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몸체 대부분은 모래 속에 숨긴 채 커다란 두 눈만 밖으로 내놓은 마수는 바로 크라켄이었다.
인간보다 거대한 크라켄의 망막에 제온이 맺혀 있었다.
제온도 그런 크라켄의 눈을 마주 봤다.
거대한 마수와 조그만 인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제온을 노려보는 크라켄의 두 눈에 적의가 가득했다.
제온이 자신을 공격했던 것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다.
크라켄은 인간 뺨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제온은 모래를 이용해 자신을 공격했다.
그 원한을 잊을 리 없었다.
스르륵!
크라켄이 모래 아래서 꿈틀거리는지 대지가 들썩였다.
마치 이곳 전체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세를 과시하는 듯했다.
‘영악한 놈이군.’
크라켄이 자리를 잡은 모래밭 아래엔 마정석 광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겉보기엔 모래가 엄청나게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겨우 크라켄의 몸만 잠길 정도였다.
그 정도 모래로는 크라켄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그 사실을 크라켄도 알기에 저렇게 제온을 도발하는 것이다.
제온은 모래를 통해 크라켄의 크기를 가늠했다.
‘다리 길이만 최소 오십 미터가 넘어. 엄청나군.’
문어의 다리가 여덟 개인 것을 감안하면 놈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 크기의 괴물이 빨판으로 달라붙는다면 가이아의 어미인 모비딕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다.
그렇게 엄청난 괴물이 모래 아래 숨어 있었다.
제온과 크라켄은 한참이나 서로를 노려봤다.
한동안 기싸움을 하던 제온은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걷는 내내 등판이 따가웠다.
크라켄이 그의 등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았지만, 놈은 자신의 둥지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이 정도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가?’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다.
지금 제온이 걸어가고 있는 곳은 마정석 광산에서 조금 벗어나 모래로 가득한 곳이었다.
만일 크라켄이 제온을 기습했다면, 오히려 제온이 놈을 끌어내 역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라켄은 영악하게도 그런 제온의 함정을 꿰뚫어 본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쉽지 않겠어.’
저런 타입의 마수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다.
차라리 힘만 믿고 무작정 덤벼드는 놈들이 나았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주제에 저렇게 신중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면 상대하는 쪽에서도 몇 배나 심력과 기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신경 쓸 것은 또 있었다.
과연 삼천사백 명을 집어삼킨 균열이 마수의 권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재해인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정말 균열이 발생한 게 크라켄의 권능 때문이라면 놈의 등급을 다시 산정해야 했다.
균열로 돌아오자 브리엘이 제온을 맞이했다.
“어서 와.”
“결계는?”
“아직 분석 중이야.”
고 노인은 균열 앞에 서서 결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멍하니 보는 것 같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밀한 연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때 서태란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크라켄을 보고 왔다고요?”
“네!”
“어떻던가요?”
“대단하더군요.”
“모비딕에 비하면요?”
“직접 상대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고요?”
서태란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비딕은 등급 추정 불가의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과 비견될 정도라면 엄청난 권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영리한 놈입니다. 똑똑한 데다가 상대의 역량을 파악할 줄도 압니다.”
“제일 골치 아픈 타입이군요.”
“우선 결계를 해제해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놈을 상대하는 것은 그 후입니다.”
“그래야죠.”
서태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온은 그런 서태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왜요?”
“궁금해서 그럽니다.”
“뭐가요?”
“당신이 이곳까지 온 진짜 이유.”
“당연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죠.”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없어요. 그런 거.”
서태란이 차갑게 대꾸하고는 고 노인 쪽으로 걸어갔다.
브리엘이 멀어지는 서태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저 싸가지.”
제온도 고개를 끄덕여 브리엘의 말에 동의했다.
고 노인의 곁으로 돌아간 서태란이 부하들에게 무어라 명령을 내렸다.
주위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쿠워어!
크헝!
갑자기 마수들의 포효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커다란 마수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덩치가 거대한 마수들이었다.
“이것 봐라!”
제온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 정도 크기라면 제온이 유사 지대를 만들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아마도 크라켄이 제온이 퀵 샌드를 펼치는 것을 보고 일부러 큰 마수들을 불러모은 것 같았다.
제온은 다가오는 마수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하나같이 눈의 초점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로써 크라켄의 권능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마수의 정신을 지배하는군.”
균열을 향해 달려오는 마수 중 B급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크라켄의 정신 지배가 역장을 펼칠 수 있는 마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다만 C등급 이하부터는 확실히 먹히는 듯했다.
저렇게 맹목적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제온이 쌍둥이 자매를 불러 놈들의 정신에 간섭해 보라고 말했다.
두 자매는 정신을 집중해 마수들의 의식에 접근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눈을 뜨고 말았다.
“튕겨 나왔어.”
“놈의 정신 지배가 워낙 단단해서 파고들지 못하겠어.”
