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눈에 보이는 시신만 백여 구가 넘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듯 멀쩡한 시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 기본이었고,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한 시신도 다수였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군.”
“다른 사람들은 왜 안 보이는 걸까?”
제온의 곁에서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도 이곳에 삼천 명이 넘는 인원이 추락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한 이는 서태란이었다.
“아무래도 뿔뿔이 흩어진 것 같네.”
“흩어졌다고?”
“바닥을 봐. 발자국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했잖아.”
서태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가 진금호의 비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직관력이었다.
지금 그녀의 분석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보니 최소 일곱 개의 무리로 분열됐어. 각 무리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고. 아무래도 사람들이 대형 공격대 위주로 뭉친 것 같아.”
이번 원정대를 주도한 것은 시청이지만, 구성원들은 각 구역에서 내로라하는 공략대들이었다.
서태란이 파악한 바로는 최소 일곱 개의 대형 공략대가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아마도 위기 상황이 되자 그들이 주도권을 잡고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 노인이 시체를 유심히 살폈다.
“소형 마수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아. 대형 마수가 습격해 왔다면 겨우 이 정도 상처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이 지하에도 마수가 있단 말이야?”
“소름 끼치네.”
쌍둥이 자매가 끔찍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지저엔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불빛 한 점 없어 그들이 있는 곳을 제외하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서태란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제온 님은 이런 경험이 많으시죠? 여긴 어떤 곳 같은가요?”
“아직은 모르겠네요.”
제온이 솔직히 대답했다.
이곳이 던전이든, 아니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이든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실체를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에 마수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거죠. 마수의 정체까지 알 수는 없지만요.”
“그런가요?”
서태란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내가 이 남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나?’
경험이 많은 제온이라면 단숨에 답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일반적인 대답만 하니, 자신도 모르게 실망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다.
제온도 그런 사실을 눈치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서태란의 기대 따위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지형은 신중하게 탐색해야 했다.
미리 결론을 내놓고 움직이면 선입견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노출되면, 최대한 냉철하게 상황 판단을 해야 했다.
지금 제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지하, 어둠, 마수, 너무 흔한 키워드야.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해.’
제온은 바닥의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서태란의 말처럼 사람들은 큰 일곱 개의 무리로 나뉜 것이 분명했다.
일곱 개의 무리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도 뭉치지 않고 독자 행동을 했다.
문제는 이중에서 레빈과 친구들이 어떤 무리에 속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레빈이라면 분명 어떤 흔적을 남겼을 거야.’
레빈은 나이는 어리지만, 미숙하지 않았다.
제온을 따라다닌 경험도 많았기에 애송이처럼 무작정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제온이 찾아올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추적해 올 수 있게 흔적을 남겼을 것이 분명했다.
한참 주위를 살피던 제온이 바닥에 남은 흔적을 발견했다.
바닥의 흙이 녹아 수정처럼 결정화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고온의 전류가 작렬했을 때 나타나는 고유의 흔적이었다.
‘레빈이군.’
제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좋은 학생이다.
경험하고 배운 것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니까.
브리엘이 제온에게 속삭였다.
“뭐 찾았어?”
“레빈이 남긴 흔적이야. 이쪽 무리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을 표시해 둔 거지.”
“전기로 땅을 녹였네? 그래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란 거군.”
브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때 고 노인이 제온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그걸 왜 저에게 묻습니까? 저기 리더가 있는데.”
“리더?”
제온이 가리킨 방향을 보던 고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곳에 서태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 감은 아니야. 그녀에겐 이인자, 딱 비서 정도의 위치가 어울려. 무언가 상황을 파악하고 주도할 만한 그릇은 아니지. 그녀에겐 명령을 내릴 자가 필요해.”
“예를 들면 시장님 같은 사람 말인가요?”
“맞아!”
“그럼 어르신께서 리더를 맡는 것은…….”
“나는 더더욱 그릇이 안 되지. 평생 명령받은 대로 살아온 사람인데, 하루아침에 무리를 이끌라고 하면 되겠나? 이 쌍둥이 자매는 더더욱 리더 감이 안 돼. 우리 무리, 이 경우엔 파티라고 해야 하나? 어쨌건 우리 파티의 파티장은 자네야. 자네가 우리를 이끌어야 해.”
고 노인의 말에 제온이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리더 감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행동하는 데 익숙했다.
사막에서 팔 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런 행동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기껏해야 브리엘이나 레빈 정도가 그가 책임지는 사람들 안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하기 싫어도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그때 서태란이 제온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줘요. 그래도 우리 중에서 당신이 이런 상황에 제일 익숙하잖아요. 그러니 대처법도 제일 잘 알겠죠.”
“제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를 겁니까?”
“그럼요.”
서태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 그녀가 미덥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단호히 대답하는데 파티장을 못 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좋아요. 우린 이쪽으로 갈 겁니다.”
제온이 가리킨 방향은 레빈이 속한 무리가 사라진 곳이었다.
서태란이 바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속마음이야 어쨌든 제온을 파티장으로 인정하는 태도였다.
제온은 브리엘과 함께 레빈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었다.
결계 위쪽에서 비춰 주던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독한 암흑이 그들을 맞이했다.
