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브리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조금 늦었네.”
그녀가 바닥에 쓰러진 헤더와 첸시를 번갈아 봤다.
헤더의 등에 뚫린 구멍으로 바닥이 보였다.
상처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면서 헤더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치명상이었다.
“엄마!”
레무라가 그런 헤더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첸시가 그녀를 막았다.
“위험합니다.”
“이거 놔요. 엄마를 살려야 한다고.”
레무라가 첸시의 팔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각성자의 힘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레무라를 곁에서 지키던 바쿰은 헤더를 기습한 각성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레무라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난 아니야. 아니라고.”
헤더를 공격했던 각성자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헤더를 공격했던 E급 각성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도 첸시가 벌인 일이었다.
최면을 통한 선동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첸시가 은연중 뿌리는 마나의 잔향은 사람들을 최면에 빠지게 했다. 그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레빈이 첸시를 바라봤다.
“아줌마가 이렇게 만든 건가요?”
“처녀보고 아줌마라니?”
“그냥 아줌마구만. 레무라는 놔주고 조용히 이야기하죠.”
“호호! 웃기는구나, 아이야. 내가 왜?”
“그래야 아줌마도 살 수 있으니까.”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뭐래? 원래 사람은 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법이에요.”
“나는 다르다. 신과 요한 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첸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광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아!”
레빈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광기 어린 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제온 형은 이런 자들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제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때 브리엘이 앞으로 나섰다.
“아줌마! 좋은 말 할 때 레무라 놔두고 가.”
“하! 빌어먹을 꼬맹이가…….”
레빈에 이어 브리엘에게까지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자 첸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처녀가 아줌마 소리를 연거푸 들으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레빈과 브리엘이 그녀를 계속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때 제토야가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뭐가?”
“왜 사람들을 홀려 서로 싸우게 만드냔 말이야?”
“당연히 이 꼬마 아가씨를 데려가기 위해서지.”
“하아! 레무라의 생각은 듣지도 않고?”
“그녀도 동대문에 가면 좋아할걸. 깨끗하고, 부유하고, 모두가 떠받들어 줄 텐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첸시의 말에 제토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레무라에게 물었다.
“레무라!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어?”
“아니! 난, 엄마만 있으면 돼. 지상에 올라가고 싶지 않아.”
레무라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들었죠? 아줌마! 그러니까 꿈 깨고 그녀를 놔줘요.”
“진짜 꼬맹이들이 사람 성질 돋우네. 너희들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이 아이 죽을 줄 알아?”
첸시가 레무라의 목을 옥죄었다.
순식간에 레무라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에 제토야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레빈이 그런 제토야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저 여자는 레무라를 못 죽여. 그녀를 죽이면 요한이 불같이 화를 낼 거거든. 그러니까 너는 저들을 말려. 늦으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거야.”
“네! 형.”
제토야가 대답과 함께 바쿰에게 걸어갔다.
첸시의 최면에 영향을 받아서 바쿰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바쿰은 C급 무투계 각성자였다.
D급인 제토야보다 훨씬 강한 각성자였다.
평소라면 감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빈과 브리엘 덕분에 사막의 마수들과 격전을 치르며 제토야의 능력과 자신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바쿰 님! 저 제토야예요.”
“비켜라! 제토야. 내 앞을 막으면 너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저 여자의 수작이에요. 제발 정신 차리세요.”
“시끄럽다.”
바쿰이 크게 소리쳤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헤더를 공격한 각성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팟!
바쿰이 대지를 박차며 헤더를 공격했던 각성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기랄!”
제토야도 몸을 날렸다.
지금은 악어굴 각성자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다.
하나로 똘똘 뭉쳐 동대문의 수작에 맞서야 했다.
쾅!
제토야와 바쿰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엄청난 충격에 제토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바쿰의 공격을 연신 막으며 레빈에게 소리쳤다.
“빨리 그 여자를 처리해요.”
“오케이!”
레빈이 대답과 함께 첸시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첸시가 혀를 찼다.
“쳇! 꼬맹이들이 방해하다니.”
레빈 등이 등장한 그 시점부터 첸시는 탈출할 기회를 엿봤다.
대부분의 최면 능력이 그렇듯 마음이 굳건한 이들에겐 잘 통하지 않았다.
지하에 오래 있어 쇠약해진 각성자들은 쉽게 그녀의 정신 지배에 영향을 받았지만, 레빈과 브리엘 등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첸시가 도주할 경로를 완벽하게 틀어막은 채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첸시가 품에 손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최대한 빨리 달려오셨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만 천사 조각상이었다.
날개가 달린 천사가 화살을 쏘는 자세를 취한 깜찍한 조각상은 요한이 그녀에게 특별히 하사한 아이템이었다.
천사 조각상의 이름은 구원의 천사.
이름 그대로 구원 요청할 때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어디에 있든 순식간에 동대문으로 날아가 첸시의 위치를 안내한다.
“가라!”
첸시가 천사 조각상에 마나를 불어놓으며 중얼거렸다.
순간 천사 조각상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레빈과 브리엘이 어떻게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사 조각상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첸시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호! 조금 있으면 요한 님이 달려오실 것이다.”
