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하하! 씨발.”
핫심이 벽에 손을 짚은 채 키득키득 웃었다.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터번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데샤다도 걸레쪽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피부는 모래에 쓸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친 게 다행이었다.
탈출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온몸이 모래에 분해됐을 것이다.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차고 있는 허리띠 덕분이었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허리띠 가운데엔 마치 거울같이 동그랗고 매끄러운 원형 판이 달려 있었다.
지구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식을 가진 허리띠는 던전에서 가지고 나온 아이템이었다.
무슈라의 거울.
분명 허리띠인데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아이템은 단거리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 이 허리띠의 성능을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공간 이동 옵션이 붙은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템을 얻을 줄은 핫심도 예상 못 했다.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원하는 곳은 쉽게 출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가령 네오 서울의 비밀 창고 같은 곳 말이다.
비밀 창고에서 아이템을 몰래 들고나와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슈라의 거울은 정확한 좌표를 지정해 공간 이동을 하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공간 이동하는 좌표가 무작위인 것이다.
즉 발동시켜도 어디로 이동할지는 착용자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동 거리도 그리 길지 않았다.
반경 1킬로미터가 최대 이동 거리였다.
운이 좋으면 아무 방해물이 없는 평지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해 벽이나 허공으로 이동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핫심은 무슈라의 거울을 허리띠로만 사용했다.
이런 물건을 네오 서울에 팔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간 이동 관련 아이템은 극히 희귀한 데다가 대부분 망가진 채 발견되어 제대로 된 원리를 규명해 내지 못했다.
이렇게 멀쩡한 공간 이동 아이템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하지만 핫심은 팔지 않았다.
이렇게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구명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조심성이 목숨을 살렸다.
“크허헉!”
핫심의 곁에서는 아카시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의 부작용이었다.
무슈라의 거울은 착장자 외 최대 한 명 더 공간 이동시켜 준다.
제온이 샌드 믹서를 펼쳤을 때 핫심은 망설이지 않고 아카시의 손을 잡았다.
아카시야말로 헬브린 용병대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놈들이 다 죽어도 자신과 아카시만 있다면 용병대 따윈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알톤도 데리고 나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까운 전력을 잃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카시를 제외한 부하들을 모두 잃었음에도 핫심은 태연했다.
‘아직 나에겐 에틀리와 벅셔가 남아 있다.’
드워프인 에틀리와 라이칸슬로프인 벅셔는 아직 빈민가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과 접촉할 수 있다면 분명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핫심이 아카시에게 말했다.
“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일단 에틀리하고 벅셔와 합류해야지. 그 후 다시 노예들을 사냥한다.”
“설마 빈민가에서 말입니까?”
아카시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핫심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문제 있나?”
“빈민가에서 인간을 사냥하면 분명 우리의 행적이 들통날 겁니다.”
“아카시.”
“네?”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나?”
“그건…….”
“우린 모든 걸 잃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아카시를 바라보는 핫심의 눈동자엔 광기가 가득했다.
그는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생존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잡아 온 노예들은 별도의 공간에 가둬 뒀다.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거였는데, 신의 한 수가 됐다.
모자라는 노예는 빈민가에서 사냥해 보충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딱 백 명만 있으면 거미 여왕과 동등한 자리에서 협상할 수 있어. 그런 기회를 포기할 수 없지.”
“으음!”
“두려운가?”
“아닙니다, 대장.”
“흐흐! 당연히 그래야지.”
핫심이 아카시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아카시는 입술을 꽉 문 채 그런 핫심을 바라봤다.
그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사막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만큼 네오 서울에 있는 것이 무섭고 싫었기 때문이다.
‘모래술사에 대항한다고?’
헬브린 용병대를 순식간에 모래로 갈아 버린 남자를 떠올린 그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얼마 전부터 사막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모래술사에 관한 소문이었다.
사막의 모래를 무기로 사용하는 모래술사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헛소문이라고 치부했다.
그만큼 허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문은 점점 구체화됐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번져 갔다.
결정적으로 소문을 믿게 된 것은 바로 강철 요새의 등장이었다.
그들과 같은 스캐빈저였던 우르티안이 강철 요새라는 신흥 콜로니의 주인이 되었는데, 모래술사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었다.
거짓된 소문이었으면 우르티안이 가장 먼저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르티안은 그에 대해 묵묵부답이었고, 덕분에 소문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카시는 모래술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해 평생을 가도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래술사가 사막에서 제아무리 신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마주치지 않는다면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최악의 형태로 모래술사와 마주쳤다.
바로 적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아니, 적이라는 말은 모순이 있다.
모래술사가 사냥꾼이라면, 자신들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들이 사막의 생존자들을 사냥하던 상황과 정반대로 된 것이다.
덜덜!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제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제기랄!”
감당하기 힘든 패배감에 아카시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하지만 이제 와 사막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죽든 살든 핫심을 따라야 했다.
그가 애써 당당하게 말했다.
“갑시다, 대장!”
“흐흐! 그래.”
***
제온과 브리엘은 집으로 돌아왔다.
브리엘은 바로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온몸에 밴 악취를 어서 씻어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먼저 씻을게.”
“그래!”
