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제온과 브리엘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브리엘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어렵게 만든 마력 발전기가 지하에 광명을 가져다주던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쁨에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브리엘은 다음에도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마을에도 마력 발전기를 주고 싶어.’
그녀가 제온을 슬쩍 바라봤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걷는 제온의 얼굴 옆선이 보였다.
강인한 턱선과 날카로운 눈매, 고집스레 굳게 다문 입술.
적에겐 무자비하지만, 같은 편에게는 누구보다 편한 남자였다.
그에게 부탁하면 지금이라도 브리엘을 본래 살던 마을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녀의 맹약에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이 엘프 마을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해도 하이 엘프 마을에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이 엘프들은 이름 그대로 고결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순결함과 고결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세상사나 인간에게 물든 엘프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자신이 배 아파 나은 딸일지라도 말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브리엘도 제온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온과 오래 지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지하 세계도 마력 발전기가 들어온 것을 계기로 변화를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보다 나은 삶을 갈구하고, 발전하길 원했다.
그런 변화 욕구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고결함과 순수함도 좋지만, 결국 다른 이들이 모두 발전하는데, 하이 엘프들만의 마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브리엘은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네오 서울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제온과 함께 마을에 가야겠어.’
그들이 따뜻하게 맞아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이 엘프에게 순수함을 잃은 동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니까.
그들이 환영해 주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그들에게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만든 마력 발전기라면 그들에게 충분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브리엘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우!”
“왜?”
제온이 그런 브리엘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브리엘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그래?”
“응! 그냥.”
“그래!”
제온도 빙긋 웃었다.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브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집 앞에 못 보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펑퍼짐한 로브로 전신을 가린 이들이었다.
모자까지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브리엘은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엘프들!’
같은 엘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엘프만의 향취였다.
비록 인간 세상에 오래 살아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그래도 엘프의 향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제온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봤다.
특히 그중에서도 진한 향이 풍기는 엘프의 정체를 말이다.
“세리언…… 님이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제온 님!”
지목받은 엘프가 모자를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머리와 눈썹도 백금발이었기에 멀리서 보면 그냥 하얀 요정처럼 보이는 여자는 바로 북 구역의 지배자인 세리언이었다.
제온이 물었다.
“여기엔 어쩐 일입니까?”
“제온 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굳이 직접 오실 필요까진 없었는데요.”
“덕분에 일라이가 더 큰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막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늦기 전에 막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제온 님 덕분입니다. 제온 님이 ‘고’를 전부 제거해 줬기에 참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직접 와서 감사의 말씀이라도 드려야죠.”
제온을 대하는 세리언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자신과 동격의 존재로 제온을 대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제온을 인정하고 있었다.
문득 세리언의 시선이 브리엘을 향했다.
세리언과 엘프들이 나타난 그 순간부터 브리엘은 고깔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목받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세리언은 브리엘에게서 느껴지는 하이 엘프 특유의 향을 느꼈다.
그녀가 브리엘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귀한 분을 뵙는군요.”
“쳇! 조용히 좀 해 줘. 동네 사람들 다 알게 떠들지 말고.”
“네!”
“먼저 들어갈게.”
브리엘이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마약에 찌들어 있을 때가 나았나?’
마약에 몸이 절어 있을 때는 하이 엘프 특유의 순수한 향이 발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부터 하이 엘프만이 가지는 향기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네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엘프들은 그런 브리엘의 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리언처럼 쿠라얀에서 넘어온 엘프들은 단숨에 알아차렸다.
조용히 살고 싶은 브리엘에겐 꽤 귀찮은 일이었다.
쿠라얀에서도 하이 엘프들은 존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신과 엘프들을 연결하는 고귀한 존재. 그래서 같은 엘프들조차도 그들을 신격시했던 것이다.
쿠라얀의 멸망과 함께 지구로 넘어왔지만, 하이 엘프를 향한 엘프들의 인식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세리언이 브리엘이 하이 엘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정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나마 제온이 있어서 그 정도에 그쳤지, 나 혼자였다면 분명 북 구역으로 끌고 갔을 거야. 골방에 처박아 신과 소통하라고 채근했겠지.’
브리엘이 혀를 찼다.
저들은 신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거겠지만, 멸망한 세상의 신이 대답해 줄 리 없었다. 어쩌면 쿠라얀이 멸망했을 때 신들도 모두 소멸했을지 몰랐다.
어쨌거나 브리엘은 신과의 소통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은 고향 마을에서 살아가는 다른 하이 엘프들의 몫이었다.
쿵!
브리엘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직후 제온과 세리언이 거실로 들어왔다.
다른 엘프들은 모두 밖에 둔 채였다.
세리언이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요새 내부는 이렇게 생겼군요.”
“그쪽도 요새라고 부릅니까?”
“제온 님의 집은 그냥 요새로 통해요. 저도 그렇게 보고받다 보니 입에 붙었네요.”
“쯧!”
제온이 혀를 찼다.
요새라는 이름이 싫은 게 아니다.
요새라고 불릴 정도로 주목받는 게 싫은 것이다.
제온이 세리언에게 자리를 권했다.
