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브리엘은 탄화된 나무 둥치 아래 쪼그리고 앉아 새싹을 바라봤다. 그녀의 옆엔 또래의 다크 엘프 소녀가 같이 앉아 있었다.
다크 엘프 소녀의 이름은 조세핀이었다.
조세핀이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신기해! 브리엘은 이런 걸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처음이야.”
“진짜? 그렇게 경험이 많은데?”
“경험하곤 상관없어. 다른 곳에선 이런 새싹 자체를 볼 수 없으니까.”
“그렇구나.”
“네 책임이 막중해. 알고 있지?”
“당연하지. 이건 내 나무니까 내가 책임지고 키울 거야.”
오늘 새싹이 나온 나무였다.
플로아와 다크 엘프들은 이 나무를 조세핀에게 맡겼다.
이 조그만 새싹을 멋진 나무로 키울 막중한 책임이 조세핀에게 주어진 것이다.
조세핀뿐만 아니라 모든 어린 다크 엘프들이 나무를 하나씩 배정받았다.
검은 숲을 지키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면, 나무를 키우는 것은 어린 다크 엘프들의 역할이었다.
조세핀이 브리엘을 바라봤다.
“브리엘은 아쉽지 않아?”
“뭐가?”
“새싹을 받지 못했잖아? 떠나지 말고, 이곳에 남아 나무를 키우는 것은 어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내 집은 여기가 아니니까.”
“또 다른 새싹이 나오면 내가 멋지게 키울게. 브리엘 나무로. 그러니까 숲이 그리우면 언제든 찾아와.”
“고마워! 빈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빈말 아닌데. 진짜야!”
조세핀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브리엘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조세핀의 모습에 브리엘이 미소 지었다.
“진짜인 거 알아. 그러니까 네가 내 나무 잘 키워 줘. 자주 찾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게 맡겨! 책임지고 크고 예쁘게 키워 줄게.”
“그래! 부탁할게.”
“응!”
조세핀이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브리엘처럼 밑바닥에서 구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유달리 해맑았다.
조세핀뿐만 아니라 다른 다크 엘프 아이들도 순수했다.
그 때문에 브리엘과 비슷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어리게 느껴졌다.
“다리 저려.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브리엘이 주먹으로 허벅지 아래를 두들기며 일어섰다.
“가려고?”
“응! 제온에게 가 봐야지.”
“알았어! 이따 다시 봐.”
“그래!”
브리엘은 제온이 있는 해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다.’
검은 숲을 걷는 내내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곳곳에 보이는 새싹과 새싹을 소중히 보살피는 다크 엘프들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야 하이 엘프 마을의 어른들이 왜 그렇게 쿠라얀의 숲을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언젠가 마을에 돌아가게 된다면 이곳의 새싹을 가져다주고 싶어.’
하이 엘프의 마을도 다크 엘프들이 살던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대지에서 하루하루 겨우 삶을 이어 가고 있을 뿐, 그 어떤 희망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죽지 못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숨만 쉬는 것뿐이었다.
인간이든, 엘프든 희망이 필요했다.
이곳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새싹을 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듯이 말이다.
이 희망을 계속 지켜 나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검은 숲을 지켜야 했다.
제온은 숲의 중앙 하르가 고치를 튼 곳에 있었다.
고치 앞에는 비단 제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두원, 레빈, 플로아와 다크 엘프 전사 몇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앞에 있는 고치가 빛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고치는 마치 태양을 품은 것처럼 새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하얀 고치가 빛까지 발산하자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플로아와 다크 엘프들은 격동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곧 정령이 탄생할 것 같네.”
“정령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군. 이 위대한 순간을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 한 번도 정령을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곧 정령이 태어날 거란 사실을 말이다.
브리엘도 고치 앞에 섰다.
고치에서 발산되는 새하얀 빛을 받자 전신에 활력이 돌았다.
정령이 발산하는 기운에 하이 엘프인 브리엘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반면 인간인 제온과 레빈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조금 청량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브리엘과 다크 엘프들은 눈을 감은 채 고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직 정령이 완전히 탄생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영혼 한 조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늘 허전했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완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쿠라얀에서 넘어온 나이 든 다크 엘프들이 왜 그렇게 그 시절을 그리워했는지 말이다.
엘프들은 정령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엘프라면 누구나 정령과 계약했고, 그들의 힘을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엘프들은 혼자 정령 여럿과 계약하기도 했다.
정령은 그들의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지구로 넘어오면서 정령들과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구로 넘어온 엘프들은 영혼 한 조각을 상실한 기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이 든 엘프들의 넋두리를 그냥 추억 미화라고 치부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브리엘이 제온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뭐가?”
“정령이 태어나면 엘프들은, 또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글쎄! 당장은 힘들겠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 또 다른 정령들이 탄생하면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뭐든지 처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두 번째부터는 조금은 수월해지니까.”
“역시 그렇겠지.”
브리엘이 조그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얼굴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결의가 어려 있었다.
레빈이 그런 브리엘을 보고 말했다.
“뭐야? 세상 전체와 싸울 생각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네 눈빛이 그렇다고. 혼자서 세상 전체와 싸울 것 같은 눈빛이라고.”
