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제온은 검고 미세한 모래에 휩싸여 있었다.
엑시온을 방출한 것이다.
이렇게 엑시온을 외부로 방출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숙련도와 활용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제온은 엑시온을 운용해 갖은 형태로 만들었다.
어떤 때는 보호막처럼 둥글게 만들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날개처럼 일렁이게 만들었다.
엑시온을 외부로 방출한 제온의 모습은 언뜻 사신을 연상케 했다.
모래 걸음으로 미끄러지듯 걸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데이오든은 제온이 엑시온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카루크와의 전투 이후 그는 하루에 한마디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과묵해졌다.
눈빛은 더욱 깊이 침잠되고,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나마 제온은 오랫동안 데이오든을 봐 왔기에 태연할 수 있었다.
걷는 내내 제온은 엑시온을 시험하고, 어떻게 하면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데이오든과 아카루크의 싸움은 제온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준 높은 전투는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제온의 안계를 크게 넓혔다.
싸움을 지켜보는 내내 제온은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싸우고 싶다.
저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
그런 열망이 그의 가슴을 자극했다.
고성을 떠난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열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그것이 제온이 엑시온을 계속 시험하는 이유였다.
데이오든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시도 쉴 수 없었다.
데이오든의 강함은 결코 하루 이틀 사이에 얻은 것이 아니었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투쟁함으로써 얻은 결과물이었다.
그런 데이오든을 따라잡기 위해선 잠잘 시간, 쉬는 시간마저 아껴야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제온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한참 엑시온을 가지고 놀던 제온이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저 멀리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 때문이었다.
제온이 엑시온을 거둬들이며 데이오든에게 물었다.
“지금 제 눈에만 신기루가 보이는 건가요?”
“신기루가 아니다.”
“그럼 진짜라구요?”
“내 눈이 고장난 것이 아니라면…….”
“와! 저게 진짜라고?”
제온이 눈을 크게 뜨고 전방을 바라봤다.
아득히 먼 지평선 너머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삼층 집보다 더 큰 덩치에 어른 몇 명은 합쳐 놓은 듯한 굵은 네 개의 다리. 축 늘어진 코와 활처럼 휘어진 무시무시한 어금니.
그것은 이야기로만 듣던 매머드를 닮아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무섭고, 거대하다는 것이다.
마치 조그만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매머드의 뒤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보였다.
매머드보다 훨씬 큰 인공 구조물은 바로 바퀴 달린 거대한 창고였다.
매머드 뒤로 창고가 줄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열차처럼 말이다.
창고 위엔 조그만 점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저들은 카라반이다.”
“진짜 카라반이라구요?”
제온이 놀라 눈을 끔뻑거렸다.
카라반은 본래 먼 옛날 사막이나 초원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의 집단을 일컫는 단어였다.
현시대에도 카라반은 존재한다.
콜로니와 콜로니를 오가며 일종의 중계 무역을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은 온통 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사막은 절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 뜨겁게 달궈진 모래.
더군다나 사막에는 온갖 마수를 비롯해 스캐빈저가 들끓었다.
그 모든 악조건을 견디고 콜로니와 콜로니를 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몰고 가면 간단한 해결되는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사막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늘에도 마수가 산다.
와이번, 그리폰, 유니콘, 혹은 익룡 형태의 마수가 대표적이었다.
놈들은 같은 하늘에 다른 비행체가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어지간한 비행기로는 놈들의 공격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막의 하늘엔 미세한 먼지와 오염된 기운이 가득해서 비행기 엔진을 순식간에 망가트린다.
자동차나 각종 기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막의 모래는 기계 장치와 상극이었다. 단거리는 어떻게 수리를 하면서 탈 수 있지만, 장거리를 운행하게 되면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그 때문에 네오 서울에서도 근처의 던전을 토벌할 때만 자동차를 이용할 뿐이다.
하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다른 콜로니와의 교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디를 봐도 똑같은 풍경에 이정표로 삼을 만한 것조차 없었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 내고 각 콜로니와 중계 무역을 하는 이들은 오직 카라반뿐이었다.
카라반이 어떻게 광활한 사막에서 정확하게 콜로니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지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네오 서울에서도 카라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온은 처음 카라반에 대해 들었을 때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카라반 행렬을 보는 순간 납득하고 말았다.
저렇게 거대한 매머드라면 샌드웜이나 여타 마수들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봤던 모트 일족이 부리던 고대 거북인 아르켈론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저 정도 크기면 어지간한 마수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카라반과 조우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절대 흔하지 않은 일이 하필 우리에게 일어났군요.”
“그래!”
데이오든은 팔짱을 낀 채 가까이 다가오는 카라반 행렬을 바라봤다.
카라반에서도 두 사람을 발견했는지 똑바로 다가왔다.
쿵! 쿵!
매머드의 둔중한 발소리가 모래를 타고 온몸으로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온 매머드의 덩치는 실로 엄청났다.
삼층 집이 아니라 오층 집 크기는 될 것 같았다. 거기에 코 양쪽으로 빠져나온 한 쌍의 상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저 상아에 찔리면 어떤 마수라도 단숨에 즉사할 것 같았다.
뿌우우!
마침내 두 사람 앞에 도착한 매머드가 코를 하늘로 치켜올리며 크게 울었다. 그러자 매머드가 끌고 있던 거대한 창고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머리엔 터번을, 몸에는 펑퍼짐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옛날 사하라 사막 지역에 살던 남성들이 주로 착용하던 데라아라는 복장이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에 이보다 좋은 복장은 없었다.
