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씨발! 그쪽 전열 무너지잖아. 어서 막아!”
“이 열 준비해!”
거대한 지하 공동에서 한 여자가 미친년처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피가 잔뜩 묻은 창을 들고 소리를 지르는 여자는 바로 엘로이였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레빈과 그의 친구들인 에론과 도미닉도 있었다.
레빈이 에론과 도미닉에게 말했다.
“준비해!”
“응!”
“알았어!”
에론과 도미닉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전신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얼굴엔 지친 표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로 떨어진 후 한시도 쉬지 않고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은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을 노리는 적은 바로 죽은 자들이었다. 죽은 자들이 좀비로 부활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죽은 자들부터 최근에 죽은 자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더 끔찍한 것은 죽은 자들 중에는 그들의 동료였던 사람들도 다수 있다는 것이다.
에론과 도미닉이 들어갔던 공략대도 전멸해 좀비가 되어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믿고 따르던 이들이 좀비가 되어 공격해 오는 모습은 두 사람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겨 줬다.
차마 동료였었던 좀비들을 마주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아직까지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있는 레빈 덕분이었다.
레빈이 도와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았으면 이제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레빈이 개입해 도와줬기에 두 사람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휴식을 취할 여유 따윈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좀비들을 막으려면 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씨발!”
“살아서 보자.”
레빈을 뒤로하고 두 사람이 무너지는 전선에 뛰어들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레빈이 충혈된 눈으로 좀비들과 싸우는 에론과 도미닉을 바라봤다.
그도 두 사람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상대할 존재는 따로 있었다.
레빈은 이를 악물고 천장을 바라봤다.
허공엔 유령처럼 반투명한 마수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스펙터!’
레빈처럼 유령화한 마수였다.
다른 점이라면 태생부터가 저렇게 물리적인 형체 없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스펙터는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허공을 선회하며 각성자들을 노리고 있었다.
지상의 좀비들을 상대하느라 각성자들은 머리 위를 노리는 스펙터를 신경 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스펙터에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죽은 자들은 좀비가 되어 각성자들을 공격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단순한 좀비가 되었다면 그리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문제는 좀비로 부활한 이들이 생전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처럼 온전한 능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스킬을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레빈의 임무는 바로 스펙터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스펙터를 견제할 이는 레빈밖에 없었다.
스으으!
허공을 선회하던 스펙터가 소리도 없이 각성자 머리 위로 접근했다. 스펙터의 목표가 된 각성자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한창 좀비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펙터가 각성자를 덮치기 직전 레빈이 움직였다.
유령화한 레빈은 섬전처럼 빠르게 날아가 스펙터와 부딪쳤다.
스펙터와 뒤엉켜 허공을 맴돌던 레빈이 퍼플 라이트닝을 발산했다.
치지직!
보랏빛 뇌전은 그대로 스펙터를 태워 버렸다.
스펙터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했다. 하지만 레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직도 허공엔 수많은 스펙터가 있었고, 놈들은 레빈을 피해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펙터를 한번에 소멸시키려면 강한 스킬을 펼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스펙터뿐만 아니라 아군도 모조리 뇌전에 노출된다.
자칫 아군마저 몰살시킬 수 있기에 한 마리씩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
레빈이 스펙터를 사냥하는 사이 다른 스펙터들이 각성자들을 노리고 비행했다.
“제기랄!”
레빈은 서둘러 각성자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빠지직!
뇌전을 발출해 늦지 않게 각성자들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스펙터는 많이 남아 있었고, 레빈의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제온 형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
그가 아는 제온이라면 반드시 구하러 올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든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레빈은 스펙터를 견제하며 고군분투하는 각성자들을 바라봤다.
전열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엘로이가 뛰어들어 좀비들을 막아 냈다. 덕분에 아직 전선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무척이나 위태해 보였다.
“씨발! 죽을 것 같아.”
“어떻게든 버텨. 무너지면 모두 끝이야.”
“제기라알!”
“으아아!”
각성자들의 처절한 외침과 고함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끌어내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 처절한 싸움이 몇 시간이나 계속됐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좀비나 스펙터에게 당한 이들이 다시 좀비로 부활해 공격해 온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서로 독려하며 싸우던 동료가 좀비가 되어 공격해 오자 심약한 각성자들의 정신이 붕괴됐다.
“으아아! 모두 죽을 거야.”
“도망쳐야 해!”
“살려 줘! 난 좀비가 되고 싶지 않아.”
정신이 붕괴된 각성자들이 도망가면서 전선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씨발! 여기서 빠지면 어떻게 해? 어서 돌아오지 못해?”
“개새끼야! 검을 휘두르라고.”
“너희들이 빠지면 우리 모두 죽어!”
좀비와 맞서 싸우는 각성자들이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멍이 뚫린 전선은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었다.
혈인이 된 엘로이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까지 애써 버텨 왔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좀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힘이 역전되는 순간 각성자들의 전멸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이나 레빈은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좀비가 될 것이다.
그렇게 좀비가 된 자들은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헤맬 것이고, 다른 그룹의 각성자들을 공격해 전멸시킬 것이다.
