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망자의 던전? 확실히 분위기가 비슷하네.”
“역시 제온도 느꼈구나.”
“경험해 봤으니까.”
“제온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브리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온이 정확히 얼마나 많은 던전을 드나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각성자가 평생을 도전해도 어림없을 만큼 많은 경험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망자들이 활보하는 던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망자의 던전이라뇨? 그쪽 꼬마가 어떻게 이 던전의 정보를 아는 거죠?”
“아니까 알지.”
“뭐?”
“그걸 내가 일일이 말해야 하나? 그쪽 부하도 아닌데.”
브리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서태란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설마 나이도 어린 꼬맹이한테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대접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설령 각 구역의 지배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가 자신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감히!”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가 냉정을 되찾았다.
열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이곳에서 브리엘과 드잡이질할 수는 없었다.
당장이야 들개 형태의 마수만 나왔지만, 앞으로는 어떤 마수들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괜히 브리엘과 싸우느라 심력을 소모할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먹고 브리엘을 족치기엔 제온이라는 존재가 너무 거슬렸다.
제온은 가장 강한 전력이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것이다.
괜히 브리엘 때문에 제온과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서태란이 애써 분노를 잠재우며 제온에게 물었다.
“망자의 던전이라면 이곳에 언데드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인 거죠?”
“맞습니다.”
“이젠 하다 하다 언데드들이 있는 던전도 나오는군요.”
“그나마 던전이니까 다행인 거죠.”
“네?”
“바깥세상에도 언데드가 활보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개판인데, 아주 막창 났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서태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집중하십시오. 진짜 이곳의 주인이 언데드라면 겨우 들개 따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요.”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서태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솔직히 지금 습격해 온 유령 들개는 그리 강한 상대가 아니었다. 때문에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등급의 고위 개체가 습격해 온다면 척살의 건틀렛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그때 브리엘이 유리병 몇 개를 꺼내 서태란에게 건넸다.
“받아!”
“이게 뭐죠?”
“성수!”
“성수?”
“동대문의 광신도들이 파는 거라서 좀 믿음이 안 가긴 하지만, 일단은 성수니까 언데드들에게 효과가 있을 거야. 상황이 급박해지면 건틀렛에 발라.”
“하아! 하필 광신도들의 성수라니.”
서태란이 자신도 모르게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요한을 떠올리자,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네오 서울의 이인자인 그녀에게도 요한과 광신도들은 상대하기 꺼려지는 끔찍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파는 성수를 가져오다니.
‘이것도 보통 또라이가 아니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 그런 동대문에서 파는 성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 왔다는 것 자체가 브리엘이 보통 똘기를 가진 게 아니란 것을 말해 줬다.
잠시 성수를 바라보던 서태란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건틀렛에 성수를 발라.”
“옛!”
부하들은 일말의 거부감도 없이 모두 건틀렛을 성수에 담갔다 뺐다. 그러자 척살의 건틀렛에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정말 척살의 건틀렛에 성수의 신력이 깃든 것이다.
서태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효과가 있다고? 미치겠네.’
그녀는 네오 서울에 들어가는 대로 동대문에서 파는 성수를 대량으로 매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그들은 점점 더 어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플래시가 비추는 반경이 더욱 좁아졌다.
오 미터에서 사 미터 정도로 일 미터 줄어든 것이다.
어둠이 그만큼 위세를 발휘하는 것이다.
고 노인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분위기상 이쯤에서…….”
스륵!
그 순간 코에 커다란 뿔이 난 늑대가 나타났다.
조금 전 그들을 습격했던 유령 들개보다 족히 두 배는 더 크고 사나워 보였다.
들개들처럼 놈도 실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고 노인이 혀를 찼다.
“쯧! 그래, 이렇게 나타나야지.”
“어떻게 알았어?”
“역시 할아범이야. 타이밍을 딱 맞추다니.”
쌍둥이 자매들이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유령 들개처럼 유령 늑대도 무리를 지어 다녔다.
겨우 한 마리가 나타나고 말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곳곳에서 유령 늑대들이 나타났다.
크허헝!
유령 늑대들은 크게 포효하며 제온 파티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서태란의 부하들이 유령 늑대들에 맞서 싸웠다.
퍼억!
성수를 바른 건틀렛이 위력을 발휘했다.
실체가 없는 유령 늑대가 건틀렛에 얻어맞고 머리가 터져 나간 것이다.
굳이 척살의 건틀렛을 이용해 마나를 원소로 치환하지 않아도 됐다. 덕분에 서태란의 부하들은 손쉽게 유령 늑대의 수를 줄여 나갈 수 있었다.
쌍둥이 자매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좋아! 우리가 나설 것도 없네.”
“그럼 좋지.”
그때였다.
핑!
마치 쌍둥이 자매의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어둠을 가르며 무언가 날아왔다.
서태란의 부하 하나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날아온 물체에 꿰뚫렸다.
그의 어깨를 관통한 것은 화살이었다.
그것도 어른 키만 한 커다란 화살.
제온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늑대를 부리는 사냥꾼이 있었군.”