“누추하지만, 자리에 앉으시죠.”
세리언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제온 님 집에선 좋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좋은 기운?”
“들어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편해지네요. 이런 적은 또 처음이에요.”
“다른 곳과 별다를 것 없어요.”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세리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제온을 바라봤다.
삼백 년을 살아온 엘프답게 그녀는 이곳이 보통 장소가 아니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곳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심신이 쾌적해지고, 전신에 알 수 없는 활력이 느껴졌다.
지구에 넘어온 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세리언은 제온의 집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오래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무엇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제온은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제온이 물었다.
“그래서 겨우 감사 인사나 하자고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용건인가요?”
“일단은 보답하고 싶었어요.”
“보답?”
“이거 받으세요.”
세리언이 제온에게 조그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뭔가요?”
“직접 열어 보세요.”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조그만 열쇠 하나가 보였다.
“뭡니까?”
“보는 그대로 열쇠예요. 엘하룬으로 들어가는 열쇠.”
“이걸 왜?”
제온이 놀라 세리언을 바라봤다.
엘하룬은 지구로 넘어온 이종족들이 만든 도시였다.
인간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는 이종족들만을 위한 도시에 들어가는 열쇠라니.
제온은 세리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엘하룬은 인간에겐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곳 아닙니까?”
“하지만 제온 님은 엘하룬이 마가단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것과는 이야기가 다르죠.”
“다르지 않아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솔직히 저는 끝까지 엘하룬의 존재를 감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최측근에게도 엘하룬의 존재를 비밀로 했죠.”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뀐 겁니까?”
“발록이 소환되었던 사건 기억하시죠?”
“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발록을 소환한 주체가 데미안이었기 때문이다.
엘하룬의 이종족들에게 아비를 잃은 데미안이 화이트 베어 카라반과 함께 네오 서울에 와서 일으킨 사상 초유의 사건.
그 후유증에 네오 서울 전체가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 했다.
데미안은 엘하룬을 알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 버렸다.
그 사건은 세리언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과연 엘하룬을 이렇게까지 숨겨야 하는 일인가 의문이 든 것이다.
세리언은 엘하룬의 초기에 한 번 가 보고,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네오 서울에 사는 이종족들을 보호하느라 방문할 시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 구역을 어느 정도 정비하고, 여유를 가졌을 때는 엘하룬에 방문할 마음 자체가 없어졌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그들과의 유대감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엘하룬은 지독히도 폐쇄적인 도시였다.
그들은 세리언에게조차 엘하룬 내부의 소식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리언도 엘하룬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솔직히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도대체 엘하룬이 어떻게 했기에 한 사람에게 그렇게 거대한 원념을 심어 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복수한다? 엘프들의 사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엘하룬 내부 사정이.”
“그래서 제게 열쇠를 건네주는 건가요?”
“솔직히 그 열쇠가 아직도 작동하는지는 알지 못해요. 처음 결계가 만들어지고 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어쩌면 그들은 이 열쇠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백 년은 그만큼 오랜 시간이니까요.”
“제가 엘하룬을 찾아 파괴하면 어쩌려고 이걸 건네준 겁니까?”
“솔직히 제가 열쇠를 주지 않더라도, 제온 님이라면 엘하룬에 들어가는 게 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열쇠는 아무 의미 없어요. 그런데도 제가 열쇠를 드리는 것은 다만 한 번쯤은 제 생각을 해서 그들의 사정을 봐 달라는 뇌물 같은 거예요.”
“뇌물이라.”
제온이 손에 든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제온은 아직 엘하룬을 찾을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는 가 보겠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제온이 열쇠를 품에 넣으며 말했다.
“좋아요. 이 열쇠는 제가 가지죠.”
“고마워요.”
“선물을 주고 고맙다고 하니 이상하네요.”
“사실 제온 님이 받지 않으면 어떡할까 고민했거든요.”
“그럼 본인이 직접 엘하룬에 갈 생각은 없다는 거죠?”
“제가 네오 서울에 와서 깨달은 게 있다면 순혈만 고집해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쿠라얀에서는 엘프가 대단한 종족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구에서는 달라요. 그저 수많은 인종 중 하나일 뿐이에요. 다른 인종과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으면서 서로 융화되죠. 그렇게 지금의 북 구역이 만들어졌어요. 북 구역에 순혈 엘프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하지만 다들 네오 서울에 잘 적응해 살고 있죠. 반면 순혈을 고집해 사막에서 지내는 엘프들은 어떤가요?”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죠.”
“맞아요. 세상이 변했으면 쿠라얀에서 넘어온 종족도 변해야 해요. 하지만 엘하룬에 있는 이들은 변화 대신 고립을 택했죠. 언제부턴가 저에게 연락해 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자신들 사정을 알려 주기 싫다는 거죠. 저는 엘하룬이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고 봐요. 그들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필요해요. 저는 제온 님이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반대로 엘하룬을 파괴할 수도 있어요.”
“그건 그들의 운명이겠죠.”
세리언의 음성엔 씁쓸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종족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고립된 채로 놔두면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다.
그것이 세리언이 네오 서울에서 터득한 세상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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