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분명히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데 한기가 느껴졌다.
인간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다크 엘프들까지 전신의 털이 곧추서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대체?”
“저자가 누구기에…….”
그들 모두 사막에서 한평생을 투쟁하며 살아온 전사들이었다.
어지간한 사건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제아무리 큰 대형 마수들과 마주쳐도 물러서지 않는 강력한 투쟁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남자를 보는 순간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심지어 허공에 떠 있던 레빈과 브리엘마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이는 제온이었다.
제온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래가 그의 몸을 띄운 것이다.
제온은 남자와 똑같은 위치에서 멈춰 섰다.
남자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말 안 듣는군. 뭐, 자신감 있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쾅!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온에게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제온을 공격한 것이다.
쇼크웨이브(Shockwave).
남자가 펼친 공격 마법이었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공격 마법이었다.
특히 인간을 상대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쇼크웨이브는 쉽게 펼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위력이 강한 만큼 발동하는 데 딜레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간단히 쇼크웨이브를 펼쳤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자는 당연히 제온이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제온을 보는 순간 그의 입가에 어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제온이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다.
전혀 타격을 받은 모습도 아니었고, 당황한 표정도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마치 소 닭 보듯 무심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런 제온의 모습에 남자는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래도 모래술사라는 거구나. 그 짧은 순간 모래를 진동시켜 쇼크웨이브를 상쇄하다니.”
쇼크웨이브는 음파 공격이었다.
음파 공격을 소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영역대의 주파수를 발생시켜 상쇄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온은 그 짧은 순간 모래 입자를 진동시켜 음파를 발생시켰다.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반응 속도였다.
남자가 모자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내 이름은 칼리넌이다. 네 이름은?”
“제온입니다.”
“그래! 제온. 너는 나와 대화할 자격이 있다.”
모자를 벗은 칼리넌이 고개를 들어 제온을 바라봤다.
그는 마치 도자기를 빚어 놓은 것처럼 부드러운 얼굴선을 가진 미남자였다.
짙은 금발에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뾰족한 귀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제온은 한눈에 그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
“엘프군요.”
“엘프였었지.”
“과거를 부정하는 건가요?”
“현재가 달라졌다고 봐야겠지.”
“엘프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인간치곤 꽤나 똑똑하군.”
칼리넌이 자못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칼리넌 님!”
“모래술사라. 너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쿠라얀에서도 그런 각성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고맙군요.”
“고마워할 필요 없다. 그래 봤자 내 손에 죽을 테니까.”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죠. 추앙카에게 뼈 목걸이를 건네준 것 당신이죠?”
“역시 네놈이 그 늙은 오크를 죽였구나.”
제온은 뼈 목걸이를 통해 칼리넌의 존재를 확인했고, 칼리넌은 추앙카를 죽인 존재를 쫓아왔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칼리넌은 제온의 등 뒤로 보이는 하르와 정령을 노려봤다. 정확히는 정령에 군침을 흘리는 것이다.
“너에게 감사해야겠구나. 네가 그 늙은 오크를 죽인 덕분에 이렇게 정령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유리는 하르와 이미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을 텐데, 욕심을 내다니. 너무 상도의 없는 것 아닌가요?”
“그깟 영혼의 연결 따위 끊으면 그만이지. 저 정령만 넘기면 순순히 물러가마.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당신을 보니 누군가 떠오르는군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반마룡 나이젤!”
“…….”
“역시 알고 있군요. 그냥 찔러 본 건데.”
제온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칼리넌과 나이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종족, 체형, 기세,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서로를 연상시켰다.
칼리넌의 황금빛 눈동자가 무섭게 빛났다.
“네가 어떻게 나이젤을 알지? 아니, 어디서 그를 봤느냐?”
“당신은 나이젤과 무슨 관계죠?”
“내 말에 대답이나 해라, 인간!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전에.”
“당신이야말로 내 질문에 답해요.”
“건방진 인간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변종 엘프?”
“뭐?”
“나이젤처럼 당신 역시 모종의 이유로 변한 거겠죠. 혹시 그게 보랏빛 보석과 관련 있는 겁니까?”
“…….”
칼리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제온에겐 충분한 대답이 됐다.
반마룡 나이젤도 칼리넌처럼 말했었다.
드래곤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는 드래곤의 강대한 육체를 버리고, 반마룡이 되는 것을 택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개체가 종족의 틀을 벗어던지고 자력으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데이오든이 상대했던 드래곤 하이엘툰 역시 진즉 태(態)를 벗어던졌을 것이다.
하이엘툰도 순수 능력으로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이젤이나 칼리넌도 할 수 없어야 했다.
둘의 순수 능력이 하이엘툰을 능가한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해냈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물건이나 존재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네크로맨서인 필그램이었다.
비록 나이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필그램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대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부린 언데드들은 모두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나이젤은 그런 필그램의 가슴에서 보랏빛 보석을 회수했다. 그래서 제온은 생각했다.