쉬쉬쉭!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어둠 속에서 또다시 화살이 연거푸 날아왔다.
부하가 당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모두 어렵지 않게 화살을 막아 냈다.
고 노인은 자신과 쌍둥이 주위에 방어 결계를 펼쳐 화살을 막아 냈고, 서태란과 부하들은 일일이 화살을 쳐 냈다.
제온은 파이어 미사일로 화살들을 일일이 요격했다.
쉬쉬쉭!
어둠 속의 사냥꾼은 지치지 않고 화살을 계속 날렸다.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유령 늑대들의 합공에 서태란의 부하들이 점점 궁지에 몰려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안 도와줄 거야? 저러다가 몰살당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몰살당할 만큼 저들은 약하지 않아.”
“진짜?”
브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서태란의 부하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온이 담담히 말했다.
“저들 모두 능력을 억제하고 있어.”
“그래? 나는 전혀 못 느꼈는데.”
“너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그만큼 정밀하게 힘을 조절하고 있으니까.”
“아까 몇 명 죽었잖아. 그럼, 그들은 더 강한 숨기고 있는데 쓰지 않고 죽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게 말이다.”
제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태란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부터 알아차렸다.
서태란의 부하들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에게선 레빈의 가족을 죽인 살인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인위적이면서도 고약한 냄새가.
살인마에 비해 더 정제된 모습을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에게선 살아 있는 인간 특유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정밀하게 움직이는 인형, 혹은 골렘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아마 서태란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들은 봉인해 둔 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대가가 자신들의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정상적이거나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어떤 생명체라도 죽음은 두려운 법이니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대로 부하들을 모두 죽게 내버려둘 건가? 아니면 전력을 드러낼 건가?’
어떤 쪽이든 그때까지 제온은 그들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들이 전력을 감추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거치적거리는 이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나 같은 존재 말이지.’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미련하게 먼저 나서 그들을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서걱!
갑자기 어둠을 뚫고 날카로운 칼이 튀어나왔다.
칼은 아까 화살에 관통됐던 부하의 가슴을 꿰뚫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 부하의 모습에 서태란이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에서 전력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서태란이 결국 참지 못하고 명령을 내렸다.
“일 단계 봉인을 푸는 것을 허락한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하들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평범한 무투계 각성자로 보이기 위해 이제까지 힘을 봉인해 뒀다. 그 때문에 동료 몇 명이 죽었지만, 그 누구도 서태란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태란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스스로 지옥 불에 뛰어들라는 죽음의 명령일지라도 말이다.
이제 일 단계 봉인이 풀렸으니 마음껏 날뛸 차례다.
겉모습은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 분위기, 기세가 달라졌다.
어둠 속의 검에 관통당했던 부하가 손바닥으로 검면을 후려쳤다.
파캉!
단단한 검이 부러지며 자유를 되찾았다.
그는 이어 가슴을 관통한 검편과 어깨를 꿰뚫은 커다란 화살을 뽑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상처 부위에서 피가 치솟아 올라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부하의 상처에선 피가 거의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각성자라면 벌써 숨이 끊어졌을 만큼 치명적인 상처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브리엘이 깜짝 놀라 말했다.
“지들이 트롤이야? 뭐야?”
“트롤의 재생력을 이식한 거 같은데?”
“진짜?”
“저것들 온전한 인간이 아니야. 레빈의 가족을 죽인 살인마와 같은 바이오 솔저야. 그것도 업그레이드된…….”
“그럼 살인마와 같은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건가?”
“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시청에선 수많은 연구소를 비밀리에 운영한다.
그렇게 운영 중인 연구소들은 외부에선 절대 알 수 없는 비밀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한다.
그중에는 평범한 인간이나 하급 각성자를 강력한 전사로 탈바꿈시키는 개조 프로젝트도 있었다.
서태란의 부하들은 그런 연구소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다.
일 단계 봉인이 풀린 서태란의 부하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스피드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근력이 강화되었고, 감각도 예민해진 것 같군.”
그 증거로 서태란의 부하 한 명이 어둠 속에서 검을 휘두르던 사냥꾼을 끄집어내 머리를 박살 내고 있었다.
빠각!
어둠 속에 은신해 있던 사냥꾼의 위치를 알아낸 것도 모자라 힘과 스피드에서 압도한 것이다.
쾅!
폭음과 함께 유령 늑대의 머리가 박살 났고, 화살을 날리던 또 다른 사냥꾼이 서태란 부하의 공격을 받고 튕겨 나왔다.
파스스!
성수에 담근 건틀렛이 놈을 흔적도 없이 녹여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연구소에서 작정하고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 냈군.”
그의 힐난에도 곁에 있던 서태란의 표정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서태란에겐 두 가지 신념이 있었다.
첫째는 진금호를 보좌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네오 서울을 지키는 것이었다.
‘진금호 님과 네오 서울에 방해되는 자는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문득 제온에게 향했다.
서태란의 시선을 느낀 제온도 그녀를 마주 바라봤다.
‘제온!’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