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제온은 금세 기시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데이오든과 함께 왔던 곳이야.”
그가 갓 각성했을 때, 그러니까 아직 애송이 시절 데이오든과 함께 이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눈에 익었다.
제온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데이오든과 함께했던 순간의 기억이 가장 선명했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곳을 함께 갔다.
지금 제온이 보고 있는 곳도 그렇게 데이오든과 함께 갔던 곳 중의 하나였다.
하루가 멀다고 변화하는 사막이었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풍경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이정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 제온의 시야에 들어오는 저 커다란 선인장이 그런 이정표 중 하나였다.
하늘로 뻗은 일곱 개의 가지가 마치 대자로 뻗은 사람 같았다.
크기만 많이 커졌을 뿐, 형태는 제온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용케도 마수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군.”
마수 중에는 초식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조차 건들지 않았을 정도로 선인장은 맹독을 함유하고 있었다.
마수조차 녹여 버리는 지독한 독을 가시에 숨기고 있기에 이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쪽엔 분명…….”
“왜 그래?”
다크 엘프 아이들을 겨우 떼어 낸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생각난 게 있어서 그래. 모두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그만 떠나자. 부지런히 걸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어디를?”
“가 보면 알아. 아직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응?”
브리엘이 큰 눈을 깜빡였다.
제온은 그런 브리엘의 고깔모자를 장난스럽게 눌러 준 후 모두에게 출발한다고 말했다.
달콤한 휴식을 취하던 다크 엘프들은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이 다크 엘프들의 장점이었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제온이 그들의 로드나 우두머리는 아니었지만, 이번 여정에서만큼은 반드시 따라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온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르는 것이다.
제온은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방향을 잡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온은 늘 신중하게 행동했다.
주위에 마수가 있는지 살펴보고, 안전한 곳으로만 움직였기에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제온은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래 걸음으로 움직이는 제온을 따라잡기 위해서 다크 엘프들은 바람 걷기를 펼쳐야 했다.
브리엘도 바람 걷기를 써서 제온의 뒤를 따랐다.
이제 브리엘은 바람 걷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레빈이 유령화한 상태로 허공을 날며 중얼거렸다.
“많이 발전했네. 역시 굴리는 게 정답이었어. 굴리면 다 발전하기 마련이야.”
자신도 그렇고, 브리엘도 그렇고, 제온이 가혹하게 굴리는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레빈은 네오 서울에 돌아가면 친구들인 애론과 도미닉을 가혹하게 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이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킬 만한 다짐이었다.
어느새 레빈도 제온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때 레빈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응?”
그는 잠시 헛것을 본 것이 아닌지 눈을 비볐다.
그만큼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형, 저거 보여요? 사막 한가운데 숲이 있어요.”
“검은 숲이다.”
“네?”
“검은 숲! 고야 일족의 터전이다.”
“고야 일족? 그럼, 저기에 사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런 사막 한가운데 마치 점처럼 콕 박혀 있는 새까만 영역은 바로 검은 숲이었다.
아주 오래전 제온이 잠시 들렀던 곳이었다.
나무가 탄화되어 화석 같은 상태로 유지되는 신비한 곳.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검은 숲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지금 검은 숲은 짓밟힐 위기에 처해 있었다.
크워어!
카오!
거대 마수들이 검은 숲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폭발할 것 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거대 고릴라와 칼날처럼 길게 삐져나온 송곳니가 인상적인 괴수인 검치 호랑이였다.
허공에는 그리핀 무리까지 선회하며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검은 숲에서는 십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마수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장갑 고릴라를 막아.”
“제기랄! 검치 호랑이를 자유롭게 놔두면 어떻게 해?”
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마수들의 습격을 막아 냈다.
그 중심에 사냥꾼 복장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리핀을 상대로 화살을 날리며 소리쳤다.
“그리핀을 조심해. 놈들에게 잡히면 끝이야.”
사냥꾼의 화살에 그리핀 한 마리가 어깨를 맞고 분노 어린 울음을 토해 냈다.
동족의 울음에 그리핀들이 더 사납게 공격했다.
사냥꾼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하르를 위해서라도 버텨야 해.”
사냥꾼의 이름은 고두원.
바로 검은 숲의 주인이었다.
원래 그는 딸 고하르와 둘이서만 검은 숲에 살았다. 함께했던 고야 일족은 고두원이 헛된 꿈을 꾼다 생각하고 숲을 떠났다.
하지만 탄화된 숲에 변화가 찾아오면서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공동체를 이뤘다.
어렵게 이룬 공동체는 마수들의 습격에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장갑 고릴라는 이름 그대로 금속으로 이뤄진 장갑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두원과 각성자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검치 호랑이는 얼마나 날쌘지 그들의 공격이 전혀 맞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허공에서 까마귀 떼처럼 선회하는 그리핀 무리였다. 놈들은 허공을 맴돌며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놈들에게 잡혀간 각성자만 벌써 세 명이 넘었다.
그들은 갈가리 찢겨 그리핀의 배로 들어갔다.
동료들의 끔찍한 최후를 본 각성자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거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제기랄! 이제야 변화가 시작됐는데…….”
고두원이 주먹을 꽉 쥐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키이이!
그 순간 그리핀 한 마리가 쏜살처럼 고두원을 향해 내리꽂혔다.
