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으으!”
아카시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지옥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캐빈저들이 불에 바싹 탄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질릴 만큼 많이 봐 온 광경이기 때문이다.
생존자 마을을 약탈한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행위가 이렇게 불을 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동료들이었다.
호탕한 드워프 에틀리는 사지가 짓뭉개진 채 피를 울컥울컥 토하고 있었고, 벅셔는 재생되고 불타기를 반복한 끝에 이젠 비명을 지를 기력도 없는지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산 채로 불태워지고 있었다.
제온이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이와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할 것이다.
더 큰 공포를 주는 이는 바로 핫심의 상태였다.
아카시에게 핫심은 영원한 보스였다.
그만큼 믿고 의지할 만한 사내였다.
그에겐 항상 강인한 모습만 보여 줬던 핫심이 마치 미라처럼 삐쩍 마른 채 제온에게 물을 갈구하고 있었다.
“무, 물을…….”
“마시고 싶어요?”
“어! 마시고 싶어.”
핫심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는 마치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수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체내에 침투한 유령 연가시가 수분을 모조리 흡수했기 때문이다.
핫심은 극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물 한 방울만 마실 수 있으면 기꺼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고 자체가 마비되어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준 제온에게 분노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제온이 들고 있는 주전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온이 주전자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그의 눈동자도 따라서 움직였다.
저 주전자에 든 물 한 방울을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았다.
“무, 물! 제발 물…….”
“마시고 싶으면 오독 일족에 대해 이야기해 봐요.”
탁!
제온이 핫심 코 앞에 주전자를 내려놨다.
핫심이 혀를 내밀었지만, 주전자 바로 앞에서 더 나가지 못했다. 여전히 샌드 솔저들이 그의 등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핫심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털어놨다.
처음 오독 일족의 후예를 만난 일, 그를 일라이와 연결해 준 일, 오독 일족 후예의 특징까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했다.
“크윽!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했어. 이제 물을…….”
핫심의 목소리가 쩌억 갈라져 나왔다.
입안의 수분마저 모두 말랐기 때문이다.
제온이 대답 대신 샌드 솔저를 모래로 바꿔 아공간에 수납했다.
온몸을 짓누르던 샌드 솔저가 사라지자, 핫심이 허겁지겁 주전자를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주전자에 담긴 물을 모두 마셨지만, 그의 갈증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물! 물이 더 필요해!”
결국 핫심이 미쳐서 물을 찾았다.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 물이 더 있을 리 없었다.
“물! 무울…….”
핫심이 정신병자처럼 벽을 긁으며 물을 찾는 모습은 끔찍하리만큼 무서웠다.
물을 한 주전자나 마셨음에도 갈증이 전혀 해소되지 않아 미쳐 버린 것이다.
결국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 핫심은 근처에 있는 시신의 목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았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말이다.
멀쩡한 인간이 순식간에 저렇게 영락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카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씨발! 씨발! 애초 저자와 얽히는 게 아니었어.’
이제 헬브린 용병대는 끝났다.
그나마 멀쩡한 게 자신이었는데, 그의 역량으로는 용병대를 새로 만들 수도, 이끌어 나갈 수도 없었다.
“하아!”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아카시는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아카시 앞에 제온이 다가왔다.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당신이죠?”
“네?”
“당신이 마수를 탐지하는 거죠?”
“네!”
아카시가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대답했다.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엄두도, 기력도 없었다.
“당신은 살려 둘 가치가 있겠네요.”
마수를 미리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면서 희귀한 능력이었다.
내비게이터나 제온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을 미리 감지해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던전 공략대나 패스파인더에 마수를 탐지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으면 생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제온에겐 그다지 필요 없지만, 장용범이 새로 만든 길드나, 혹은 도깨비 시장, 또는 시청에 소개해 주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아카시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저, 정말 저를 살려 주시겠다는 겁니까?”
“당신이 협조만 잘한다면요.”
“하,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그 마음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군요.”
“절대 변치 않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예요. 이거, 아직 한 마리 더 남아 있거든요.”
딸그락!
제온이 유령 연가시가 든 병을 아카시 눈앞에서 흔들었다.
아카시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유령 연가시에 당한 핫심이 어떤 몰골이 됐는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핫심은 시체에 머리를 처박고 미친 듯이 피를 빨고 있었다.
죽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저런 몰골로 살고 싶진 않았다.
“좋아요. 당신은 나를 따라와요.”
“넵!”
아카시가 군기가 반짝 든 자세로 대답했다.
제온은 아카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엔 부서진 수정의 결정이 널려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결정이 있었다.
빛이 바랜 노란 수정이었다.
제온이 노란 수정을 집어 들자 아카시가 급히 말했다.
“그게 ‘태양을 먹는 개’입니다. 던전에서 얻은 건데 일회용이라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상관없어요. 이런 거 잘 고치는 아이가 있거든요.”
브리엘에게 갖다 주면 원자 단위까지 분해해 원리를 알아낼 것이다. 운이 좋으면 고칠 수도 있을 것이고,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브리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아카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핫심 대장은 저렇게 두고 가실 겁니까?”