“과연 그럴까?”
“뭐?”
“잊었나 보네. 이곳이 누구 땅인지.”
레빈이 피식 웃었다.
***
푸화학!
강력한 빛과 함께 지하 하수로에서 천사가 튀어나왔다.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천사는 조그만 화살을 쐈다.
퍼엉!
화살이 마치 폭죽처럼 터지며 화려한 불꽃을 만들어 냈다.
성기사와 함께 신촌으로 향하던 요한이 그 광경을 봤다.
“저건…….”
요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
구원의 천사를 첸시에게 내려 준 이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구원의 천사는 말 그대로 동대문에게 구조를 요청할 때 발동하는 아이템이었다.
첸시 같은 다크 세인트들은 제아무리 목숨이 위험해도 구조 요청 따윈 하지 않는다.
그들이 구조 요청을 할 때는 딱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바로 임무 완수를 앞두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첸시가 맡은 임무는 바로 성녀를 확보하는 것.
그런데 저런 구원의 천사를 띄웠다는 것은 성녀를 확보했거나, 위치를 특정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첸시가 결국은 해냈군.”
문제가 있다면 구원의 천사가 뜬 곳이 바로 신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녀 확보에 눈이 먼 요한에게 신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성기사들을 이끌고 급히 신촌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신촌 입구에서 그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신촌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선 남자 때문이었다.
요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제온!”
“요한 님!”
미소를 지으며 요한의 앞을 막아선 남자는 바로 제온이었다.
그가 요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거 약속 위반입니다.”
“위반?”
“저희가 약속한 기한은 한 달이지 않았습니까? 저는 약속대로 한 달 동안 동대문의 신도들이 활동할 수 있게 놔두었구요. 그런데 이제 와 병력을 끌고 오다뇨?”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건가?”
“요한 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한 달이란 시한을 정해 둬 우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고 했던 건가?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신촌 지하에 우리가 찾고 있는 이가 있었던 걸.”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지 모르겠네요. 제가 아는 건 한 가지입니다. 바로 요한 님이 약속을 어기고 쳐들어왔다는 거요.”
“감히 나를 상대로 말장난을 하겠다는 건가?”
요한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그의 분노에 등 뒤에 도열해 있던 성기사들의 살기도 고양됐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마주 보는 제온은 태연했다.
“말장난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라는 겁니다. 분명 저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신촌에서의 활동은 한 달이라고.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래도?”
요한의 얼굴이 더 무섭게 변했다.
제온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살기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길을 열어라, 제온!”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감히 신의 뜻을 어기려는 건가?”
“저는 딱히 신을 믿지 않아서요.”
제온의 태연한 대답에 성기사들이 발끈했다.
“감히! 신을 부정하다니.”
“저 불신자가…….”
성기사들은 금방이라도 제온에게 달려들 것처럼 들썩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온에게 쌓인 것이 많은 성기사들이었다.
제온 단 한 명 때문에 신촌을 거의 장악하기 직전 물러나야 했던 사실은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요한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길을 열어라, 제온! 성녀만 확보하면 조용히 물러날 테니까.”
“정말 신이 그렇게 말한 겁니까? 힐러가 성녀라고.”
“감히 신의 말을 부정할 셈이냐?”
“정말 궁금해서 그럽니다. 도대체 어떤 신이 힐러를 성녀라고 속삭여 부추기는 건지 말입니다.”
제온은 신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이 신을 죽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데이오든이 죽인 신이 신성과 힘을 잃은 껍데기뿐인 존재일지라도 말이다.
드래곤도 넘어왔는데, 신이라고 지구에 넘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그 신이라는 존재가 무슨 이유로 힐러를 성녀로 지목해 요한에게 확보하게 했냐는 것이다.
신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런 지시를 했을 리 없다.
“후!”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까지 마음에 담고 있던 모든 감정이 한숨에 어려 있었다.
제온을 향한 분노, 두려움, 그리고 질시까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이 한 번의 한숨으로 털어 냈다.
그에게 남은 감정은 단 하나.
바로 살의였다.
“이제야 나는 확실히 알았다. 너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와 동대문이 살려면 너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이 좀 늦네요. 나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알았는데.”
제온이 미소 지었다.
진작 부딪쳤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제온이 이제까지 미룬 이유는 동대문의 저력 때문이었다.
네오 서울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대문에 포섭된지 몰랐다. 동대문을 음지에서 보호하는 신자들.
그들을 남겨 두면 후환이 끝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해결됐다.
성녀를 찾느라 신자들이 네오 서울을 들쑤시면서 각 구역과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상 명세가 모두 까발려진 신자 따윈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요한의 주위엔 성기사를 비롯한 주요 전력들이 포진해 있었다.
모두 동대문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이들만 모두 제거한다면 빈민가와 네오 서울에 뿌리 깊이 내린 암조직들을 모두 도려 낼 수 있었다.
스르륵!
제온의 등 뒤로 수십, 수백의 모래 인간들이 일어섰다.
그와 함께 싸울 샌드 솔저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