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6)
36화
크라시아스는 쿠라얀의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쿠라얀의 그 누구도 그를 드래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같은 드래곤조차도 말이다.
크라시아스의 이명은 탐룡(貪龍)이다.
쿠라얀에 존재하는 모든 이적(異蹟)과 이능(異能)을 탐해 수집했기 때문이다
삼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가 바로 이능의 집합체였다.
쿠라얀이라는 세계의 정점에 존재했지만, 크라시아스는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마치 신처럼 관조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 쿠라얀에 존재했던 신들 중에서도 크라시아스와 비견 될 만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크라시아스의 방관 아닌 방관 아래 쿠라얀 내에서는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쿠라얀은 지구와 매우 다른 곳이었다.
문명의 발전은 지구와 비슷했지만, 방식은 전혀 달랐다.
과학 대신 마법과 온갖 이능이 인류의 문명을 개화시킨 것이다.
구성원 또한 지구와 달랐다.
인간과 엘프, 드워프 같은 이종족, 그리고 마수들이 각자의 영역을 확실히 차지한 채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대지는 한정적인데 워낙 많은 종족들이 존재하다 보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으면, 차라리 전쟁이 일찍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이종족들의 전력은 거의 비등했다.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전쟁은 수천 년이나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쿠라얀에 종말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종말은 모든 것을 무너트렸다.
대지는 뒤집혔고, 세상은 용암으로 뒤덮였다.
바다와 강은 증발했고, 하늘은 검은 재로 뒤덮였다. 그리고 행성 자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유도 원인도 몰랐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종말에 이종족과 인간들 삼분지 이가 죽어 나갔다.
절망에 빠져 있던 인간과 이종족 들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가 바로 크라시아스였다.
그들은 크라시아스에게 구원해 달라고 애원했다.
크라시아스가 말했다.
―이 세계의 멸망은 필연적이다. 이 세상의 존재가 살기 위해선 다른 세상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도 좋단 말인가?
그에 인류와 이종족들의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적인 욕망입니다. 이를 어찌 나쁘다 하겠습니까?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다른 세계를 짓밟아서라도 살고 싶습니다. 생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당신은 쿠라얀의 수호신이지 않습니까? 신보다 강대한 힘을 가진 위대한 분이여. 부디 우리를 굽어살피옵소서.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읍소에 크라시아스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좋다! 내 너희들이 이주할 수 있는 세상이 있는지 알아보겠다.
크라시아스는 차원 탐지 마법을 써서 쿠라얀의 생명들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순간에도 쿠라얀은 붕괴하고 있었고,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때문에 크라시아스도 서둘러야 했다.
결국 찾아낸 곳이 지구였다.
시간만 더 주어졌다면 생명체가 살지 않는 다른 행성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불행히도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내가 찾은 땅엔 이미 수십억 명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 너희들이 살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그들을 죽여 땅을 빼앗아야 한다. 그래도 좋으냐?
크라시아스의 말에 인간들과 이종족, 심지어 다른 드래곤들까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아니, 유일하게 반기를 든 인물이 있었다.
인류의 대표 중 한 명인 아카루크였다.
“아니, 우리가 살자고 어찌 다른 세상을 빼앗는단 말이오? 나는 반대요.”
아카루크의 이명은 고결한 기사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기사 그 자체인 아카루크는 도저히 다른 세상으로의 이주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들끼리의 전쟁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세상의 침탈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는 홀로 반기를 들었고, 검 한 자루로 대항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었고, 심지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쿠라얀 최강자 반열에 오른 이들이었다.
결국 아카루크는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죽은 그를 언데드로 만든 것은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이었다.
하이엘툰은 아카루크와 그를 따르던 수하들을 모조리 언데드로 만들어 가디언으로 삼았다.
지구로의 이주 후를 대비한 것이다.
크라시아스는 모든 권능을 발휘해 차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지구로 넘어왔다.
한 행성만큼의 힘을 가진 크라시아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구로 넘어온 크라시아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환경을 쿠라얀과 비슷하게 바꾸는 작업, 이른바 테라포밍이었다.
쿠라얀의 생명들이 지구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테라포밍이 문제를 일으켰다.
크라시아스의 힘은 실로 강대해 테라포밍 마법이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 엄청난 반동이 그를 덮쳤다.
마치 지구라는 행성이 크라시아스와 쿠라얀에게 종속되길 거부한 것 같았다.
지구의 반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지구 전체를 사막화시키고, 크라시아스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크라시아스가 소멸하면서 그동안 그가 탐해 온 모든 권능과 이능이 지구로 퍼져 나갔다.
지구의 인간들이 각성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사막이 됐고, 각성자들이 출현하게 됐다.
“와! 씨발! 그럼 지구가 이렇게 된 게 쿠라얀 놈들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제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구가 사막화된 데 이런 사정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예상 못 했다.
이제야 데이오든이 이종족이라면 치를 떠는 이유가 이해됐다.
자신이라도 백 년 전부터 그 모든 사정을 알았다면 데이오든처럼 분노에 함몰돼 이종족을 닥치는 대로 죽였을 것이다.
데이오든이 물었다.
“네가 가디언이라면 드래곤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
“흐흐!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란 말이지.”
