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핫심과 대화하면서도 제온은 헬브린 용병대 각성자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훑었었다.
그런 제온의 눈에 유독 들어온 이가 바로 알톤이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제온의 눈에는 마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저격수처럼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알톤을 주목한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그때 알았다.
자신과 브리엘이 사막의 생존자 마을에 들어갔을 때 폭발을 일으켰던 주범이라는 것을.
그래서 제일 먼저 제거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핫심보다 더 위험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이기에.
“개새끼!”
“죽엇!”
알톤을 잃은 각성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제온을 공격해 왔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다가 난생처음 제온 때문에 궁지에 몰린 이들이었다.
사막에서도 쫓겨 다녔는데, 제온이 하수로까지 쫓아오자 그들도 악에 받친 것이다.
악에 받친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하물며 그들은 쥐가 아니라 각성자였다.
그것도 인간 사냥으로 단련된 각성자.
특히 사람 죽이는 데 누구보다 도가 튼 도살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악에 받쳐 제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무투계 각성자들이 육탄전을 벌이고, 몇 없는 마법계 각성자들이 각종 공격 스킬을 날렸다.
콰콰쾅!
제온과 헬브린 용병대의 격돌에 지하 하수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통째로 흔들렸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이들답게 헬브린 용병대의 손발은 잘 맞았다.
무투계 각성자들은 동시에 제온의 급소를 공격해서 방어하기 힘들게 교란했고, 마법계 각성자들은 정밀한 포격으로 그들을 보조했다.
이 정도로 정밀하게 합공할 수 있는 공략대는 네오 서울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의 합공은 놀라웠다.
수많은 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많은 각성자들이 이들의 합공에 목숨을 잃었다.
개중에는 그들보다 훨씬 윗 등급의 각성자도 있었다.
“놈도 인간이야.”
“씨발! 죽일 수 있어.”
“우워어!”
제온을 공격하는 헬브린 공격대의 얼굴엔 광기가 가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제온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과 달랐다.
“쯧!”
혀를 차는 제온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정한 광기란 저런 게 아니었다.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 놓고, 압박하는 것은 애들 장난과 같을 뿐이다.
머리는 차갑게, 이성은 날카롭게, 분노는 뜨겁게.
그게 제온이 터득한 진짜 광기였다.
스르륵!
제온의 등 뒤로 검은 아공간이 열렸다.
아공간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모래에 헬브린 용병대의 각성자들이 깜짝 놀랐다.
“뭐야?”
“웬 모래가…….”
가아앙!
그 순간 제온의 발아래 수북이 쌓인 모래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곱디고운 모래 입자가 회전하면서 모든 것을 갉아 버렸다.
머리에 쓰고 있던 터번이, 몸에 걸치고 있던 데샤다가 제일 먼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어 그들의 피부가 갈려 나갔다.
“씨발!”
“크아악!”
생으로 온몸이 분해되는 고통에 각성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오러를 끌어 올려 저항해도 소용없었다.
찢겨진 피부 사이로 모래 입자가 살가죽과 근육을 헤집어 놓았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가 해체되고, 모래 입자보다 작은 입자로 변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뭐야? 이게 무슨…….”
브리엘과 함께 뒤따라왔던 제토야가 눈을 부릅떴다.
지하 하수로엔 당연히 모래가 많이 없었다.
지상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군데군데 쌓여 있긴 하지만, 이렇게 생존자 크루가 기거하는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많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은 모래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훨씬 충격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크루를 학살했던 지상의 침략자들이 모래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이젠 비명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 비명을 지를 성대마저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으아아!”
“이 악마 같은 새끼!”
유독 튼튼한 육체와 방어력을 소유한 각성자 몇 명이 모래를 뚫고 반격을 시도했다.
방어구가 반 이상 모래에 갈려 나가고, 노출된 피부마저 벗겨지다시피 했지만, 그들은 고통을 참고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제온의 몸에 닿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콱!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모래 인간들이 대신 공격을 맞았기 때문이다.
“씨펄!”
“이게 뭐야?”
샌드 믹서를 뚫고 나오느라 힘을 거의 소진한 각성자들에겐 샌드 솔저의 등장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온몸으로 각성자들의 공격을 맞은 샌드 솔저들이 그대로 밀어붙였다.
“아, 안 돼!”
“씨발!”
샌드 솔저들의 완력에 진 각성자들이 다시 샌드 믹서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래 입자였다.
“크아악!”
“사, 살려…….”
각성자들이 샌드 솔저와 함께 갈려 나갔다.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제토야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 이게 뭐야? 저 사람이 모래를 조종하는 거야? 어떻게 인간이…….”
“맞아! 제온은 모래술사야. 네오 서울, 아니 지구상 유일의 모래술사지.”
“모래술사?”
“그래! 모래의 지배자. 그게 제온이야.”
제온을 바라보는 브리엘의 눈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처음 제온과 영혼의 계약을 맺은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제온을 존경한다.
