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4)
374화
“이거 봐라!”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높은 모래 산 위에 서서 전방을 바라봤다.
그의 시야에 검은 숲이 들어왔다.
사막을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이렇게 숲이 탄화된 채로 형체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광경은 처음 봤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거대한 암석 악어와 그에 맞서는 제온이라는 존재였다.
“악어와 골렘의 융합이라? 저렇게도 마수가 탄생하는군. 재밌네!”
로브의 모자 아래 드러난 그의 입술에 미소가 어렸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다 즐겁게 하는 것은 수백 개로 분열한 암석 악어와 맞서 싸우는 제온이라는 존재였다.
수백 기의 샌드 솔저를 소환해 암석 악어의 물량 공세에 맞서는 제온이라는 존재가 그의 흥미를 끈 것이다.
“모래를 저렇게 다룬다고?”
샌드 솔저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암석 악어에 비하면 질량도, 크기도, 힘도, 강도도 비할 수 없이 약했다.
쾅!
암석 악어가 전력으로 부딪치면 모래로 된 병사 따윈 순식간에 무너졌다.
여기까지 보면 샌드 솔저도 별거 아니었다.
샌드 솔저의 무서운 점은 파괴되는 즉시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쾅!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파괴되는 샌드 솔저. 하지만 뿔뿔이 흩어졌던 모래 입자가 거짓말처럼 뭉치며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게 원상회복한 샌드 솔저가 암석 악어에 다시 달라붙어 공격한다. 샌드 솔저들이 암석 악어를 저지하면 다크 엘프와 인간 각성자 들이 공격해 파괴했다.
콰쾅! 퍼엉!
여기저기서 암석 악어들이 파괴되고 있었다.
샌드 솔저와 달리 한번 파괴된 작은 암석 악어는 재생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 몇몇 개체들이 검은 숲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겊은 숲 내부로 들어온 암석 악어들은 곧장 고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본능적으로 정령이 탄생하는 곳을 감지하고 달려가는 것이다.
짧은 다리로 움직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암석 악어들은 빨리 움직였다.
“제기랄!”
다크 엘프들이 빠져나간 암석 악어들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숲속으로 모습을 감춰 보이지 않았다.
저지선을 돌파한 암석 악어들은 순식간에 고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결국 뚫렸나?”
소형 암석 악어를 발견한 브리엘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고치가 꿀렁이면서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정령이 탄생하려는 것이다.
이 순간을 방해받으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슈앙!
브리엘은 윈드 커터를 암석 악어들에게 날렸다.
인간을 상대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윈드 커터였지만, 불행히도 몸 전체가 암석으로 이뤄진 악어에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암석 악어들은 거침없이 고치를 향해 달려왔다.
그중 유독 커다란 덩치를 가진 놈이 있었다.
놈은 남다른 속도로 달려와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그대로 브리엘과 고치를 삼키려는 것이다.
쾅!
그 순간 놈의 머리 위로 제온이 내리꽂혔다.
와이번을 잡을 때처럼 온몸으로 암석 악어를 공격한 것이다.
엄청난 충격에 암석 악어가 잠시 휘청였다.
암석 악어의 몸통 위에 올라탄 제온이 중얼거렸다.
“역시 이쪽에 본체가 있었군.”
골렘이라면 당연히 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놈은 끝없이 재생한다.
다크 엘프 등이 파괴한 암석 악어가 재생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본체가 핵을 가지고 있으니 나머지 놈들이 재생할 수 없는 것이다.
수백 마리나 되는 암석 악어 무리에서 본체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제온은 일부러 샌드 솔저의 저지선을 느슨하게 했다.
핵을 품고 있는 본체가 뚫고 침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제온의 예상처럼 본체를 포함한 몇몇 개체들이 정령이 탄생하려는 곳까지 도달했다.
제온은 그중 가장 크고, 가장 선두에 나선 개체가 본체라고 생각했다. 분신 따위가 정령을 포식하도록 내버려둘 리 없기 때문이다.
쿠워어어!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받은 본체가 분노에 포효했다.
놈이 등에 올라탄 제온을 떨어트리려고 요동쳤고, 분신들이 협공해 왔다.
그런 행동들이 제온에게 확신을 줬다.
자신이 올라탄 개체가 본체라고 말이다.
제온은 초열의 건틀렛에 마나를 주입해 본체의 등을 후려쳤다.
쾅! 콰왕! 쾅!
연이어 세 번을 내려치자 본체의 등이 완전히 파괴되어 내부가 드러났다.
파괴된 암석 사이로 붉게 빛나는 보석이 보였다.
바로 본체의 핵이었다.
핵이 드러나자 본체가 더욱 미쳐 날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등 뒤에 올라탄 제온을 떨어트릴 수는 없었다.
제온은 손을 뻗어 본체의 핵을 잡아 뜯었다.
뚜두둑!
돌과 융합되었던 핵이 뿌리째 뽑혀 나왔다.
순간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던 본체가 딱 멈췄다. 동시에 분신들도 석상처럼 굳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콰르르!
응집력을 잃은 돌덩이들이 무너져 내렸다.
핵을 잃고 평범한 암석으로 돌아간 것이다.
쿵! 쿵!
제온의 손아귀에 있는 붉은 보석이 마치 심장처럼 박동했다.
놈의 갈망이 느껴졌다.
