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아빠, 이럴 필욘 없잖아요?”
“그들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콜로니와 카라반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다고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다투는 목소리가 카라반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아들 데미안과 아비 벨로프였다.
데미안은 두 주먹을 꽉 쥐고 벨로프를 올려다봤다.
벨로프는 그런 아들을 보며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데미안이 말했다.
“카라반의 생명은 신용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빠예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 말을 듣는 거죠? 그들은 우리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데.”
“하아! 어쩌겠느냐? 그게 현실인 것을.”
벨로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벨로프의 얼굴은 부쩍 나이 들어 보였다.
벨로프가 슬쩍 발밑을 바라봤다.
데이오든과 제온이 사이좋게 누워 있었다.
그들이 먹은 육포와 술에 들어 있는 수면제 때문이다.
거대한 마수라도 단숨에 재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수면제를 탔다.
독이 아니기에 제아무리 강력한 내성을 가진 각성자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입술을 질겅 깨문 채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아비를 향한 원망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벨로프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카라반의 수장이자, 캄차카 콜로니의 경제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모든 것을 캄차카 콜로니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하아!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데미안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모든 것을 아비에게 맡기면 된다. 비난과 증오는 내가 감당할 테니, 너는 그저 능력만 갈고닦으면 된다.”
“아빠?”
“네가 있어야 이 카라반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네 임무에 집중해다오.”
벨로프의 말에 데미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고 앞으로 걸어갔다. 매머드를 모는 자리였다.
벨로프는 잠시 그런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둘러라. 수면제의 효과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네!”
수하들이 대답과 함께 분주히 움직였다.
그사이 데미안은 매머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쪽은 유사야. 방향을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어.”
그러자 매머드가 마치 데미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 달린 창고들이 줄줄이 매머드를 따라 방향을 바꿨다.
그 후로도 데미안의 지시는 계속됐다.
“여기서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올라가.”
매머드는 충실하게 그의 지시를 따랐다.
데미안의 능력은 매우 특별했다.
내비게이터.
즉 길잡이였다.
카라반이 광활한 사막에서도 정확히 방향을 잡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길잡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대 카라반에는 모두 길잡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데미안의 능력은 매우 특별했다.
바로 위험 요소를 미리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막의 유사, 마수들의 서식처를 미리 감지해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벨로프가 이끄는 카라반이 이 먼 곳까지 올 수 있었다. 데미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하지만 데미안을 바라보는 벨로프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의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였기 때문이다.
사막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길잡이의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길잡이는 극히 희귀했고, 그중에서도 데미안처럼 위험 요소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길잡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데미안의 이런 능력을 다른 누군가 알게 되면 욕심낼 것이 분명했다.
“휴우!”
벨로프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의 신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들려온 수하들의 목소리가 벨로프의 정신을 일깨웠다.
“목적지가 보입니다.”
“죽음의 계곡입니다.”
벨로프가 정신을 차리고 전방을 바라봤다.
저 멀리 기묘한 형태의 협곡이 보였다.
협곡은 모래가 굳어 만들어진 사암으로 이뤄져 있었다.
물결치듯 유려하게 이어진 협곡은 한 폭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그 누구도 사막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벨로프 역시 데미안의 능력이 없었다면 절대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그때 죽음의 계곡에서 한 무리의 병력이 달려 나왔다.
그들 역시 벨로프와 데미안처럼 머리에 터번을 쓰고 데라아(Deraa)를 입고 있었다. 사막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데라아 안에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죽음의 계곡에서 나온 이들은 인간이었다.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인간들. 체구는 다양했지만, 그들의 전신에서는 단단한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들을 마주하자 벨로프는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급히 창고에서 내려 죽음의 계곡에서 나온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벨로프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야, 약속대로 그들을 데려왔습니다.”
“확실한가?”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순간 벨로프는 사막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엔 온기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독기와 살기가 가득했다.
사막의 방울뱀이 진화하면 딱 눈앞의 남자가 될 것 같았다.
벨로프는 급히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수하들이 축 늘어진 데이오든과 제온을 데리고 왔다.
“정……말이군!”
데이오든의 얼굴을 확인한 우두머리가 눈을 빛냈다.
그는 허리에서 시미터를 빼 들고 데이오든에게 걸어갔다.
그때 벨로프가 우두머리 남자를 막아섰다.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쪽도 약속을 지키십시오. 저희 카라반과 콜로니를 건들지 않겠다고.”
“물론이지.”
우두머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순간 벨로프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우두머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쿠라얀 사람들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단 같은 쿠라얀 사람들에게만…….”
“무슨?”
쉬각!
순간 섬뜩한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벨로프가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가슴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려다보니 가슴이 길게 갈라져 자신의 장기가 보이고 있었다.
뚝뚝!
우두머리 손에 들린 시미터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벨로프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우두머리가 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베어 버린 것이다.
“왜, 왜? 약속했으면서…….”
