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하! 씨발.”
엘로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들어 제온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극적인 등장이었다.
그의 등장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전멸할 뻔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힘 빠지게 만든 것이다.
“제기랄! 네오 서울에 돌아가면 슈퍼바이저를 은퇴할 거야.”
원정이 잘 진행되는지 감독만 하러 왔는데, 어쩌다 보니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책임지게 됐다.
무리를 이끄는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수명이 수십 년은 깎인 것 같았다.
이제 제온이 왔으니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운을 차린 엘로이가 제온에게 다가갔다.
“인간아!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아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 하아! 씨발.”
“고생하셨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횡설수설하는 엘로이의 어깨를 제온이 가볍게 두들겨 줬다.
그제야 엘로이가 안정을 되찾았다.
“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야. 차라리 대형 마수를 상대하고 말지, 조금 전까지 같이 싸우던 동료가 좀비가 되어 공격해 오다니.”
“아무래도 이 공간의 주인은 네크로맨서 같습니다.”
“네크로맨서? 그럴 수 있겠네. 그 저주받을 존재라면…….”
“네크로맨서에 대해 아는 것 좀 있습니까?”
“아니! 그냥 그런 클래스가 있다는 것 정도야.”
“흠! 역시 그렇군요.”
제온은 실망하지 않았다.
지구에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정보가 거의 없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정보는 쿠라얀에서 넘어온 세리언 정도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네크로맨서를 상대해야 했다.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겠지만 말이야. 이대로 두면 각개격파를 당하고 말 거야.’
생각을 정리한 제온이 엘로이에게 말했다.
“여기서 쉴 시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해 합류해야 합니다.”
“하긴! 시간을 줄수록 저들의 전력이 늘어날 거야.”
“그게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이죠.”
“어서 움직이자고.”
한가하게 쉴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네크로맨서는 세를 무섭게 불릴 것이다.
좀비에게 죽은 자들의 수만큼 그의 전력이 느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네크로맨서에게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시간은 그의 편이었으니까.
고 노인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정말 상대가 네크로맨서라면 소수 정예로 상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래야죠. 다른 사람들을 모두 구하는 대로 어르신께서 데리고 결계를 빠져나가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네 전력이 너무 약화될 텐데.”
“네크로맨서의 전력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낫겠죠.”
“음!”
그래도 고 노인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크로맨서는 제온의 모래술사처럼 지구에 처음 출현하는 각성자 클래스였다.
그에 대한 어떤 데이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일단 사람들부터 구하고 보죠. 시간을 지체할수록 더 많은 희생자가 날 테니까요.”
“그러지.”
제온 일행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 뒤를 좀비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따랐다. 제대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바로 움직였지만, 누구 한 명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들도 서둘러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정석 광산을 점거하고 있는 크라켄과 싸우는 게 낫지 죽은 자들과는 두 번 다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제온은 두 번째 무리를 찾아 움직였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그 뒤를 쫓고 있었지만, 조그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궁지에 몰렸지만, 그들도 정예 각성자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야 했다.
감각은 활짝 열어놓되 입은 닫아야 한다.
그래야 조그만 변화도 감지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음 무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삼십 분쯤 걷자 앞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쪽 막으라고. 거기 뚫리면 우리 모두 죽어.”
“씨발! 죽으면 좀비가 돼. 어떻게든 버텨.”
“으아악!”
사람들의 악다구니와 고함이 어우러져 고막을 아프게 자극했다.
제온이 앞서 달려가며 말했다.
“빨리 가죠.”
“그러세나.”
고 노인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그들 앞에 거대한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지하 공동에선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좀비 등과 싸우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죽은 듯 좀비 중에서도 각성자가 보였다.
좀비가 된 각성자는 생전 가지고 있던 스킬을 이용해 생존자들을 공격했다.
비록 살아 있을 때보다는 위력이 현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큰 위협이었다.
제온이 고 노인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게.”
고 노인이 나서 이중 결계를 펼쳤다.
쌍둥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도왔다.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반투명한 결계가 각성자들을 공격하던 좀비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결계 안에 각성자들만 남게 되자 제온이 샌드 믹서를 펼쳤다.
가아아앙!
결계 밖에서 모래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모래에 걸린 모든 것이 갈려 나갔다.
각성자들을 위협하던 수많은 좀비가 일순간에 피 모래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 각성자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씨발! 우리 산 거야?”
“살았잖아, 병신아!”
“하아! 눈물 날 것 같아.”
“역시 모래술사는 엄청나구나. 저 많은 좀비들을 단숨에 갈아 버리다니.”
겨우 살아남은 각성자들은 제온을 경외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아!”
“후우!”
