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엄마!”
레무라가 헤더의 시신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결국 헤더를 구하지 못했다.
첸시의 방해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무라를 제외하고 헤더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레무라를 믿고 헤더가 저지른 패악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후!”
제토야가 그런 레무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레무라의 미래를 위해선 헤더가 없는 게 낫지만, 그렇다고 그게 헤더가 죽을 이유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빈이 첸시를 죽이자 각성자들은 최면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들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하아! 씨발…….”
다행히 죽은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없었다.
한 명은 레무라의 어미인 헤더였고, 또 한 명은 헤더를 공격한 E급 각성자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엄마! 어엄마!”
레무라는 헤더의 시신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제토야와 레빈, 브리엘은 그런 레무라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들은 섣불리 레무라를 위로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을 소모할 때까지 울게 놔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바쿰이 몸을 일으켜 제토야에게 다가왔다.
제토야가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자 바쿰이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다. 한번 진 상대에게 다시 싸우자고 덤빌 만큼 염치없지는 않으니까.”
“아저씨도요.”
“최근에 각성한 거 맞지?”
“네! 아저씨는 최근까지 누워 있었죠. 덕분에 이길 수 있었어요.”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진 것 인정하마.”
“다행이네요. 아저씨하고 또 싸우긴 싫었는데.”
“나도 그렇다.”
바쿰의 말이 의외였기에 제토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바쿰이 이유를 설명했다.
“너는 강해질 거다. 지금도 강하지만, 앞으로 더 빠르게 강해지겠지.”
“그건 운이 좋아서…….”
“아니, 재능이다. 너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일이 년 만 지나도 악어굴에 너를 이길 자는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냥 하는 칭찬이 아니었다.
직접 싸워 봤기에 제토야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절감한 거다.
특히 하수로의 벽과 천장을 평지처럼 뛰어다니며 공격하는데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가 아는 악어굴의 그 어떤 각성자도 제토야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이런 제토야의 재능이 별 소용없을지 모르지만, 지하 하수로에서는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갓 각성한 지금도 이 정도로 뛰어난 전투 센스를 자랑하는데,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여기 있었구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들이 있는 지하 공간에 나타났다.
바쿰이 깜짝 놀라 전투 태세를 취하는데, 레빈과 브리엘이 먼저 나섰다.
“형!”
“제온!”
“다들 무사했구나.”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남자는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을 보는 순간 바쿰은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어깨가 잔경련으로 떨렸다.
그의 육체가 본능적으로 제온의 강함을 감지한 것이다.
악어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한 생존 본능이었다.
상대의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할 수는 있었다.
제온의 수준은 그가 추정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그래서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아이들의 보호자? 괴물이구나.’
바쿰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잠시 두 아이의 안부를 물은 제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잘 정리했구나.”
“레무라의 엄마를 구하지 못한 것만 빼고는…….”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지.”
제온은 헤더를 동정하지 않았다.
레무라에겐 미안하지만,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도 차라리 헤더가 죽은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었으면 레무라의 고혈을 죽을 때까지 빨아먹었을 거머리 같은 여자였다. 차라리 이쯤에서 죽은 것이 모두에게 나았다.
브리엘이 제온에게 물었다.
“밖은?”
“그쪽도 잘 정리됐어.”
“요한은?”
“그토록 원하던 신의 곁으로 갔어.”
“행복하겠네.”
“그랬으면 좋겠네.”
“히히! 어쨌거나 잘됐다. 더 이상 그쪽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브리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토야와 레무라를 바라봤다.
이제 악어굴의 운명은 저들의 손에 달렸다.
저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악어굴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
동대문의 패배와 요한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은 엄청났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광신도들의 집단인 동대문이었다.
신과 요한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광신도들이 그득한 곳이 바로 동대문이었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마치 폭탄벌처럼 달려들어 자폭한다.
그렇기에 동대문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는 네오 서울 내의 세력들도 동대문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A급 힐러가 이슈가 되어서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지, 그렇게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면 다른 구역들이 동대문의 광신도들과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싸우길 꺼리는 동대문이 제온 단 한 명에게 풍비박산이 났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빈민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도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일개인이 거대 세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제온이 유일무이한 클래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제온과 충돌한 경험이 있는 남 구역과 서 구역이었다.
남 구역의 지배자 샤오룬은 애초 제온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서 구역의 지배자 김현수는 제온을 감옥에 가둔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제온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온이 다른 구역과의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북 구역이 조금 나을 뿐, 동 구역도 제온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제온을 크게 견제하지 않았다.
모래술사라는 클래스가 물론 유니크하고, 엄청난 가능성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네오 서울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동대문의 몰락은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거대 세력이 일개인에게 멸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세력마다 비상이 걸렸다.