몸체를 잃고도 놈은 정령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제온이 싸늘히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단단한 보석이 초열의 건틀렛 권능을 동원하자 힘없이 부서졌다.
파스스!
제온의 손에서 가루가 되는 골렘의 핵. 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가루가 된 골렘의 핵이 흩어지지 않고 제온에게 흡수된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 제온이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제온에겐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푸화학!
그 순간 고치가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력한 빛무리에 제온은 눈을 감고 말았다.
그때였다.
큐우!
신비한 소리가 제온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기분은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암석 악어 등과 싸우면서 쌓인 피로가 풀리고, 소모된 마나가 모두 회복된 것이다.
제온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조그만 빛무리가 마치 나비처럼 둥둥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정……령인가?”
“맞아!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아이야.”
브리엘이 대답했다.
그녀는 넋을 놓고 허공에 둥실 떠다니는 정령을 바라봤다.
정령은 이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제온은 한눈에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하르구나.”
“오랜만이에요.”
하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팔 년이란 시간은 하르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정령을 탄생시킨 하르에게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마치 여신이 존재한다면 지금 하르와 같은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르가 손을 뻗자 정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앉았다.
“유리예요.”
“유리?”
“이 아이 이름이에요. 너무 예쁘죠?”
“예쁘구나.”
“제온 덕분에 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아, 그리고 브리엘도 고마워!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어.”
하르는 브리엘에게도 화사한 미소를 보여 줬다.
브리엘이 손을 뻗어 하르의 손을 잡았다.
“고생했어! 아름다운 아이를 탄생시키다니. 하르는 위대한 일을 했어.”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참, 유리랑 인사할래?”
“그래도 돼?”
“당연하지. 너는 고결한 존재니까.”
하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가 브리엘의 손으로 올라왔다.
“안녕! 유리. 난 브리엘이야.”
파르르!
브리엘의 인사에 유리가 몸을 떨었다.
“나도 반가워! 너무 예쁜 아이구나. 앞으로 하르 언니 잘 부탁할게.”
유리가 기분 좋은지 브리엘의 몸을 휘돌았다.
그때마다 고운 빛 입자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엇?”
“맙소사!”
뒤늦게 달려온 다크 엘프와 각성자 들이 그 광경을 보고 넋을 잃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저 빛덩이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놀랄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정령이 뿌린 입자가 내려앉은 푸석한 대지가 갑자기 흑갈색으로 변했다. 모래가 아닌 생명력이 충만한 토지로 바뀐 것이다.
바뀐 토지에서 녹색 이파리가 올라왔다.
새싹이 피어나는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에 플로아와 다크 엘프들이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정령에 민감한 존재이기에 지금의 변화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유리는 새로 등장한 다크 엘프가 반가운 듯 그들 주위도 한바탕 신나게 날아다녔다.
유리가 근처를 지날 때면 다크 엘프들은 생전 처음 느끼는 충만감에 몸을 떨었다.
당연히 가지고 있었어야 할 무언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흐흑!”
“아아! 이게 정령…….”
다크 엘프들은 감동에 목 놓아 울었다.
자신들과 계약한 정령이 아니라도 좋았다.
정령을 바로 곁에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완전해지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다크 엘프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인간 각성자들은 다른 의미로 경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바로 바닥에서 피어나는 새싹들이었다.
탄화된 나무에서 피어난 새싹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풀잎의 싹이었다.
순식간에 발목을 덮을 정도로 자라난 녹색 풀잎들은 그들에게 경외감을 주기 충분했다.
그렇게 모두가 이 땅에 처음으로 탄생한 정령에 감격했다.
제온의 눈이 정령의 움직임을 좇았다.
정령은 검은 숲이 신기한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구석구석 살폈다. 그러다 제온을 발견했는지 날아와 주위를 휘돌았다.
그 모습을 본 하르가 말했다.
“유리가 그 아이를 보고 싶대.”
“그 아이?”
“제온과 연결된 아이가 있다는데?”
“가이아 말이야? 유리가 가이아를 알아?”
“응! 자신과 같으면서 다른 존재라는데.”
“그래?”
제온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이아는 사신의 낫을 소화하느라 잠이 들어 있었다. 가이아가 스스로 깨어나기 전까지는 아공간 밖으로 꺼낼 방법이 없었다.
“유리, 가이아는…….”
제온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숲 밖을 바라봤다.
숲 밖에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S급 마수인 암석 악어 따윈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진 자가 검은 숲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파르르!
유리도 존재감을 느꼈는지 몸을 떨다가 급히 하르의 품 안으로 도망갔다.
“왜 그래?”
유리는 대답 대신 하르의 품 안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검은 숲에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제온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의 존재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허공에 떠 있던 레빈조차도 말이다.
그 정도로 남자는 뜬금없이 나타났다.
남자가 하르의 품에 안긴 정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령인가? 이 땅에도 드디어 정령이 탄생했군.”
남자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오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만큼 정령의 탄생은 그에게도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 제온이 하르와 정령의 앞을 막아섰다.
제온의 등장에 남자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봐! 모래술사. 내 앞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좋겠군. 좋았던 기분을 자네가 잡치고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리가 그쪽을 경계하고 있거든요.”
“유리? 이름이 생겼다는 건 벌써 계약을 끝냈다는 건가? 한발 늦었군. 그래도 뭐, 상관없겠지. 갓 맺은 계약 끊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 일대의 기온이 급속히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