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서태란은 굳은 표정으로 시청사 정문에 나와 있었다.
비서실 직원들이 그녀의 뒤로 줄지어 도열해 있었다.
마정석 광산에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람이 온 것이 아침이었다.
그에게서 소식을 듣자마자 슈퍼바이저인 맨디와 각성자 부대를 마정석 광산 쪽으로 급파했다.
그만큼 마정석 광산에서 전해 온 소식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태란이 긴장할 정도로 말이다.
잠시 기다리자 저 멀리서 맨디와 각성자 부대를 태운 차량들이 장갑 버스를 호위하며 들어왔다.
선두의 버기카에서 맨디가 내리며 서태란에게 말했다.
“슈퍼바이저 맨디 시스테인.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요?”
“장갑 버스에 타고 있습니다.”
“직접 보고 싶군요.”
“안내하겠습니다.”
맨디가 서태란을 대동하고 장갑 버스로 걸어갔다.
장갑 버스를 지키던 각성자들이 그녀들에게 길을 열어 줬다.
끼익!
맨디가 손잡이를 당기자 장갑 버스의 육중한 문이 힘겹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네오 서울? 제 예상보다 몇 배나 더 화려하군요. 대단합니다. 문명을 이 정도로 회복하다니, 네오 서울이야말로 인류의 축복입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천천히 버스 안에서 내렸다.
등엔 활과 전통을 걸고, 허리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도가 걸려 있었다.
서태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네오 서울에도 저런 형태를 가진 도를 사용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유엽도(柳葉刀)라고 했나?’
바로 샤오룬이 다스리는 남 구역에 저런 유엽도를 쓰는 각성자들이 있었다.
듣기로는 중국계 각성자들이 주로 유엽도를 사용한다고 했다.
중국의 전통 무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라면서 말이다.
그때 남자가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본모습이 드러났다.
거칠게 헝클어진 회백색 머리카락, 깊은 주름과 굵은 흉터가 범벅된 얼굴. 마수처럼 사납게 빛나는 눈동자.
그는 이름 모를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찰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몇백 년 전 무사가 무덤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아주 고풍스러웠다.
네오 서울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갑옷이었다.
‘고대의 무사를 보는 것 같군.’
나이는 대략 사십 대 초중반 정도.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고생을 했는지, 갑옷에 수많은 상흔이 나 있었다.
남자가 바로 서태란이 맨디와 각성자 부대를 급파한 이유였다.
남자가 오른 주먹을 왼 손바닥으로 감싸며 허리를 숙였다.
“소생 사천에서 온 장우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네오 서울의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오 서울의 서태란이에요. 사천에서 왔다고 했나요?”
“여러분께는 낯선 지명일 겁니다. 옛 중화 지명이니까요.”
“중화?”
“중국이라고 하면 아실는지 모르겠군요?”
“중국이라면 알아요.”
모를 수가 없었다.
옛 한국 바로 옆에 있던 나라니까.
대멸망의 시기에 사이 좋게 멸망해 이젠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서태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중국에도 대형 콜로니가 남아 있었나요? 있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사천은 중국에서도 굉장히 구석진 곳에 있습니다. 중국을 사이에 두고 네오 서울 반대편에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저도 사천에서 출발해 이곳에 오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으니까요.”
“혼자 일 년이나 사막에서 버텼단 건가요?”
“출발할 때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 다른 동료들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네오 서울이 목적지였나요?”
“그건 아닙니다. 저희 집단, 아! 이곳에선 콜로니라고 부르죠? 저희 콜로니 사정이 좋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다른 콜로니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할까 해서 무작정 사막을 가로지른 겁니다. 저는 척후병…… 아! 그쪽 말로 하면 패스파인더입니다.”
“패스파인더라…….”
스스로를 패스파인더라고 밝힌 장우항이 마정석 광산 정찰대와 조우한 것은 어젯밤이었다.
정찰대는 마수 무리에 포위돼 죽기 직전의 장우항을 발견해 구조했다. 장우항이 다른 콜로니에서 왔다는 것을 알자마자 사람을 보내 보고했다.
그것이 서태란이 직접 마중 나온 이유였다.
서태란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안으로 모시죠.”
“귀인의 환대에 감사합니다.”
장우항이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는 특유의 인사법으로 감사를 표했다.
서태란이 장우항을 데리고 시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맨디와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절대 비밀이니까.”
“알겠습니다.”
“네!”
맨디와 각성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장우항이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 군기가 바싹 들어 있군요. 보기 좋습니다.”
“들어가시죠.”
“네!”
서태란이 장우항을 데리고 시청으로 들어가자 맨디가 중얼거렸다.
“후! 뜬금없이 다른 콜로니에서 온 패스파인더라니. 한동안 네오 서울이 시끄럽겠군.”
서태란은 반드시 비밀을 지키라고 했지만, 장담하건대 내일이 되기 전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른 콜로니에서 패스파인더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네오 서울에서 완벽한 비밀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맨디는 각성자 부대에 해산을 명한 후 빈민가로 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제온 님이나 만나 봐야겠군.”
***
지하 하수로에 들어온 제온이 살짝 놀랐다.
놀랍게도 코를 마비시킬 듯한 악취가 옅어졌기 때문이다.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두통이 날 정도로 지독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신이 없는 동안 이곳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는데, 그게 뭔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제온은 제토야의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중간쯤 도착하자 일단의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 제온의 앞길을 막았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들이 살기를 발산하며 제온을 노려봤다.
여차하면 제온을 공격할 기세였다.
