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8)
378화
제온은 커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검은 숲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
이 나무가 며칠 전만 해도 조그만 새싹에 불과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제온도 직접 보고 경험했기에 받아들인 것이지, 말로만 들었다면 그 역시 믿지 못했을 것이다.
“와하하!”
“나 잡아 봐라.”
“히히!”
나무 아래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간과 다크 엘프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서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의 웃음은 어른들에게도 전염됐는지, 작업하는 이들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리가 태어난 지 불과 열흘이 지났을 뿐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숲은 옛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놀라운 기적 앞에서 인간과 다크 엘프 들은 하나가 됐다.
인간 각성자들이 외곽에서 숲을 지켰고, 그사이 다크 엘프들은 나무를 보살폈다.
유리가 뿌린 가루 덕분에 급속히 성장하는 나무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키우면 쿠라얀에서 그랬듯이 나무로 집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모든 다크 엘프들이 저마다의 집을 키우는 데 열심히였다.
다크 엘프들 사이에는 브리엘도 끼어 있었다.
소매를 걷은 채 흙을 만지는 브리엘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온몸이 흙으로 더러워졌는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겹게 밟았던 텁텁한 모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가득한 흑토였다.
생전 처음 만져 보는 새까만 흙의 감촉에 브리엘은 물론이고, 다크 엘프들마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브리엘과 친구가 된 조세핀이 흙을 한 움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것 봐! 브리엘. 여기에도 새싹이 나고 있어.”
“진짜네!”
브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세핀의 손에 담긴 흙에서도 이름 모를 풀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세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봤지? 이제 숲 전체가 이런 풀로 뒤덮일 거야.”
“그래! 너무 아름답겠다.”
브리엘은 잠시 눈을 감고 녹색 풀로 뒤덮일 숲을 떠올렸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존재하는 녹색 섬.
크기가 작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숲이 울창해질수록 점점 더 영역을 넓혀 갈 것이다. 그렇게 규모가 커지다 보면 언젠간 지구 전체가 다시 푸르름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봤다.
조세핀이 들고 있던 새싹이 상하지 않도록 흙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은 후 브리엘의 손을 잡았다.
“왜?”
“가자! 네 나무로 점찍어 둔 아이가 있거든.”
“진짜?”
“내가 말했잖아. 너를 위한 나무를 키워 주겠다고. 이미 어른들의 허락도 받았어. 어서 가 보자.”
“응!”
브리엘이 기쁜 표정으로 조세핀을 따라나섰다.
제온은 나무 위에서 브리엘과 조세핀이 손을 잡고 숲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제온의 곁으로 유령화한 레빈이 내려앉았다.
“좋아 죽겠나 봐요. 이러다가 집에 안 가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그게 브리엘의 결정이라면 존중해 줘야지.”
“만약 그렇게 되면 아쉽지 않겠어요?”
“너는 어떨 것 같으냐?”
“아쉽겠지만, 그래도 그게 브리엘을 위한 거라면 감수해야죠.”
“나도 그래. 엘프들에게 숲은 곧 생명의 원천이야. 원래 숲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종족이라고 하니, 브리엘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두 사람이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브리엘이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랐다. 이곳에서 행복하다면 브리엘을 기꺼이 남겨 둘 생각이었다.
제온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참, 마수들은 어떠냐?”
“그게 신기하게 싹 사라졌어요.”
“그래?”
“가이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리핀과 와이번이 모두 보이지 않아요.”
레빈은 시간이 나는 대로 하늘을 날며 정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비행형 마수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정령을 못 잡아먹어서 미쳐 날뛰던 마수들이 정작 정령이 탄생하자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것이 유리 때문인지, 아니면 같이 붙어 있는 가이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 레빈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저 봐라. 아우 눈꼴시어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가이아와 유리가 있었다.
둘은 마치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딱 붙어서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삐이!
가이아의 기분 좋은 울음이 창공에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나무를 보살피던 다크 엘프들이 고개를 들어 가이아를 바라봤다.
가이아를 보는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들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가이아는 유선형 몸을 한 바퀴 휘리릭 돌렸다. 그러자 유리가 재빨리 따라붙어 함께 휘돌았다.
“진짜 이러다가 애라도 턱 하니 낳는 게 아닌지 몰라.”
“그러게 말이다.”
“안 돼! 아직 가이아도 어리단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유리는 더더욱 안 되지. 태어난 지 며칠 안 됐는데.”
“그것도 그렇네. 어쨌거나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모르지. 정령의 삶은 우리와 다르니까.”
제온이 미소를 지은 채 가이아를 바라봤다.
그때 플로아가 제온과 레빈이 앉아 있는 나무로 올라왔다.
“여기 있었군. 한참 찾았어.”
“우리를? 왜요?”
“이제 슬슬 이 숲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의논해야 할 것 같아서.”
플로아의 얼굴은 부쩍 수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지난 며칠 동안 이 숲을 보호할 방법을 고두원, 그리고 나이 든 다크 엘프들과 의논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숲은 이제 유아기였다.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울창해질 수도 있었고, 다시 피폐해질 수도 있었다.
