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척후병이라…….”
제온은 아까 맨디에게 들은 단어를 곱씹었다.
왠지 어감이 좋지 않았다.
사천이라는 지명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 곳인지는 제온도 알지 못했다.
제온이 떠돌았던 곳과는 정반대 방향인 데다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장우항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천과 네오 서울은 직선거리로만 삼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렇게 먼 곳의 상황은 제온도 알지 못했다.
제온이 모르는 곳에 콜로니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중국 역시 대멸망 당시 모든 것이 무너졌다.
특히 한국과 인접한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중국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조차 없었다.
제온이야 데이오든 덕분에 중국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런 나라가 존재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데이오든은 중국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었다.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단 말이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갈아 넣은 걸까?”
예전에는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대멸망을 겪으면서 그들 또한 대부분이 죽거나 마수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저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삼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무작정 출발한 자가 네오 서울로 들어올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히 운이 좋은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제온이 시청을 바라봤다.
아마 지금쯤이면 진금호가 장우항을 만나고 난 후일 것이다.
“뭐, 알아서 잘 판단했겠지.”
솔직히 장우항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속셈을 가졌더라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의 상대가 진금호라면 말이다.
홀로 네오 서울을 재건하다시피 한 진금호였다.
그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이끌었기에 이 거대한 도시가 황폐화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남자를 속이고,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아!”
그때 방 안에서 레무라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브리엘의 목소리도 들렸다.
“봤어? 이게 정령이야.”
“너무 예뻐!”
“예쁘지? 인사해! 이 아이의 이름은 리리야.”
“안녕! 리리!”
수줍은 레무라의 인사에 이어 리리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방 안에서 브리엘이 리리를 소환해 레무라에게 인사시켜 주는 것이다.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방문을 비집고 계속 흘러나왔다.
제온은 그들이 마음껏 놀게 놔두고 집을 나왔다.
밤이 늦었기에 거리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제온은 한적한 거리를 한참을 걸어 빈민가를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사막이었다.
이렇게 깜깜한 밤에 사막을 홀로 걷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제온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먼 사막으로 나온 제온이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가 굳이 야밤에 사막으로 나온 것은 한 가지 확인해 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분명 암석 악어의 핵이 내게 흡수됐어.”
수많은 마수와 싸웠지만, 이렇게 마수의 핵이 저절로 흡수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정신이 없어 미처 어떤 변화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시간이 있을 때 변화를 확인해야 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어떤 돌발 변수에도 확실히 대응할 수 있었다.
제온은 모래 위에 서서 내면에 집중했다.
노을빛 모래가 파도치는 거대한 사막이 보였다.
그것이 모래술사의 본질이었다.
또한 제온의 본질이기도 했다.
그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가끔씩 자신의 내부를 관조할 때마다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의 모습과 조금 달랐다.
미세한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느낌은 모래술사로 각성한 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제온은 이물감에 집중했다.
한참을 집중한 끝에 이물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너였구나.’
고운 모래 속에 홀로 뭉쳐 있는 조그만 돌멩이 하나.
제온은 그것이 바로 암석 악어의 핵임을 알아차렸다.
암석 악어는 골렘과 악어가 융합한 생명체였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암석 악어였다.
그런 암석 악어의 핵이 체내에 흡수되어 결정 형태로 남아 있었다.
제온이 핵에 의식을 집중했다.
핵의 정보를 얻고 교감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제온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핵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제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뜬 후였다.
“하아!”
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제자리에 서서 고도로 집중했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그런 조그만 고통 따윈 밤새 그가 얻은 소득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샌드 솔저!”
갑자기 제온이 모래로 이뤄진 병사들을 소환했다.
순식간에 수십 기의 샌드 솔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샌드 솔저는 제온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하급 각성자나 물량전을 펼치는 마수들을 상대할 때 샌드 솔저는 꽤 유용했다. 하지만 그만큼 한계도 명확했다.
모래로 이뤄졌기에 쉽게 파괴되는 것이다.
물론 파괴 즉시 새로 만들면 됐지만,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새로 흡수한 골렘의 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강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샌드 솔저의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츠츠츠!
투박한 질감의 모래가 매끈한 암석질로 바뀌는 것이다.
암석 악어의 핵이 가진 권능이었다.
모래를 암석으로 바꿔 강화하는 것.
이 방식으로 암석 악어는 덩치를 키웠다.
순식간에 샌드 솔저는 단단한 바위 병사로 바뀌었다.
이쯤 되면 샌드 솔저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차라리 스톤 솔저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온은 굳이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외형이야 어떻든 샌드 솔저들은 모래술사의 권능으로 빚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소환을 해제하면 어떻게 될까?”
제온은 바로 샌드 솔저의 소환을 해제했다.
쿠쿠쿵!
해제하기 무섭게 샌드 솔저의 몸체가 무너져 내렸다.
조각조각 부서진 바위는 다시 모래가 되었다.
모래에서 태어나 다시 모래로 돌아간 것이다.
제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암석 악어의 핵이 가진 권능을 알았으니, 이 권능이 어느 정도 위력을 가졌는지 파악해야 할 때였다.
제온이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이아!”
―삐이!
