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미쳤다!
머릿속에 그 단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레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나무가 탄소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죽었음을 의미한다.
고온과 고압에 타고, 결정화된 나무에서 새로운 잎이 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이적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세상일지라도 말이다.
레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새싹을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이……거 진짜야?”
찰싹!
그 순간 브리엘이 손바닥으로 레빈의 손을 냅다 후려쳤다.
“아얏!”
“미쳤어? 잘못 만졌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럼 이게 진짜라고?”
“그래! 진짜야. 사막에서 태어난 진짜 새싹. 이 나무의 의지가 새싹을 피어나게 만든 거야.”
브리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엘프는 숲의 종족이었다.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였다.
당연히 누구보다 숲을 사랑했다. 하지만 브리엘은 단 한 번도 숲을 보지 못했다.
지구에 태어나 사막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하이 엘프의 권능으로도 사막에서 새싹을 틔울 수는 없었다. 나무나 풀을 키우기는커녕 메마른 사막에 적응해서 살 수밖에서 없었다.
그 때문에 브리엘도 새로 피어난 잎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아!”
브리엘은 나무에 이마를 갖다 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나무와 교감하려 했다.
죽은 나무와 교감하는 것은 제아무리 하이 엘프라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탄소화된 나무에게선 희미한 의지가 느껴졌다.
반드시 싹을 틔우겠다는 의지가.
“오랜 세월 너는 싸우고 있었구나.”
주르륵!
브리엘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야, 야! 괜찮아?”
“다른 나무도 봐야겠어.”
“뭐?”
브리엘은 레빈이 말릴 사이도 없이 다른 나무들을 살폈다. 그녀를 따라 나무를 보던 레빈은 크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무들에서도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말이다.
브리엘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다크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어……떻게?”
“이곳에서 숲이 태어나고 있어.”
비록 피부색은 다르지만, 다크 엘프도 숲을 사랑했다.
호전적인 성향 덕분에 사막에 잘 적응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숲을 그리워했다.
브리엘과 다크 엘프뿐만 아니라 어떤 엘프라도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온이 고두원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일어나는 일 하르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나을 거다. 나와 함께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
“브리엘도 데려가겠습니다.”
제온이 아직도 나무에 이마를 댄 채 눈물을 흘리는 브리엘을 가리켰다.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브리엘!”
고두원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제온이 브리엘을 불렀다.
브리엘은 눈물을 훔치며 제온에게 다가왔다.
“응! 왜?”
“인사해! 이분이 이 검은 숲의 주인인 고두원 아저씨야. 모두 이 숲이 죽었다고 버렸지만, 딸과 함께 끝까지 숲을 지켜 내셨지.”
제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리엘이 고두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고마워! 포기하지 않고 지켜 줘서. 아이들도 모두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있어.”
“나무가 말하더냐?”
“감정을 느낄 수 있어.”
“너도 내 딸과 같구나.”
“아저씨 딸?”
“그래! 하르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이 아이들의 의지가 남아 있다고, 언젠가는 새로운 싹을 틔워 낼 거라고.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늘 말을 걸고,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해 줬지. 그랬더니 얼마 전부터 죽은 나무들에서 이렇게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했어.”
고두원의 말에 브리엘이 적잖이 놀랐다.
하르가 해낸 일은 하이 엘프도 못 해낸 엄청난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하이 엘프들도 탄화된 나무에서 이렇게 새싹을 피워 내진 못할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하이 엘프 마을이 벌써 숲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제온과 브리엘은 고두원을 따라 검은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검은 숲 안쪽은 대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탄화된 나무가 빽빽했다. 그 때문에 그늘져서 유독 시원하게 느껴졌다.
고두원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폭탄벌 때문에 감히 이곳까지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지. 네 덕분이다,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덕분에 영역이 크게 넓어졌고, 곳곳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었지.”
“아까 마수와 싸우던 사람들 말이군요.”
“그래! 나와 같은 고야 일족이다. 폭탄벌 때문에 흩어져 살다가 다시 모였다.”
“다행이군요.”
“네 덕분이다.”
“감사의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고두원의 무뚝뚝한 말에 제온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폭탄벌은 또 뭐야?”
“적만 보면 돌격해 자폭하는 녀석들이야.”
“흉악하네.”
고두원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녀석들이 이 숲 깊은 곳을 점거하고 있어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숲이 이렇게나마 생명을 되찾은 것은 제온 덕분이다.”
“거참…….”
“저기다. 저곳에 하르가 있다.”
그때 고두원이 손을 뻗어 겊은 숲 안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검은 숲에서 가장 거대해 보이는 나무가 있었다.
다른 나무들처럼 검게 탄화되어 있었지만, 크기나 둘레부터 엄청난 차이가 났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나무는 거대했다.
거대한 나무 둥치 아래 이질적인 하얀 물체가 있었다.
마치 공처럼 둥근 것이 거대한 누에고치를 보는 것 같았다.
제온이 물었다.
“이게 하르라구요?”
