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제온의 등장에 반응한 이는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오 미터는 족히 넘는 근육질 거구에 수염이 잔뜩 난 각진 얼굴. 마수처럼 부리부리한 눈과 뭉툭한 코.
마치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은 엄청난 양의 검은 머리카락.
칠흑만큼 검은 비늘이 가득 달린 일체형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에게선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
제온의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그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제온이 진짜 놀란 것은 남자의 오 미터가 넘는 거구와 기세 때문이 아니었다.
남자 앞에 마치 해부를 당한 것처럼 사지를 활짝 펼친 채 널브러진 존재 때문이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피부에 머리에 청록색 왕관을 쓴 남자에게선 지독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죽은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죽은 이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이 찾고 있던 이임을 알아차렸다.
“네크로맨서?”
“그래! 네크로맨서다. 쿠라얀에서의 이름은 필그램이었지.”
대답한 이는 오 미터가 넘는 거인이었다.
제온이 거인을 바라봤다.
거인 역시 흥미롭다는 듯 필그램의 거처에 제멋대로 들어온 인간을 바라봤다.
그의 계산으로 인간이 이곳까지 들어오려면 족히 열 시간이 더 걸려야 했다. 그것도 이천 명 이상의 희생을 내고 말이다. 그런데 무려 그의 예상을 열 시간 이상 단축해 인간이 나타났으니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우선 이 녀석을 확실히 처리해야 하니까. 안 그러면 바퀴벌레처럼 계속 살아나거든.”
콰직!
그가 필그램의 가슴에 팔뚝을 꽂아 헤집었다.
그때마다 필그램의 몸이 마치 생선처럼 펄떡였다.
필그램의 가슴 속을 한참이나 뒤지던 남자가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찾았군!”
그가 필그램의 가슴 안에서 꺼내 든 것은 새끼손톱만 한 보랏빛 보석 조각이었다.
보석을 보는 순간 제온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정체 모를 보석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파장이 제온의 심장을 자극한 것이다.
최상급 마정석이나 아이템도 제온에게 이런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존재해선 안 될 물건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끼며 제온이 물었다.
“그게 뭡니까?”
“궁금해하지 않는 게 좋다. 인간 따윈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니까.”
“그래서 그게 뭡니까?”
“알고 싶나?”
“네!”
“미안하지만, 인간에겐 알 자격조차 허락되지 않는 물건이다.”
“그 말은 당신이 인간이 아님을 인정하는 거군요.”
“그래! 난 인간이 아니다. 이미 네가 짐작하다시피 말이다.”
남자가 허리를 쭉 폈다.
오 미터가 넘는 근육질의 거구가 움직이자 거대한 기운이 지하 공간을 꽉 채웠다.
원래는 필그램이라는 네크로맨서의 것이었을 공간의 주인이 남자로 바뀐 것 같았다.
홀로 좀비, 유령 들개, 스펙터, 듀라한 등을 무한대로 소환해 낸 네크로맨서였다.
거기에 본 드레이크와 본 히드라라는 마물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엄청났다.
그런 자가 영역으로 삼은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영역은 주인의 능력을 배가시켜 주는 효능을 지녔다.
주인의 성향과 능력에 맞게 모든 것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는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주인이 죽은 후에도 말이다.
그런 만큼 이곳은 필그램의 냄새가 확실히 나야 했다. 하지만 남자가 허리를 편 순간 영역의 모든 것이 그의 지배하에 들었다.
남의 영역을 순식간에 강탈해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시신으로 변한 필그램은 어느 순간 재도 남기지 못하고,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죽음을 거부하는 네크로맨서라도 절대 부활할 수 없을 것이다.
제온이 본 그 어떤 마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적을 선보이지 못했다.
심지어는 레비아탄마저도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제온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레비아탄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제온은 뚫어져라 남자를 바라봤다.
“당신…… 드래곤입니까?”
“드래곤이……었었지.”
남자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제온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드래곤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위압감을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오든과 함께 마지막까지 드래곤과 싸웠던 이가 제온이기 때문이다.
그때 싸움의 주체는 데이오든이었고 제온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의 강함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제온의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때 그 드래곤과 필적하는,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아까부터 일어나 가라앉지 않는 제온의 피부 위 소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하이엘툰보다 강하겠군.’
데이오든이 목숨을 바쳐 사냥한 드래곤이 바로 하이엘툰이었다.
지금 제온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이 남자가 작정하고 난동을 부리면 이곳에 온 각성자들은 전멸할 것이다.
제온은 긴장한 채 암암리에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남자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군, 모래술사!”
“나를 알고 있습니까?”
“모를 수가 없지. 이곳은 대화하기 적당치 않으니 우선 자리를 옮기지.”
