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일 단계 봉인을 푼 서태란의 부하들은 거침이 없었다.
자신들의 비밀 중 하나를 이미 내보였기에, 무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봉인을 푼 육체에 척살의 건틀렛, 그리고 성수까지 더해지자 어지간한 언데드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났던 좀비 병사가 그들의 공세에 단숨에 녹아내렸다.
좀비 병사들은 유령화한 언데드들과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빈약한 육체로는 서태란의 수하들이 퍼붓는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좀비 병사를 모조리 없앤 부하들이 서태란을 바라봤다.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서태란의 시선이 제온을 향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이대로 백 미터 정도만 가면 막다른 곳입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나올 겁니다.”
“그게 다 보입니까?”
“보인다기보다는 느껴집니다.”
제온이 담담히 대답했다.
짙은 어둠이 잠식한 공간이라고 해서 완벽한 무(無)는 아니다.
원래 있던 지형을 어둠이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제온의 감각은 어둠을 꿰뚫고, 지하 공간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지하 공간에도 모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태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참 편리한 능력이네요, 저도 그런 능력을 각성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지금도 충분히 좋지 않습니까? 무려 네오 서울의 이인자인데.”
“더 강한 능력이 있다면, 시장님에게 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충성심이 대단하시군요.”
“제온 님은 시청에 투신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원한다면 부시장 자리도 드릴 수 있습니다.”
“됐습니다.”
“왜요? 부시장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나요?”
“알다시피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서요.”
“그런 것치곤 꽤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습니까?”
“자연스레 이어진 인연이니까요.”
“인위적인 것은 싫다?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서태란의 음성엔 날이 서 있었다.
자신의 제안을 또 거절한 제온에게 감정이 상한 것이다.
그녀가 영입 제안을 두 번이나 한 이도 제온이 처음이었고, 두 번 다 거절당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낯선 경험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녀는 무척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자신의 감정을 금방 추스를 줄 알았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지금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십시오,”
“그렇게 하죠.”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태란을 지나쳐 걸었다.
서태란은 그런 제온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진금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두렵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서태란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태란에게도 제온은 어려운 상대였다.
자신의 편에게는 따뜻하게 대하지만, 선 밖의 사람에겐 칼같이 거리를 지킨다.
아예 접근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호소도 통하지 않고, 위협은 더더욱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와 가까운 자들을 볼모로 협박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네오 서울이 초토화될 것이다.
제온은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래서 다루기가 극도로 까다로웠다.
‘그래도 결국은 내 발아래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네오 서울 전체를 상대할 순 없어.’
서태란은 속내를 감추며 제온의 뒤를 따랐다.
원래 승자는 최후에 웃는 법이다.
그때까지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서태란은 인내심이 매우 강했다.
턱!
앞서 걷던 제온의 발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벽에 닿은 것이다.
제온이 말한 백 미터 지점이었다.
막다른 곳에서 제온은 왼쪽으로 꺾었다.
“귀신이 따로 없군. 이렇게 짙은 어둠을 마음대로 활보하다니.”
고 노인이 그런 제온의 모습에 감탄했다.
제온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엔 신경도 쓰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다행히 좀비 병사를 끝으로 언데드들의 습격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제온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다.
모두의 시간 감각이 이상해졌다.
몇 시간을 걸은 것 같기도 했고, 며칠을 헤맨 것 같기도 했다.
제온이라는 등대 같은 남자가 없었으면 진작 지쳐 쓰러지거나, 방향을 잃고 낙오했을 터였다.
그나마 제온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굳건히 걷기에 맹목적으로 따를 수 있었다.
이제까지 묵묵히 걷던 제온이 입을 열었다.
“출구다.”
“출구?”
쌍둥이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심적으로 제일 지쳐 있었던 것이다.
서태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출구가 어디 있다는 건가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얼마나 더…….”
“여깁니다.”
갑자기 제온이 멈춰 섰다.
그 때문에 바로 뒤에서 따르던 서태란이 그의 등에 코를 박을 뻔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멈춰서 제온과 부딪히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출구가 어디 있다고…….”
서태란이 입을 연 그 순간 제온이 전방을 향해 파이어 미사일을 날렸다.
쾅!
폭음과 함께 그들의 앞을 가로막던 문이 박살 나며 빛이 확 들어왔다.
“큭!”
“아우!”
어둠에 적응한 눈이 강렬한 빛을 감당하지 못했다.
제온을 제외한 전원이 눈을 질끈 감아 자극을 최대한 피했다.
오직 제온만이 눈을 뜬 채 전방을 주시했다.
“후우!”
그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쏟아져 들어온 강렬한 빛 너머 보이는 풍경이 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출구 밖에는 커다란 기둥들이 떠받드는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 언젠가 보았던 신전 비슷한 풍경이었다.
