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레빈은 빈민가 골목 앞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친구들인 애론과 도미닉이 같이 쪼그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 삥을 뜯으려는 불량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 중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레빈, 애론, 도미닉은 모두 이 골목에서 나고 자랐다.
싸움도 많이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절대 주먹을 쓰지 않았다.
나름 원칙을 지켜 온 것이다.
각성한 후에도 그들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싸워도 각성자하고만 싸울 뿐, 일반인은 절대 건들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두려움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문득 애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햇빛 죽이네.”
“죽이긴 뭘 죽여? 타 죽을 것 같구만.”
도미닉이 그런 애론을 타박했다.
애론이 인상을 쓰며 레빈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레빈, 꼭 이렇게 뜨거운데 앉아 있어야겠냐? 어지간하면 그늘로 들어가자.”
“왜, 좋잖아?”
“좋긴 개뿔. 익을 것 같단 말이야.”
“하여간 인내심이라곤 쥐뿔도 없는 것들.”
레빈의 말에 도미닉이 발끈했다.
“이래서 등급이 높은 새끼들은 안 돼. 우리 같은 하급 각성자들의 고충엔 관심도 없다니까.”
“인마! 거기서 왜 등급 이야기가 나와?”
“씨! 너야 등급이 높으니까 햇볕을 오래 쬐도 괜찮지만, 우리는 익는 것 같다고.”
“하여간 엄살은…….”
“진짜라니까…….”
“알았어. 그늘로 가자.”
결국 레빈이 귀를 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늘로 자리를 옮기자 애론과 도미닉의 표정이 살아났다.
“정말 뒈지는 줄 알았네.”
“이제 살 것 같다.”
두 사람의 엄살에 레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장은……. 누가 보면 내가 너희들 잡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겠다.”
“우리 생각 좀 하라는 거야.”
“뭘 생각하라는 거야? 다들 각성한 주제에…….”
“쳇!”
애론이 콧방귀를 뀌며 골목 밖을 바라봤다.
“누구 간식거리 없냐?”
“있겠냐?”
“어떻게 한 놈도 먹을 걸 안 가지고 다니냐?”
“뭐래? 제일 잘사는 놈이.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 그런다니까.”
“잘살긴 뭐가 잘살아?”
“제온 형님 집에서 살면 잘사는 거지.”
“그래! 네오 서울에서 요새만큼 안전한 곳이 어딨냐? 복에 겨운 놈!”
애론과 도미닉이 동시에 레빈을 타박했다.
레빈도 그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도 제온의 집에서 사는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론이 레빈에게 물었다.
“제온 형은 별다른 계획 없으시대?”
“아직은 그런 것 같아. 왜?”
“혹시 형님 짐꾼 필요 없으신가 해서.”
“필요하겠냐?”
“역시 그렇겠지.”
“당연하지.”
“아! 나도 형님하고 던전 가고 싶다.”
“훗!”
레빈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현재 애론과 도미닉은 백수였다.
마정석 광산 토벌 때 들어갔던 공략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소속되었던 공략대는 마정석 광산 토벌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때문에 공략대 자체가 와해하고 말았다.
애론과 도미닉도 그때 공략대에서 나와 놀고 있었다.
다른 공략대를 들어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이미 한번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꺼려졌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백수 생활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다.
먼젓번 공략 때 꽤 돈을 많이 벌어 둬서 몇 달 동안은 이렇게 하릴없이 먹고 놀아도 상관없었다.
레빈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묻어 나왔다.
언제든 만나 웃고 떠들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그를 즐겁게 한 것이다.
아무리 레빈이 B급 각성자가 되었어도 친구들은 예전과 똑같이 그를 대했다.
그들 역시 각성했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냥 좋았다.
이렇게 농담 따 먹기로 보내는 시간도, 뒷골목에 쭈그리고 있는 것도 행복했다.
레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못 보던 영감인데.”
애론이 갑자기 골목 밖 넓은 거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뭔 소리야? 어, 진짜네.”
그를 타박하려던 도미닉도 눈을 빛냈다.
레빈이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웬 노인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노인은 빈민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과 태도였다. 하지만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노인은 이 거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물이 든 양동이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전혀 섞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노인은 거리 위에서 겉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세 사람의 눈엔 노인의 남다른 점이 들어왔다.
“소매 봤어?”
“핏자국이지? 말라붙은 게 이삼일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옷 안에 방어구를 입고 있네.”
“저거 도깨비 시장에 있는 공방제 같은데?”
“저 지팡이도 이상하지 않아?”
“나무네?”
레빈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막에서 나무는 무척이나 귀한 재료였다.
빈민가에 사는 노인이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이상하지?”
“이상하네!”
“네오 서울에서 나온 사람도 아냐.”
네오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겐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그들의 동작과 눈빛에 묻어나는 우월감과 자부심은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이었다.
“저 노인네, 외부인이야.”
“스캐빈저인가?”
“그럴지도…….”
