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모래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몇 날 며칠을 걸었지만, 모래바람은 약해지기는커녕 더 사납게 휘몰아쳤다.
제온과 데이오든은 모래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데이오든은 천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러지 않으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모래를 들이켜기 때문이다.
데이오든뿐 아니라 사막을 걷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고달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예외였다.
제온은 데이오든과 달리 맨얼굴을 드러낸 채 걷고 있었다.
살을 후벼 팔 듯 날아오는 모래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제온이 딱히 의식해 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능력이 상승하고, 재능이 개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래와 감응했다.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었지만, 제온은 수십 미터 밖의 상황을 손금 보듯 알고 있었다.
그런 제온의 감각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모래가 아닌 다른 물체였다.
‘뭐지?’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데이오든은 마치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는 듯이 곧장 걸어갔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육면체 모양의 거대한 기둥이었다.
검은 기둥의 표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데이오든이 검은 기둥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너를 다시 보는구나.”
“예전에도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까?”
“삼십 년 전에 우연히 발견했다. 그 후 처음이다.”
“이게 뭡니까?”
“나도 모른다.”
“네?”
“우연히 발견했다.”
말 그대로였다.
당시 데이오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분노에 차 있었다.
지금은 이성이라도 유지하고 있지,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광기가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오 서울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
네오 서울 안에 있던 이종족들을 도륙한 것이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네오 서울 안에도 이종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자신들의 무리에서 낙오되어 네오 서울에 자리 잡은 이들.
그들은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 채 네오 서울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네오 서울이 마법과 과학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엔 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하지만 데이오든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 대부분을 하룻밤 사이에 죽였다.
살아남은 이종족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히 네오 서울은 발칵 뒤집혔다.
데이오든이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네오 서울은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데이오든을 추적했다. 하지만 데이오든을 추적했던 이들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데이오든은 사막을 떠돌다가 이곳까지 왔고, 우연히 모래 위로 드러난 거대한 기둥을 발견했다.
“이 기둥은 결계의 중심이다.”
“결계? 무슨 결계 말입니까?”
“이 모래바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 제아무리 사막이라지만, 이렇게 쉴 새 없이 바람이 몰아치는데?”
“으음!”
제온이 주위를 돌아봤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나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데이오든과 모래술사로 각성한 제온이었기에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어지간한 각성자는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쓰러지고 말 것이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네요.”
“그렇다. 결계가 이 이상 인간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면 저 기둥을 파괴해야 결계를 무너트릴 수 있겠군요.”
“저 기둥엔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저 기둥은 결계의 중심이자, 던전이기도 하다.”
“던전입니까?”
“그렇다. 내가 너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들어가 보면 절로 알게 될 것이다.”
데이오든이 거대한 기둥에 마나를 주입했다.
순간 기둥에 새겨져 있던 글자들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기둥 전체가 환하게 빛났다.
빛은 데이오든과 제온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제온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여긴?”
“그래! 사막이다.”
곁에 있던 데이오든이 대답했다.
그의 말처럼 제온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사막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곳엔 모래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던전 안의 환경이 사막이라는 거군요.”
“그래! 밖의 풍경과 완전히 똑같지.”
데이오든도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기껏 던전을 발견하고 들어왔는데, 사막이라니.
이래서야 던전 밖 세상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이 안에 뭐가 있습니까?”
“모른다.”
“네?”
“이곳의 사막이 밖의 사막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감각의 교란이 일어나 방향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으음!”
제온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밖의 사막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던전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태양의 유무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곳에 무언가 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다.”
데이오든의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이 안에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이다.
문제는 칠 일 안에 던전의 핵이 되는 보스나 아이템을 찾아내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팔 일째 되는 날 던전 밖으로 전이된다.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여지없었다.
아무리 무서운 마수도 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체불명의 던전 안에서 데이오든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반드시 이 던전을 정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 결계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밖에 있는 결계 역시 데이오든을 거부했다.
검은 기둥을 그냥 지나치면 모래바람 속에서 헤매다가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제야 데이오든은 깨달았다.
이 던전을 정복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전진할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제온은 이 던전을 정복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래로 가득 찬 이 던전은 제온의 능력을 발휘하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가 던전의 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세상 그 어떤 각성자도 이 던전을 정복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네놈이 앞장서거라. 나는 네 뒤를 따를 것이다.”
“후! 제 책임이 막중하군요. 핵을 찾아내면 그때는 병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까?”
“조금 잘난 병신이라고 불러 주마.”
“개 같은 늙은이.”
