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나를 보러 왔다구요?”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협조를 구하러 온 걸세.”
“협조라……. 무엇에 대한 협조입니까?”
“앞으로 신촌에 성기사들이 많이 드나들 걸세.”
“그렇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군요.”
“아, 오해는 말게. 이번엔 포교 때문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까.”
제온의 부재를 틈타 신촌을 장악하려고 했던 요한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온은 요한이라는 인간 자체를 믿지 않았다.
“포교는 하지 않는다? 그걸 저보고 믿으란 겁니까?”
“믿지 않아도 상관없네. 굳이 믿으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냥 알려 주려는 것뿐일세. 사정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그야말로 일방적인 통보군요.”
“자네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 나쁠 거야. 이해하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네.”
요한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제가 반대해도 계속 성기사들을 신촌에 들여보내겠다는 말입니까?”
“당분간은…….”
“뭐 때문입니까?”
“이유까지 자네가 알 필요는 없네.”
“그럼 저도 협조할 수 없겠는데요.”
제온이 차갑게 대꾸했다.
예상치 못한 제온의 말에 요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자네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내 말은 요청 따위가 아니라네.”
“제가 거부하면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
“재밌네요.”
“내 말을 허투루 들어 넘기면 재미없을 걸세.”
“그럼 해 보시죠, 전쟁!”
제온이 요한을 도발했다.
요한은 그런 제온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안경 너머에 있는 조그만 눈에 엄청난 적의와 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흔히들 광기라고 부르는 그런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이다.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광기 어린 눈빛에도 제온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신촌의 많은 이들이 죽을 텐데.”
“동대문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죽겠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먼저 선을 넘은 후 통보한 건 그쪽이니까요.”
“대가 세군. 그러다 부러지는 걸세.”
“내가 부러지기 전에 당신의 목이 잘리겠죠.”
“좋네! 그럼 이렇게 하세. 성기사가 신촌에서 활동하는 것은 금지하지. 대신 교단의 평신도 열 명만 이곳에서 활동하게 해 주게.”
“평신도?”
“그래! 말 그대로 평범한 신도들이라네. 그들이 신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장해 준다면 성기사들의 출입을 금지하지.”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요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요한이 보내는 이들이 정말 평범한 평신도일 리 없다.
아마도 요한이 비밀리에 키운 전력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출입까지 완전히 막으면 진짜 동대문과 전쟁을 해야 했다.
제아무리 요한이 비밀리에 키운 정예라도 겨우 열 명이 정보를 수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제토야를 키울 최소한의 시간을 번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좋습니다. 대신 열 명입니다. 기한은 딱 한 달을 드리겠습니다. 그 이상 신촌에서 활동하면 제가 직접 쫓아내겠습니다.”
“좋다.”
요한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원하던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제온이 신촌에서 성기사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파악한 제온은 누구보다 지랄맞았다.
강한 인간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 독종이었다.
그런 이가 자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신촌에서 동대문의 성기사들이 멋대로 활보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극했다.
먼저 교단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보내 제온을 강하게 자극한 후 타협점을 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 제온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달이란 기한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정보를 얻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가 파견하기로 한 이들은 절대 평범한 신도들이 아니었다.
다크 세인트.
어둠에서 교단을 수호하는 성자들.
시청의 넘버즈나 북 구역의 징벌자들에 비견될 만한 동대문의 비밀 무기였다.
요한은 이제까지 다크 세인트들을 꼭꼭 숨겨 뒀다.
말 그대로 비밀 병기였기에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들을 동원한 것 자체가 요한이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성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해.’
교단을 세운 후 처음으로 들은 신의 목소리였다.
원래 그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존재했다면 세상이 이렇게 망가질 리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스스로 신을 자처했다.
말로는 신을 모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신은 실존했다.
그가 들은 것은 결코 착각도, 환상도 아니었다.
그렇게 성스러운 음성은 누군가 변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은 하늘 위에 존재하고, 그는 요한을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
그 시작이 바로 성녀였다.
성녀와 함께 교단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제온은 음침한 요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는 요한의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동대문의 숨겨진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번 기회에 알 수 있겠군.’
***
첸시는 매우 복잡한 혈통의 보유자였다.
중국계 할아버지와 한국계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
러시아계 외할아버지와 체코계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첸시였다.
대멸망 이전이었다면 매우 특별하게 여겨졌을 혈통이었다.
각기 다른 혈통이 이렇게 만나 아름다운 피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첸시는 매우 오묘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수녀복으로도 감춰지지 않을 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딜 가나 눈길을 끄는 외모는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편한 점도 많았다.
바로 누구나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었다.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친절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그녀는 정보 수집에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것이 첸시가 신촌에 온 이유였다.
