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엔 자신이 무언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주름이 가득한 흉측한 외모에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온 커다란 어금니.
정체불명의 뼈가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와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뼈창.
놈은 오크였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모를 늙은 오크가 김진수와 각성자들이 철갑 개미를 사냥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지만, 오크는 다르다.
나이 든 오크일수록 강하다.
오크들의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이었다.
나이 든 오크라고 해서 우대해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나이가 든다.
약한 오크는 늙을 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하는 것이다. 주술사처럼 극히 희귀한 존재가 아닌 이상에 말이다. 그래서 오크들의 세계에서 노인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였다.
적어도 젊은 오크들과 싸워서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진 강자. 거기에 나이만큼의 경험과 연륜이 더해지기에 젊은 오크들보다 강할 확률이 높았다.
바위 뒤에서 지켜보는 늙은 오크도 그렇게 강한 오크일 가능성이 컸다.
‘이 근처에 오크 서식지가 있었던가?’
제온이 기억을 더듬었지만, 이 근처에서 오크들은 못 봤던 것이 확실했다.
‘새로운 오크 무리가 정착한 건가?’
오크 무리가 정착한 거라면 골치 아파진다.
오크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다른 이들이 사냥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자신들의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영역이라 생각하고, 자신들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적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사막엔 수많은 오크 부족들이 널려 있었다.
제온이 오크 로드와 부하들을 처리했음에도 많은 오크들이 남아 왕성하게 번식했다.
그런 오크들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른쪽을 막아. 그쪽으로 철갑 개미가 들어오잖아.”
그때 김진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오른쪽의 저지선이 뚫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지선이 뚫린 쪽으로 철갑 개미들이 밀고 들어오면 사냥이 힘들어지기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다행히 여유가 있던 각성자 한 명이 취약한 오른쪽으로 가서 동료를 도왔다. 덕분에 전선이 안정을 되찾았다.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제온이 늙은 오크가 숨어 있던 바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늙은 오크는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쯧!”
제온이 혀를 찼다.
왠지 찝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 늙은 오크를 추적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가 균열 건너편으로 넘어갔을 때쯤이면 늙은 오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늙은 오크는 사막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그런 오크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제온은 늙은 오크를 추적하는 것을 깔끔히 포기했다.
지금은 철갑 개미를 사냥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화염 아르마딜로에 끌린 철갑 개미들이 쉴 새 없이 균열 위로 올라왔다.
벌써 이백 마리 넘게 잡았다.
이 이상 철갑 개미를 잡아 봐야 소용없었다.
운송할 차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제온이 김진수에게 소리쳤다.
“화염 아르마딜로 사체를 균열에 던지십시오. 그럼 더 이상 철갑 개미가 올라오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김진수가 화염 아르마딜로 사체들을 균열 속으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지상으로 올라오는 철갑 개미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김진수와 각성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죽겠네.”
“정말 원 없이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흐흐! 이게 다 몇 마리야?”
“씨발! 손맛 죽이네.”
각성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이번처럼 일방적으로 마수들을 후드려 팬 적은 처음이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합심해서 잘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레빈의 합류가 큰 도움이 됐다.
퍼플 라이트닝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거나, 마비된 철갑 개미들을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덕분에 크게 힘을 아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철갑 개미들을 죽였는데도 힘이 남아 있었다.
제온이 김진수 일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쉬었으면 어서 사체를 가지고 물러나죠. 지금이야 화염 아르마딜로 사체에 정신이 팔렸겠지만, 모두 먹어 치우면 복수하겠다고 몰려올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들었지? 어서 사체를 차량에 싣고 이곳을 빠져나간다.”
“알겠습니다”
“옛! 대장.”
각성자들과 짐꾼들은 합심해서 철갑 개미들의 사체를 운송 차량에 실었다.
한 시간도 안 걸려 모든 사체를 운송 차량에 실을 수 있었다.
“모두 실었습니다.”
“오케이! 개미 새끼들이 복수하겠다고 나오기 전에 빨리 이곳을 뜨자.”
“넵!”
우렁찬 대답과 함께 차량들이 균열을 떠나기 시작했다.
균열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각성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희생자 한 명 없이 사냥을 성공했어.”
“진짜 기분 끝내준다.”
“우하하!”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보다 희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기쁘게 했다.
아무리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각성자라고 해도, 동료를 잃는 슬픔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까지 그들은 수많은 동료를 잃고 슬퍼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들은 균열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제온이 적당한 곳을 찾아 장갑 버스를 세우게 했다.
“이쯤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피곤할 텐데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네오 서울로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김진수가 흔쾌히 대답했다.
야영지가 정해지자 짐꾼들이 움직였다.
장갑 버스와 운반 차량으로 둥글게 에워싸 임시 거처를 만들고 식사 준비를 한 것이다.
김진수가 외쳤다.
“사냥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가져온 음식 전부 꺼내.”
그의 결정에 각성자들과 짐꾼들이 환호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맛없는 보존식만 먹느라 질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좋았어!”
“가져온 음식 다 풀어.”
“오늘은 허리띠 풀고 포식해 보자.”
일꾼들은 특별히 준비해 온 음식들을 모조리 내왔다.
