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이거 놔라.”
머리가 하얗게 센 다크 엘프 하나가 플로아에게 끌려오고 있었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어떻게든 플로아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족을 지키는 전사인 플로아의 힘은 나이 든 다크 엘프가 떨쳐 낼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감히 장로인 나에게 이러고도 네년이 무사할 줄 아느냐? 플로아!”
결국 플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한 다크 엘프는 협박을 했다.
플로아가 끌고 온 다크 엘프를 공터에 모여 있던 다크 엘프들 앞에 내동댕이쳤다.
“크윽!”
모래에 처박힌 다크 엘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카로데.
다크 엘프 마을의 이 장로였다.
그의 권위는 매우 강해서 다크 엘프 마을에서 거역할 자가 없었다.
평소였다면 플로아도 카로데의 명령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카로데를 바라보는 플로아와 다른 다크 엘프들의 눈에는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
“그 눈빛은 뭐냐? 너희들이 감히 날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 전사들은 뭐 하는 거냐? 어서 이놈들을 제압하지 않고.”
카로데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플로아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부끄럽지도 않나요? 오크와 손잡고 동족을 탄압하다니.”
“그,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가 그들과 협력하지 않았다면 우리 마을은 이미 오크들에 의해 세상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개소리! 당신이 그들 편을 들지 않았으면 우리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우리 마을을 위해 헌신했는지, 또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 안 그러냐?”
카로데가 다른 다크 엘프들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그 어떤 다크 엘프도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모든 다크 엘프가 카로데를 죽일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카로데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태세를 바꿔 플로아 앞에 무릎을 떨썩 꿇었다.
“내, 내가 잘못했다. 제발 살려다오.”
“당신 때문에 오크들에게 죽은 동족의 수가 몇 명인지 알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지 않느냐?”
“일 장로님을 죽인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요?”
“그건…….”
순간 카로데의 말문이 턱 막혔다.
플로아가 크게 외쳤다.
“일족의 배신자에게 죽음을…….”
“배신자에게 죽음을…….”
다른 다크 엘프들이 플로아를 따라 외쳤다.
카로데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눈치 빠른 자답게 자신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카로데는 무릎으로 플로아에게 기어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제발 살려다오, 플로아!”
“용서는 당신 때문에 돌아가신 일 장로님과 다른 이들에게 구해요.”
“플로아?”
서걱!
그 순간 플로아가 검으로 카로데의 목을 베어 버렸다.
몸에서 분리된 카로데의 목은 수 미터나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카로데의 숨통을 끊은 플로아는 다른 다크 엘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일족은 심각한 위협에 처했습니다. 그동안 마을을 이끌어 오던 일 장로님은 돌아가셨고, 우리를 배신한 이 장로도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우리끼리 이 사막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
모든 다크 엘프들이 숨을 죽이고 플로아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에도 플로아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보다시피 오크들을 모두 처치했지만, 우리의 터전은 철저하게 망가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마을에 남아 재건하든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든지.”
플로아가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을을 둘러봤다.
다른 다크 엘프들도 그녀를 따라 마을을 둘러봤다.
다크 엘프들의 표정이 절로 어두워졌다.
그들도 느끼는 것이다.
파괴된 그들의 터전을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재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부서진 집 따윈 마수를 사냥하면 다시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사냥의 명수였으니까.
문제는 땅이었다.
뼈로 만든 목걸이가 폭발하면서 마을의 땅이 시커멓게 변했다. 단순히 색깔만 변한 게 아니라 악취까지 났다.
뼈 목걸이에 담겨 있던 기운에 땅이 오염된 것이다.
온갖 방법을 다 써 봤지만, 한번 오염된 토지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브리엘이 오염된 흙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단순히 땅만 오염된 게 아니야. 좋지 못한 기운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어. 좋지 못한 기운을 정화하지 못하면 이곳은 죽음의 땅이 될 거야.”
플로아와 다른 다크 엘프들도 브리엘의 말을 들었다.
당장 이곳을 정화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오염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떠납시다.”
“이곳을 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터전을 찾읍시다.”
목소리를 낸 이들은 젊은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동안 장로들의 정책 때문에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젊은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새로운 터전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애써 이곳에 마을을 재건해 봐야 예전과 같은 지루한 삶을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젊은 엘프들의 욕망은 다른 다크 엘프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이주합시다. 어디든 이곳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가진 것도 없고, 그나마 있는 것도 다 망가졌는데, 이번 기회에 다른 곳으로 옮기죠.”
마을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우세했다.
이렇게 되자 나이 든 다크 엘프들도 마을을 떠나는 것을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다크 엘프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카로데가 일족을 배신하고 오크와 손을 잡았을 때부터 그들은 힘을 잃었다.
모두의 의견을 들은 플로아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럼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주하겠어요. 지금부터 한 시간 이내로 짐을 싸요. 바로 출발할 테니까.”
