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
4화
그날 밤 숙소에 광부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제온은 넓은 숙소를 혼자 차지하고 편히 잘 수 있었다.
“우하함!”
제온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성한 덕분인지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상쾌하기만 했다.
“좋네!”
제온은 자신의 몸 상태에 만족했다.
아침부터 활력이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어제와는 달랐다.
제온은 문을 열고 숙소를 나왔다. 그러자 강렬한 햇빛이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햇빛이 피부를 태울 것처럼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허둥지둥 맨살을 가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역시 각성한 덕분이었다.
제온은 각성의 혜택을 만끽하며 광산 도시 안을 거닐었다.
도시라기엔 매우 비좁고 허름했지만, 그래도 갖춰야 할 것은 얼추 다 갖추고 있었다.
마정석 광산은 사막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들이 들러 보급을 받기도 했고, 또 다른 도시에서 사 온 물건을 팔기도 했다.
또 장용범 파티처럼 던전을 공략하는 자들이 필수적으로 들러 장비를 점검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도시 안에는 제법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단은 이곳의 모든 것을 알아 놔야 해.’
마정석 광산에서 일하고 돌아온 이들의 입을 통해 내부의 정보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것과 자신이 직접 보고 파악하는 것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제온은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한 정보만 믿었다.
이 역시 빈민가에서 익힌 습관 중 하나였다.
허름한 시장엔 사람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워낙 이른 아침이기도 했고, 주 손님인 광부들 대부분이 갱도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갱도가 깊고 복잡하다 보니 광부들은 아예 며칠 치 식량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곡괭이질을 해야 겨우 마정석 하나 캘까 말까 할 정도였다.
갱도를 오가는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에 광부들은 차라리 안에서 숙식하는 것을 택했다.
그야말로 막장 인생이라 할 만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온은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지 몰랐다.
다행히 각성하긴 했지만, 어서 능력을 성장시킬 방법을 찾지 않으면 그 역시 언젠가 갱도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만은 막아야 했다.
꼬르륵!
제온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점심부터 제대로 먹은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배고픔부터 해결해야 했다.
제온은 식당을 찾아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에 제대로 된 식당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장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고기를 파는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꼬치에 고기를 꿰어 굽고 있는데, 냄새가 무척이나 고소했다.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은 추레한 노인이었다.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주름살과 수염, 그리고 한쪽에 금이 간 안경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제온이 노인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거 무슨 고기입니까?”
“알아서 좋을 거 없을 텐데. 흐흐!”
“하기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소나 돼지를 키워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지만, 지금 세상에서 그 같은 호사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네오 서울 안에서는 인공육을 만들어서 먹지만, 빈민가는 쥐나 바퀴벌레, 혹은 마수 찌꺼기를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제온은 자연스럽게 꼬치 하나를 입에 가져갔다.
노인은 깨진 안경 너머로 그런 제온을 바라봤다.
“못 보던 놈인데?”
“어제 왔습니다. 이거 제법 맛있네요.”
제온이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대답했다.
“어제? 샌드웜에게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네놈인 모양이구나.”
“그 소식이 벌써 퍼졌습니까?”
“흐흐! 이 안에 비밀이라곤 네놈이 입은 속옷 색깔뿐일 거다. 그것도 내일이면 모두가 알게 되겠지.”
“쳇!”
“흐흐! 그나저나 허여멀겋고 인물이 좋은 것이 꽤나 많은 놈들이 노리겠어.”
제온은 단숨에 노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고 노려봤다.
제법 사나운 그의 눈빛에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조심하란 말이다. 무엇 때문에 이곳을 도피처로 택했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도피처라뇨? 전 돈을 벌기 위해 온 겁니다.”
“흐흐!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것치곤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잖아.”
“무슨 준비요?”
“마정석 광산에 온 녀석이 곡괭이 하나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이곳에 돈 벌러 온 녀석의 태도가 아니지.”