제온과 브리엘, 레빈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각성자 몇 명이 레빈에게 다가왔다.
“고마워! 덕분에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나도 고맙다. 위험할 때 구해 줘서.”
그들은 모두 레빈에게 구함을 받은 이들이었다.
레빈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그래! 같은 빈민가에 사니까 언제든 찾아오라고.”
“너는 이제 우리 형제야.”
네오 서울에 있는 각성자들과 빈민가의 각성자들은 성향이 다르다.
네오 서울의 각성자들이 조금 계산적이라면, 빈민가의 각성자들은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밑바닥에서 같이 고생한다는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같이 어울려 고생을 하고 나면 처음 보는 이들이라도 친구로 받아들였다.
김진수와 각성자들에게 레빈은 이미 전우였고, 친구나 다름없었다.
레빈도 마찬가지엿다.
그 역시 밑바닥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각성자들과 레빈은 금세 의기투합해 떠들고 웃었다.
김진수가 제온에게 다가왔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덕분에 효율적인 철갑 개미 사냥 방법을 알았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랄 것도 없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고민하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저도 마수들을 꽤나 상대해 봤지만, 한 번도 제온 님처럼 마수를 사냥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온 님이 아니었으면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면 희생자가 더욱 많이 나왔겠죠, 제온 님에겐 별거 아니겠지만, 저희 같은 밑바닥 각성자에겐 생존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진수의 극찬에 제온이 뺨을 긁적였다.
왠지 낯간지러웠기 때문이다.
제온은 괜히 성벽처럼 야영지를 둘러싼 운반 차량을 바라봤다.
거대한 운반 차량에는 철갑 개미 사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수만 명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만한 모래 경화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네오 서울에선 쓰레기 취급을 받는 최하급인 F급 마수의 사체가 빈민가의 기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철갑 개미의 사체를 무사히 빈민가로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수만 명이 살 수 있는 집이 생긴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원정은 충분히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
만찬이 끝난 후 제온과 브리엘은 장갑 버스로 돌아왔다.
―삐이!
혼자 장갑 버스에 있던 가이아가 반갑다며 그들을 맞아 줬다.
제온과 브리엘의 주위를 유영하며 꼬리를 흔드는 가이아.
브리엘이 그런 가이아를 꼭 껴안아 주며 사과했다.
“미안! 혼자 심심했지?”
―삐이!
“이해해 줘서 고마워!”
제온도 가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혼자 있다고 말썽도 피우지 않고. 착하네, 가이아!”
―삐이이!
“그래! 이제 브리엘과 마음껏 놀아. 방해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아직도 밖에서는 레빈과 각성자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원정 중이라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것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레빈과 각성자들은 서로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기에 제온과 브리엘이 먼저 버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제온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브리엘에게 말했다.
“나는 먼저 잘게.”
“응! 나는 가이아하고 의논 좀 하다가 잘게.”
“연금술?”
“응!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렇게 해.”
최근 들어 브리엘의 영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수시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곳까지 오면서도 몇 번이나 그랬다.
그때마다 브리엘은 가이아와 함께 간단한 실험을 하거나, 노트에 아이디어를 적었다.
브리엘은 가이아와 함께 장갑 버스 후미 구석진 곳으로 가서 속삭거렸다. 딴에는 제온의 수면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철갑 개미가 화염 아르마딜로의 냄새를 맡고 균열로 올라왔단 말이야. 균열 아래 있던 철갑 개미가 어떻게 위에 화염 아르마딜로의 사체가 있는지 알았겠어? 분명히 냄새를 맡고 알았겠지. 그렇다면 힘들게 화염 아르마딜로를 잡을 필요 없이 냄새만 똑같이 구현하면 되는 거 아냐? 화염 아르마딜로의 냄새와 똑같은 향수를 만들어 뿌리면 더 효율적으로 철갑 개미를 꼬실 수 있겠지?”
―삐이!
“그래! 문제는 배합이야. 돌아가는 길에 화염 아르마딜로 한 마리를 잡아서 분석해 봐야겠어.”
―삐이! 삐!
“알았어.”
제온은 브리엘과 가이아의 대화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몰랐다.
제온은 이상한 예감에 눈을 떴다.
차 안은 어두웠고, 브리엘과 가이아는 쌔근쌔근하며 잠자고 있었다.
제온은 그들이 깨지 않게 버스를 나왔다.
야영지에는 각성자와 짐꾼 들, 레빈이 아무렇게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잠시 야영지를 둘러보던 제온이 이내 운반 차량 지붕으로 올라갔다.
“아니, 왜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아직 새벽인데…….”
운송 차량 위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던 김진수가 제온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제온이 김진수의 말을 막으며 운송 차량 밖 어둠을 노려봤다.
그의 행동에 김진수가 절로 긴장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제온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어둠을 바라보던 제온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아무래도 사람들 모두 깨워야겠습니다.”
“네?”
“마수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귀를 기울이면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겁니다. 철갑 개미입니다.”
“무슨?”
김진수가 제온의 말대로 정신을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미세한 소음이 들려왔다.
딱딱! 따닥!
제온의 말대로 이빨 부딪치는 소리였다.
김진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야영지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일어나. 마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