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장우항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혼자서는 자유롭게 외출할 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탈출해서 네오 서울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싶었지만, 애써 욕망을 억눌렀다.
네오 서울은 그 혼자서 어떻게 농락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주요 건물을 지키고,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체계적으로 돌아갔다.
외인에 불과한 장우항이 그 사이에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았다.
장우항의 눈이 뱀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은가?”
그때였다.
마치 장우항의 다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숙소의 문이 열렸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샤오룬이었다.
샤오룬의 등장에 장우항이 벌떡 일어났다.
“그대가 외부에서 온 패스파인더인가?”
“그러는 노인장은 뉘시오?”
“내 이름은 샤오룬이다. 네 신분을 밝혀라.”
“음! 사천에서 온 장우항이오.”
“사천에서 온 것 확실한가?”
“그렇소!”
장우항의 대답에 샤오룬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 샤오룬의 반응에 장우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존함이 샤오룬이라면 혹시…….”
“내 조부께서 사천 출신이다.”
“헛! 동향 분이셨군요. 후배 장우항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장우항이 급히 오른 주먹을 왼 손바닥에 대며 인사했다.
“네가 정말 사천 출신이라면 나의 형제와 같다.”
“이런 곳에서 동향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너를 우항이라고 부르겠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래, 사천 소식을 알고 싶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비참합니다.”
“어느 정도이기에 그런 것이냐?”
샤오룬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장우항이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희 콜로니의 정식 명칭은 천계 지저성입니다. 저희끼리는 그냥 지저성이라고 부르죠.”
“천계? 천계 군벌이 세운 도시인가?”
“역시 아시는군요.”
장우항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멸망 이전 중국엔 군벌이 존재했다.
천계 군벌은 사천성에 기반을 둔 군사 집단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천계 지저성은 천계 군벌이 중앙의 명령을 받고 만든 지하 도시였다.
핵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요 요인과 가족들, 그리고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요새였다.
비밀 요새라서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설을 담당했던 이들끼리는 중국 최대의 건설 역사라고 자부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원래 십만 명이 일 년을 버틸 요량으로 만든 요새였습니다만, 백 년 동안 계속 확장하다 보니 삼십만 명까지 수용하게 됐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살아남았단 말인가? 역시 중화의 저력은 대단하군.”
샤오룬의 감탄에 장우항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문제는 무분별하게 확장하다 보니 수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식량, 물자, 공기, 물,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 때문에 지저성이 여러 세력으로 갈라져 전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지상으로 나와도 될 텐데?”
“문제는 지상에 있는 마수들입니다. 분지라는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유난히 많은 마수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중에는 특별히 강한 놈들도 다수 있습니다. 저희의 힘만으로는 놈들에게서 살아남는 게 불가능합니다. 제가 살아남아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천운이 따라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샤오룬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갑자기 장우항이 샤오룬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저희 지저성의 명맥이 끊길 겁니다. 저희는 네오 서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흠!”
“부디 도움만 준다면 저의 영혼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너의 영혼 따윈 필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잘 단련된 각성자들이다. 지저성에 쓸 만한 각성자가 얼마나 있는가?”
“최소 일만 명입니다.”
“일만 명이라……. 그림의 떡이군.”
아무리 숫자가 많으면 뭐 하겠는가? 수천 킬로미터나 먼 거리에 있는데.
가는 데 몇 달, 오는 데 또 몇 달.
그것도 무사히 오고 갈 수 있을 때 이야기였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샤오룬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없는 셈치는 게 나았다.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때 장우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그림의 떡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이냐? 설마 각성자 일만 명이 같이 왔단 말이냐?”
“일만 명은 아니지만, 일곱 명이 더 있습니다.”
“일곱 명? 분명 모두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군.”
샤오룬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장우항도 그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에게 진실을 굳이 말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진금호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르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흐흐! 음흉한 놈이구나.”
“동족을 지키려면 음흉해져야지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후배를 만났군.”
“저도 그렇습니다, 어르신!”
“나가기 전에 손목이나 보자.”
“얼마든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우항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여 줬다.
그의 손목에는 다섯 개의 붉은선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투계 B급인가?”
“예! 유엽도를 무기로 씁니다.”
손목의 계급장을 내보였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밝힌 거나 다름없었다.
계급장 안에는 각성자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었으니까.
때문에 각성자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외인에게 절대 자신의 오른 손목을 내보이지 않는다.
장우항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샤오룬에게 거침없이 손목을 내보였다.
자신이 감추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샤오룬은 그런 장우항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느냐?”
“제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곳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네오 서울로 들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경계가 철저한데.”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제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알았으면 나를 따라오기나 하라.”
“나가도 되는 겁니까?”
“이제부터 너는 내 소관이다.”
“감사합니다.”
장우항이 매우 기뻐했다.
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은 것이다.
샤오룬은 그런 장우항을 보며 생각했다.