순간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커다란 고래가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마치 유성처럼 무섭게 쏘아지다가 지표면 가까이 도달하자 중력의 법칙 따윈 무시하며 깃털처럼 착지하는 가이아.
제온이 가이아를 보며 살짝 놀랐다.
“너, 더 커졌구나.”
사신의 낫을 흡수하고 칠팔 미터 정도로 자랐었는데, 지금은 거의 십 미터에 육박했다.
이런 속도로 자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만큼 커질 것 같았다.
덩치는 커졌지만, 귀여운 얼굴은 여전했다.
―삐이!
가이아가 부드럽게 제온 주위를 휘돌았다.
워낙 거대하다 보니 가이아 나름 부드럽게 몸을 부딪친 거지만, 제온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어지간한 마수들은 상대도 안 되겠구나.”
―삐이이!
“나를 태워 줄 수 있겠니?”
―삐!
“고마워!”
제온은 가이아의 등에 올라탔다.
예전과 달리 엄청나게 커지다 보니 안정감이 있었다.
제온이 올라타자 가이아가 특유의 울음을 터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이아는 순식간에 짙은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은 곳에 도달했다.
구름 위에 올라서자 눈부시게 빛나는 별들의 바다가 보였다.
별빛이 바로 온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지상에선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눈부신 별빛에 가이아의 거대한 몸체가 화려하게 빛났다.
별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창공을 유영하는 가이아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제온은 왜 그렇게 가이아가 하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한 고래에게 바다가 어울리듯 가이아에겐 드넓은 하늘이 어울렸다.
더군다나 이 근처에 서식하는 비행형 마수들 중에 가이아를 헤칠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기껏해야 와이번 정도가 가장 위협적인 마수였는데, 놈들도 거대하게 자란 가이아를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적어도 이 근방에선 가이아에게 해를 끼칠 만한 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저 멀리서 비행하던 마수 무리가 가이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방향을 트는 것이 보였다.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급히 회피하는 것이다.
덕분에 제온은 편하게 가이아의 등에 탄 채 본래의 목적인 마수 탐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최소 삼사 일이 걸릴 거리도 가이아를 타면 순식간이었다.
제온의 시야에 무리 지어 움직이는 마수 무리가 보였다.
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메뚜기를 닮은 마수가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붉은 메뚜기? 저게 왜 여기 있는 거지?”
붉은 메뚜기는 크기 일 미터 정도의 소형 마수였다.
한 마리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놈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이다.
최소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까지.
크기는 작지만, 식성이 대단해서 못 먹는 게 없다.
일단 놈들에게 걸리면 어떤 마수든 순식간에 뼈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역장을 펼칠 수 없는 마수는 붉은 메뚜기에 걸리면 순식간에 쓸려 나가고 만다.
문제는 붉은 메뚜기의 서식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붉은 메뚜기는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남쪽에 서식하는 마수였다.
“사막의 마수 지형도가 또 변한 건가?”
인류와 네오 서울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제까지 기껏 파악해 놓은 마수 지형도를 새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붉은 메뚜기 자체도 문제였다.
놈들의 티탄질 껍질은 어지간한 공격 따윈 그냥 튕겨 내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방어력과 무엇이든 갉아 먹는 이빨, 그리고 마수답게 흉포한 성격.
놈들은 타고난 포식자이자 사냥꾼이었다.
놈들에게 걸리면 어지간한 생존자 집단 따윈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잘됐군! 이제라도 놈들을 발견했으니.”
당장이야 수백 마리에 불과하지만, 먹이를 배불리 먹고 교미 활동을 시작하면 금세 수천, 수만 마리까지 불어날 것이다.
그 때문에 붉은 메뚜기가 주로 서식하는 곳에 있는 생존자 집단에서는 주기적으로 놈들을 사냥해 수를 줄여 놨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대재앙이 닥치기 때문이다.
어떻게 놈들이 먼 이곳까지 오게 된 건지는 제온도 알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이쯤에서 놈들을 전멸시키지 않으면 대재앙이 닥칠 거라는 것이다.
제온이 가이아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가이아를 안심시킨 제온이 그대로 지상으로 수직 낙하했다.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내리는 제온의 몸을 지상의 모래가 부드럽게 받아 줬다.
가가각!
갑자기 나타난 제온에 붉은 메뚜기 무리가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침을 흘리며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제온이 중얼거렸다.
“소환! 강화 샌드 솔저.”
파스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래 위에서 수많은 샌드 솔저들이 일어섰다.
바위로 이뤄진 샌드 솔저들이었다.
제온이 샌드 솔저들에게 명령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지워 버려.”
쿠쿠쿠!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화 샌드 솔저들이 붉은 메뚜기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가각!
붉은 메뚜기가 날카로운 이빨로 샌드 솔저들을 물어뜯었다. 어지간한 마수의 살점 따위 순식간에 분쇄하는 붉은 메뚜기의 이빨이 오히려 부서져 나갔다.
쾅!
그런 놈들의 머리와 몸통에 강화 샌드 솔저의 주먹이 작렬했다.
키에에!
섬뜩한 비명과 함께 터져 나가는 붉은 메뚜기의 육체.
살육의 시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