데이오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카루크가 몸을 떨었다.
언데드인 그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데이오든이 발산하는 광기는 지독했다.
“인간!”
“말하라. 고결한 기사여.”
데이오든의 말투가 바뀌었다.
쿠라얀의 모든 것을 증오하는 데이오든이었지만, 아카루크에겐 그럴 수 없었다.
아카루크는 진정한 기사였다.
모두가 살기 위해 지구로 이주를 결정했을 때 오직 그만이 반기를 들었다.
홀로 잘못된 결정을 막기 위해 싸웠고, 그 대가로 언데드가 되었다.
명예와 정의를 아는 남자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아카루크가 말했다.
“드래곤은 강하다.”
“알고 있다.”
“지금의 그대는 강하지만, 드래곤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그것도 알고 있다.”
데이오든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는 이미 드래곤을 사냥한 적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수백 명의 각성자와 함께였다.
당시 드래곤 사냥에 참여했던 각성자 삼분지 이가 죽어 나갔고,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이 병신이 됐다.
부상을 입은 생존자는 얼마 살지 못하고, 먼저 간 이들의 뒤를 따랐다.
온전히 살아남은 이는 데이오든을 비롯해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때 드래곤이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드래곤은 그 자체로 마법의 총화였다.
또한 막강한 대 마법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마법계 각성자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다만티움보다 강한 비늘은 무투계 각성자들의 공격마저 튕겨 냈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육탄 공격으로, 또 자살 공격으로 드래곤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절대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도 데이오든은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엄청난 드래곤의 위용 앞에선 절망을 느꼈었다.
심지어 당시 사냥했던 드래곤은 지구로 넘어온 드래곤 중 가장 어리고 실력이 떨어지는 녀석이었다.
그런 드래곤을 잡는 데도 초기 각성자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 그러니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이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오든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백 년 동안 그는 단 하루도 안주하지 않고 사막을 떠돌아다니며 실력을 키워 왔다.
지금 그의 무위는 처음 드래곤을 사냥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아카루크가 데이오든에게 자신의 검을 건넸다.
“내 검을 가져가라. 신의 축복을 받은 검이다. 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카루크가 내민 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신에게 축복을 받았을 때 새겨진 신들의 문자였다.
쿠라얀의 멸망과 함께 대부분의 신들이 소멸됐고, 검에 어린 축복도 상당 부분 희석됐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운만으로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데이오든이 아카루크의 검을 받았다.
“잘 사용하겠다.”
“크라시아스를 설득한 것은 인간과 이종족들이지만, 그들을 사주한 것은 드래곤들. 그것만 알아 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쿠라얀의 인간과 이종족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
이제 아카루크의 몸이 거의 가루가 되어 상체 일부와 얼굴밖에 남지 않았다.
아카루크가 잿빛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죽기 전에 푸른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파스스!
순간 그의 얼굴마저 가루가 되어 완전히 소멸했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조용히 서 있던 언데드 기사들이 옆으로 물러섰다.
언데드 기사들 사이로 통로가 생겼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데이오든과 제온이 아니었다.
“가자!”
“네!”
두 사람은 언데드 기사들이 열어 준 통로를 걸었다.
그들이 중간쯤 갔을 때였다.
갑자기 언데드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주군 아카루크를 추모하는 동시에 데이오든의 앞날을 축복하는 그들만의 의식이었다.
제온이 언데드 기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기밖에 느껴지지 않던 그들의 얼굴에 조금씩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은 제온에게 묘한 감흥을 안겨 줬다.
죽음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언데드 기사들을 거의 통과했을 때였다.
파스스!
언데드 기사들이 검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먼지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카루크가 안식을 맞이하자 그들 역시 언데드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먼지가 되어 흩어진 것은 비단 언데드 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던 거대한 고성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으려는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그렇게 등 뒤에서 거대한 고성과 언데드 기사들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데이오든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그를 뒤돌아보게 할 수 없었다.
데이오든은 오직 앞만 보고 걸었고, 이 길의 끝에 드래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존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다.
우웅!
데이오든이 문득 아카루크의 검을 바라봤다.
주인의 죽음을 아는지 검이 울고 있었다.
검명을 터트리는 것은 크레이온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양손의 검을 바라보던 데이오든이 두 검을 하나로 포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철컥!
크레이온과 아카루크의 검이 각 파츠 별로 분해가 됐다.
크레이온의 검신과 아카루크의 검신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빛을 띠고 있던 검신이 마치 태양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손잡이도 똑같았다.
두 개의 손잡이가 하나로 합쳐져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렇게 두 개의 검은 각 파츠 별로 결합해 새로운 형태가 되었다.
순간 데이오든의 전신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이 멀 듯한 강력한 빛에 제온이 눈을 잠시 감았다.
눈꺼풀이 앞을 가리고 있음에도 눈이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그 때문에 제온은 빛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때야 비로소 제온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와!”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카루크의 검과 결합한 크레이온의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크레이온의 거대한 검신에는 아카루크의 검에 새겨져 있던 글자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형태가 훨씬 더 위압적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크레이온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썰려 나갈 것 같았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으며 중얼거렸다.
“친구여! 이제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