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플로아는 다크 엘프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동안 다크 엘프들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다른 종족과 교류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을 모색한 것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들의 삶은 거의 석기 시대로 퇴행했고, 오크들에게 짓밟히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다.
터전을 잃고 제온을 따라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플로아는 결심했다.
다크 엘프들을 위해 인간들과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행히 많은 다크 엘프들이 그녀와 뜻을 함께했다.
그들은 노숙하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고난은 그들의 사이를 더더욱 끈끈하게 만들었고, 대화는 서로가 품어 왔던 진짜 마음을 알게 했다.
그때 그들은 결정했다.
좋은 기회가 오면 자존심 다 버리고 잡겠다고 말이다.
나이 든 다크 엘프들은 그런 젊은 엘프들의 결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대세는 플로아와 같은 젊은 엘프들에게 넘어왔다.
플로아의 결정은 곧 다크 엘프족의 결정이었다.
그녀가 다시 한번 고두원에게 말했다.
“부디 저희 일족을 이 숲의 주민으로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플로아는 남은 무릎마저 꿇었다.
무릎을 꿇고 부탁하는 플로아의 모습에 고두원이 크게 당황했다.
“어, 어서 일어나십시오.”
“그 전에 대답부터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을 검은 숲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민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그제야 플로아가 몸을 일으켰다.
고두원은 미소 지은 얼굴로 플로아를 바라봤다.
엘프와 결혼해 하프 엘프인 하르를 얻은 고두원이었다. 당연히 엘프들에 대한 경계심이나 선입견이 없었다.
그 때문에 쉽게 그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분명 하르도 좋아할 거야.’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냈던 하르였다.
다크 엘프들이 합류하면 분명 하르도 크게 반길 것이다.
고두원이 그렇게 흔쾌히 주민으로 받아들이자 다크 엘프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숲의 주인이 우리를 주민으로 받아 줬다.”
“이제 이 숲이 우리의 터전이다.”
“흐흑!”
어떤 다크 엘프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새싹이 피어나는 숲이었다.
지금 당장은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은 크기였지만, 잘 키우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한 그루, 두 그루, 그렇게 정성스럽게 키우다 보면 언젠가 큰 숲을 이룰 것이다.
숲의 종족인 다크 엘프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었다.
그때 제온이 다크 엘프들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에서 정령이 태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령의 탄생을 눈치챈 마수들이 이곳을 계속 공격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우리가 이 숲을 지키겠습니다.”
“이 숲은 우리의 터전입니다. 그 어떤 마수도 이곳을 침범하지 못할 겁니다.”
다크 엘프들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타고난 전사였다.
제대로 무장만 하고, 준비만 하면 어떤 마수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고두원이 플로아에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보다시피 이곳엔 집이 없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네?”
“검은 숲 자체가 그늘이 되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이 정도만 돼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리고 본래 저희 다크 엘프들은 자신들이 살 나무를 스스로 키웠습니다.”
“네?”
고두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자 플로아가 웃으며 말했다.
“본래 우리가 넘어온 세상에선 그랬습니다. 다크 엘프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좋은 묘목을 선물해 줍니다. 아이와 함께 나무를 키우는 거죠. 그렇게 자란 나무는 아이의 집이 됩니다. 사막으로 변한 지구에선 나무를 키우지 못해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보이십니까? 저들의 눈빛이…….”
플로아가 다크 엘프들을 가리켰다.
다크 엘프들은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검게 탄화된 나무에 난 새싹을 바라봤다.
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마치 심장이라도 꺼내 바칠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숲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까요.”
원래 플로아는 인간이나 다크 엘프들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두원에게는 깍듯이 존대하고 있었다.
고두원을 숲의 주인이자, 자신의 윗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고두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 나무들을 키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요?”
“저희는 숲의 일족입니다. 나무를 빨리 키우는 재주가 있습니다. 정령이 태어난다면 더 빨릴 키울 수 있으니, 숲의 주인께서 염려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 숲의 주인이라는 말은 좀…….”
“이 숲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숲의 주인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럼 그, 그냥 촌장으로 합시다. 숲의 주인이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 숲은 누구의 소유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촌장? 어감이 좋네요. 그럼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촌장님!”
“아,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고두원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그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다크 엘프들과 대화하다 보니 그들이 나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교성 좋은 사람들은 벌써 다크 엘프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빈이 제온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강철 요새도 그러더니, 검은 숲에서도 여러 종족을 화합시키네요. 이러다가 정말 화합 전문가 되는 거 아니에요? 형!”
농담이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철 요새의 탄생에도 제온은 지대한 공헌을 했고, 마찬가지로 검은 숲에서도 똑같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제온은 자신이 해낸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레빈 같은 이들에겐 경이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그때 문득 제온이 브리엘에게 물었다.
“언제쯤 정령이 태어날 것 같으냐?”
“자세한 것은 나도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 같아.”
“그럼, 그동안 우리도 이곳에 머물자. 적어도 정령이 탄생하는 모습은 지켜봐야지.”
“응!”
브리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정령의 탄생을 고대하는 것은 비단 다크 엘프들만이 아니었다.
