”
“뭘, 그걸 가지고 놀라?”
브리엘이 그런 제토야를 타박했다.
제토야가 발끈해 말했다.
“그럼 안 놀라? 나보다 빠른데.”
“제온의 능력은 겨우 그 정도가 아냐. 나중에 지상에 올라오면 알게 될걸.”
“그치만 난 지상에 올라가면 죽어.”
“뭐?”
“보다시피 지하에 완전히 적응해서 햇볕에 노출되면 말라 죽을 거야.”
제토야보다 위 세대의 인간들은 그래도 마음먹으면 지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제토야처럼 완벽하게 지하에 적응한 아이들은 지상의 햇볕과 열기를 견딜 수 없었다.
“아, 미안!”
브리엘이 급히 사과했다.
설마 제토야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괜찮아! 언젠가 나도 각성하면 지상에 올라가서 버틸 수 있겠지.”
“각성하지 못한 거야?”
“보다시피.”
제토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전혀 위축된 표정이 아니었다.
그만큼 언젠가 자신이 각성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
제토야와 브리엘을 남겨 두고 달려온 제온이 코너를 막 돌았을 때였다.
제온의 눈에 미세한 은색 실선이 포착됐다.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악!
순간 그의 머리카락이 은색 실에 잘려 나갔다.
헬브린 용병대가 설치해 놓은 트랩이었다.
마수의 부산물과 티타늄을 합성해 만든 은사는 무투계 각성자의 단단한 육체도 순식간에 베어 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더군다나 설치 위치가 절묘했다.
방어구로 보호받지 못하는 얼굴 위치에 설치한 것이다.
제온이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달려가다가 코 윗부분이 잘려 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제온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것만 봐도 은사의 날카로움과 독랄함을 알 수 있었다.
겨우 은사를 피한 제온을 향해 공격이 날아왔다.
“죽엇!”
“씨발 새끼!”
악을 쓰며 공격한 이들은 바로 헬브린 용병대 각성자들이었다.
무투계 각성자들은 오러를 실어 무기를 휘둘렀고, 마법계 각성자들은 각종 스킬을 날렸다.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이뤄진 공격이었다.
그에 대한 제온의 대응은 간단했다.
양팔을 교차해 머리만 방어한 후 모든 공격을 온몸으로 맞은 것이다.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이 한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을 테지만, 제온에겐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가 있었다.
어지간한 공격 따윈 그대로 튕겨 냈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제온의 몸이 들썩였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았다.
한차례 공격을 막아 내자마자 제온의 반격이 이뤄졌다.
슈슈슈!
수십 발의 파이어 미사일이 공격한 자들에게 날아간 것이다.
“크윽!”
“컥!”
제온을 공격했던 자들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그제야 제온이 허리를 펴고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을 바라봤다.
머리엔 터번을 둘러쓰고, 데샤다를 걸친 남자들은 바로 헬브린 용병대의 각성자들이었다.
그 중심에 핫심이 있었다.
“카악! 퉷! 설마했더니 역시 네놈이었군.”
핫심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질렸다는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제토야를 잡아 오라고 보낸 부하들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그는 불길한 예감에 자리를 피했다.
하수로는 넓고, 악어들의 소굴은 많았다.
꺼림칙한데 굳이 한자리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동했고,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제온의 시선이 핫심의 뒤쪽으로 향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벌벌 떨고 있었다.
노약자들과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은 이미 모두 죽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제온이 도착하기도 전에 헬브린 용병대가 학살한 것이다.
“조금만 늦게 오지 그랬나? 그랬으면 깔끔하게 정리했을 텐데.”
“내가 마수보다 못한 인간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그중에 제일은 당신이야.”
“흐흐! 그거 영광이군. 너 같은 강자한테 그런 찬사를 받다니. 씨발!”
“헬브린 용병대의 핫심 맞죠?”
“내 부하들이 털어놓은 모양이군. 맞다, 내 이름은 핫심이다. 보다시피 헬브린 용병대의 대장직을 맡고 있지.”
대답하면서도 핫심은 제온을 은밀한 시선으로 구석구석 살폈다.
겉모습만 봐서는 제온이 그렇게 강한 각성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톤이 마나를 모조리 때려 부운 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은 괴물이었다.
플랜 S로 전환한 헬브린 용병대를 무섭게 추적해 오던 집요함, 그리고 자신의 수하들을 순식간에 죽인 잔혹함.
상대는 진짜 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기어이 이 더러운 하수로까지 쫓아왔다.
핫심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우리와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렇게 죽자 살자 쫓아오는 건지 모르겠군. 설마 생존자 마을에 가족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러는 당신은 무슨 원수가 졌다고 생존자 마을을 습격했습니까?”
“큭!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군.”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이 죄가 아니다.
적어도 사막의 법칙은 그랬다.
그래서 핫심 용병대가 생존자 마을을 약탈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제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강자라면 자신들이 잡아먹히는 것이고, 반대로 자신들이 강하다면 제온을 짓밟는 것이 당연했다.
핫심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알톤!”
콰콰쾅!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온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제온의 추적을 눈치챈 핫심이 미리 알톤에게 폭발물을 설치하게 한 것이다.
제온 일인에게 집중된 폭발이었다.
그만큼 위력도 엄청났다.
핫심이 외쳤다.
“모두 준비해.”
그는 알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의 폭발로는 제온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푸화학!
그 순간 폭발을 뚫고 한 줄기 파이어 미사일이 쏘아졌다.
“크악!”
알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파이어 미사일이 그의 미간을 관통한 것이다.
“씨발!”
졸지에 가장 중요한 전력을 잃은 핫심이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