“왜요?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그, 죄송합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행에 빠트렸잖아요. 그 정도 형벌은 받아야죠.”
“네!”
“아참! 공간 이동 아이템 있죠?”
“네! 대장이 차고 있는 허리띱니다. 무슈라의 거울이라고 1킬로미터 반경 안에서 무작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내가 가져가죠. 불만 있나요?”
“그럴 리가요?”
아카시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불만이리라니? 살려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그깟 허리띠 가져가는 게 대수일까.
밖으로 나온 제온은 엘리베이터 통로를 폐쇄했다.
부서진 엘리베이터를 녹여 입구를 완전히 막은 것이다.
이제 핫심은 저 안에서 갈증에 시달리다가 서서히 죽어 갈 것이다.
그 끔찍한 최후가 연상되자 아카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밖으로 나왔지만, 감히 도주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제온의 미소 지은 얼굴 뒤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심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서 도주할 자신도 없었고,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데 도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제온을 따라갔다.
‘하아! 인생 씨발…….’
***
일라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눈앞에 서 있는 엘프를 바라봤다.
그녀의 심복인 로미나였다.
로미나는 마치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러니까 스캐빈저들하고 연락이 끊겼단 말이지?”
“네! 삼십 분 전 완전히 끊겼습니다.”
“노예는?”
“백 명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턱없이 부족하군.”
“죄송합니다.”
로미나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를 보는 일라이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눈빛에 살기마저 어려 있었다.
마치 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것 같은 느낌에 로미나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일라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래도 일이 틀어진 모양이군.”
“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지하로 내려가자.”
“알겠습니다.”
로미나가 대답할 때였다.
쾅!
갑자기 밖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잠시 후 수하 한 명이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푸른 낙엽 특작대가 쳐들어왔습니다.”
“뭐?”
일라이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푸른 낙엽 특작대가 세리언의 직속 부대라고 하지만, 감히 일라이에게 쳐들어올 정도의 힘과 위상을 갖진 못했다.
“하! 별것도 아닌 것들이 감히 내 집에 쳐들어와? 그래서 그냥 놔두었단 말이냐?”
“그게…….”
“왜 그러느냐?”
“푸른 낙엽 특작대에 못 보던 인물 두 명이 더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때문에 저희 쪽이 밀리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 겨우 두 명 때문에 우리 쪽 전력이 밀리다니?”
일라이가 화를 벌컥 냈다.
비록 유배당해 북 구역 외곽 허름한 집에 머물고 있다지만, 이곳은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따르는 인물들 상당수가 머물고 있어, 전력도 탄탄했다.
세리언의 본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쉽게 함락될 정도로 허술하지 않은 것이다.
수하가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인물들인데 전력이 엄청납니다. 그들 때문에 저희 쪽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봐야겠다.”
결국 일라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녀의 집엔 결계가 처져 있었다.
엘프들 특유의 결계에 일라이가 권능으로 보강해 철벽같은 단단함을 자랑했다.
이 결계를 해제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일라이가 허락해 주거나, 아니면 힘으로 강제로 부수거나.
푸른 낙엽 특작대가 선택한 것은 두 번째였다.
어차피 첫 번째 방법은 그들이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일라이가 허락해 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화살이 빛처럼 허공을 날아 결계에 격중했다.
쾅!
폭음과 함께 일라이의 집을 둘러싼 결계가 크게 출렁였다.
화살 한 발에 결계 전체가 타격을 받고 흔들리는 것이다.
화살을 날린 이는 은발의 남자 엘프였다.
모델을 연상시키는 엘프는 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활이 들려 있었다.
그가 활시위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역시 나일리아의 활이군. 위력이 대단해.”
투웅!
그가 다시 한번 시위를 당기자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결계를 향해 날아갔다.
쩌어엉!
폭음과 함께 결계 전체에 균열이 갔다.
그 모습을 본 일라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나일리아의 활인가?”
모를 수가 없었다.
나일리아의 활은 화이트 베어 카라반에서 경매로 구매한 물건이었으니까.
엘프의 영웅인 나일리아가 사용했던 활.
엘프들에겐 보물이나 마찬가지인 아이템이었다.
다만 구매한 후에도 쉽게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나일리아의 활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리언이나 일라이 모두 자신의 측근이 나일리아의 활을 사용하길 바랐다.
그 때문에 주인을 정하지 못하고, 방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엘프가 나일리아의 활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를 막기 위해 일라이의 부하들이 덤벼들고 있었지만, 푸른 낙엽 특작대에 막혀 전진을 못 하고 있었다.
보린이 이끄는 푸른 낙엽 특작대는 평소 전력보다 최소 두 배는 강해 보였다.
그들의 몸은 푸른 빛무리에 휩싸여 있었다.
일라이는 단번에 빛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버프?”
그녀의 시선이 푸른 낙엽 특작대 뒤쪽에 서 있는 로브를 입은 인영을 향했다.
모자를 눌러써서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푸른 빛무리가 그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버프로 푸른 낙엽 특작대의 전력을 두 배 이상 증가시킨 것이다.
일라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징벌자들이군.”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쾅!
폭음과 함께 일라이의 집을 둘러싼 결계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