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거리를 홀로 걷는 제온의 표정이 무거웠다.
마음이 심란했기에 잠시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레빈을 먼저 들여보냈다.
가리온은 원래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요한에 의해서 가족을 모두 죽이고 각성했다.
요한의 명령으로 제온을 공격했다가 세뇌가 깨지지 않았으면, 지금 이런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가리온이 복수를 하면서 너무 많은 이들이 죽고, 많은 곳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리온은 동대문의 교단과 관계된 거라면 닥치고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자가 나왔고, 개중에는 교단과 상관없는데, 우연히 엮인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가리온의 복수에 더 많은 이들이 희생될 것이 분명했다.
과연 이대로 가리온을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 제온이 요한을 죽이지 않았다면, 가리온도 저렇게 미쳐 날뛰지 못했을 것이다.
가리온의 재생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요한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가리온도 요한이 살아 있을 때는 감히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렵군!”
제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 인과가 거미줄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실히 알게 됐다.
제온은 세상의 인과를 뒤흔들 만큼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결과물이 생겨날 것이다.
그중에는 이렇게 가리온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폭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제온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결국 제온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네크로맨서 필그램, 엘프인 칼리넌, 크라시아스의 잔류 사념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고 있어. 어쩌면 반마룡 나이젤도 크라시아스에 영향을 받은 걸 수도 있어. 크라시아스가 무엇을 노리고 자신의 잔류 사념을 남겼는지 모르지만, 방치했다가는 더 큰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어.’
크라시아스 때문에 이미 한차례 멸망한 지구였다.
그를 방치하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후우!”
제온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숨을 크게 쉴 때였다.
“그대가 제온인가?”
갑자기 으슥한 골목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찰갑을 입은 남자였다.
네오 서울에서 보기 힘든 갑옷 양식과 허리에 찬 유엽도, 그리고 등에 건 커다란 활과 전통을 본 순간 제온은 남자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봤다.
“사천에서 왔다던 패스파인더가 그대인가 보군요.”
“흐흐! 듣던 대로 똑똑하군. 단숨에 내 정체를 알아차리다니.”
남자는 바로 장우항이었다.
그가 샤오룬의 허락을 받고 제온을 만나러 온 것이다.
제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우항을 바라봤다.
‘피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군.’
마수의 피 냄새가 아니었다.
그보다 강하게 인간의 피 냄새가 장우항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인간을 죽였다는 의미였다.
직접 수많은 사람을 죽여야 피 냄새가 저렇게 인이 박인다. 그렇게 인이 박인 피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장우항은 제온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힌 자였다.
장우항이 주먹을 손바닥에 대는 특유의 인사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사천에서 온 장우항이다.”
“제온입니다.”
“듣던 것보다 평범해 보이는군. 하지만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 너에게서 피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많은 사람을 죽였군.”
“피를 묻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니까요.”
“흐흐! 우리 같은 살귀를 위한 시대이기도 하지.”
“살귀?”
“아닌가?”
“그 정도로 굶주리지는 않았는데요?”
“아니, 너는 나와 같은 부류다. 그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장우항은 확신 어린 표정으로 제온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썩은 동태 눈깔이군요. 그 눈은 도려내는 게 낫겠어요.”
“흥! 부정해도 소용없다. 본질은 결코 속일 수 없는 거니까.”
“나는 당신이 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 두지.”
장우항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대화하는 상대를 화나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꽤나 무례한 분이군요. 불쑥 찾아와 남의 본질을 함부로 규정하려고 하다니.”
“그런가? 소국의 각성자 주제에 예는 징그럽게 따지는군.”
“소국이라……. 예전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요? 당신의 고향에 인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네오 서울의 인구는 이천만 명이 넘으니까요.”
“크윽! 그 정도 인구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불릴 수 있다. 우리의 저력은 그만큼 대단하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그런데 그런 자랑이나 하려고 이 밤중에 저를 찾아온 건가요? 할 일이 더럽게 없나 보네요.”
제온의 이죽거림에 장우항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애써 수치심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영광스러운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듣고 싶지 않군요.”
“그래도 들어라. 그게 너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테니까. 내 손을 잡아라. 나와 함께 지저성에 가자. 너의 능력이라면 지저성에서도 크게 중용받을 것이다. 지저성 확장에 공을 세우면 지상의 모든 쾌락을 네게 안겨 주마.”
“거절하죠.”
“감히!”
“쾌락을 누리고 싶으면 네오 서울에서 찾으면 되지, 굳이 그 먼 땅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제온이 코웃음을 쳤다.
네오 서울엔 모든 것이 다 있다.
제온이 찾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이곳에서 누릴 수 있다.
지저성이 아무리 좋아도, 감히 네오 서울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인구 삼십만 명의 지하 도시와 이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는 체급 자체가 비교되지 않는다.
장우항이 말했다.
“지금 당장은 네오 서울이 앞서겠지만, 저력은 우리 지저성이 훨씬 낫다. 각성자들의 수준, 지적 능력, 모든 것이 네오 서울에 앞선다. 네오 서울의 마도 공학을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도 금방 네오 서울만큼의 문명 수준을 이룰 것이다.”
