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데미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온과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엘하룬의 전사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십 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제온은 해머슨에게 고전이라도 했지, 데이오든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엘하룬의 전사들을 하나하나 잔인하게 죽였다.
그의 손속이 얼마나 잔혹했던지, 상대하던 드워프 전사와 엘프 레인저 들이 겁을 먹고 도주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데이오든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데이오든은 마치 개미를 죽이듯 그들을 한 명씩 잔인하게 죽였다.
엘프 레인저와 드워프 전사 들은 지독한 고통과 엄청난 공포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 갔고, 데이오든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며 웃었다.
그런 데이오든의 모습은 데미안에게도 엄청난 공포를 안겨 줬다.
그제야 자신과 아비가 얼마나 무서운 자를 건드렸는지 깨달았다.
“아빠!”
데미안이 품에 안고 있는 아비의 시신을 바라봤다.
숨이 끊어진 벨로프의 얼굴엔 죽기 직전 느꼈던 공포와 당혹한 기색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의뢰를 받지 말자고 했잖아? 이게 뭐야? 제기랄!”
데미안이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의 눈엔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벨로프뿐만 아니라 카라반의 각성자들 모두 죽거나 크게 다쳤다.
캄차카 콜로니의 재정을 책임지던 카라반이 몰락한 것이다.
카라반의 몰락은 캄차카 콜로니의 몰락을 의미했다.
“하!”
데미안이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닦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그에겐 슬퍼할 자격조차 없었다.
자신들 때문에 이 사달이 일어났으니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아비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데이오든에게 걸어갔다.
데이오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은 데이오든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죽어야지.”
“그래도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 어린 병신이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네가 용서해 달라고 하면 내가 해 줘야 하는 거냐?”
“그렇게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거래?”
“엘하룬의 위치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알고 있느냐?”
“아직은 모릅니다.”
“그런데도 거래를 운운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아시다시피 제 능력은 내비게이터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길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호!”
그제야 데이오든이 관심을 보였다.
웃기는 놈이다.
어린놈이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려 줬을 때 얻는 이득을 말한다.
조금 전에 아비를 잃은 놈이 이렇게 냉철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선 데미안도 물건이었다.
“반드시 엘하룬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러니까 살려 주십시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카라반은 캄차카 콜로니에 있습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언제든 찾아와 죽이십시오.”
데미안이 고개를 들고 똑바로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게 좋을 거다.”
“지키겠습니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가 보겠습니다.”
데미안이 데이오든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제온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미안해요. 형!”
“…….”
“혹시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제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데이오든이 데미안을 보내 주기로 했다.
자신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데미안도 불쌍한 인물이었다.
엘하룬과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자신과 데이오든의 피해는 전무했다.
사실상 손해 본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반면 데미안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아비를 잃고, 대부분의 수하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 상태로는 카라반이 재기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내비게이터라고 하지만, 사막은 어린 소년이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앞으로 데미안이 걸어가야 할 길은 제온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만큼이나 험난하고 고달플 것이다.
“잠깐!”
제온이 문득 데미안을 불렀다.
“왜요?”
데미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온이 엘프 레인저와 드워프 전사들의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들의 처리를 너에게 맡기고 싶은데.”
“네?”
“엘프와 드워프 들의 물건이잖아? 팔면 제법 돈이 될 것 같은데. 아닌가?”
“맞아요.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어요.”
드워프들이 가져온 마나 입자포는 과학과 마법이 결합된 귀한 아이템이었다.
비록 데이오든에겐 통하지 않았지만, 다른 각성자와 마수 들에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엘프들이 입고 있는 갑옷, 인간들의 무기 또한 고가에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겐 이 물건의 값을 치를 마정석이 없어요.”
“마정석은 나중에 받을게.”
“고마워요, 형!”
데미안은 제온의 배려를 거부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내세우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온이 데이오든에게 말했다.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결정해서 죄송해요.”
“흥! 됐다. 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 네 마음대로 해라.”
데이오든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물건들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따위 물건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될 수 없었다.
부귀영화를 탐했다면 차라리 네오 서울에 남아 권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드디어 제온이 자신의 재능을 확실히 깨닫고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몫 이상은 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중요한 순간에 그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데이오든이 고개를 들어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목적지가 멀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
데미안은 카라반에 시신과 마나 입자포 같은 물건을 싣고 죽음의 계곡을 떠났다.
그로서는 아비와 가족 같은 수하들을 잃은 이곳에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제온은 그런 데미안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반면 제온과 데이오든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이종족들이 막아섰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하이엘툰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이엘툰의 레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부터는 신중을 기해 움직여야 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음의 계곡에서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
제온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죽음의 계곡을 바라봤다.