고두원이 뒤늦게 화살을 날려 공격하려 했지만, 그때는 그리핀이 그의 지척까지 도달한 후였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보였다.
‘끝인가?’
그가 눈을 감으려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퍼억!
소성과 함께 그리핀의 머리가 바로 앞에서 터져 나간 것이다.
머리를 잃은 그리핀은 아슬아슬하게 고두원을 지나쳐 검게 탄화된 나무에 처박혔다.
고두원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누가?”
순간 그의 눈에 저 멀리서 검은 숲 쪽으로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하나같이 피부가 검은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 선두에 이질적인 남자가 있었다.
마치 미끄러지듯 모래를 타고 움직이는 남자가.
고두원은 단숨에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온?”
사막에 수많은 각성자가 존재하지만, 저렇게 모래를 타고 움직이는 남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모래술사 제온.
데이오든의 손에 이끌려 오래전 검은 숲에 들렀던 어린 소년은 몰라보게 자란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슈슈슈!
제온의 등 뒤로 수많은 모래 뱀이 일어나 허공에 있는 그리핀들을 요격했다.
퍼버버벅!
크허헝!
키엑!
샌드 바이퍼에 얻어맞은 그리핀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흩어지는 그리핀 무리 한가운데로 레빈이 뛰어들었다.
번쩍!
보랏빛 뇌전이 그리핀들을 연쇄적으로 감전시켰다.
마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그리핀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제온의 뒤에 따라오던 다크 엘프들이 장갑 고릴라와 검치 호랑이를 공격했다.
다크 엘프들은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으로 두 거대 마수를 공략했다.
“다리를 공격해. 기동력부터 빼앗아야 해.”
플로아의 지휘 아래 다크 엘프들은 장갑 고릴라와 검치 호랑이를 공격했다.
서걱!
크허헝!
다리 힘줄이 잘려 나가면서 장갑 고릴라가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했다.
놈은 전신에 장갑을 걸쳐 막강한 방호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다크 엘프들은 장갑이 없는 팔과 다리 위주로 공격했다.
장갑 고릴라는 통나무보다 두꺼운 팔다리를 휘둘러 다크 엘프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놈의 느린 움직임으로는 다크 엘프들의 그림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다크 엘프들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 장갑 고릴라가 점차 함락되어 갔다.
검치 호랑이의 상태는 장갑 고릴라보다 처참했다.
놈의 등에는 네 명의 다크 엘프가 올라타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검치 호랑이의 가죽은 어지간한 창칼 정도는 튕겨 낼 정도로 질기고 단단했지만, 불행히도 다크 엘프들의 검은 그런 검치 호랑이의 가죽을 두부처럼 파고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푹! 푸욱!
꾸애앵!
검치 호랑이가 구슬픈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이게 무슨?”
“엘프들이 왜 우리를?”
고두원과 같이 싸우던 각성자들이 영문을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사막에서 사는 엘프와 인간들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다크 엘프와 인간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다크 엘프는 인간에게 적대적이었고, 인간들도 유독 검은 다크 엘프들을 보면 재수 없다고 침부터 뱉을 정도였다.
당연히 다크 엘프와의 교류는커녕 도움을 받을 거란 상상조차 안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크 엘프들이 그들을 돕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인 것만 같았다.
그사이 제온이 고두원 앞에 도착했다.
고두원이 제온을 올려다봤다.
예전에는 제온이 그를 올려봐야 했는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그만큼 제온이 자란 것이다.
고두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온, 맞지?”
“네! 오랜만입니다.”
“네가 어떻게?”
“하르는 잘 있습니까?”
“하르는 그러니까……. 일단 상황이 정리된 후에 보여 주는 게 낫겠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직접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네가 어떻게 다크 엘프들과 함께 있는 거냐?”
고두원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마수들을 상대하는 다크 엘프들을 바라봤다.
다크 엘프들의 파상 공세에 거대한 마수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제온이 담담히 대답했다.
“이들이 이주할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허어! 네가 다크 엘프들을 돕다니. 데이오든이 알면 경을 치겠구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왜?”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구나.”
“뭐, 소원대로 드래곤을 때려잡고 갔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됩니다.”
“대단한 양반이구나. 정말 드래곤을 잡다니.”
고두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이오든을 만났던 이들치고 드래곤을 향한 그의 원념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드래곤을 정말 죽이는 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드래곤은 강대한 존재였다.
인간의 힘으로 사냥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를 기어이 잡아내다니.
데이오든의 집념엔 감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크워어!
장갑 고릴라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마수 사냥이 끝났다.
검치 호랑이는 진즉 숨이 끊어진 상태였고, 허공에서 선회하던 그리핀들도 레빈의 위력에 놀라 모두 도망갔다.
레빈은 더 이상 그리핀을 쫓지 않고 제온 곁으로 착지했다.
“신기한 곳이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레빈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검은 숲을 둘러봤다.
그런 그의 시야에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탄화된 나무로 다가가는 브리엘이 보였다.
“맙……소사!”
브리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무 앞에 도착한 브리엘이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레빈이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죽은 나무에서 이, 잎이 나고 있어.”
“뭐?”
레빈이 브리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금속처럼 탄화된 검은 나무 줄기에서 녹색 새싹이 수줍게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미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