플로아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다크 엘프들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이 장로인 카로데를 죽인 그녀의 말을 거역할 다크 엘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족에게 명령을 내린 플로아가 제온에게 다가왔다.
잠시 제온을 바라보던 플로아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왜 이럽니까?”
제온이 당황해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플로아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우리를 도와줘.”
“무슨 말입니까?”
“염치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도 당신이 아니면 안 돼. 우리를 도와줘.”
“뭘, 어떻게 도와 달라는 겁니까?”
“새로운 땅이 필요해. 당신은 우리가 살 만한 땅을 찾을 수 있잖아? 모래술사니까.”
플로아는 제온의 도움이 간절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모두 버렸다.
제온에게 무릎을 꿇은 게 그 증거였다.
그때 브리엘이 제온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이렇게 부탁할게. 이들을 도와주자.”
제온에게 부탁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았던 브리엘이었다.
오히려 은혜를 갚겠다고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제온에게 떠밀었던 그녀였다. 그런 브리엘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함께 이들이 살 만한 땅을 찾아보자.”
“진짜? 고마워!”
브리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온은 그런 브리엘의 고깔모자를 장난스럽게 손으로 누르며 플로아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찾아보죠. 분명히 새로운 터전이 될 만한 곳이 있을 겁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플로아가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온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일어나십시오.”
“응!”
“혹시 염두에 둔 곳 있습니까?”
“없어! 알다시피 우리는 이 근처를 거의 벗어나지 않아서 어디가 좋고, 또 어디가 나쁜지 알지 못해.”
“그렇군요.”
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다크 엘프들을 둘러봤다.
백 명이 넘는 대인원이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네오 서울, 또 어떤 이들은 엘하룬이라는 든든한 보호막을 찾아 들어갔지만, 이들은 독자적인 생존을 택했다.
애초 남들과 섞일 수 없는 자들이었다.
하이 엘프만큼이나 다크 엘프들도 자신들만의 땅이 필요했다.
‘이들이 살 만한 땅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미 생명체가 살 만한 땅은 다른 이들이 다 점거하고 있다.
그것이 마수든, 오크든, 아니면 다른 종족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도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 찾아봐야 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제온의 의지를 다졌다.
***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다크 엘프들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쓸 만한 물건도 남아 있지 않아 준비하고 자시고 할 게 거의 없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네!”
플로아의 명령에 다크 엘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제온과 브리엘, 레빈이 있었다.
레빈이 뒤따라오는 다크 엘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주 스펙타클 하구만. 단순히 철갑 개미를 사냥하기 위해 온 거였는데, 이렇게 일이 커진다고?”
“몰랐어? 제온하고 함께 다니면 늘 이렇게 되잖아.”
“그것도 그렇네. 덕분에 형과 다니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긴 해. 헤헤!”
레빈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브리엘과 대화를 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사막에서의 여정이 길어진다고 화를 내겠지만, 레빈과 브리엘은 달랐다.
그들은 오히려 갑갑한 네오 서울보다 사막의 여정을 좋아했다.
이것도 제온을 만난 후 일어난 변화였다.
제온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사막 전체가 뜨겁게 달궈져 가공할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용광로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제온은 이글거리는 사막을 조용히 둘러봤다.
남들 눈에는 모두 똑같은 풍경으로 보이겠지만, 제온의 눈엔 달리 보였다.
모래에 따라 열기도 차이가 났다.
같은 햇볕을 받는데도 어떤 곳은 더 뜨겁고, 어떤 곳은 열기가 덜했다.
제온은 열기가 덜한 곳으로 움직였다.
다크 엘프들은 그런 제온을 묵묵히 따라왔다.
제아무리 사막에 적응한 다크 엘프들이라도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를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 다크 엘프들마저도 말이다.
다크 엘프들은 타고난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엘프보다 훨씬 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고행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은 마치 개미처럼 줄지어서 제온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온을 믿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제온과 다크 엘프들은 몇 날 며칠을 걸었다.
잠시 쉴 때면 다크 엘프 아이들이 제온 주위로 모여들었다.
“제온 형!”
“오빠!”
그래도 며칠 같이 다녔다고 다크 엘프 아이들은 제온을 격의 없이 대했다.
브리엘과 레빈에게도 아이들이 달라붙었다.
특히 하이 엘프인 브리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언니! 나도 연금술 가르쳐 주면 안 돼?”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언니!”
“누나!”
몇몇 아이들은 아예 브리엘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에게도 하이 엘프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저리들 안 가? 귀찮다고.”
브리엘의 타박에도 아이들은 떠날 줄 몰랐다.
브리엘의 말이 진심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브리엘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려 노력했다.
다크 엘프 전사들과 어른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근심 걱정 없이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자니 그간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저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터전을 찾아야 할 텐데.’
앞날이 걱정되면서도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아이들을 브리엘과 레빈에게 맡기고 주위를 둘러보던 제온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풍경이 왠지 낯익은데…….”
다른 곳과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제온은 곧 언제 이곳에 왔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이곳은 분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