단순한 어둠이라고 보기엔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 끈적한 늪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온이 서태란에게 말했다.
“혹시 플래시 같은 거 준비해 왔습니까?”
“물론이에요.”
서태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하들이 품에서 조그만 플래시를 꺼내 들었다.
크기는 작지만, 매우 강력한 고성능 플래시였다.
플래시를 켜자마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덕분에 시야가 트일 줄 알았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이게 뭐야?”
“이런 건 또 처음 보는군.”
서태란과 고 노인이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딱 오 미터였다.
플래시를 켠 곳을 중심으로 오 미터만 밝아졌을 뿐 나머지는 완벽한 어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직경 오 미터 정도의 반구에 갇혀 있는 것처럼 플래시의 불빛은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했다. 마치 어둠이 그 이상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처럼 빛의 확산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이었다.
고 노인이 말했다.
“신기한 곳이군.”
“아무래도 던전 같습니다. 위쪽의 결계도 그렇고, 이 안의 기운도 그렇고…….”
“하필 마정석 광산 공략대가 자리 잡은 곳 지하에 던전이 있었다니. 운도 더럽게 없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짙은 어둠이 마치 장막처럼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어둠 안에 어떤 위협이 존재하는지, 또 어떤 마수들이 서식하는지, 또 던전의 주체가 뭔지 파악하려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제온은 지상의 크라켄을 떠올렸다.
‘그럼 던전의 영향으로 S급 마수가 탄생한 건가?’
간혹 던전의 기운에 노출된 마수가 급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정석 광산을 점거하고 있는 크라켄이 이해됐다.
마정석 광산을 공략하던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에겐 운이 없었다.
하필 던전 위에 캠프를 세우다니 말이다.
‘일단은 이곳이 어떤 종류의 던전인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군.’
던전의 종류부터 파악해야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다.
제온이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모두 조심하십시오. 이쯤 들어왔으니 분명 던전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겁니다.”
“알았네.”
고 노인이 모두를 대표해 대답할 때였다.
스윽!
소리도 기척도 없이 무언가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쫙 벌어진 커다란 입과 침이 뚝뚝 흐르는 커다란 송곳니.
일행을 공격한 것은 거대한 들개였다.
그런데 평범한 들개가 아니었다.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했다.
반투명한 들개는 뒤쪽에 있던 서태란의 부하 중 한 명을 공격했다.
부하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반격했다.
쐐액!
그의 주먹이 들개의 머리에 작렬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들개의 머리가 박살 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륵!
부하의 주먹이 허무하게 들개의 머리를 통과한 것이다.
“…….”
부하가 놀라 눈을 크게 뜬 사이 들개가 반격했다.
콰직!
들개가 부하의 머리를 물은 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부하의 머리가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튀었다.
다른 부하들이 들개에게 물린 부하를 구하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허무하게 들개의 몸을 통과했다.
그사이 들개는 입에 문 부하의 생명을 완벽하게 끊어 놨다.
들개가 다음 희생자를 찾아 공격하려 할 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들개의 몸에 불이 붙었다.
제온이 파이어 미사일을 날린 것이다.
불이 붙은 들개가 깜짝 놀라 날뛰는 모습을 본 제온이 말했다.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으니 마법 같은 것을 써야 합니다.”
제온의 말을 들은 서태란이 외쳤다.
“모두 척살의 건틀렛을 착용해.”
철컥!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하들의 손목시계가 변형해 건틀렛이 됐다.
“척살의 건틀렛?”
“보여 주죠. 네오 서울의 기술력을.”
서태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부하들이 다시 들개를 공격했다.
들개는 마치 능력을 믿는다는 듯이 부하들의 공격을 무시했다.
제온의 말처럼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들개의 판단 착오였다.
빠지직!
화륵!
부하들이 차고 있는 건틀렛에서 갑자기 전류와 화염이 터져 나온 것이다.
고온 고압의 화염과 전류는 그대로 들개를 강타했다.
캥!
외마디 비명과 함께 들개가 그대로 소멸했다.
서태란이 말했다.
“무투계 각성자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아이템이에요. 보다시피 체내의 마나를 전류나 화염 같은 원소로 바꿔 주죠.”
원리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던전에서 발굴된 아이템 중에는 비슷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도 다수 있었다. 그런 던전제 아이템에 비하면 지금 서태란의 부하들이 차고 있는 건틀렛의 위력은 보잘것없었다.
던전제 아이템이 특별한 힘을 갖는 데 반해, 인간이 만든 아이템엔 그런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이템을 인간이 만들고, 또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온은 네오 서울의 가장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양산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규격화해 대량 양산하기에 모두의 전력이 균등하게 상승한다. 덕분에 모든 각성자의 전력도 동반 상승한다.
그렇게 네오 서울은 강해지는 것이다.
그때였다.
스윽! 슥!
어둠을 뚫고 수많은 들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개들은 무서운 기세로 공격했고, 서태란의 부하들이 맞서 싸웠다.
들개들은 척살의 건틀렛을 낀 서태란 부하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척살의 건틀렛이 작렬하는 순간 들개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브리엘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것들은 이미 죽은 것들이야. 이곳은 망자의 던전인 것이 분명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