쿵!
욕실의 문이 닫혔다.
―삐이!
그때 아공간을 열고 가이아가 나왔다.
제온이 가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에 있느라 고생했다. 갑갑했지?”
―삐이!
“그래! 차라리 그 안에 있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제온은 몸에 밴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순간 방 안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제온의 몸을 휘감았다.
“너구나.”
제온이 미소를 지으며 가이아를 바라봤다.
제온의 몸을 휘감은 바람은 가이아가 일으킨 것이었다.
신선한 바람은 제오의 몸에 밴 악취를 집 밖으로 훌훌 날려 버렸다.
“고마워!”
―삐이이!
가이아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제온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흔들었다.
브리엘과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가이아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영혼이 연결된 제온이었다.
가이아는 제온에게 자신의 몸을 슬쩍 부딪치기도 하면서 장난을 했다.
가이아 덕분에 찝찝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제토야를 따라 확인한 하수로의 실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차라리 마수들의 위협에 정면으로 노출된 사막에서의 삶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더러운 곳에서 살다 보니 사람들은 감각이 퇴화하거나, 변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토야는 양반이었다.
어떤 이들은 진짜 악어처럼 피부가 변했고, 어떤 이들에게선 아가미가 나타나기도 했다.
변이의 끝이 어딘지는 제온도 알 수 없었다.
지하 하수로엔 제온의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다.
눈에 안 보였으면 신경도 안 쓸 텐데, 막상 눈에 담으니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마력 발전기라.”
제온의 시선이 지켜보는 눈이 장착된 마력 발전기로 향했다.
지하 하수로에서 스캐빈저들을 이끌던 크로커가 그렇게 원했던 물건이었다.
이 발전기 덕분에 제온과 브리엘은 전기 걱정하지 않고, 펑펑 쓸 수 있었다.
빈민가에 사는 그 누구도 제온처럼 전기를 마음껏 쓰지 못했다.
설령 소형 마력 발전기가 있더라도 마정석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정석까지 내가 구해 줄 수는 없어.”
마정석을 구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거기까지 제온이 도와줄 수는 없었다.
생존은 노력하는 자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으면 하수로의 주민들도 그만큼 노력해야 했다.
제온은 소파에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브리엘이 거실로 나왔다.
“하아! 이제 살 것 같네.”
그녀의 머리엔 아직 물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가이아가 그런 브리엘을 위해서 바람을 움직였다.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이 브리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기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고마워! 가이아.”
―삐이!
브리엘이 가이아의 뺨에 뽀뽀하며 웃었다.
가이아가 이번엔 브리엘의 몸을 휘감으며 유영했다.
브리엘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온몸으로 가이아의 매끄러운 피부를 만끽했다.
“히히!”
잠시 후 브리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물었다.
“마력 발전기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해?”
“일단 재료 대부분은 도깨비 시장에서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부분?”
“구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뜻이네?”
“던전에서만 나오는 특수한 금속이 필요해. 마정석의 마력을 전기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고열이 발생하는데, 일반적인 금속은 이 고열을 견디지 못해. 금속에 마나 회로도를 새겨 열기를 분산시켜…….”
“그러니까 던전제 금속이 필요하단 거지? 그것도 고열에 강한 놈으로…….”
“응!”
“마나 회로도를 그려 넣으려면 전도율도 좋아야겠고?”
“맞아! 그런 금속은 시중에 거의 풀리지 않아. 구하는 대로 시청에서 가져가거든.”
브리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맨디라도 시청에 있다면 어떻게 부탁해보겠지만, 지금 그녀는 새로운 마정석 광산을 개척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제온이 잠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마나 전도율이 좋은 던전제 금속이라…….”
“당장은 구하기 힘들 거야.”
“아니, 있어.”
“그런 게 어딨어?”
“내 아공간에……. 잠시만…….”
제온이 아공간 안의 물건들을 살폈다.
잠시 후 그의 손엔 검은 쇳덩이가 들려 있었다.
“뭐야?”
“받아 봐. 던전의 핵이 되었던 물건이야. 지금은 모든 마나를 잃고 평범해졌지만 말이야.”
“진짜? 이게 핵이었다고?”
브리엘이 깜짝 놀라 쇳덩이 같은 물체를 받았다.
던전의 핵을 온전한 상태로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바로 제온의 집에 있는 마력 발전기에 장착된 ‘지켜보는 눈’이었다.
비록 마나가 모두 유실되어 제 기능을 잃었지만, 던전의 핵이 되었을 정도라면 엄청난 물건임이 분명했다.
브리엘이 금속을 두드리고, 마나를 주입하며 한참을 시험했다.
제온이 그녀의 모든 행동이 끝나길 기다려 물었다.
“그거면 될까?”
“응! 될 것 같아. 난 지금부터 무지 바빠질 예정이니까 방해하지 말아 줘.”
의욕이 가득한 브리엘의 얼굴을 보며 제온이 일어섰다.
“그래! 나도 바쁠 것 같아서 당분간 못 돌아올 것 같아.”
“엉? 제온이 왜 바빠?”
“사냥을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핫심이 지하 하수로에서 탈출했다고 제온의 손을 완전히 빠져나간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