브리엘도 정령을 보고 싶었다.
이 땅에 처음 출현하는 정령을.
***
검은 숲의 주민이 된 그날부터 다크 엘프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나무에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해.”
다크 엘프들은 바로 새싹이 올라오는 나무의 숫자부터 파악했다.
“모두 열다섯 그루예요.”
“새싹이 올라오는 나무는 반드시 마수들의 습격에서 지켜야 해요. 이 나무들을 중심으로 마수들의 습격을 막을 방비를 하죠.”
“함정도 설치하죠.”
“새싹이 올라오는 나무 쪽에 먼 곳으로 마수들을 유인하는 것은 어때요?”
다크 엘프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검은 숲을 방어할 건지 의논했다.
거기에 인간 각성자들이 합류했다.
“함정을 만드는 데 저희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예 마수가 접근하기 힘들게 해자를 파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해자를 어느 세월에 다 파?”
“제온 님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께 부탁하면 해자 정도는 금방 만들어 주실 겁니다.”
“아, 그 수가 있었군. 알았어! 이따 내가 부탁해 볼게.”
“넵!”
인간 각성자들까지 합세하자 토론은 더 활발해졌다.
나이 든 다크 엘프들은 회한의 눈빛으로 그런 다크 엘프와 인간 들을 바라봤다.
“인간과 저렇게 잘 융합할 수 있다니. 그동안 우리가 저들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건가?”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일찍 인간들과 교류했을 것을.”
“이제부터 앞날은 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뒤에서 서포터나 해야겠군.”
“인간들 격언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그래, 새로운 땅에선 새 피가 주인이 되어야지.”
주도권을 내주고 뒷선으로 물러나야 했지만, 그들은 전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 땅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변화를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영광이었다.
그새 의논을 마친 다크 엘프 중 한 명이 제온에게 달려왔다.
“제온 님! 부탁이 있습니다. 이 검은 숲 앞쪽에 해자를 만들어 주십시오.”
“해자를 만들어도 모래가 금방 흘러내려 쌓일 텐데요.”
“어차피 영구히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령이 탄생하기 전까지만 유지되면 됩니다.”
“어느 정도 크기를 원합니까?”
“대형 마수들을 막아 내야 하니 폭 최소 삼십 미터, 깊이는 이십 미터 정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길이는 삼백 미터 정도면 되겠네요.”
“쉽지 않은 일이군요.”
“하지만 제온 님에겐 불가능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젊은 엘프는 눈을 빛내며 제온을 바라봤다.
부탁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인간과 다크 엘프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에 젊은 엘프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보답은 살아서 하면 됐다.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제온은 젊은 엘프의 뻔뻔함이 싫지 않았다.
사막에서 생존하려면 응당 이래야 했다.
쓸데없는 자존심 따윈 모두 버리고, 바닥에서부터 박박 기어올라야 했다.
제온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함께 만들어 보죠. 해자!”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직접 어디를 파야 하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젊은 다크 엘프는 신이 나서 앞장섰다.
검은 숲 밖으로 나온 젊은 엘프는 제온에게 해자를 파야 할 위치를 일일이 지정해 줬다.
제온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자를 파기 시작했다.
스르륵!
제온의 지배력에 모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나 다크 엘프의 힘으로는 백 년을 파도 모자랄 것 같은 엄청난 양의 모래가 꿀렁이면서 밀려났다.
평평하던 모래밭에 거대한 해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와아!”
“미친! 인간 굴삭기가 따로 없군.”
“굴삭기도 저건 불가능해. 정말 압도적이군.”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눈으로 보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는 기적의 현장이었다.
***
“쓸모없는 오크 새끼. 결국 뒈져 버렸군.”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폐허가 된 다크 엘프 마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파괴된 다크 엘프 마을은 모래로 덮여 있었다,
모든 것이 모래로 뒤덮여 있어 찾는 데 한참 걸렸다.
남자의 발밑에는 머리를 잃은 추앙카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추앙카의 목에 있어야 할 뼈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크롤의 목걸이도 역시 파괴된 건가?”
그가 추앙카의 죽음을 알아차린 것은 간단했다.
바로 추앙카에게 건네준 목걸이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크롤의 목걸이엔 일종의 알람 마법이 걸려 있었다.
목걸이가 파괴되는 순간 남자에게 알람이 전해지는 것이다.
덕분에 남자는 크롤의 목걸이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크롤의 목걸이가 파괴되었다는 것은 곧 추앙카가 죽었음을 뜻했다.
추앙카는 일종의 실험체였다.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남자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다크 엘프들이 반란을 일으킨 건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한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가정을 부정했다.
“자식을 인질로 잡힌 다크 엘프들이 그렇게 무모한 모험을 한다고? 내가 아는 다크 엘프의 방식이 아니야. 무언가 개입한 것이 분명해.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만일 그가 평범한 존재였다면,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 불같이 화를 내거나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존재도 아니었고,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할 만큼 애송이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돌아가는 상황이 재밌다고 느꼈다.
“어디 놈들 낯짝이나 한번 볼까?”
그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다크 엘프들이 사라진 방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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