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콰아아!
아카루크의 검술은 실로 가공했다.
그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기운이 일어나 데이오든을 공격했다.
데이오든은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수많은 마수, 각성자 들과 싸웠지만, 그에게 이 정도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 상대는 아카루크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언데드가 되었지만, 살아생전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기사였는지 지금 일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공간과 대지를 한꺼번에 베어 온다.
데이오든도 피하지 않고 마주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콰아앙!
검과 검이 격돌했는데,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후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크윽!”
폭풍이 제온을 때렸다.
그나마 모래 장벽을 일으켜 세워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반응이 조금만 늦었으면 볼썽사납게 나뒹굴 뻔했다.
제온의 시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데이오든과 아카루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쾅! 콰앙! 쾅!
고성의 공터를 누비며 격돌하는 그들의 모습을 제온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봤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온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인간 데이오든.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언데드로 태어난 죽음의 기사.
둘의 싸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온은 시야가 크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고,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둘의 싸움을 보며 제온은 전율했다.
데이오든과 아카루크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시온과 샌드 솔저를 얻어 조금은 우쭐했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좋다!”
아카루크를 상대하는 데이오든의 눈에선 광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하늘로 치켜 올라간 그의 입꼬리 사이로 새하얀 이빨이 보였다.
진짜 즐거울 때 나타나는 데이오든의 미소였다.
저 미친 괴물은 아카루크와 싸우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어휴! 정말 제대로 미쳤다니까.”
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데이오든의 일격이 아카루크를 지나쳐 거대한 첨탑에 작렬했다.
콰르르!
그 충격으로 첨탑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라면 첨탑의 잔해가 데이오든과 제온을 덮치게 된다.
제온이 손을 휘두르자 수많은 샌드 미사일이 첨탑의 잔해를 향해 날아갔다.
퍼버버벙!
폭음과 함께 샌드 미사일에 적중한 첨탑의 잔해가 부서졌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가루가 되어 부서진 첨탑의 잔해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처음처럼 완벽한 첨탑이 된 것이다.
제온이 입을 떡 벌렸다.
“저럴 수가!”
물리적인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마법으로도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것 같았다.
순간 제온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시간을 되돌렸다? 아니, 시간이 멈춰 있다면?”
그렇다면 언데드들이 입은 치명적인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고성을 비롯해 황토색 영역 전체가 시간이 멈춰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체 누가?”
네오 서울에 수많은 각성자가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시간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저 막강한 데이오든조차도 시간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신인가?’
제온은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신’이라는 존재밖에 없었다.
예전의 그는 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오든이 신을 죽인 것을 눈으로 봤기에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휴!”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스케일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D급 각성자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상상이었다.
제온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날린 후 데이오든과 아카루크의 싸움을 지켜봤다.
쾅!
폭음과 함께 아카루크의 어깨가 떨어져 나갔다.
데이오든의 참격이 어깨를 잘라 낸 것이다. 하지만 아카루크는 주춤하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은 존재.
팔이 날아간 것은 그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날아간 팔이 절로 날아와 순식간에 봉합됐다.
데이오든은 그 광경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흐흐!”
이미 언데드 기사들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데드 기사들의 정점에 있는 아카루크의 재생력은 그보다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퍼엉!
아카루크의 옆구리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갑옷과 함께 육체가 재생됐다.
아카루크의 눈에 어린 화광이 더욱 짙어졌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자, 앞으로 나갈 자……격이 없다.”
화하학!
갑자기 아카루크의 검에서 회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회색 오러가 화염 형태로 발산되는 것이다.
쾅! 콰앙!
크레이온과 회색 오러가 격돌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고성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원상태를 회복했다.
스가악!
데이오든의 옆구리에 긴 자상이 생겼다.
아카루크의 검이 상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치명적인 상처에도 데이오든은 인상 하나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에 즐거워했다.
“흐흐!”
언제부턴가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진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고통을 줄 만한 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A급 마수든, 혹은 S급 마수든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신마저 죽인 그에게 상처를 입힐 존재는 없었다.
아카루크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상처를 입힌 존재였다.
순수한 검술만 따지면 아카루크는 결코 데이오든에게 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어떤 상처를 입어도 금세 회복하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카루크는 이 두 가지 무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았다.
데이오든은 죽음의 기사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재생력 따윈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감탄한 것은 아카루크의 검술이었다.
검술만 봐도 생전에 그가 얼마나 지고한 수준에 오른 기사였는지 알 수 있었다.
검술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고, 품위가 넘친다.
패도적이지만, 잔혹하지는 않다.
