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금빛 실로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쓴 노인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얼굴 가득 깊이 팬 주름과 입과 턱 주위로 난 하얀 수염이, 그가 적잖은 풍파를 헤치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샤오룬이었다.
한동안 차를 음미하던 샤오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놨다.
“쯧! 맛없군. 진짜 차는 이런 게 아닌데.”
식물 공장에서 키운 찻잎으로 우린 차였다.
평범한 사람에겐 이마저 감지덕지하겠지만, 샤오룬의 기대를 채우기엔 한참 부족했다.
“고향의 차가 그립군. 자연에서 키운 진짜 차가…….”
샤오룬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그렇게 떠올린 과거는 실제보다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샤오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했다.
차를 마실 때면 특히 옛 생각이 많이 났다.
똑똑!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샤오룬의 거처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는 남 구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추웨이였다.
샤오룬이 추웨이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앉아라.”
“제가 어찌?”
“됐다. 앉아라.”
“감사합니다.”
추웨이가 송구한 표정으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차라도 한잔 줄까?”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중요한 소식?”
“네! 지금 바로 들어온 정보입니다.”
“그래?”
샤오룬의 눈이 빛났다.
추웨이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 구역의 행정을 총괄할 정도로 추웨이는 냉철한 남자였다. 어지간한 일엔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추웨이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지금 시청에 외부인이 들어왔습니다.”
“외부인? 그게 뭐 대수라고.”
“보통 외부인이 아닙니다. 다른 콜로니에서 온 패스파인더라고 합니다.”
“패스파인더?”
“네! 다른 콜로니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파견 나온 자라고 합니다. 무려 일 년이나 걸려 네오 서울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왔기에 일 년이나 걸려?”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사천에서 왔다고 합니다.”
“사천? 설마 중국의 그 사천 말인가?”
“네!”
“이럴 수가!”
샤오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천은 그의 고향인 티베트와 바로 맞닿은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험준한 사천산맥을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샤오룬의 조부는 본래 사천 출신이지만, 정부의 정책에 티베트로 가서 정착했다.
때문에 샤오룬에게 사천 사람은 한 핏줄이나 다름없었다.
“사천에서 온 게 확실하냐?”
“여러 사람이 들었습니다. 본인을 사천에서 온 장우항이라 밝혔다고 합니다.”
“허허! 사천에도 콜로니가 있었다니. 하긴 사천이라면 모를 만하지.”
괜히 사천 분지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움푹 팬 지형 때문에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 소리를 듣던 사천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폐쇄적이어서 외부에서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콜로니의 규모는? 생존자 수는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왜?”
“시청에서 철저히 보호하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진금호, 그 늙은이가 문제군.”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럴 것 없다.”
“네?”
“내가 진금호를 만나겠다.”
샤오룬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가 진금호를 직접 보지 않은 지 벌써 십 년이 됐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만큼 고향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천에서 살아남은 자라면 티베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궁금하군. 얼마나 살아 있고, 또 얼마나 모여 있는지. 고향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으면 도와줘야 하는 게 같은 뿌리를 둔 자들의 인정이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쿵!
추웨이가 탁자에 머리를 박으며 대답했다.
샤오룬의 입가에 깊은 주름이 팼다.
“그래! 결국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같은 뿌리를 둔 자들뿐이지.”
***
“후루룩!”
레무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우육면을 먹고 있었다.
클렉시 영감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우육면이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쫄깃한 면과 매콤한 국물의 조화에 레무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브리엘이 그런 레무라를 챙겨 줬다.
“천천히 먹어. 이것도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
“고마워! 언니.”
“이그! 입 주위에 묻히지 말고.”
“히히!”
브리엘이 휴지로 입술을 닦아 주자 레무라가 귀엽게 웃었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웠기에 브리엘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젯밤 레무라는 제온을 졸라 함께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바깥세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온이 있을 때 꼭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 했다.
제온은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제온의 집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레무라는 브리엘의 껌딱지가 됐다.
A급 힐러라고 하지만, 이제 겨우 여덟 살에 불과한 레무라였다.
제토야를 야무지게 돕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레무라는 브리엘을 언니라고 부르며 유독 따랐다.
브리엘은 투덜거리면서도 그런 레무라를 살뜰히 챙겼다.
갑자기 레무라가 브리엘의 팔을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언니, 고마워!”
“얘가 왜 이래? 어서 떨어져.”
브리엘이 질색하며 레무라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더욱 끈질기게 매달렸다.
결국 브리엘이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히히!”