“무려 삼천사백 명이야.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만일 그들이 모두 좀비가 되어 네오 서울을 공격한다면…….”
끔찍한 상상에 엘로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좀비는 지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그들은 산 자를 찾아 사막을 헤맬 것이고,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네오 서울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네오 서울이야 높은 방벽이 있으니 어떻게든 좀비의 습격을 막아 내겠지만, 빈민가는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 것이다.
빈민가의 주민들이 모두 좀비가 되면 제아무리 네오 서울이라도 무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기에 시신을 좀비로 만드는 거지?”
엘로이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도무지 원인을 파악할수 없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엘로이도 지쳐 갔다.
“하아! 하아!”
이젠 숨이 턱 끝에 차 한 걸음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치 다리에 커다란 쇠뭉치를 단 것 같았다.
좀비는 그렇게 둔해진 엘로이를 놓치지 않았다.
크아아!
생전엔 각성자였던 좀비가 크게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일반적인 좀비보다 훨씬 빠른 데다 예측 불가의 움직임이었기에 엘로이는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
“제기랄!”
엘로이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그 순간 강력한 소성이 앞쪽에서 터져 나오며 엘로이의 몸이 들썩였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엘로이가 눈을 뜨자 머리가 사라진 좀비가 보였다.
좀비는 허우적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누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엘로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제온!”
사람들 너머 낯익은 이들이 보였다.
위기의 순간 그녀를 구한 이는 제온 일행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나 극적인 등장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크게 외쳤다.
“지원군이 왔어요. 모두 힘내요.”
그녀의 외침이 구석구석 전해졌다.
“와아아!”
“지원군이다.”
“조금만 더 버텨!”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버티던 이들이 지원군이 왔다는 말에 용기백배해 소리쳤다.
제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많은 사람이 죽었군요.”
“피해가 어마어마하군. 어서 저들을 구해야 하네.”
“일단 좀비와 각성자들을 분리해야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냐고? 나, 고천순이야. 넘버즈의 일원이라고.”
고천순은 고 노인의 진짜 이름이었다.
제온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본명을 꺼내고 만 것이다.
고 노인이 좀비와 뒤엉킨 인간들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쌍둥이 자매가 각각 그의 한쪽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줄게.”
“힘내!”
그녀들은 텔레파시를 이용해 고 노인의 사고에 개입했다.
인위적으로 고 노인의 집중력을 강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고 노인의 집중력이 몇 배나 강해졌다.
푸화학!
반투명한 막이 고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무섭게 확장했다.
“이중 결계. 정(正)은 보호하고, 마(魔)는 몰아낸다.”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우며 확장된 막은 밖으로 좀비들을 밀어냈다. 반면 각성자들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각성자들은 제자리에 가만있는데, 오직 좀비만 결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중 결계는 일종의 그물이었다.
좀비처럼 부정한 기운을 가진 존재만 감지해 밖으로 밀어낸다.
덕분에 각성자들은 좀비의 공세에서 벗어나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크워어어!
좀비들은 허우적거리며 버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쌍둥이까지 합세한 고 노인의 결계는 겨우 스펙터나 좀비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쿵! 쿠우웅!
결국 좀비들은 벽이 있는 곳까지 밀려났고, 스펙터도 결계와 천장 사이에 끼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주제에 공격성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좀비는 어떻게든 결계를 찢으려 했고, 스펙터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일렁였다.
결계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고 노인이 제온에게 외쳤다.
“이젠 자네 차롈세.”
“네!”
제온이 앞으로 나서며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쌓여 있던 모래 입자가 부유해 결계 밖으로 밀려났다.
가아아앙!
결계와 벽 사이에서 모래가 고속 회전했다.
콰가가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갈려 나갔다.
좀비들의 괴성마저 모래에 묻혀 사라졌다.
좀비는 무적이 아니다.
좀비도 머리가 잘리면 죽는다.
그렇게 죽은 좀비는 두 번 다시 부활하지 못한다. 그런데 제온은 겨우 머리만 제거하는 게 아니라 아예 몸 전체를 모래보다 작게 갈아 버리고 있었다.
각성자들을 위협하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광경을 본 각성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미친!”
“저렇게 쉽게 좀비들을 갈아 버린다고?”
“도대체 우린 지금까지 뭐 한 거지?”
너무 어이없어 허무하기까지 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각성자들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직도 결계 밖에는 스펙터들이 건재했다.
물리적인 형체가 없기에 샌드 믹서에서도 무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레빈이 그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퍼플 라이트닝을 터트린 것이다.
빠지지직!
레빈의 분노가 담긴 뇌전은 결계 밖에 있던 스펙터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다.
반면 결계 안에 있는 각성자들은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아 무사했다.
스펙터를 모두 제거한 레빈이 바닥에 착지하며 제온을 꽉 껴안았다.
“형!”
“무사했구나.”
“역시 형이 올 줄 알았어.”
“늦지 않아 다행이다. 잘 버텼다.”
제온이 물리적인 형체를 되찾은 레빈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레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우리 형이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