“하르 맞다. 여왕 폭탄벌에 매달려 있던 알 기억하느냐?”
“네! 정령의 알이라고 했던가요?”
“맞다. 그게 빛나더니 저렇게 됐다. 하르는 지금 저 안에 있다.”
하르는 제온이 떠난 후 무려 팔 년이나 정령의 알을 끼고 살았다고 했다. 잘 때든, 쉴 때든, 일할 때든 단 한시도 정령의 알을 떼어 놓은 적이 없었다.
검은 숲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하르는 말했다.
“이 아이는 살아 있어요. 전 느낄 수 있어요.”
실제로 그녀는 정령의 알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대했다.
그런 하르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이들은 하르가 미쳤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하르는 그들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정령의 알을 돌봤다. 그러자 며칠 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
“하르와 정령의 알이 저렇게 고치가 되자마자 마수들이 습격해 왔다.”
그때부터는 지옥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근처에 있던 하급 마수들이 몰려왔다.
하급 마수들을 물리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먼 곳에 있는 강대한 마수들이 공격해 왔다. 그리고 오늘 장갑 고릴라와 검치 호랑이 같은 상위 등급 마수들이 공격해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일 제때 제온과 다크 엘프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검은 숲은 마수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브리엘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하얀 고치에 다가갔다.
고두원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아이야! 잠깐…….”
“브리엘은 하이 엘프입니다. 괜찮을 거예요.”
“하이 엘프?”
“네! 엘프족들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될 겁니다. 하르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고두원이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고치에 접근한 브리엘이 고치에 조심스럽게 손과 이마를 갖다 댔다.
제온과 고두원은 눈을 감고 고치와 교감을 나누는 브리엘을 조용히 지켜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한참이나 교감을 나누던 브리엘이 마침내 눈을 떴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은은한 서기가 맺혀 있었다.
살짝 황금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황금빛 서기는 금방 사라졌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하르 언니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응! 중요한 순간이라서 움직이지 못할 뿐이야.”
“중요한 순간이라면 설마?”
“곧 정령이 태어날 거야.”
브리엘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순간 고두원이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드디어…….”
그의 어깨에 잔경련이 일고 있었다.
브리엘이 그런 고두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언니가 말했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더 버텨 달라고…….”
“버텨?”
“정령을 노리고 마수들이 더 몰려올 거야. 조금 전에 보았던 마수들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녀석들이.”
브리엘의 말에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 가이아 때와 똑같아.”
“응! 정령을 포식하면 성장할 수 있거든.”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도 정령의 영향이겠구나.”
“정령이 탄생하는 순간 이곳은 더 이상 죽은 대지가 아니게 될 거야. 나무가 자라고, 풀이 대지를 뒤덮으며 녹음이 퍼져 나갈 거야.”
어떤 정령이 탄생할지는 브리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운 법이라는 것을.
일단 포문만 열면 뒤는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지구에서 첫 정령이 탄생하면 다음 정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이아와는 다른 건가?”
“가이아는 순수 정령은 아니야. 쿠라얀의 정령이 살아남기 위해 고래와 융합한 후 첫 번째로 태어난 자식이니까. 아마 가이아의 탄생이 하르 언니의 정령에 영향을 줬을 거야. 자세한 것은 가이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가이아는 사신의 낫을 소화하기 위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현재로서는 가이아가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었다.
“정령이 탄생하기 전까지 이곳을 마수에게서 지켜야겠군.”
제온이 결론을 내렸다.
숲 외곽으로 나온 제온과 고두원은 곧 다크 엘프와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음!”
“커흠!”
난생처음 한자리에 모이게 된 두 종족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제온이나 고두원도 단번에 두 종족이 융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서로를 경원시하고, 견제해 왔는데, 단번에 마음을 열고 어울린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제온이 입을 열었다.
“플로아 님!”
“말해!”
“보셨습니까?”
“새싹을 말하는 거라면 그래. 이 죽은 숲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워!”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집념과 의지가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잠깐! 그럼 하프 엘프가 이 기적을 만들어 냈단 말이야?”
플로아와 다크 엘프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다른 순수 엘프들이 그렇듯 다크 엘프들도 하프 엘프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브리엘도 처음엔 하프 엘프인 맨디를 우습게 봤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알아가면서 그녀를 인정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 있는 다크 엘프와 인간 들에게도 그런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이 숲에서 정령이 태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네!”
“오오!”
순간 플로아와 다크 엘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브리엘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그들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정령이 태어나면 이 숲도 완벽하게 살아날 겁니다.”
“숲이라니……. 맙소사!”
나이 든 다크 엘프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어린 다크 엘프들과 달리 그들은 쿠라얀의 짙은 녹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숲을 향한 열망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플로아가 제온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주민으로 받아줄 수 있어?”
“그 결정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저분이 하는 겁니다.”
제온이 고두원을 가리켰다. 그러자 플로아가 고두원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숲의 주인이여. 부탁하건대 부디 우리 일족을 주민으로 받아 주십시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