제온이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천하의 데이오든도 정복하지 못한 던전이었다.
물론 능력 때문이 아닌 상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데이오든도 해결하지 못한 던전을 자신이 맡는다고 하니 은근히 흥분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온은 지배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러자 모래를 타고 감각이 뻗어 나왔다.
“뭐야?”
제온이 깜짝 놀랐다.
뻗어 나간 감각의 영역이 무려 수백 미터나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던전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제온은 내친김에 엑시온도 점검해 봤다.
확실히 활성도가 던전 밖과 다르다.
‘이 던전은 뭐지? 모래술사와 관련 있는 건가?’
데이오든이 말한 적이 있었다.
간혹 특정 각성자 클래스와 연관 있는 던전이 나온다고 말이다.
그런 던전을 다른 각성자들이 정복하는 것은 일반 던전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고 했다.
어쩌면 이 던전이 자신의 클래스인 모래술사와 관련 있는 던전인지도 몰랐다.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제온은 모래 걸음을 펼쳐 앞으로 나갔다.
지난 몇 달 동안 데이오든과 동행했지만, 그가 앞장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데이오든은 팔짱을 낀 채 제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제온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무작정 앞으로 나가 봐야 소용없어. 일단 방향을 특정해야 해.’
나침반 따윈 필요 없었다.
이곳이 정말 자신과 관계있는 던전이라면 모래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줄 것이다.
츠으으!
그의 전신에서 미세한 모래 입자가 흘러나와 몸 주위를 부유했다.
엑시온을 몸에 두른 제온의 모습은 마치 검은 유령 같았다.
잠시 제멋대로 부유하던 엑시온은 이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제온은 엑시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래 걸음을 펼쳤고, 그 뒤를 데이오든이 따랐다.
엑시온을 가동하자 제온의 감각이 더욱 확대됐다.
거의 일 킬로미터 밖에 있는 모래의 움직임조차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던전을 나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 또한 사라질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꽤 황홀했다.
마치 이 던전의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온은 고양감을 충분히 만끽하며 전진했다.
무려 이틀을 그렇게 걸었다.
던전 안의 세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막은 광활했다.
마치 던전 안이 아니라 바깥세상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딜 봐도 모래뿐이었다.
특색이 없는 지형이었다.
방향을 특정할 요소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이오든뿐 아니라 그 어떤 각성자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감각이 교란되어 헤맬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모래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이곳인가 보네.”
엑시온이 더 이상 방향을 알려 주지 않고 그의 몸 주위를 부유했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이 말이다.
제온은 엑시온을 다시 흡수한 후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까지 걸어온 곳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데이오든은 이상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제온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모래의 흐름, 색깔, 입자까지도 모두 달랐다.
“후우!”
제온이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스르륵!
순간 그의 발아래에 파문이 일어났다.
모래가 원형으로 파도치며 주위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흠!”
데이오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꼭 모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위의 모래가 밖으로 밀려나면서 제온의 몸이 서서히 지하로 가라앉았다.
이전에도 지하 백 미터 아래 있는 던전으로 가는 길을 연 적이 있었지만,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제온은 벌써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만큼 밀어낸 모래의 양도 엄청났다.
네오 서울의 모든 중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이렇게 단시간 안에 이 정도의 모래를 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모래가 밀려난 수백 미터 지하에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제온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 뒤를 데이오든이 따랐다.
그들이 동굴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밀려났던 모래가 다시 흘러내려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데이오든이 혀를 찼다.
“이러니 그렇게 헤매고 다녔어도 못 찾았지.”
제아무리 데이오든이라고 해도 지하 수백 미터 아래의 상황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
제온이 아니었으면 몇 번을 들어와도 이런 공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모래술사를 위한 던전이 확실했다.
“이 안에 뭐가 있을까?”
이제까지 수많은 던전을 돌았다.
개중에는 S급 보스가 있는 던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마수도 데이오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던전에서 쓸 만한 것은 모조리 얻었다. 그렇게 강해지고, 또 강해져 오늘날의 강대한 무력을 성취할 수 있었다.
이곳이 정말 모래술사를 위한 던전이라면 무엇이 나오든 제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때였다.
스르륵!
갑자기 동굴 바닥의 모래가 솟아올라 뭉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래가 뭉쳐 인간 형상을 만들어 냈다.
모래로 만들어졌기에 정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뭉툭했다.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까지 모두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지만, 모래 인간을 보는 순간 제온은 정체를 알아차렸다.
“샌드…… 솔저!”
모래 병사, 샌드 솔저였다.
제온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샌드 솔저가 공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