첸시는 다크 세인트의 일원이었다.
정보 수집에 특화된 능력 때문에 요한이 그녀를 신촌에 제일 먼저 밀어 넣었다.
지금도 첸시는 어떤 남자와 대화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특별히 이상한 사람은 못 봤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수녀님!”
“혹시 나중에라도 이상한 이야기나 소문을 들으면 저에게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제일 먼저 수녀님께 달려가 알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남자의 대답에 첸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수녀라고 보기엔 너무나 고혹적인 미소였다.
남자는 그런 첸시의 미소에 완전히 홀린 표정이었다.
그에게서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첸시가 냉정하게 뒤돌아섰다. 하지만 남자는 끝까지 첸시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남자의 눈길을 느낀 첸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쓰레기 같은…….’
그녀는 구역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저런 더러운 욕망이 담긴 눈길을 받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고문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신과 요한이 그녀에게 내린 시련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더러운 남자의 눈길이 아니었다.
바로 요한이 내려 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성녀를 찾아라.
요한이 그녀와 다크 세인트들에게 내린 임무였다.
이를 위해 다크 세인트들이 빈민가 각지로 흩어져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과연 신촌에서 성녀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첸시는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모든 구역이 동대문에게 적대적이지만, 그중에서도 신촌은 특별했다.
제온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동대문에 장악당할 뻔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유달리 동대문에서 온 성직자들에게 적대심이 강했다.
그나마 첸시나 되니까 남자들을 외모로 홀려 정보를 수집하는 거지, 다른 이들은 모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벌써 열흘째 신촌을 뒤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 때문에 첸시를 비롯한 다크 세인트들도 슬슬 이곳에서 철수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성녀가 지상에 있기나 한 건지…….”
무심히 중얼거리던 첸시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그녀의 시야에 두꺼운 쇠창살이 쳐진 지하 하수로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지상에 없다면 설마 지하에 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하 하수로에도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지상에 살 땅 한 평이 없어 지하로 파고든 사람들.
네오 서울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첸시가 쇠창살을 향해 다가갔다.
쇠창살 사이로 엄청난 악취가 흘러나왔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첸시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B급 각성자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첸시에게 이 정도의 냄새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첸시는 오히려 어떤 사명감을 느꼈다.
“그래!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이런 더러운 곳에 들어가겠는가? 원래 신은 제일 더럽고 험한 곳에 강림하는 법 아니겠는가?”
콰각!
첸시가 쇠창살에 달린 자물쇠를 손으로 잡아 비틀자 너무 쉽게 파괴됐다.
힘없이 열리는 쇠창살.
지하로 들어가기 전 문득 그녀가 뒤돌아봤다.
“이상하다. 분명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하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이상해 탐지 스킬까지 펼쳤지만, 역시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착각인가?”
첸시가 중얼거리며 지하 하수로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진 직후 골목 구석진 곳에서 무언가 몸을 일으켰다.
모래로 이뤄진 병사인 샌드 솔저였다.
샌드 솔저는 첸시가 들어간 지하 하수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모래로 돌아갔다.
***
“역시 찾아냈군.”
제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촌에 들어온 다크 세인트들에게 모두 샌드 솔저 한 기씩 붙여 둬 감시했다.
다크 세인트들은 설마 제온이 샌드 솔저를 붙여 자신들을 감시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제온은 집에 앉아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수 있었다.
그렇게 제온은 다크 세인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총인원 오십 명. 모두 요한의 세례를 받아 음지에서 활동. 평소엔 정보를 수집하지만, 요한이 명령하면 언제든 암살자로 돌변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상위의 열 명. 지금 지하 하수로로 들어간 첸시란 여자도 그중 한 명이지.”
그래서 더 특별히 신경 써서 그녀의 동향을 감시했다.
이렇게 집에서 원격으로 샌드 솔저를 부리는 것은 제온에게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샌드 솔저는 말 그대로 싸우기 위해 만들어 낸 병사이지, 자유 의지를 지닌 감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제온은 첸시에게 붙인 샌드 솔저에게 더욱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첸시가 지하 하수로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결정해야 하나?”
그녀가 지하 하수로에 들어간 이상 요한이 찾는 성녀의 정체가 들통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성녀가 동대문의 손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제온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대문은 분명 성녀를 이용해 폭발적으로 확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제온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제온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첸시를 죽이는 것.
두 번째는 레무라를 죽이거나 감추는 것.
두 방법 모두 엄청난 위험을 떠안아야 했다.
그렇게 제온의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덜컹!
갑자기 문이 열리며 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왔어, 제온!”
브리엘이 레빈, 제토야와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세 사람을 보는 순간 제온은 결심했다.
‘동대문…… 끝을 내야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