“말하지 않았느냐? 약속은 같은 쿠라얀 사람에게만 한다고.”
“이익! 크헉!”
“아빠!”
벨로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데미안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우두머리가 수하들에게 말했다.
“귀한 길잡이다. 놈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라.”
“네!”
수하들이 대답과 함께 카라반 창고 위로 몸을 날렸다.
“크악!”
“사, 살려 줘!”
벨로프의 수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도 각성자가 상당수 있었지만, 쿠라얀 사람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쿠라얀의 각성자들은 살인을 위해 태어난 기계 같았다.
그들은 우두머리처럼 시미터를 무기로 썼는데, 반달처럼 휘어진 검신은 어느새 카라반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럴 수가!”
데미안이 몸을 떨었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설마 눈앞에서 아비를 잃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두머리가 시미터로 데미안의 턱을 들어 올렸다.
“길잡이! 네놈은 이제 우리를 위해 일한다. 알겠느냐?”
“으으!”
데미안이 몸을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우두머리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어렸다.
“이렇게 쉽게 데이오든을 제압할 줄 알았다면 다른 놈들은 끌고 오지 않아도 될 뻔했군.”
죽음의 계곡에서 말을 탄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두머리 사내와 비슷한 복장을 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모는 사뭇 달랐다.
어떤 이들은 귀가 뾰족했고, 어떤 이들은 키가 작으면서 어깨가 옆으로 떡 벌어져 있었다.
바로 엘프와 드워프 들이었다.
엘프 중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풍성한 금발에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자 엘프였다.
그녀가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들은 살려 주기로 약속했잖아요. 같은 인간에게 너무 잔인하게 구는 것 아닌가요?”
“누가 같은 인간이란 건가? 이들과 우리는 아예 종이 다르다.”
“하아! 해머슨!”
엘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두머리의 이름은 해머슨.
쿠라얀에서 넘어온 인간이었다.
인간인 주제에 지구의 인간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차별주의자였다.
오죽하면 그의 과격한 성향 때문에 같이 온 엘프와 드워프족 연합들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그때 드워프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흐흐! 잘했다. 지구의 인간들 따위의 사정을 봐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아! 고프레이, 당신까지…….”
엘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고프레이라고 불린 드워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위선은 그만 떨어라, 귀쟁이야! 혼자 고고한 척하기는.”
“고프레이.”
“어차피 엘프나 드워프, 인간 모두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의 명령을 수행하는 입장이다. 자존심이나 명예 따윈 시궁창에 처박힌 지 오랜데 그렇게 다른 척, 생각해 주는 척 위선 떨지 마라. 진심 역겨우니까.”
고프레이의 신랄한 비난에 엘프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때였다.
“흐흐! 그렇게 된 거였군.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사주한 일이었어.”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데이오든의 목소리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 수면제에 취해 기절해 있었는데, 어느새 앉아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제온도 같이 앉아 있었다.
해머슨이 자신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히드라의 눈물은 한번 복용하면 적어도 사흘은 못 깨어나는데.”
“보드카에 섞여 있던 게 마수의 눈물이었나? 어쩐지 찝찝하더군. 흐흐!”
데이오든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눈은 광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온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벌어질 참상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역시 화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막 한가운데서 접근해 오는 인간이 선의를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순순히 사람을 믿기엔 그가 겪어 온 인생사가 너무 험했으니까.
데이오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절대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물며 생판 처음 보는 인물이 주는 음식과 술을 의심 없이 먹는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데이오든은 마나를 이용해 위에 들어온 술을 모조리 태웠고, 제온은 사슴고기를 씹는 척한 후 아공간에 뱉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척했다.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벨로프가 그들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명한 협곡으로 데리고 올 때도 가만히 있었다.
제온이 해머슨을 보며 말했다.
“쿠라얀에서 넘어온 인간들은 모두 너처럼 무식하고, 염치도 없냐? 누구 때문에 지구가 이 꼬라지가 됐는데.”
“닥쳐랏!”
“너나 닥쳐! 정말 오랜만에 열받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인간은 너 따위가 함부로 해도 좋을 만큼 미미한 존재가 아니야.”
말을 할수록 열받았다.
그래, 엘프나 드워프가 인간을 막 대하는 거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종(種) 자체가 다르니까.
하지만 해머슨은 같은 인간이었다.
아무리 다른 차원, 세상에서 넘어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특별한 인간인 척, 아예 다른 종족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다른 자는 몰라도 해머슨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고 싶었다.
그때 데이오든이 일어섰다.
“하이엘툰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이구나. 이렇게 버러지들을 한꺼번에 보낸 것을 보니. 흐흐!”
그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창고 위에 놓고 온 크레이온이 날아와 손에 안착했다.
아카루크의 검과 결합한 크레이온에서는 가공할 기운이 실타래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조리 베어 사막의 거름으로 만들어 주마. 그럼 풀 한 포기 정도 자라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