그의 행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네오 서울의 주인을 꿈꿔 볼 수도 있을 텐데, 제온에겐 사람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야망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제온을 보며 지닌 바 힘에 비해 너무 책임감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브리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거대한 힘을 가진 자가 균형을 잡으며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피 모래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지만, 브리엘은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헬브린 용병대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헬브린 용병대는 자신을 납치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브리엘의 삶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온에게 구출받아 삶이 극적으로 나아졌지만, 하수로에서 마약이나 만들며 연명하던 기억은 아직도 종종 그녀를 괴롭혔다.
‘저런 인간 사냥꾼들은 사라지는 게 차라리 세상을 위해서도 나아.’
그때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던 모래 입자가 서서히 흩어졌다.
제온이 다시 아공간으로 회수하는 것이다.
그가 모래를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자 뿌옇던 시야가 다시 맑아졌다.
“아!”
제토야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시야가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내에 가득했던 헬브린 용병대 각성자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마치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말이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이게 인간의 능력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런데 제온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브리엘도 그런 제온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제온!”
“또 도망가서…….”
“누가 도망갔어?”
“대장이 도주한 거 같아.”
“진짜?”
브리엘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폐쇄된 공간이었다.
제온이 가로막고 있는 곳을 제외하곤 출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핫심이 도주했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간 이동 관련 아이템을 소유한 것 같아.”
“공간 이동?”
“갑자기 존재감이 사라졌거든.”
마치 촛불이 꺼진 것처럼 핫심과 또 한 명의 존재감이 제온의 감각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핫심 정도의 각성자가 부하들보다 먼저 모래에 갈려 나갈 리 없었다.
“그런 아이템이 있었다면 처음 추적당했을 때 썼어야 하는 것 아냐?”
“아마 횟수나 인원수, 혹은 거리의 제한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껴 두다가 최후의 순간에 사용한 거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
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의 말이 아니고선 핫심과 또 한 명의 각성자가 사라진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쿠라얀에서 지구로 넘어오면서 많은 마도 기술, 스킬이 소실됐다.
공간 이동 관련 기술도 그때 사라졌다.
하이 엘프 마을에서 듣기론 쿠라얀에서는 초장거리 이동을 순식간에 가능하게 해 주는 아이템이 존재했다고 했다. 하지만 쿠라얀에서조차 초장거리 이동 관련 아이템은 몇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단거리 이동용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너무 귀해 평범한 사람들은 구할 수 없었고, 만들 줄 아는 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쿠라얀이 멸망했을 때 전승이 완전히 끊긴 것이다.
“후!”
제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가 왔을 때 핫심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다.
핫심 같은 독종들은 확실하게 죽여야 후환이 없다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공간 이동 관련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몰랐으니까 당한 거다.
알고도 또 당하면 스스로 멍청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멍청이가 될 수는 없었다.
브리엘이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계속 추적할 거야?”
“이미 추적하기엔 늦었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걸.”
“그것도 그렇네.”
“일단 이곳부터 수습해야겠다.”
제온이 샌드 믹서로 갈아버린 것은 헬브린 용병대의 각성자들뿐이다.
아직 이곳엔 하수로의 주민들이 살아 있었다.
“으으!”
“정말 인간 맞는 거야?”
주민들은 공포 어린 눈으로 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한 헬브린 용병대도 무서웠지만, 그들을 너무나 쉽게 정리한 제온은 더 무서웠다.
몇몇 주민은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도 모르고 몸을 떨고 있었다.
제온은 그제야 주민들을 찬찬히 살폈다.
주민들의 몰골은 실로 처참했다.
단순히 헬브린 용병대에게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초라했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떡이 져 번들거렸고, 오랫동안 씻지 못해 피부엔 부스럼이 가득했다.
눈은 퇴화해 조금만 빛에 자극을 받아도 진물이 줄줄 흘렀다.
육체는 마른 장작처럼 깡마른 데다가, 손발톱까지 길게 자라서 원시인이나 유인원을 연상케 했다.
네오 서울 같은 초고도 문명을 이룬 도시 지하 아래 이렇게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브리엘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도 지하에서 꽤 오랫동안 생활했었기에 이들의 실상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그녀가 경험하고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브리엘을 마약을 만드는 데 투입했던 크로커 일당은 이 광활한 지하 생태계에서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하 생태계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볼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브리엘은 자신이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네오 서울이라는 초거대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토야가 그들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이제 알겠죠? 왜 우리에게 마력 발전기가 필요한지.”
“그래!”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굳이 지하의 사정을 세세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되면 도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세상은 넓고 불쌍한 사람은 모래알만큼이나 널려 있었다.
그들이 불쌍하다고 해서 제온이 모두 도울 수는 없었다.
뭐든지 적당한 선까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제온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브리엘.”
“응?”
“아무래도 네가 마력 발전기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할게.”
현대 문명의 시작은 전기와 함께 시작된다.
제온은 어두운 지하에 문명의 씨앗을 건네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