보랏빛 보석이 필그램에 그렇게 비정상일 정도로 강한 힘을 준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나이젤이 직접 보랏빛 보석을 회수하려고 나타났을 리 없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보랏빛 보석이 문제였다.
보석을 품은 자들은 모두 종의 한계를 벗어난 힘을 가지게 된다.
제온이 물었다.
“보랏빛 보석, 크라시아스와 관련 있는 겁니까?”
“정말 못 당하겠구나.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나이젤이 그랬거든요. 크라시아스가 정말 죽었다고 믿느냐고? 나이젤 같은 강대한 존재가 허투루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으니, 결국 그 보석이 크라시아스와 관계있는 거겠죠.”
“똑똑하구나. 내가 이제까지 본 모든 인간 중에서 네가 단연 제일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다. 너를 죽이겠다는 선전 포고지.”
“그렇군요.”
자신을 죽이겠다는 칼리넌의 말에도 제온은 담담히 대답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칼리넌의 황금빛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제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리넌은 쿠라얀에서 넘어온 엘프였다.
쿠라얀에서도 그의 존재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를 기억하는 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구로 넘어온 후에도 그는 홀로 생활했다.
나이가 드니 욕심이 사라지고, 번거로운 것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엘프들과 교류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홀로 사막을 떠돌며 생활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운명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바로 제온이 언급한 보랏빛 보석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날 그는 엘프라는 종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 태어났다.
나이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칼리넌은 본래 욕심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보랏빛 보석을 품은 후로는 탐욕이 들끓었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가져야만 직성이 풀렸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파괴했다.
추앙카에게 뼈 목걸이를 건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추앙카와 오크들을 강하게 만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파괴하기 위해 자신의 권능이 일부 담긴 뼈 목걸이를 줬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제온에 의해 분쇄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제온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네가 내 장난감을 망가트렸으니, 나도 너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야겠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광오 하구나.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지.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그거 알아요?”
“무얼 말이냐?”
“나이젤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했다는 걸. 그도 당신처럼 말이 많았죠. 꼭 신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아무래도 그 보석이 자의식 과잉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네요.”
“건방진!”
칼리넌의 입술이 씰룩였다.
제온의 도발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순간 그의 눈에서 황금빛 안광이 터져 나오고, 또다시 쇼크웨이브가 터져 나왔다.
쩌어엉!
“크악!”
“악!”
강렬한 음파 공격에 검은 숲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귀를 막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귀에 이명이 울리고, 뇌가 종이라도 된 것처럼 진동했다.
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플로아마저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침을 줄줄 흘릴 정도였다. 쇼크웨이브에 직접 강타당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도 제온은 모래 입자를 진동시켜 쇼크웨이브를 분쇄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속이 뒤집혀 피가 솟구쳤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내장이 진탕된 것이다.
그 순간 칼리넌이 저 높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검은 숲이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도달한 칼리넌이 중얼거렸다.
“단숨에 부숴 주마. 광역 파쇄[Wide Area Spallation].”
후우우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검은 숲 주위의 공간이 울부짖는다.
마치 검은 숲 전체가 거대한 종 안에 들어간 것처럼 소리가 에워쌌다.
소리가 겹쳐 수십, 수백 배로 증폭됐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검은 숲을 강타했다.
“크아악!”
“사, 살려…….”
검은 숲 안의 모든 생명체가 절규했다.
그들의 체내가 들끓고 있었다.
마치 전자렌지에 들어간 것처럼 외부의 음파에 반응해 체내의 수분이 들끓는 것이다.
이대로 수십 초만 지나면 모든 생명체의 몸이 터져 나가고 말 것이다.
그 순간 제온이 움직였다.
“챠앗!”
그의 외침과 함께 지상의 모래들이 솟구쳐 올랐다.
우우우웅!
뿌연 모래 입자가 서로 부딪치며 진동했다.
쇼크웨이브를 방어했던 수법을 광역으로 응용한 것이다.
소리가 소리를 잡아먹으며, 검은 숲 전체를 들끓게 했던 음파가 사라졌다.
덕분에 잠시 검은 숲에 적막이 찾아왔다.
칼리넌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진짜 놀랄 일은 이제부터였다.
―삐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에 커다란 고래가 머리를 내밀었다.
가이아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사신의 낫을 소화한 가이아는 예전보다 몇 배는 커져 있었다.
가이아가 머리를 들어 칼리넌을 바라봤다.
―삐이?
“우리의 적이다.”
―삐!
가이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제온이 등에 올라타자 가이아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올랐다.
급속히 확대되는 칼리넌의 얼굴.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콰아아!
모래가 소용돌이치며 가이아를 더욱 무서운 속도로 밀어 올렸다.
종의 한계를 넘어선 엘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새로운 종으로 태어났다고,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
가이아와 하나가 된 제온은 무서운 속도로 칼리넌에게 돌진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