제온과 고 노인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연달아 강력한 스킬을 쓰느라 두 사람 모두 마나가 많이 고갈된 것이다.
그나마 고 노인은 쌍둥이 자매가 도와줘서 마나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었지만, 제온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 반동이 적지 않았다.
제온은 가쁜 호흡을 정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두 무리 모두 합쳐 오륙백 명 정도가 살아남은 것 같았다.
죽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생존자를 더 많이 구출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서태란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조금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쉬는 만큼 사람이 더 죽을 겁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알겠어요, 그럼 바로 움직이죠.”
서태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앞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브리엘이 인상을 썼다.
“재수 없어.”
“동감이다.”
엘로이가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그때 레빈이 브리엘에게 다가왔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조금 전까지는 상황이 너무 급박해 미처 인사하지 못했기에 잠시 여유가 생기자 다가온 것이다.
브리엘이 레빈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다친 곳은?”
“없어!”
“물린 곳은?”
“없어! 혹시 물리면 좀비로 변하는 거야?”
“그건 아냐! 좀비가 되는 것은 망자가 되었을 때뿐이야. 좀비들의 이빨에 물리면 그냥 아플 뿐이야.”
“아!”
레빈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에게 물리면 자신도 좀비가 될 줄 알고 필사적으로 물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진짜?”
“쿠라얀에서는 그랬대. 저들이 진화하지 않은 이상 지구에서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별거 아니네. 제온 형이 합류했으니 그깟 좀비 따윈 순식간에 갈아 버릴 거 아냐?”
“네크로맨서가 어디 좀비만 부리는 줄 알아? 좀비 따윈 네크로맨서의 종에 지나지 않아. 진짜는 다음부터 나올 거야.”
“진짜라면 어떤 거?”
“수준이 높은 네크로맨서라면 데스 나이트 정도, 만일 이곳의 주인이 진짜 필그램이면…….”
브리엘이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레빈이 물었다.
“필그램이 누군데?”
“있어. 가장 음습한 곳에서 태어난 죽음의 지배자. 놈이 진짜 이 지구로 딸려 온 거라면 겨우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무서운 놈이 있단 말이야?”
덩달아 레빈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브리엘이 이런 것을 가지고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브리엘의 표정은 정말 공포스러울 때 나오는 것이었다.
브리엘이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레빈은 희망을 품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제온 형이 있으니까.”
“응!”
브리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그녀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누구는 시장 진금호, 서 구역의 패자 김현수, 남 구역의 샤오룬 등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브리엘은 제온이 가장 강하다고 믿었다.
브리엘의 느낌이긴 하지만, 그녀는 제온이 아직 한 번도 전력을 다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력을 감추고도 다른 구역의 패자들이나 진금호와 맞먹는 아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런 제온이 질 리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전설적인 네크로맨서인 필그램일지라도 말이다.
브리엘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고, 그녀의 믿음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레빈이 브리엘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부터 구해야 해. 자칫 늦었다간 각성자들로 이뤄진 좀비 군단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안 되지. 알았어! 정신 차릴게.”
짝!
브리엘이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어느새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제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그들도 느끼지 못하는 새에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이건?”
서태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새 풍경이 바뀐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친! 내 인지 능력을 속였다고? 그게 가능해?’
그녀가 괜히 진금호의 비서를 맡은 게 아니었다.
그럴 만한 막강한 능력이 있기에 진금호의 최측근이 된 것이다. 당연히 감각 또한 평범한 각성자들에 비할 수 없이 예리했다.
그런 그녀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마치 말미잘의 내장처럼 어지럽게 뚫린 동굴.
벽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시체들이 미술품처럼 걸려 있었다.
각각 기괴한 포즈를 지으며 벽에 걸려 있는 시신들.
레빈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 개새끼보다 더한 악취미를 가진 새끼군.’
레빈이 아는 가장 가학적인 존재인 살인마도 이 벽을 만든 이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더 끔찍한 것은 동굴 벽이 정말 짐승의 내장처럼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벽이 꿈틀거릴 때마다 시체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짐승의 내장이 먹이를 소화시키는 과정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모습을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씨발!”
“우욱!”
몇몇 비위가 약한 이들은 아예 바닥에 위액을 토해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짐승의 내장 같은 동굴에서 소화되고 있는 이들은 모두 그들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들 중 몇몇이 눈을 똑바로 뜬 채 살아 있다는 것이다.
“끄어어!”
“주, 죽여 줘! 제발!”
그들은 살려 달라는 것이 아닌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만큼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제온이 말했다.
“고통을 덜어 줘요. 구해 줘도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까.”
“제길!”
푹! 푸욱!
각성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살아 있는 동료들을 하나하나 죽여 나갔다.
그런 그들의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온이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열받는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