다른 다크 엘프들은 숲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 있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야 외부에서 숲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와 의논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하면 되는 것을…….”
“그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
“제 도움이라면?”
“숲이 완전해질 때까지 대결계를 칠 생각이야. 아직 숲은 보호가 필요하니까.”
오랜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바로 숲 주위에 대결계를 치는 것이었다.
“대결계? 설마 이 숲 전체를 감출 만한 결계가 존재한다는 겁니까?”
“다행히 마을의 어른 중 한 분이 대결계를 치는 법을 전수받으셨어. 예전 마을에선 재료와 정령이 없어서 불가능했지만, 이곳은 가능하다고 하시더군.”
“그거 다행이네요.”
제온이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느냐에 따라 지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이 숲의 존재를 알게 되면 욕심낼 존재가 한둘이 아니었다.
네오 서울, 스캐빈저, 다른 엘프들과 수많은 이종족.
그들 모두 풍요로운 숲을 원할 것이 분명했다.
숲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그 모든 이들이 이곳을 빼앗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그들로부터 숲을 보호하려면 대결계가 필수였다.
제온이 물었다.
“대결계를 펼치는 데 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응! 반드시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가죠.”
제온이 나뭇가지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됐습니다. 감사 인사 받자고 하는 일 아닙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서 하는 거니까 그렇게 감사해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우리 은인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거참…….”
플로아의 완고한 모습에 제온이 헛웃음만 흘렸다.
***
플로아가 제온을 데려간 곳은 마을 중앙의 공터였다.
예전에는 그냥 휑한 곳이었지만, 이젠 주위에 나무와 풀이 자라 제법 운치가 있었다.
공터엔 사람이 앉을 만한 바위가 수십 개나 놓여 있었다.
검은 숲을 습격했던 암석 악어의 사체에서 나온 바위였다.
바위도 귀한 재료였기에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이렇게 숲 곳곳에 배치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온 님!”
“제온 님!”
제온이 플로아와 함께 나타나자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그 중심에 고두원이 있었다.
인간 각성자들과 다크 엘프들은 촌장인 고두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고두원도 이젠 적응했는지, 양측의 의견을 잘 조율하고 있었다.
“어서 와라.”
“대결계로 마을을 보호하기로 했다면서요?”
“모두의 결정이었다. 숲과 마을이 자생력을 가지기 전까지는 보호하기로. 마음 같아서는 마을을 개방해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다들 시기상조라고 하는구나.”
“제 생각에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함부로 개방했다가 어떤 존재가 이곳에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숲과 마을을 지킬만한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외부와 차단해야죠.”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그동안 고두원도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이 숲을 개방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인지, 자신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결정이 아닐지 말이다.
그 때문에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제온의 대답을 듣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때 나이 든 다크 엘프 한 명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눈동자는 혼탁한 기색 하나 없이 맑고 깊었다.
다크 엘프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제온에게 예를 취했다.
“숲의 은인에게 다크 엘프족의 테리우든이 인사드립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닙니다. 제온 님은 저희 다크 엘프들의 은인이십니다. 이 숲에 살아가는 저희 일족은 영원히 제온 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테리우든의 완강한 태도에 제온이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식의 과도한 예우를 받으면 온몸에서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든 엘프가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예를 취하는데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제온은 테리우든의 예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테리우든은 금방 몸을 일으켰다.
“이 늙은이의 행동이 제온 님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일족의 제일 연장자로서 예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부턴 이러지 마십시오.”
“그러겠습니다.”
“대결계를 알고 계신다고요?”
“네! 쿠라얀에 있던 저희 마을에도 대결계가 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작업에 참여했었습니다. 여러분들과 검토해 본 결과 이곳에도 대결계를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과 제온 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라면?”
“마을을 둘러싼 지형을 대결계를 치기 적합하도록 변화시켜야 합니다.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모래 산이 있으면 좋습니다.”
“산이라…….”
제온은 그제야 테리우든이 자신을 왜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검은 숲 주위는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마수들을 방어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얼마나 높아야 합니까?”
“그렇게 높지 않아도 됩니다. 백 미터 정도만 돼도 성물을 묻을 수 있을 겁니다.”
“성물?”
“쿠라얀에서부터 소중히 보관해 온 일족의 보물입니다. 이 성물이 상호 작용을 통해 대결계의 기초가 됩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하지만, 제온 님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제온 님은 성물을 설치할 모래산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쿠라얀에서부터 소중히 보관해 온 성물이었다.
오크들에게 점령당했던 마을에서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아꼈다.
그런 성물을 쓰겠다는 것은 다크 엘프들도 이곳에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였다.
제온이 확인했다.
“백 미터면 됩니까?”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죠.”
“당장 말입니까?”
“어차피 펼칠 거면 빨리 펼칠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지난 며칠 푹 쉬었기에 제온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제온은 바로 마을을 빠져나가 지배력을 사용했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가 섞인 폭풍이었다.
모래 폭풍은 시간이 갈수록 거세졌다.
제온의 모습은 모래 폭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모래 폭풍은 마을만 교묘히 비껴 갔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모래 폭풍이 사라진 후 검은 숲 주위엔 높은 산 네 개가 생겨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