쌍둥이 자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온이 그녀들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크라켄의 정신 지배가 너희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모양이군.”
“아우! 열받아.”
“겨우 문어 대가리 따위에게 지다니.”
쌍둥이 자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그 순간에도 마수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은 투덜거릴 때가 아니야. 놈들이 고 노인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해.”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쌍둥이 자매가 코웃음을 치며 전투 준비를 했다.
쿵쿵쿵!
마수들이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선두에 있던 고릴라를 닮은 거대한 마수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크워어!
고릴라 마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발을 휘저었지만, 허공에 뜬 몸은 내려올 줄 몰랐다.
그 순간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외쳤다.
“가랏!”
슈웅!
고릴라 마수가 총알처럼 다른 마수들에게 날아가 부딪쳤다.
크웡!
컥!
거대한 고릴라 마수가 대여섯 마리 마수들과 부딪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브리엘이 놀라 제온을 바라봤다.
“염동력이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정신계 능력자니까.”
정신력이 고도로 발달하면 저렇게 텔레파시뿐 아니라 염동력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A급 각성자인 두 사람이 염동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서태란의 부하들도 마수들을 막기 위해 출동했다.
쾅!
퍼억!
거대한 마수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육탄전을 벌이는 서태란의 부하들.
제온은 그들이 싸우는 광경을 유심히 바라봤다.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상해서.”
“누구? 저들?”
“응!”
“뭐가?”
“아무래도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 않거든.”
“그래?”
제온의 말에 브리엘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서태란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거대한 마수들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 자매와 달리 전면에 나서 육박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들의 전투는 처절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겨 나가고, 뼈가 부러지는 원시적인 형태의 싸움이었다.
서태란의 부하들에게 당한 마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그들 역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아무리 커다란 상처를 입어도 그들은 신음 한번 내뱉지 않았다.
콰직!
심지어는 마수의 거대한 발에 짓밟혀 목숨을 잃는데도 말이다.
“설마 성대가 제거된 건가?”
“그건 아닐 거야. 서태란의 말에 대답은 하니까.”
“그럼 훈련된 결과물이란 거야?”
“아마도…….”
“미친!”
브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대체 인간을 어떻게 훈련해야 죽는 그 순간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정말 저들이 인간이 맞긴 한 걸까?”
“그러게 말이다.”
제온의 시선이 서태란을 향했다.
서태란은 팔짱을 낀 채 고 노인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전투에 뛰어들겠다는 태도였다.
시선을 느낀 서태란이 제온을 바라봤다.
그 순간에도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전투는 점점 인간들에게 불리해졌다.
마수들의 물량 공세에 인간들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들이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였다.
“문을 열었다.”
고 노인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가 드디어 결계를 해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신 완전히 해제한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문을 연 것에 불과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 어쩔 수 없이 완전 해제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만 연 것이다.
“서둘러! 문을 오래 유지할 수 없으니.”
고 노인의 외침에 서태란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후퇴해 문으로 들어가.”
“옛!”
마수들과 싸울 때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부하들이 대답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결계의 문은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수십 미터 지하에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테지만, 이곳에 평범한 인간은 없었다.
고 노인을 선두로 쌍둥이 자매, 서태란과 부하들, 브리엘과 제온이 차례로 결계에 형성된 조그만 문으로 몸을 날렸다.
마수들도 그들을 따라 몸을 날렸지만, 제온이 들어가는 순간 문이 사라졌다. 고 노인이 결계를 원상태로 돌린 것이다.
그 사실도 모르고 결계에 몸을 날렸던 마수들이 결계에 부딪혔다.
크아아!
마수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결계에 담겨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마수들을 순식간에 녹여 버렸기 때문이다.
마수들은 별반 대응 한번 해 보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미친!”
“그냥 뛰어들었으면 우리도 저렇게 되었을 것 아냐?”
위쪽을 바라보던 쌍둥이 자매들이 치를 떨었다.
그녀들은 고 노인의 양팔을 잡고 깃털처럼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염동력으로 추락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들 옆에는 제온이 브리엘의 손을 잡고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그는 모래를 이용해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반면 서태란과 부하들은 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제온이 브리엘의 손을 잡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모래로 덮인 지상과 달리 지하는 단단한 암반으로 이뤄져 있었다.
“마정석이군.”
“설마 이게 다 마정석이라고?”
브리엘과 쌍둥이 자매가 깜짝 놀라 제온을 바라봤다.
“확실해! 이거 다 마정석이야.”
“몽땅 다?”
“미치겠네.”
쌍둥이와 고 노인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본 것은 마정석 광산에서 정제된 마정석이었지, 이렇게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정도면 네오 서울이 천 년을 써도 남을 정도의 양이군.”
“대박이네.”
제온의 말에 고 노인이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수많은 시신이 그들을 반겨 줬기 때문이다.
먼저 온 원정대의 시신이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