레무라의 주근깨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브리엘은 그런 레무라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악독한 여자라고 해도 엄마였는데, 그녀를 잃고도 이렇게 굳건히 버틸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엄마를 잃고 처음 얼마간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제토야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레무라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레무라와 브리엘이 투닥거리는 동안 제온은 옆에서 말없이 우육면을 먹었다.
클렉시 영감이 그런 제온을 보며 말했다.
“이번엔 또 어디 갔다 온 거냐?”
“아시잖아요. 철갑 개미굴에 다녀온 거.”
“거기 말고. 중간에 빠졌잖아.”
“아!”
“뭐가 아, 야? 어디 갔다 온 건데?”
“그냥 이곳저곳요.”
“쯧! 또 말 안 해 주겠군. 망할 놈!”
클렉시 영감이 제온을 째려봤다.
제온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우육면에 집중했다.
무슨 비법을 쓴 건지 모르지만, 클렉시 영감이 만든 우육면은 정말 맛있었다.
현시대에 우육면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다른 콜로니나 생존자 마을에선 이런 음식을 절대 맛볼 수 없었다.
네오 서울이니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참, 제토야 마을에 공기 정화기 설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걸 네가 왜 감사하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냥요.”
“쯧! 하여간 오지랖만 넓어서……. 옜다! 한 그릇 더 처먹어라.”
클렉시 영감이 제온 앞에 우육면 한 그릇을 거칠게 내놨다. 그런데도 국물이 튀지 않았다.
나름 세심하게 힘 조절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 그릇으론 부족했는데.”
“많이 처먹고 배나 터지거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위장이 좀 튼튼해서요.”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요. 쯧!”
클렉시 영감이 혀를 차며 레무라를 봤다.
제온을 볼 때와 레무라를 볼 때의 표정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친손녀를 보는 것처럼 환한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이다.
“우리 레무라도 한 그릇 더 줄까?”
“주세요. 너무 맛있어요.”
“그래? 그럼 특별히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
“네! 감사합니다.”
“어쩜 말을 저렇게 예쁘게 할까?”
클렉시 영감은 히죽 웃으며 미리 준비해 뒀던 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제온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도 한 그릇 주세요.”
“엥?”
뜬금없는 목소리에 클렉시 영감이 놀라 제온 옆을 바라봤다.
제온 옆에 앉은 이는 바로 맨디였다.
맨디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남는 거 있죠?”
“네가 여긴 웬일이냐?”
“제온 님 보러 왔어요. 저도 한 그릇 주세요. 배가 등짝에 붙을 것 같으니까.”
“그래! 알았다.”
클렉시 영감이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중요한 일이 있었나 봐요? 급하게 사막에 나갔다 오던데.”
“봤어요?”
“네!”
“마정석 광산에서 급하게 보호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다녀왔어요.”
“고생이네요.”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죠. 어, 저 옆에 꼬맹이는 누구예요? 못 보던 아인데?”
“레무라라고 해요. 악어굴에 사는 아이예요.”
“그럼 혹시 저 애가…….”
“맞아요.”
“아! 말조심해야겠네요.”
맨디는 레무라가 소문의 고등급 힐러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나마 제온 일행과 친하게 지내서 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제온이 레무라에게 말했다.
“인사해라. 이쪽은 맨디 님이다. 네오 서울의 슈퍼바이저로 중요한 일에 파견되는 능력자지.”
“안녕하세요. 레무라예요.”
“반가워! 레무라. 내 이름은 맨디 시스테인이야.”
맨디가 살짝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때 브리엘이 레무라에게 속삭였다.
“조심해! 지금은 맨디지만, 화가 나면 엘로이가 되거든. 맨디는 착하지만, 엘로이는 아주 성질 고약한 하프 엘프니까 조심해야 해.”
“어?”
레무라가 순간적으로 고장난 표정을 지었다.
브리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리엘이 그런 레무라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지금은 식사에 집중하자. 국물이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응!”
레무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국물을 호로록 마셨다.
브리엘도 맨디에 관심을 끄고 식사에 집중했다.
맨디가 제온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행동하는 것이다.
맨디도 그 사실을 알기에 다시 제온에게 말했다.
“참,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마정석 광산에서 보호 요청이 왔다고 했습니다.”
“아, 그랬죠. 다른 콜로니에서 각성자가 왔다고 하더군요.”
“설마 패스파인더인가요?”
“네! 그의 이름은 장우항, 그쪽에선 척후병이라고 부른다더군요.”
“장우항?”
“네! 옛 중국 사천성, 그곳 지하에 거대한 도시가 있다고 해요. 그의 말로는 네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큰 지하 도시가 존재한단 말인가요?”
“원래부터 대국이라서 살아남은 이도 그만큼 많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래요?”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