온통 사암으로 이뤄진 죽음의 계곡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세상이 사막으로 변하지만 않았다면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나 죽음의 계곡을 바라보던 제온이 갑자기 건틀렛을 벗었다. 손목이 간지러웠기 때문이다.
손목을 바라보던 제온이 눈을 빛냈다.
세 번째 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온이 C급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C급인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F급으로 각성했던 것이 엊그제였던 같은데, 자신이 벌써 C급이라니.
아마 네오 서울에 있었다면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오든과 오래 동행하다 보니 지금의 성취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전설과 신화로 전해지는 능력의 절반만 가지고 있어도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무기로 따지면 과거의 핵무기,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싸우려고 하는 존재는 그렇게 터무니없이 강했다.
제온의 상상력으로는 감히 가늠되지 않을 만큼.
그런 상대와 싸우려면 제온도 더 강해져야 했다.
C급으로는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휴!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오든은 그런 제온을 봤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자신의 강요 때문에 따라온 것은 맞다. 하지만 네오 서울의 각성자와 싸운 이후는 제온의 의지로 동행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도 제온의 책임하에 있었다.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전적으로 제온의 몫이었다.
제온이 건틀렛을 끼며 중얼거렸다.
“더 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해.”
남들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고 할 테지만, 제온의 성에 차진 않았다.
제온의 목표는 데이오든을 능가하는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모래를 잘 다루지만, 그보다 더 잘 다뤄야 했다.
‘강력한 대인 스킬이 필요해. 한 방으로 확실하게 보낼 수 있는.’
해머슨과의 대결에서 절실히 느꼈다.
자신에겐 강력한 대인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온은 눈을 감고 자신의 스킬들을 떠올렸다.
그나마 샌드 블라스터, 샌드 미사일이 대인 스킬이라 할 수 있다.
샌드 믹서는 광역기에 가까웠고, 마수들을 상대할 때 큰 위력을 발휘했다.
샌드 솔저는 아직 수준이 낮아 주력 스킬로 사용하기엔 부족했다.
‘남은 것은 엑시온인데…….’
엑시온은 그의 비장의 수였다.
위력은 극강하지만, 타인 앞에서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비장의 수는 꼭꼭 숨겨 둘 때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모래는 응집력이 떨어져. 그 때문에 샌드 블라스터나 샌드 미사일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야. 더 강력하고 새로운 스킬이 필요해.’
제온은 어떻게 하면 위력을 강화할지 고민했다.
그나마 샌드 블라스터보다 샌드 미사일의 위력이 더 강했다. 그렇다면 샌드 미사일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는 게 옳았다.
‘샌드 미사일을 더 응축시켜야 해. 그러자면 형태부터 바꿔야 해.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잔가지를 모두 쳐내고.’
샌드 미사일은 어린아이 팔뚝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형태도 그와 비슷했다.
그때 제온의 머릿속에 쇠구슬이 떠올랐다.
둥그런 쇠구슬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였다.
미사일이라는 형태를 버리고 쇠구슬 형태로 다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온은 한순간에 찾아온 영감을 놓치지 않고 생각에 몰두했다.
츠으으!
그의 주위에 있던 모래가 부유했다.
제온의 집중력이 모래를 절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데이오든은 그런 제온을 말없이 바라봤다.
자신도 저런 과정을 거쳤다.
자신의 능력에 가장 잘 맞는 스킬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비록 힘들고 고되지만, 그런 고민 덕분에 지금의 데이오든이 존재할 수 있었다.
남이 가르쳐 주는 길로만 가서는 한계가 분명했다.
지금 네오 서울에서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각성자들 대부분이 편한 길을 택했다.
데이오든은 그런 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제온은 그런 자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인정을 받아 마땅했다.
데이오든은 문득 크레이온을 꺼내 들었다.
모닥불 빛에 비친 크레이온이 더욱 강렬한 붉은빛을 발산했다.
아카루크의 검을 흡수한 크레이온은 더욱 강대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푹!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바닥에 꽂았다.
“친구여!”
―마음이 심란한가 보군. 친구여!
순간 크레이온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데이오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제온은 항상 데이오든이 혼자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츠으으!
크레이온 앞에 인간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훤칠한 키를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남이었다.
데이오든은 남자를 바라봤다.
실체가 아니었다.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환상에 불과했다.
아내의 자상한 오빠였던 자.
딸의 좋은 외삼촌이었던 자.
데이오든의 가장 좋은 친구였던 자.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검의 에고가 된 존재.
그가 바로 크레이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