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다크 엘프와 인간 각성자 들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대결계를 펼치기 위한 작업을 했다.
제온이 만들어 준 산에 성물을 묻은 후 각 성물을 연결하는 마법진을 만들었다.
거의 열 개에 달하는 마법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크 엘프와 인간 각성자 들이 갈려 나갔다. 그래도 그들은 힘든 표정 하나 짓지 않았다.
기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마법진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그렇게 대결계를 펼칠 준비를 하는 사이 마수의 습격이 몇 번 있었다.
비행형 마수들이 문제였다.
와이번과 그리핀 등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놈들은 아직도 정령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가이아였다.
―삐이!
특유의 울음을 터트리며 비상한 가이아.
처음엔 와이번과 그리핀이 가이아를 만만하게 봤다.
그도 그럴 게 가이아의 외형이 너무 온순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이번과 그리핀은 지옥을 맛봐야 했다.
갑자기 가이아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검은빛에 노출된 와이번과 그리핀은 변변한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마치 약 맞은 파리처럼 마수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던 광경이 아직도 선명했다.
사신의 낫에 있던 권능을 가이아가 사용했다.
등급이 낮거나 가이아보다 약한 마수는 이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이아는 단지 덩치만 커졌을 뿐만 아니라, 모비딕의 후예다운 위용을 갖춘 것이다.
이제 가이아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마수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이아의 곁에는 정령이 함께 비행하며 숲을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대결계를 펼치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됐다.”
“완성이다.”
결국 그들은 각자 맡은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공들여 작업한 대결계를 펼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테리우든이 모두에게 말했다.
“대결계를 펼치면 검은 숲, 아니 태초의 숲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될 겁니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은 회의 끝에 이곳을 ‘태초의 숲’이라 부르기로 했다.
지구에서 최초로 시작되는 숲.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이 되고, 쉼터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당장은 지킬 힘이 없어 폐쇄하지만, 차후 태초의 숲을 지킬 힘이 갖춰지면 개방하기로 했다.
“대결계가 펼쳐지면 신물이 없는 자들은 이곳을 볼 수도, 들어올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신물을 소중히 간직하세요.”
테리우든이 말한 신물은 바로 구름 나무로 만든 목패였다.
구름 나무 목패는 쿠라얀에서부터 엘프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 역시 테리우든이 쿠라얀에서부터 보관해 온 것으로, 다른 일족들엔 거의 없었다.
구름 나무 목패만 소지한다고 대결계를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일족마다 고유의 인식 방법이 존재한다.
태초의 숲에 정착한 다크 엘프 일족 역시 고유의 인식 방법이 있었다.
이 인식 절차를 밟지 못한 목패 소유자는 결코 대결계를 통과할 수 없다.
테리우든은 제온과 레빈, 브리엘에게도 구름 나무 목패를 선물했다.
언제든지 태초의 숲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세 분은 저희 마을의 은인입니다. 마음이 내킬 때 언제든 찾아와 머물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제 대결계를 발동시키겠습니다.”
테리우든이 다크 엘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후우웅!
마법진이 빛을 내면서 공명음을 토해 냈다.
제온과 브리엘, 레빈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태초의 숲 주위에 펼쳐진 마법진이 연이어 발동하더니, 성물이 커다란 빛 기둥을 토해 냈다.
하늘을 꿰뚫고 올라가는 네 줄기 빛 기둥에 모두 입을 떡 벌렸다.
“와아아!”
“우와!”
아이들이 양팔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늘에 구멍을 낼 듯 치솟던 네 개의 빛 기둥은 잠시 후 마치 그물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빛이 광막을 만들어 냈다.
광막은 넓은 태초의 숲을 완전히 뒤덮었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장관이군.”
“진짜 멋져요. 숲 전체를 뒤덮는 대결계라니.”
레빈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했다.
브리엘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광막을 바라봤다.
하늘을 불태울 듯 빛나던 광막은 곧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언뜻 보면 대결계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대결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만 않을 뿐, 실제로는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대결계를 펼치는 작업은 대성공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만 대결계를 느낄 수 있을 뿐, 외부에 있는 자들은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 대결계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설령 대결계를 감지한다고 해도 안에 이렇게 거대한 숲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대결계는 또한 막강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의 공격 정도는 손쉽게 방어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곳은 더 안전해졌다.
브리엘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곳에 엄마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이 엘프들에게도 숲이 필요했다.
지금도 메마른 대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엄마와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
그동안 자격이 없어 감히 마을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대결계가 펼쳐진 녹색 숲에서 기뻐하는 이들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굵은 눈물방울이 브리엘의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삐이!
허공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가이아가 브리엘의 감정을 읽고 그녀에게 날아왔다.