핵심을 찌르는 노인의 말에 제온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노인은 그런 제온을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온이 화제를 바꿨다.
“이곳에 오래 있었나 봅니다?”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있었으니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지.”
“그렇게 오래 있었습니까?”
“그래! 저것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초창기부터 내가 모은 것들이야.”
노인이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가게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저게 뭡니까?”
“처음에 이곳에 온 놈들은 버텨. 마치 네놈처럼.”
“네?”
“광산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 처음엔 값어치 없는 것들부터,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 귀한 것까지 내다 팔지.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지면 그때 비로소 광산에 들어가지. 그게 수순이야.”
“미친!”
“쓸모 있는 것은 네오 서울로 보내고, 값어치가 없는 것들은 그냥 내버려 두지. 그러니까 저것들은 막장 인생들이 마지막에 남긴 흔적들이라 볼 수 있지. 흐흐!”
노인의 웃음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그의 눈빛이 제온에게 마치 너도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제온은 남은 고기를 억지로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맙니까?”
“십 솔!”
“미친! 고기에 금이라도 뿌렸습니까? 이따위 고기에 십 솔이라니?”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네오 서울 콜로니의 화폐 기준은 마정석이었다.
마정석 일 킬로를 기준으로 따지는 것이다.
일 솔은 마정석 천분의 일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까 십 솔이면 마정석 백분의 일에 해당한다.
네오 서울 안에서도 이 정도의 폭리를 취하진 않는다.
제온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노인은 태연했다.
이 정도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는 태도였다.
“이곳은 모든 것이 귀하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하다못해 곡괭이도. 그래서 모두 내다 파는 거야.”
“내가 만일 돈 내는 것을 거부한다면요?”
“흐흐! 나같이 힘없는 늙은이가 이렇게 험한 곳에서 오래 장사할 수 있었던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무슨?”
그때였다.
근처의 상점 주인들이 고개를 돌려 제온을 바라봤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에 제온이 이를 악물었다.
‘터줏대감이라더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노인은 마정석 광산 안에 있는 다른 상점들과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노인이야말로 시장의 중심일지 몰랐다.
단순히 운이 좋아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만한 실력과 배경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노인에게 음식 먹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어떤 상점도 제온과 거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젠장! 잘못 걸렸군.”
“그래도 머리가 제법 굴러가는군. 어떤 놈들은 천지 분간 못 하고 길길이 날뛰기부터 하는데.”
“하! 당장은 돈이 없는데…….”
“그럼 다른 물건이 있다는 말이군. 혹시 마정석이냐?”
“…….”
“마정석 맞군. 내놔 보거라. 값어치는 정확히 쳐줄 테니까.”
제온은 끝까지 거부하려고 했다.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지킨 마정석을 겨우 꼬치 하나 값으론 내주기 싫었다.
노인은 그런 제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애송아! 네가 마정석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광산에 다 날 것이다. 그때도 네가 마정석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물론 소문의 근원지는 노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이야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제온이 노인을 노려봤다.
자신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지만, 눈앞의 노인은 그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험악한 수라장을 헤쳐 나왔다.
눈치는 물론이고, 배짱 싸움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노인에 비하면 제온은 그냥 애송이에 불과했다.
마정석이 있다는 것을 들킨 이상 그에게 거부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기랄!”
제온이 바지 안쪽에 숨겨 두었던 조그만 마정석을 꺼냈다.
노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호! 그 정도 크기라면 백 솔 정도 되겠군.”
“장난합니까? 네오 서울이라면 삼백 솔 이상 받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여긴 네오 서울이 아니잖느냐.”
“진짜 이럴 겁니까?”
“애송아! 지킬 힘이 없으면 보물도 재앙이 되는 법이다. 흐흐!”
노인이 킬킬 웃었다.
제온은 그런 노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끝내 날릴 수는 없었다.
노인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은 자라면 분명 마정석 광산을 지키는 각성자들과도 친분이 있을 것이다.