“그게 목적이었군요.”
“뭐?”
“네오 서울의 마도 공학을 훔쳐 가는 것.”
“훔치는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주고, 받아 갈 것이다.”
장우항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제온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정당한 대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숨겨 둔 물건이라도 있는 모양이군요.”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결정해라. 나와 손을 잡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참고로 거부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군. 난 거절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거 안됐네요. 전 거절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라서. 당신의 제안 거절하죠.”
“재고의 여지도 없단 말인가?”
“그렇게 안 보였는데, 꽤 질척거리는 분이군요.”
장우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금호나 네놈이나 똑같군. 대국의 사람을 눈 아래로 보고 깔아뭉개는 못된 습관이 있어.”
“그런가요?”
“그러다 제명에 못 죽는 수가 있다.”
“뭐, 충고 감사합니다. 조심하죠.”
“마지막으로…….”
“됐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너, 말을 듣지도 않고…….”
“질척거리는 거 딱 질색이라서…….”
“…….”
장우항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서 휘두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실제로 그의 손은 허리에 찬 유엽도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꽈배기처럼 꼬인 허리와 잔뜩 웅크린 등.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 같은 모습이었다.
‘이자도 무공을 익혔군.’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 중국도 투쟁의 역사였다.
이름난 무인이나 장수가 수없이 배출되었고, 그만큼 많은 비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수많은 비전이 유실되었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 비전을 전수하며 유지해 온 집단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무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이었다.
사실 무인이라고 해 봐야 별거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그들의 비전은 과학과 접목한 현시대의 격투술을 따라가지 못했다.
체계적으로 정립된 현시대의 격투술은 옛 시대의 비전을 압도했다.
무인은 그렇게 조롱거리가 되어 세상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대멸망과 함께 도래한 각성의 시대에 그들은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비전에 각성자의 능력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장우항도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가전 무공 적화무적도(赤花無敵刀)를 익혔다.
그는 적화무적도를 펼치면 단숨에 제온의 멱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는 제온의 눈빛을 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어떤 수를 펼칠지 다 안다는 것 같은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장우항이 슬그머니 검을 잡았던 손에서 힘을 뺐다.
순간적으로 분을 참지 못해 검을 잡았지만, 오늘 싸우려고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후우!”
장우항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 살의와 적의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제온은 그런 장우항의 반응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보기와 달리 인내심이 강한 자군.’
장우항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강하게 자극했는데, 그는 금방 평정심을 회복했다.
그만큼 이성적이라는 의미였다.
장우항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성급히 접근한 거 인정하지. 시간을 줄 테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남 구역으로 와라.”
“남 구역? 샤오룬 님에게 갔나 보군요.”
“아무래도 동향 사람이라 편하거든.”
“뿌리가 같아선지 모르지만, 확실히 두 사람이 닮은 부분이 있군요.”
“칭찬으로 알지. 다음에 볼 때는 부디 생각이 바뀌어 있길 바라마. 그럼…….”
장우항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제온이 중얼거렸다.
“저 자신감의 원천이 뭘까? 혼자로는 나에게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텐데.”
제온이 파악한 장우항의 수준은 B급 정도였다.
제아무리 비전의 무공이 더해진다고 하더라도 위력은 A급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는 제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장우항도 알고 있을 텐데도 저렇게 도발적으로 나왔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숨겨진 수가 있다는 건데…….”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숨겨 놓은 수단을 찾아내는 것도 그에겐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흠! 그의 행적을 거꾸로 추적해 봐야겠군.”
가리온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제온의 손을 벗어난 자였다.
그를 강제할 명분도, 마음도 제온에게 없었다.
처자식을 죽인 원죄를 품은 남자의 행보를 제온이 어찌할 수는 없었다.
장우항은 다르다.
그가 먼저 제온을 찾아와 회유를 가장한 협박을 했다.
명분을 제온이 가지고 있었다.
“그럼 한번 털어 볼까? 믿는 수가 무언지.”
***
“하하! 정말 괴물 같은 놈이군.”
혼자가 되자 장우항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가 소매를 걷고 팔뚝을 바라봤다.
팔뚝의 잔털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아직도 온몸의 떨림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제온을 마주했을 때 그가 느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지저성의 성주 이후 그에게 이 정도 충격을 준 남자는 진금호와 제온뿐이다.
“소국에 이 정도의 각성자들이 있을 줄이야.”
장우항이 고개를 돌려 네오 서울을 바라봤다.
가장 높은 시청사를 비롯해 수많은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진금호, 제온, 샤오룬, 그 외 어떤 괴물 같은 존재들이 저 안에 도사리고 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진금호와 제온만 봐도 네오 서울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현시대에 이 정도의 초고도 문명을 이룬 도시와 각성자들이 있는 것 자체가 반칙이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성주님이라면 능히 이곳을 평정하고 복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아는 가장 강대한 존재가 지저성 지하에 도사리고 있었다.
먼 훗날에라도 그를 이곳까지만 안내할 수 있다면 분명 네오 서울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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