그때 무리에서 중년 남자가 달려 나왔다.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 제온 님이잖아.”
그는 선두에서 살기를 발산하던 남자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짜악!
“큭!”
“뒈지고 싶어 환장한 거냐? 아무리 초짜라도 그렇지, 제온 님을 몰라보다니.”
“죄, 죄송합니다.”
제온에게 눈알을 부라리던 남자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최근에 제토야의 악어굴에 합류한 각성자였다. 그 때문에 제온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제온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모를 수도 있죠.”
“이제 제온 님의 얼굴을 알았으니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어서 오십시오, 제온 님!”
제온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남자는 바로 바쿰이었다.
레무라에게 치료받은 후 그녀의 심복을 자처했던 남자였다.
이제는 제토야 마을의 경비대장이 되어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제토야와 레무라는 안에 있나요?”
“예! 레빈 님과 함께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죠?”
“레무라 님이 있잖습니까? 마을에 아픈 사람 한 명 없습니다. 다른 악어굴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입니다.”
“레무라를 잘 지켜야겠네요.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들도 있을 테니까.”
“벌써 몇 놈이 그렇게 접근했다가 제 손에 반으로 접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레무라 님은 이 바쿰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 있으니까요.”
“든든하네요. 전 안으로 가 볼게요.”
“안내해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길은 알고 있어요.”
“그럼 조심히 내려가십시오. 저희는 이곳을 지켜야 해서.”
“수고하세요.”
제온은 바쿰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지하로 내려갔다.
한참을 걷자 넓은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바로 제토야의 마을이었다.
제온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제토야의 마을은 놀라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거적이나 판자 같은 것으로 만든 움막들이 가득했었는데, 모래 벽돌로 만든 집들이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모래 집이…….”
“아, 형!”
그때 레빈이 제온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레빈!”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혹시 모래 벽돌로 만든 집을 보고 놀란 거예요?”
“그래! 어떻게 된 거냐?”
“세희 누나가 모래 경화제를 보내 줬어요. 시험 삼아 몇 채 만들어 봤는데, 어때요?”
“제법 그럴듯한데.”
“네! 경화제 성능이 끝내주더라고요. 덕분에 어렵지 않게 모래로 집을 만들 수 있었어요.”
레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세계에도 모래는 존재한다.
외부로 통하는 환풍구와 하수로를 통해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흘러들어 온 모래는 막다른 곳에 수북이 쌓인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모래를 가지고 와 이곳에 집을 지었다.
처음엔 좀 서툴렀지만, 차츰 손에 익자 그럴듯한 집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이 생긴 사람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고, 마을 사람들은 열의에 불탔다.
“형!”
“제온 오빠!”
제토야와 레무라가 뒤늦게 제온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다들 잘 지냈지?”
“네!”
“밖에 나갔다 오셨다면서요?”
제토야는 제법 어른스러워졌고, 레무라의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레무라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각성하기 전에는 두려워서 그랬고, 각성한 후에는 너무 바빠서 그랬다.
지하에는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에도 몇 명씩 그녀에게 치료받겠다고 지하 하수로를 헤매서 찾아오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제토야도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을 관리하다 보니 너무 바빠 밖으로 거의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마을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둘 다 고생하네.”
“고생은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저도 그래요. 사람들이 완치되어 웃는 것을 보면 행복해요.”
제토야와 레무라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발전하는 마을 모습에 힘을 냈다.
제온이 마을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공기가 깨끗해진 것 같은데?”
“악취가 덜 나죠?”
“응!”
“그거 공기 정화 장치를 설치해서 그래요.”
“정화 장치?”
“네! 엄청 큰 걸 설치했어요. 덕분에 이 근처의 공기가 정화되고 있어요.”
“공기 정화 장치는 귀할 텐데, 어떻게 구한 거야?”
제온이 절로 의아한 표정이 됐다.
공기 정화 장치는 마정석 발전기만큼이나 귀한 물건이었다.
제토야의 마을을 정화할 정도의 장치라면 보통 크기가 아닐 것이다. 그런 물건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아니, 돈을 주고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었다.
그렇게 귀한 물건을 제토야가 구했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제토야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형이 없을 때 클렉시 님이 여기 오셨었어요.”
“그 영감님이?”
“네! 이곳을 둘러보시더니 냄새 때문에 오래 못 있겠다고 투덜거리시더라구요. 그러더니 얼마 후 커다란 공기 정화기를 가지고 내려오셨어요. 공기 정화기를 설치하니까 악취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라구요.”
“그랬구나.”
제온이 피식 웃었다.
비록 좀 괴팍하긴 하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이곳 전체를 정화할 정도의 성능을 가진 공기 정화기를 구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클렉시 영감도 무리해서 구한 것일 텐데, 티를 내지 않는다.
공기 정화기뿐만이 아니다.
곳곳에 지상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이 역시 클렉시 영감을 통해 구한 것이었다.
지금은 겨우 마을 규모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지간한 구역 정도로 커질 것이다.
제온이 제토야에게 물었다.
“이곳 사람들을 데리고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냐? 모래 경화제 덕분에 집도 쉽게 지을 수 있는데.”
“아시잖아요? 각성자들이 아니고서는 위에서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이들이 지상에 올라가 적응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요.”
“그렇겠지.”
“그렇다고 이들을 놔두고 저만 혼자 올라갈 수도 없잖아요.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이곳을 발전시킬래요. 그러다 보면 이곳도 언젠가 네오 서울처럼 발전하겠죠.”
제토야는 단호했다.
어린 소년의 굳은 의지가 제온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온은 그런 소년의 꿈을 응원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