노인은 제온이 나가더라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이곳에서 수십 년 이상을 살아온 노인에게선 제온을 압도하는 관록과 여유가 느껴졌다.
제온은 괜시리 노인에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하아!”
결국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조그만 마정석 하나 때문에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는데, 값어치가 겨우 일백 솔에 불과하다니. 그동안 자신이 한 모든 행위가 헛짓거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결국 그는 마정석을 노인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흐흐! 그렇다고 낙심하지 말거라. 내가 그렇게 나쁘거나 고지식한 사람은 아니니까. 오늘 처음 본 신입을 몽땅 털어 버릴 만큼 몰상식하진 않거든.”
“무슨?”
“일단 구십 솔 거슬러 주지. 잘 보관하게. 이곳엔 소매치기나 강도도 꽤 많으니까.”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척하기는…….”
제온이 투덜거리며 노인이 거슬러 준 구십 솔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노인이 피식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첫 거래의 대가로 안쪽에 쌓여 있는 물건을 하나 주지.”
“저 잡동사니를 가져가란 말입니까?”
“싫으면 말고…….”
“제기랄!”
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엔 왠지 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싫었다.
뭐라도 하나 가져가야 노인에게 당한 것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안에 진짜 좋은 물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쓸 만한 물건은 모두 네오 서울에 보낸다고 했으니, 정말 잡동사니만 남아 있을 것이다.
제온은 잡동사니 산을 뒤졌다.
“뭐야? 쓰레기밖에 없잖아? 여기서 뭘 가져가라고.”
“흐흐!”
노인은 그런 제온을 보며 웃었다.
꽤 재밌는 녀석이었다.
이곳에 오면 대부분 위축되어 우물쭈물하기 마련인데, 제온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곳은 마모된 곳이다.
정상적인 것도 이곳에 오면 마모가 된다.
사람도, 물건도, 그 외 다른 것들도…….
그렇게 닳아 버린 세상에 저 정도 날것의 분위기를 가진 자는 도드라져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인은 제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투덜거리며 잡동사니를 뒤지는 모습만 봐도 생기가 느껴졌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눈에 불을 밝히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때 제온이 잡동사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뭡니까?”
그가 노인에게 내민 것은 아주 조그만 모래시계였다.
“모래시계구나.”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왜 여기 있냐는 겁니다.”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남아 있는 거겠지.”
노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 모래시계를 얻은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네오 서울에 들어가던 카라반에서 얻은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과 함께 사들이긴 했는데 아무 쓸모가 없어 잡동사니에 처박아 뒀다.
아무리 세상이 망했다고 하지만, 모래시계를 굳이 가지고 다닐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장식품에 돈을 쓸 인간들은 네오 서울의 높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이곳에 발을 딛지 않는다.
“차라리 다른 물건을 고르는 게 어떻겠느냐?”
“흥! 더 뒤져 본다고 이보다 멀쩡한 물건은 없을 것 같습니다.”
“후회하지 말거라.”
“됐습니다.”
제온이 모래시계를 가지고 가게를 나섰다.
“흐흐! 나중에 또 들르거라.”
“일없습니다.”
“우린 왠지 자주 볼 것 같구나.”
“그렇게 재수 없는 소리를…….”
제온이 질색하며 걸음을 옮겼다.
노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제온을 바라봤다.
그때 제온이 뒤돌아서 노인에게 물었다.
“영감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클렉시다.”
“그럼 클렉시 영감이라고 부르면 되겠군요. 우리 두 번 다시 보지 맙시다.”
제온은 그대로 시장 밖으로 나갔다.
노인은 그런 제온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럴 수는 없지. 아직도 벗겨 먹을 것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흐흐!”
호구 하나 물면, 뼛속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는 게 이곳의 법칙이었다.
클렉시는 그런 마정석 광산 도시의 법칙에 누구보다 정통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