문제는 신전으로 짐작되는 복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시신들이었다.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시신들.
먼저 이 공간에 들어온 원정대의 각성자들이었다.
시신들은 썩어서 이미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쌍둥이 자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기랄!”
“도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다니.”
걸치고 있는 장비로 보아 모두 강한 각성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으로 부패하고 있으니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잠시 시신들을 살펴보던 서태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확실히 이상하군.”
고 노인이 서태란의 의견에 동의했다.
쌍둥이 자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시신이 많은 것이 충격적이긴 해도 이상할 것까지는…….”
“너희들 눈에는 이상한 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뭐가 이상한데?”
쌍둥이 자매가 발끈하며 고 노인을 바라봤다.
그녀들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고 노인이 아니라 브리엘이었다.
“시체가 벌써 이만큼이나 부패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시간 선이 맞지 않아.”
“시간 선이 뭔데?”
“원정대가 지하로 추락한 것이 대략 일주일 전이야. 그사이 시신이 이렇게 부패하는 것은 불가능해.”
“바보야? 그게 왜 불가능해. 시신이 공기에 노출되면 금방 썩는데.”
“그건 바깥 이야기고, 여긴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차갑잖아.”
“어, 그렇네?”
그제야 쌍둥이 자매는 신전 안의 공기가 무척이나 춥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추운지 절로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브리엘의 말처럼 이런 환경에서 시신이 이렇게 빨리 부패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있군.”
“뭔가 있어.”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뿌드득!
부패해서 구더기가 들끓던 시신들이 갑자기 뼛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부패한 내장을 흘리며 일어선 시신들의 눈에서 귀화가 피어났다.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으로 귀화를 피워 올리는 시신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문제는 시신들 중에 서태란이나 고 노인, 혹은 쌍둥이 자매들이 아는 이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냉철하기로 네오 서울에서 손꼽히는 서태란조차 그 끔찍한 광경에 평정심을 잠시 잃었을 정도였다.
“저 사람은 분명 푸른 매 공략대의 대장인데.”
푸른 매 공략대의 대장은 B급 무투가였다.
주력 스킬은 버서커.
말 그대로 분노에 미친 광전사가 되어 적들을 쓸어버리는 어마어마한 각성자였다.
비록 후유증이 심해 오래 사용하진 못하지만, 스킬을 펼치는 삼십 분 동안은 무적 상태가 되는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가 죽은 것도 놀라운데, 언데드로 부활했다.
서태란으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런 짓을 벌인 거죠?”
“네크로맨서입니다.”
“진짜 네크로맨서가 있다고요?”
“그것도 매우 강력한 네크로맨서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온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만큼 강렬한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네크로맨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크로맨서라는 존재 자체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세상의 이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삿된 존재.
시체로 산을 쌓아 자신만을 위한 신전을 만드는 자.
제온이 아는 네크로맨서는 그런 존재였다.
“이곳은 고위 네크로맨서의 신전이었군.”
“네크로맨서가 어떻게 신전을 만든단 건가? 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존재 아닌가?”
“그 스스로가 신이 되려는 거겠죠.”
“그런…….”
고 노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그만큼 제온의 말이 주는 충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서태란이 말을 잇지 못하는 고 노인을 대신해 물었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신전의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신전을 세운 거겠죠.”
그때였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필그램!”
“뭐?”
“쿠라얀에 전설로 남은 네크로맨서야. 수만 명을 죽여 그들의 시신으로 신전을 지은 최악의 네크로맨서. 그 이유가 신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했어. 그를 잡기 위해 쿠라얀의 전 종족이 힘을 합쳤고, 엄청난 희생을 낸 후에야 겨우 죽였다고 해.”
“진짜 그런 네크로맨서가 있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서태란이 의심의 표정으로 브리엘을 바라봤다. 하지만 브리엘은 굳이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설명할 시간도 없었고 말이다.
크으으!
그워어어!
죽은 각성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뼈를 삐그적거리며 다가오는 부패한 각성자들의 모습은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였다.
제온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 신전의 주인이 정말 필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악취미만큼은 인정해 줘야겠군.”
원정대를 구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원정대의 시신을 보내 상대하게 하다니.
무식하긴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꺾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도 힘들었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물었다.
“망자들에게 안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네크로맨서를 죽이거나, 아니면 원자 단위로 분해하거나 불태워야 해. 안 그러면 끊임없이 되살아나 괴롭힐 거야.”
“그렇단 말이지?”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바닥에 쌓여 있던 모래들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일어난 모래는 그대로 되살아난 망자를 덮쳤다.
가아앙!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모래가 망자들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고, 백린화가 먼지 부스러기보다 작게 분해된 잔해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태웠다.
네크로맨서에 의해 되살아났던 망자들은 그렇게 세상에서 지워져 갔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제온이 중얼거렸다.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으마. 네크로맨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