수뇌부가 소집되고 동대문의 몰락으로 인해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고, 일련의 사건들이 각 구역에 끼칠 영향들에 대책을 세우려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우는 이들은 아무래도 제온과 직접적인 충돌을 몇 번이나 한 남 구역이었다.
거대한 회의실에 샤오룬을 필두로 남 구역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였다.
“믿기 힘들군. 설마 동대문이 저렇게 와해되다니.”
“혼자서 수백 명의 각성자들을 죽이다니. 제온은 이미 일인 군단급의 전력을 가지고 있어요.”
“미친 거 아냐? 아무리 모래술사라는 클래스가 사기적이라도 그렇지.”
“뭔가 불공평하군.”
도떼기시장을 연상시키는 수뇌부들의 대화에 샤오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남 구역은 거대했다.
당연히 사람도, 이권도 그만큼 거대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런 거대 세력을 이끄는 자들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강철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샤오룬도 이제까지 그런 줄 알았다.
자신과 있을 때는 늘 듬직한 모습만 보였고, 실제로 남 구역을 잘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온이라는 괴물이 나타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그들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한심한…….’
샤오룬의 얼굴에 한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대화하느라 미처 그런 샤오룬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제온을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이대로 영향력을 확대하면 분명 우리 일에 큰 지장을 줄 겁니다.”
“그래서 싸우자고?”
“그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하자고?”
“자꾸 시비조로 말하지 마십시오. 대책을 마련하자는 거지, 싸우자는 게 아니니까.”
“나도 답답해서 그러지.”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랐어요. 모두 쉬면서 잠시 감정을 가라앉혀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머리를 곱게 틀어 올리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치파오를 입은 여자의 이름은 청밍이었다.
샤오룬이 직접 가르친 제자이자, 뛰어난 각성자였다.
어린 나이에 벌써 중요 직책을 맡아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청밍 덕분에 격앙되었던 분위기가 조금은 차분해졌다.
“죄송합니다, 샤오룬 님.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수뇌부 중 가장 연장자인 탄륭이 샤오룬에게 사죄했다.
탄륭은 사십 대 중반의 남자로 강인한 턱선과 수염,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남 구역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인 주작 길드를 이끄는 각성자였다.
주작 길드는 샤오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세를 키운 길드로, 남 구역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그와 맞은편에 있는 젊은 남자는 남 구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추웨이라는 남자였다.
기계처럼 냉철하고, 계산이 정확해 인간미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도 이번 사건에 크게 놀랐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외에도 고타오, 염청 같은 각성자들도 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샤오룬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다가 청밍에게서 멈췄다.
“그나마 네가 가장 낫구나, 청밍!”
“아닙니다, 샤오룬 님!”
“네가 제때 분위기를 환기시키지 않았다면, 저 멍청이들이 끝까지 추한 모습을 보였겠지.”
샤오룬의 말에 사내들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지배자인 샤오룬은 결코 자비로운 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수하들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과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다른 이들로 대체될 수 있었다.
그런 샤오룬을 앞에 두고 못난 꼴을 보였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청밍이 샤오룬의 심기를 읽고 뒤늦게라도 분위기를 환기한 것이 다행이었다.
“죄송합니다, 샤오룬 님!”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고타오와 염청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샤오룬이 그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제온이 대단하긴 하군. 나름 잘났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니는 것들을 모두 쫄게 만들었으니.”
“쫀 게 아니라…….”
“그게 쫀 게 아니면 뭐냐?”
“…….”
샤오룬의 말에 나름 변명해 보려던 염청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샤오룬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제온이 대단하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다.”
“인간?”
“그래! 그도 우리처럼 혈관에 피가 흐르고, 마나가 고갈되면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인간이다.”
샤오룬의 목소리에는 모두를 집중시키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인간인 이상 약점도 분명 존재할 터. 이제부터 우리는 제온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그의 능력, 인간관계, 행적, 약점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알아내라.”
“설마 그와 전쟁하려는 겁니까?”
“별 병신 같은 소리를 다 듣는구나. 전쟁을 대비하려는 거다. 녀석과 우리 사이엔 이미 깊은 골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놈과 부딪쳐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부터 대비해야지.”
샤오룬은 냉정했다.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지도, 제온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지금 제온과 부딪친다면 이기더라도 남 구역에 큰 피해를 입는다.
상처뿐인 영광이나 승리 따윈 필요 없었다.
그는 늘 전쟁을 준비했고, 덕분에 수많은 전쟁에서 큰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청밍!”
“네! 샤오룬 님.”
“이번 일은 너에게 맡기마.”
“전적으로 저에게 맡긴단 말씀이신가요?”
“그래!”
샤오룬의 말에 청밍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남 구역의 수많은 남자를 홀린 미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