‘골수까지 빨아 주마.’
장우항을 넘겨받기 위해 남 구역의 알짜 사업체 하나를 시청에 넘겨야 했다.
샤오룬으로선 꽤 큰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만큼 확실히 장우항에게서 뽑아낼 속셈이었다.
고향 사람이라고 봐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를 이용해 지저성과 접촉할 수만 있다면 샤오룬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B급 각성자 하나 요리하는 것은 샤오룬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자!”
“네!”
장우항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샤오룬을 따라 방을 나섰다.
샤오룬의 뒤를 따르는 장우항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
제온과 브리엘, 레무라는 제토야의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도착한 브리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공간에 담아 온 물건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녀가 꺼낸 것은 어른 키만 한 물건이었다.
언뜻 보면 조그만 탑처럼 생긴 물체 위엔 푸른 보석이 눈처럼 박혀 있었다.
제토야가 의아한 표정으로 탑처럼 생긴 물체를 바라봤다.
“이건 뭐야?”
“보호 결계 핵이야.”
“결계? 내가 아는 그 결계?”
“그래! 악어 마을의 규모가 커진 만큼 사람들도 많아졌잖아. 이제 슬슬 방어 수단을 준비해야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을 악어 마을이라고 불렀다.
악어굴에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악어 마을이 풍요롭다는 소문은 악어굴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 때문에 악어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노리는 이들도 많아졌다.
바쿰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악어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위험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나았다.
브리엘은 악어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보호 결계를 떠올렸다.
제온을 따라 많은 던전을 경험했고, 그중에는 결계가 쳐져 있는 던전이 꽤 있었다.
그때부터 브리엘은 결계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제온의 집에 있는 지켜보는 눈이었다.
제온의 집에 요새라는 별명을 지어 준 지켜보는 눈.
브리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지켜보는 눈을 연구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니 근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보호 결계를 만들어 냈다.
비록 성능은 지켜보는 눈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악어 마을을 적에게서 어느 정도 지켜 줄 수준은 됐다.
브리엘의 설명을 들은 제토야가 입을 떡 벌렸다.
“그렇게 엄청난 물건을 만들다니. 넌 정말 천재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옛날부터 알았지만, 그래도 내 상상을 뛰어넘어서…….”
“공치사는 됐고, 어서 설치나 하자.”
“응!”
“일단 이 핵을 마을 중앙에 설치할 거야. 이후 이걸 마을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에 설치하는 거야.”
브리엘이 다시 아공간에서 주먹만 한 구슬들을 꺼냈다.
제토야가 구슬들을 받으면서 말했다.
“꽤 무거운데?”
“섬세한 물건이라서 조심해서 다뤄야 해.”
“알았어!”
“구슬을 들고 나를 따라와.”
“오케이!”
제토야는 구슬을 품에 안고 브리엘의 뒤를 따랐다.
레빈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런 건 또 언제 준비했대?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다 챙겨 준다니까.”
“속정이 깊은 아이야.”
“그러게요. 겉보기와 완전히 다르다니까요.”
제온의 말에 레빈이 동의했다.
주변에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잘 챙기는 이가 바로 브리엘이었다.
“결계가 설치되면 한숨 돌리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이곳을 노리고 오는 놈들이 많아 골치 아팠는데.”
“아직도 부나방들이 많이 남아 있나 보구나.”
“백 년 동안 통제받지 않고 제멋대로 산 인간들이잖아요. 이제 와 마을에 들어와 사는 것은 싫은데, 배는 고프고……. 결국 남은 것은 약탈뿐이죠.”
레빈이 혀를 찼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하 오수로는 네오 서울과 빈민가 전역에 걸쳐 미로처럼 뻗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제거하거나 병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악어 마을이 풍요롭다는 소문이 퍼져 나갈수록 노리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들을 격퇴하는 것이 악어 마을을 지키는 각성자들의 일과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레빈!”
어두운 통로에서 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가 볼게요.”
“그래!”
제온의 대답을 듣자마자 레빈이 유령화해 브리엘이 있는 통로로 날아갔다.
“레빈!”
“간다, 가! 이 꼬맹이야.”
레빈이 투덜거리면서 속도를 빨리했다.
제온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지상에서도, 지하에서도 마을이 생겨나고 있었다.
세상에 다시 활력이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활력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만이 아니란 거지.’
제온의 신경을 가장 거스르는 것은 바로 크라시아스였다.
백 년 전에 지구를 이 꼴로 망쳐 놓고 소멸한 크라시아스.
하지만 그는 잔류 사념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이젤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반마룡 나이젤은 분명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네크로맨서 필그램에게서 보랏빛 보석을 회수했을 것이다.
‘분명 그 보석에도 크라시아스의 잔류 사념이 깃들어 있었을 거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백 년 동안 세상을 유지하던 법칙이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격변이 시작되려는 건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