“칫! 뭐래?”
브리엘이 입술을 삐죽일 때였다.
쾅!
검은 숲 입구 쪽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수다.”
“모두 집결해!”
동시에 입구를 지키던 다크 엘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온을 비롯해 고치를 지켜보던 이들도 서둘러 검은 숲 입구로 달려갔다.
검은 숲 입구에는 마수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외뿔 하이에나 같은 하급 마수 무리부터, 온몸에 가시가 돋은 크림슨 베어 같은 중급 마수,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싸이클롭스 같은 대형 마수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맙소사! 저게 다 뭐야?”
“저렇게 많이 몰려왔다고? 미치겠군!”
“떠들 시간 있으면 싸울 준비부터 해. 놈들이 해자를 건너오지 못하도록 해야 해.”
각성자와 다크 엘프 들이 굳은 표정으로 전투 준비를 했다.
긴장으로 그들의 얼굴에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리 해자를 준비해 뒀다는 것이다.
제온이 만든 거대한 해자 덕분에 마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제온이 만든 해자는 넓고 깊어 대형종 마수도 쉽게 건널 수 없었다.
모래로 이뤄진 해자는 한번 빠지면 쉽게 올라올 수 없었다. 모래가 계속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령을 노리고 모여든 마수들은 해자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비좁은 출입구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입구를 비좁게 만들어 마수들을 그쪽으로 유인한 것이다.
마수들 중에는 인간 뺨칠 만큼 똑똑한 존재들도 있었다. 그런 존재들에겐 이런 유치한 함정 따윈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 몰려온 마수들 중에는 그런 존재가 없었다.
킁킁!
크르르!
정령 냄새에 홀려 몰려든 마수들에게 이성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놈들은 서로 먼저 정령을 잡아먹겠다고 좁은 입구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로 뒤엉켜 난리도 아니었다.
“모두 공격해!”
“단 한 마리도 통과시켜서는 안 돼!”
인간 각성자들과 다크 엘프는 그런 마수들을 공격했다.
냉병기와 마법 스킬이 마수들의 몸통에 작렬했다.
쾅!
크에에!
폭음과 마수들의 포효가 뒤섞이며 검은 숲 입구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외뿔 하이에나나 화염 늑대 같은 하급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중형급 이상 마수들이었다.
쿵! 쿵!
놈들은 자신들보다 조그만 마수들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검은 숲으로 진입하려 했다.
인간보다 몇 배는 더 큰 중형 마수들이 검은 숲 내부를 휘저으면 새싹들이 모조리 짓밟힐 것이 분명했다.
플로아가 외쳤다.
“전사들 모두 공격 준비. 단 한 마리의 마수도 이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
“옛!”
다크 엘프 전사들이 결의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꾸워어엉!
그때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크림슨 베어가 포효하며 입구로 들어왔다.
체고만 오 미터가 넘는 크림슨 베어였다.
놈이 귀찮다는 듯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마수들을 발로 후려쳤다. 그때마다 서너 마리의 하급 마수들이 피떡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찐득한 침을 쉴 새 없이 흘리고 있었다.
크림슨 베어는 정령의 냄새를 맡기라도 하는 건지 계속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내 원하는 냄새를 찾았는지, 놈의 시선이 정확히 고치가 있는 곳을 향했다.
크림슨 베어는 곧장 고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 순간 플로아가 명령을 내렸다.
“일 조 크림슨 베어를 공격해. 겨드랑이가 약점이니까 집중적으로 노려.”
“넷!”
다크 엘프 전사들 십여 명이 크림슨 베어를 향해 달려갔다.
플로아는 다크 엘프 전사들을 편의상 다섯 개 조로 나누었다.
상황과 마수에 따라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일 조 다크 엘프 전사들은 크림슨 베어와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은 플로아의 말대로 크림슨 베어의 겨드랑이를 집중 공략했다.
그때 또 다른 중형 마수가 나타났다.
플로아가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이 조 출동해.”
“넷!”
이 조가 출동한 후에도 마수들은 계속 입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플로아는 상황에 따라 다크 엘프 전사들을 투입하며 막아 냈다.
인간 각성자들도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평생 손발을 맞춰 온 사람들처럼 능숙하게 다크 엘프들을 보조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중형종 마수들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쿠워어!
기세 좋게 쳐들어왔던 크림슨 베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크 엘프 전사들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곳은 우리의 터전이다. 마수 따위에게 절대로 넘겨 주지 않을 거다.”
“우리를 모두 죽이기 전에는 이 안으로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다.”
다크 엘프 전사들이 포효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아직 진짜 전투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대형종 마수들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놈들이 움직이는 순간 진정한 전투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쿵! 쿵!
뒤쪽에서 지켜보던 대형종 마수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포문을 연 것은 싸이클롭스였다.
놈들이 거대한 몽둥이를 어깨에 짊어진 채 검은 숲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너는 내 몫이다.”
플로아가 쏜살처럼 뛰쳐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뒤를 따랐다.
제온과 레빈은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저 먼 하늘을 향해 있었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비행형 마수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우리 차례군!”
“먼저 갈게요, 형!”
레빈이 유령화해 날아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