사막의 스캐빈저들이 정체를 속이고, 빈민가로 숨어드는 일은 매우 흔했다.
네오 서울은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무단 침입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빈민가는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빈이 말했다.
“평범한 스캐빈저 따위가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행동을 봐.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하잖아. 다른 사람들 행동을 보고, 자신의 움직임을 수정하는 게 마치 학습하는 것 같지 않아?”
“그렇네!”
“맞아! 확실히 레빈이 눈썰미가 있어.”
애론과 도미닉이 레빈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 노인의 모습은 마치 시골에서 상경한 얼뜨기가 사람들을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행색, 그리고 움직임과 눈빛까지 모든 것이 수상했다.
레빈이 애론에게 말했다.
“애들 붙여.”
“몇 명이나?”
“눈치 빠른 놈으로 둘만 붙여. 그 이상 붙이면 눈치챌 거야.”
“오케이!”
애론이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촌의 뒷골목은 그들의 영역이었다.
이 거리에서 사는 수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움직였다. 일단 이 거리에 들어온 이상 그들의 이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레빈이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노인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
제온은 클렉시 영감의 가게에 앉아 우육면을 먹고 있었다.
후르륵!
면발이 목을 치고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거기에 기름진 국물까지 완벽했다.
“어우! 좋네요.”
“한 사나흘 굶은 놈처럼 그렇게 먹냐?”
“배고팠거든요.”
“뭘 하느라고 밥도 못 먹고 다니냐?”
“그러게 말이에요.”
“어쨌든 잘 먹는 것을 보니 보기는 좋구나.”
“음식 솜씨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맛있어요.”
“흥! 이제야 이 늙은이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겠느냐?”
“진작 알고 있었죠.”
“흐흐! 이 늙은이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니 다행이군.”
클렉시 영감이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꼭 뒷골목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당을 연상케 했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구나. 어디 갔느냐?”
“브리엘은 잠시 고향으로 갔어요.”
“고향? 엘프들의 마을 말이냐?”
“네!”
“혼자 보내도 괜찮은 거냐?”
“브리엘이 원했습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친구를 붙여 줬어요.”
“그럼 다행이고.”
클렉시 영감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온이 믿을 만한 사람을 붙여 줬다면 정말 믿을 만할 것이 분명했다.
제온은 세심해서 절대 뭐든지 허투루 넘어가는 일이 없으니까.
“언제 돌아올지 기약은 없고?”
“때가 되면 돌아올 겁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잘될 테니까.”
“원래 늙으면 걱정이 많아지는 법이다.”
“워낙 똑똑한 아이잖습니까? 시련은 조금 겪을지 모르지만, 잘 헤쳐 나올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클렉시 영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온이 탁자 위에 돈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네! 오랜만에 도깨비 시장에 좀 들러 보려고요.”
“왜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느냐?”
“그냥 시장 좀 둘러보며 머리나 식히려고요.”
“그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시장 구경하는 게 제일이지.”
“다음에 뵐게요.”
“그러려무나.”
제온은 클렉시 영감의 가게를 나와 바로 도깨비 시장으로 향했다.
도깨비 시장은 여전히 많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거기, 잘생긴 분. 이리로 오시오.”
“이번에 파랑새 공방에서 만든 신상품이 출시됐습니다. 이리 와서 구경하십시오.”
“던전에서 발굴한 아이템 있습니다.”
거리에선 여전히 상인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끌린 사람들이 가게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홀린 것처럼 진열대 위에 놓인 물건을 샀고, 또 어떤 이들은 흥정하면서 줄다리기를 했다.
여전히 활기찬 도깨비 시장의 모습에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그때 제온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크군!’
엄청난 덩치 때문에 절로 시선이 가는 남자였다.
못해도 이 미터 오십 이상은 되어 보이는 키에, 그만큼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였다.
비록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는 어깨에 커다란 칼을 찬 채, 자루를 짊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내 어느 가게 앞으로 갔다.
마수의 부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였다.
쿵!
그가 진열대에 자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마수 부산물도 사나?”
남자의 기세에 잠시 움찔했던 가게 주인이 이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그럼 이 물건을 처분하겠다.”
“잠시 안을 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남자의 대답에 가게 주인이 조심스럽게 자루를 열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영업용 미소가 싹 사라졌다.
안에 담겨 있는 물건 때문이었다.
“이건…….”
“귀신 풍뎅이 껍질이다. 얼마나 쳐줄 수 있느냐?”
“이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손님!”
“당연히 사냥한 거다. 얼마나 쳐줄 수 있지?”
“귀신 풍뎅이는 굉장히 희귀한 마수인데, 어디서 사냥하신 겁니까?”
“얼마에 사 줄 수 있는지나 말하라.”
“손님!”
“…….”
“이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거대한 남자를 올려다보는 가게 주인의 얼굴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순간 거대한 남자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곱지 않았다.
“더럽게 말이 많은 새끼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