그것만 봐도 아카루크의 생전 성향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아카루크는 생전 익혔던 검술을 펼쳐 데이오든을 공격했다.
쾅! 콰앙!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대결로 일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자신이 익힌 모든 것을 토해 냈다.
그 모습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검객들이 검으로 대화하는 것 같았다.
제온은 숨 한번 크게 쉬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갑자기 크레이온에 칠흑 같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아카루크의 회색 기운에 절대 뒤지지 않는 불길함을 물씬 풍기는 기운이었다.
“큭!”
칠흑 같은 기운이 발출된 순간 제온은 심장에 고통을 느꼈다.
직접 상대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본 것만으로도 심장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미친!”
제온이 급히 뒤로 물러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언데드들은 물끄러미 서 있다가 칠흑 같은 기운의 영향을 받았다.
푸스스!
정면에 노출된 언데드들의 살점이 갑자기 먼지가 되어 부서졌다.
썩은 살점, 검게 변색된 뼈가 가루가 되는 데도 언데드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우우우!
언데드들 사이에서 기묘한 음향이 터져 나왔다.
울음 같기도 하고, 환희 같기도 한 기묘한 음향이었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환희에 가깝다는 것을 파악했다.
데이오든이 본격적으로 발산하는 기운은 언데드들을 무(無)로 돌아가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언데드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제야 안식을…….
제온의 귀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데이오든의 음성이 고성에 울려 퍼졌다.
“안식을 주마. 죽음의 기사여!”
슈화학!
크레이온이 칠흑의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아카루크에게 작렬했다.
서걱!
아카루크의 몸이 두 동강이 났다.
상·하체로 나뉘어 아카루크가 바닥을 뒹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막강한 재생력을 자랑하던 아카루크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의 재생력이 통하지 않았다.
잘려 나간 단면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던 강렬한 화광도 서서히 사라졌다.
쿵!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대지에 꽂으며 아카루크를 바라봤다.
그때 아카루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음! 그대의 권능은 죽음이군.”
아까와 달리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를 언데드로 만들었던 저주가 데이오든의 권능에 무력화된 것이다. 그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아카루크의 목소리엔 일말의 후회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카루크가 이제까지 쓰고 있던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드러났다.
비록 얼굴의 살점이 반이나 썩어 문드러졌지만, 뚜렷한 얼굴선은 아직 살아 있었다.
생전에는 꽤나 미남이라고 불렸을 법한 인물이었다.
아카루크가 말했다.
“죽음의 권능이라니. 쿠라얀에서 오직 크라시아스에게만 허락되었던 그 권능이 당신에게 이어졌군.”
“크라시아스라면 혹시 그?”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멸망룡, 우리는 그를 크라시아스라 불렀다.”
“크라시아스! 그게 놈의 이름이었군.”
데이오든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세상이 이렇게 망가진 지 무려 백 년 만에 처음으로 놈의 이름을 알았다.
백 년 전 데이오든은 뉴욕에 있었다.
세계의 수도이자 문명의 총화인 뉴욕.
당시 데이오든은 아내와 딸, 그리고 하나뿐인 친구와 함께 뉴욕을 여행하고 있었다.
몬타나에서도 촌동네에 살던 그들은 뉴욕의 화려함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뉴욕의 하늘을 찢고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만 삼 킬로미터가 넘고 무려 열 장의 날개를 가진 그것은 전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드래곤이 아니란 것은 목격한 모든 사람이 알았다.
드래곤의 형상을 한 무언가.
짐승의 형상을 한 신(神).
놈을 목격한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드래곤을 직접 봤던 이들 대부분은 놈이 은연중 발산하는 신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놈의 날갯짓 한 번에 뉴욕의 반이 파괴되었고, 오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죽었다.
그야말로 재앙의 도래였다.
그때 데이오든의 아내와 딸이 죽었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말이다.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아내와 딸을 잃은 데이오든은 복수를 다짐했다.
그것이 무려 백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데이오든은 단 한 순간도 당시의 기억을 잊은 적이 없었다.
데이오든이 아카루크에게 물었다.
“크라시아스는 어디에 있느냐?”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무(無)로 돌아갔다.”
“뒈졌다고? 세상을 이따위로 망가트려 놓고?”
“다른 세계를 테라포밍하려 한 대가는 매우 크다. 태초부터 모든 이적(異蹟)과 이능(異能)을 포식해 온 멸망룡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익!”
데이오든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아카루크가 그런 데이오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대의 마음 안다.”
“닥쳐라! 언데드 따위가 무얼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나를 이렇게 언데드로 만든 것도 크라시아스였다. 오직 나만이 그의 결정에 반해 대항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