딱!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제온은 아찔한 부유감을 느꼈다.
동시에 주변 풍경이 사진을 빠르게 섞는 것처럼 확확 바뀌었다.
제온은 이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공간 이동을 이렇게 쉽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온은 하늘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발아래 아득한 지상의 풍경들이 보였다.
만일 제온이 모래를 부려 허공에 뜰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무척이나 당황했을 뻔했다.
―삐이?
그 순간 마음속으로 가이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온의 위기를 느끼고 가이아가 나오려는 것이다.
‘가만있어, 가이아!’
제온은 그런 가이아를 제지했다.
상대는 힘의 끝을 알 수 없는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 앞에 섣불리 가이아를 꺼내 놓았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저 괴물이 가이아를 욕심낼 수도 있었다.
가이아는 그 정도로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제온은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가이아를 보는 순간 분명 저 괴물은 마수를 뻗어 올 것이다.
‘드래곤의 육체를 벗어던진 건가?’
조금 전 남자는 드래곤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드래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촤르르!
남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검은 비늘의 갑옷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갑옷이 아니라 본인의 비늘인가?’
그렇지 않고선 저 일체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남자가 말했다.
“이곳이라면 네가 다른 인간들의 안위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편히 대화할 수 있겠지.”
“그럴 것 같군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좌표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제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마정석 광신이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란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남자의 공격이 마정석 광산 근처에 있을 인간들에게 미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온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상대와 대화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제온이 입을 열었다.
“놀랍군요.”
“뭐가 놀랍다는 거지? 내가 드래곤이었다는 것이? 아니면 필그램을 죽인 것이?”
“당신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런가? 나 말고도 드래곤을 본 적이 있었나 보군. 하긴 우리 종족이 조금 게으른 편이긴 하지. 나는 조금 특별한 편이고.”
“그 보석이 당신을 움직이게 했겠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그게 아니고선 굳이 필그램 같은 네크로맨서를 당신이 사냥할 리 없을 테니까.”
네크로맨서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은 네크로맨서일 뿐이다.
제아무리 본 드레이크나 본 히드라처럼 S급 마수를 만들어 내도 결국은 마수인 것이다.
드래곤의 입장에서 보면 네크로맨서나 그가 창조한 마수들은 발톱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존재를 죽이기 위해 드래곤이 직접 나선다?
말도 안 된다.
적어도 제온의 상식으로는 말이다.
드래곤이 직접 나설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어야 했다.
필그램이 품고 있던 보석.
그 보석이 드래곤을 움직이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엉덩이가 무거운 드래곤을 직접 움직이게 만든 보석의 정체였다.
남자가 미소 지었다.
“역시 너는 특별하군.”
“뭐가 말입니까?”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안다는 말이다. 그 이질적인 능력만큼 특별해.”
“제 능력이 이질적입니까?”
“적어도 일반적이지는 않지. 쿠라얀에서도 모래술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곳엔 사막이 없었습니까?”
“있었지.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지. 쿠라얀은 풍요로운 곳이었고, 굳이 모래를 지배하는 능력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좋은 곳이었군요.”
“그래! 그렇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능력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도…….”
“그?”
제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드래곤인 남자가 순간적이지만, 그를 언급하면서 존경심을 표했다.
드래곤이 존경을 표할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크라시아스 말이군요.”
“역시 너는 알고 있었군.”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재밌어! 정말 재밌어! 내가 드래곤이었던 것을 알면서도 태연하고, 감히 크라시아스라는 이름에도 짓눌리지 않는 인간이라니. 크하하하!”
남자가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일대의 구름이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밀려나 흩어졌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그의 웃음소리에도 제온은 태연했다.
“크라시아스라고 해 봤자, 이미 죽은 존재 아닙니까? 제가 죽은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무슨 말입니까?”
“정말 크라시아스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지구를 테라포밍한 대가로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죽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사라졌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그것도 마음대로 생각해라.”
남자의 대답에 제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너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화가 너무 길어졌군. 가기 전에 네놈의 힘을 시험이나 해 봐야겠다.”
“그 전에 당신의 이름이나 알고 싶군요.”
“훗! 오만한 놈. 내 이름은 나이젤이다.”
파캉!
그 순간 나이젤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비늘이 활짝 펼지면서 실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날개였다.
마치 세상을 뒤덮을 것 같은 크기의 날개 한 쌍.
그 안에 감춰진 비늘로 뒤덮인 육체가 드러났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다.
나이젤은 인간이 아니다.
드래곤도 아니다.
드래곤과 인간의 중간.
반마룡이다.
용과 인간의 장점만을 취해 스스로 태어난 최강의 존재,
그가 제온에게 말했다.
“어디 살아남아 보거라, 모래술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