마치 위로라도 하듯 브리엘 주위를 가이아가 부드럽게 휘돌았다. 그러자 유리도 브리엘의 얼굴 주위를 날아다니며 같이 위로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지금 가이아와 유리가 딱 그 경우였다.
“고마워! 애들아.”
브리엘이 손으로 가이아와 유리를 어루만졌다.
그들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브리엘은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때였다.
브리엘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간질이는 느낌은 심장에까지 전해졌다.
두근! 두근!
브리엘의 조그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낯선 육체의 반응에 브리엘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
“왜 그래?”
“뭔가 이상해.”
브리엘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하르가 걸어 나왔다.
하르가 잠시 브리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축하해!”
“어?”
“그거 정령이 너와 연결되려는 징조야.”
하르는 무려 팔 년이나 정령의 알을 품었다.
유리는 어떻게 보면 무(無)에서 탄생한 정령이었다.
하르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무조건적인 희생이 없었으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령이 탄생할 때 어떤 과정을 겪는지 그녀보다 잘 아는 이는 없었다.
하르가 브리엘을 꼭 껴안아 주며 말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가이아와 유리가 다른 정령의 탄생을 촉발한 거니까.”
“진짜?”
“응!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 탄생하는 모든 정령은 두 아이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몸의 변화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알았어!”
브리엘이 대답과 함께 두 손을 모았다.
하르의 말대로 자신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삐이!
가이아와 유리는 여전히 브리엘의 주위를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둘의 존재가 무엇보다 든든했다.
덕분에 브리엘은 내면의 변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파삭!
그때 브리엘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기분에 브리엘이 몸을 떨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과 무언가가 연결됐다.
“아!”
브리엘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앞에 새로운 빛무리가 나타났다.
유리보다 조그만 빛 덩이는 마치 브리엘을 관찰이라도 하듯 그녀의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저건?”
“또 다른 정령이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과 다크 엘프들이 어지럽게 떠들었다.
특히 다크 엘프들의 놀라움은 차원이 달랐다.
설마 유리에 이어 또 다른 정령이 이렇게 빨리 탄생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정령이 돌아오고 있어.”
“이제 정령의 시대가 열리는 건가?”
그들은 달뜬 모습으로 브리엘 주위를 날아다니는 정령을 바라봤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며 정령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주먹만 한 크기에 투명한 날개를 달고 있는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을 한 정령이었다.
정령의 모습을 확인한 테리우든이 중얼거렸다.
“실프, 실프가 태어났다. 맙소사!”
그가 눈물을 흘렸다.
지구로 넘어오기 전 쿠라얀에서 그와 계약했었던 정령이 실프였기에 바로 알아본 것이다.
브리엘이 정령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실프라고?”
―꺄르르!
브리엘의 귀에 실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날개 달린 어린아이 모습을 한 실프는 개구쟁이처럼 브리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순간 브리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와 계약해 줄래? 실프!’
―기꺼이! 브리엘.
실프가 브리엘의 어깨에 살포시 앉으며 대답했다. 브리엘은 실프와 연결된 계약의 끈이 더욱 단단해지면서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다.
‘제온도 가이아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자신이 제아무리 가이아와 친하게 지내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 가이아의 배려 덕분에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실프와 계약하게 되니 확실히 알겠다.
제아무리 가이아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도, 계약자는 제온이었다. 가이아의 마음이 제온에게 더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브리엘과 계약한 실프는 온전히 그녀만을 위한 존재였다.
실프와 계약하니 그 차이를 알 것 같았다.
그때 실프가 말했다.
―내게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겠어?
‘네 이름은 리리야. 어때?’
―마음에 들어! 꺄르르!
실프가 웃음을 터트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을 유영하던 리리는 곧 가이아와 유리에게 다가갔다.
―삐이이!
가이아가 꼬리를 흔들며 리리를 반겼다.
리리는 마치 부모를 만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날아다녔다.
“아아!”
“제발 꿈이 아니길…….”
다크 엘프들은 정령들의 유희를 보고 감격했다.
테리우든이 브리엘에게 말했다.
“실프는 바람의 정령이란다.”
“바람의 정령?”
“그래! 바람을 좋아하고, 바람을 다루는 아이지. 이제 갓 태어나 힘은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네가 어떻게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더 강한 힘을 갖게 될 거란다. 바라건대 부디 실프를 소중히 대해다오.”
“걱정하지 마.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리리는 내 소중한 친구야.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야.”
“고맙다.”
“부탁이 있어.”
“뭐든지 말하거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풀 한 포기만 가지고 나가게 해 줘.”
“풀을?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테리우든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브리엘이 먼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때가 된 거 같아.”
“때?”
“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들에게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정령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풀 한 포기.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