“사막을 주유하는 여행자라니. 도무지 내 눈을 믿을 수 없군.”
카라반의 책임자인 듯한 이가 코와 입을 가렸던 천을 내리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코와 입 주위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절로 위엄이 풍겨 나왔다.
“내 이름은 벨로프요. 사막을 횡단하는 용감한 모험자들의 이름은 어떻게 되오?”
“데이오든이다.”
“오오! 데이오든이라니. 내 눈과 귀를 믿을 수 없군.”
벨로프가 눈을 크게 떴다.
“나를 알고 있나?”
“어찌 모르겠소? 어쩌면 지구 최강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당신의 이름은 캄차카 콜로니에도 널리 알려졌다오.”
“캄차카 콜로니? 그런 곳에도 콜로니가 있었나?”
“하하! 모르는 것도 당연하오. 네오 서울과 달리 무척이나 척박하고 조그만 곳이라서.”
벨로프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캄차카 콜로니는 말 그대로 옛 캄차카 반도에 존재하는 콜로니였다.
옛 캄차카 반도는 거의 개발이 안 된 대자연을 자랑했다. 당연히 인구 밀도 또한 턱없이 낮았다.
같은 러시아 영토인 모스크바나 사할린 같은 지역에 비교하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많이 살아남았다.
워낙 수가 적다 보니 인간끼리 생존 경쟁하는 것보다 힘을 합쳐 살아남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마을 단위로 뭉쳐 생존했다. 그러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각성자들이나 생존자가 합류하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
캄차카 콜로니의 크기는 네오 서울의 십 분지 일에 불과했다.
더 규모를 키우고 싶어도 수시로 습격해 오는 마수들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제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수가 습격해 온다구요?”
“그게 뭐가 이상한가? 마수들이 습격해 오는 것이 당연하지. 놈들에게 인간은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네오 서울은…….”
“네오 서울은 특별하지. 그렇게 특별한 콜로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
네오 서울의 성벽은 대항마력을 가진다. 그래서 마수들이 접근을 꺼려 한다.
지구에 그런 성벽을 가진 콜로니는 네오 서울밖에 없다.
다른 콜로니들은 매일같이 마수들과 사투를 치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대신 마수들과의 전쟁을 통해 각성자들의 실력이 발전했다.
특히 대마수전에 있어서만큼은 모두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만했다.
그래서인지 벨로프를 따라 나온 이들 모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덩치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덩치가 다들 불곰만 했다.
거대한 데이오든에 비해 조금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벨로프가 데이오든에게 말했다.
“하하!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은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떻겠소? 귀빈으로 모시리다.”
“좋다.”
“하하! 역시 화끈하시구려.”
데이오든의 허락에 벨로프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제온은 데이오든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겠지?’
겉보기엔 단순 무식하게 생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한 행동 중에서 이유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심모원려 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행동하고 있었다.
두뇌가 뛰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벨로프는 두 사람을 매머드가 끌고 있는 거대한 창고 위로 안내했다.
거대한 창고 위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차양과 의자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창고 안엔 캄차카 콜로니에서 구입한 물건이 가득 실려 있었고, 사람들은 창고 위에서 생활했다.
창고 위로 올라오자 벨로프가 크게 말했다.
“하하! 사막의 영웅을 만났는데, 가만있을 수 없지. 보드카를 내와라.”
“보드카? 아직도 그 술이 남아 있었나?”
“흐흐! 캄차카 콜로니에서 어렵게 구한 거요. 알고 보니 옛 러시아의 주류 총판이 하나 남아 있더구려. 더 이상 생산은 되지 않지만, 옛날에 만들어 놓은 술이 아직 조금 남아 있소.”
“대단하군.”
“대단하지! 이 술을 네오 서울에 가져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오.”
현시대에서 술은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술의 원료가 되는 곡물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곡물도 콜로니의 공장에서 생산했다. 양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술을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설령 만든다고 해도 극히 적은 양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마정석보다 귀한 것이 술이었다.
더구나 옛 시대에 만든 보드카라면 부르는 게 값일 게 분명했다.
벨로프가 이렇게 자신 있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데이오든과 제온을 위해 그 귀한 보드카를 한 병 내놨다.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못한 데이오든의 눈에 탐욕의 빛이 어렸다.
벨로프가 제온을 바라봤다.
“형제는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전 술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형제에겐 특별히 훈제한 사슴 육포를 주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벨로프가 손짓을 하자 겨우 열두어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육포를 들고 다가왔다.
풍성한 금발이 인상적인 미소년이었다.
“내 아들 데미안이라네. 데미안, 육포를 형제에게 주거라.”
“네!”
데미안이라 불린 소년이 제온에게 육포를 건넸다.
제온은 데미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데미안은 제온의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려 시선을 피했다.
제온이 육포를 받아 들었다.
“고맙다.”
“네! 형.”
데미안은 부끄러움이 많은 것 같았다.
여전히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 벨로프가 술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자, 우리 함께 마시고 먹읍시다. 마수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내 수하들과 매머드가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막을 테니까. 하하하!”
창!
데이오든이 술잔을 부딪쳤고, 제온은 육포를 씹었다.
데미안이 준 사슴 육포는 마수로 만든 육포와 차원을 달리했다.
그야말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너무 맛있어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