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2)
42화
데이오든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크레이온이 가끔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렇게 선명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색이 바랜 사진처럼 흐릿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생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아카루크의 검을 흡수했기 때문인가?”
―맞네! 대신…….
“대신?”
―내구도가 크게 떨어졌네.
“무리했기 때문인가?”
―그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다고 봐야겠지. 자연의 법칙을 어겨 가면서까지 검에 내 영혼을 이식했으니까.
“으음!”
―친구여!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네. 이젠 정말 끝을 봐야 하네.
“알고 있어.”
데이오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크레이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역시 자신의 시간이 거의 끝나 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나이 백삼십 세가 넘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벌써 흙으로 돌아가고도 남았을 나이였다.
그나마 각성자였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지, 사실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수많은 적과의 싸움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에서부터 차곡차곡 데미지를 입힌 것이다.
그러나 데이오든은 자신의 삶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직 복수 일념으로 살아왔고, 그에 걸맞은 행보를 해 왔다.
덕분에 드래곤과 결전을 준비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하이엘툰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어쩌면 지금도 놈이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겠군.
―교활한 족속이라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네.
“놈이 대비하기 전에 움직여야 해.”
―속도가 생명이군.
“맞아!”
―이제 정말 끝이 머지않았군.
‘끝’을 말하는 크레이온의 눈동자가 제온을 향했다.
지금도 제온은 눈을 감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저 아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 저 아이 덕분에 결계를 넘어 이곳까지 올 수 있었어.
“제법 쓸모 있는 병신이지.”
―독설은 여전하군. 그 정도 애송이는 아닌데 말이지.
“한번 병신은 영원한 병신이지. 나처럼 말이야.”
―여전히 자책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자네 탓이 아닌데.
“모두 내 탓이야. 내가 강했으면 아내와 딸이 죽을 일도 없었고, 자네의 영혼이 검에 봉인되지도 않았을 거야.”
데이오든의 얼굴엔 회한의 빛이 가득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백 년이 지났지만, 그의 기억은 어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기만 했다.
오랜만의 여행에 신났던 아내와 딸.
그녀들의 오빠이자 외삼촌이었던 오랜 친구.
아내와 딸이 그토록 가고자 했던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센트럴 파크, 브로드웨이, 타임스 스퀘어.
평소 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보고 즐겼다.
아내와 딸이 웃는 모습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하나뿐인 친구와 함께 나누는 맥주 한 잔의 즐거움. 그때는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맨해튼 하늘을 찢고 나타난 거대한 드래곤.
놈은 가볍게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이지만 뉴욕이 쑥대밭이 되고, 절반이 넘는 인구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내와 딸도 그때 목숨을 잃었다.
눈앞에서 처참히 죽어 가던 아내와 딸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뿐인 친구 크레이온도 치명상을 입고 죽어 갔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크레이온은 각성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다.
크레이온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영혼을 데이오든의 검에 봉인했다.
그렇게 크레이온은 검에 스스로를 집어넣어 이제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크레이온이 없었다면 데이오든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벌써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랐다.
반대로 크레이온 역시 데이오든을 의지해 지옥 같은 삶을 이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끝이 머지않았다.
늙은이와 검의 생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고, 그 끝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죽기 전에 드래곤 한 마리 정도는 저승길에 동무로 삼아야지. 그래야 저승에서 그녀들을 봐도 쪽팔리지 않지.”
하이엘툰이 이 사태의 원흉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크라시아스가 지구를 테라포밍하도록 사주한 원흉 중 하나니까.
그때였다.
푸스스!
제온 주위에 부유하던 모래들이 기묘한 소리와 함께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크레이온이 말했다.
―새로운 스킬을 깨달았나 보군.
제온의 주위로 수많은 모래 구슬이 만들어졌다.
모래 구슬은 마치 위성처럼 제온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파바바방!
그렇게 회전하던 모래 구슬들이 마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사암으로 이뤄진 벽에 동전만 한 구멍이 뻥뻥 뚫리며 무너졌다.
마치 크레모아가 폭발한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스킬의 이름도 크레모아였다.
쇠구슬처럼 단단하게 뭉친 모래를 크레모아처럼 터트린다.
범위를 전방으로 한정하면 폭발력이 배가돼 강력한 대인 스킬이 되고, 넓게 터트리면 폭발력은 약한 대신 광역기가 된다.
크레모아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일단 개념은 잡았다.
더 발전시킬 여지도 충분했고, 잘만 하면 어지간한 각성자는 한 방에 침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온이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는 크레이온이 모습을 감춘 후였다.
제온이 데이오든에게 물었다.
“어떻게, 쓸 만한 것 같습니까?”
“아직 한참 모자라다.”
“쳇!”
“그래도 조금은 잘했다.”
“오오! 웬일이래? 적응 안 되게? 그냥 병신이라고 부르시지.”
“주접을 떠는구나. 조금 칭찬해 줬다고 네가 병신이 아닌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낫네. 흐흐!”
제온이 피식 웃었다.
***
두 사람은 한동안 죽음의 계곡에 머물렀다.
그동안 제온은 새로이 터득한 스킬을 갈고닦았으며, 데이오든 역시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데이오든이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제온은 알 수 있었다.
제온은 데이오든을 방해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파바바방!
사암에 동전만 한 구멍이 뻥뻥 뚫렸다.
크레모아가 남긴 흔적이었다.
이제 제법 자연스럽게 새로운 스킬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한번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마나가 뭉텅이로 사라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력이 강한 스킬일수록 마나가 많이 소모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C급이 되면서 마나의 양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그나마 엘루라의 눈물이 있어 다행이었다.
엘루라의 눈물이 없었다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남은 마나의 양을 계산하느라 제대로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제온이 다시 한번 크레모아를 쓰려고 할 때였다.
“크윽!”
갑자기 가공할 살기와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데이오든이 서 있었다.
“데이오든?”
“이젠 제법 쓸 만해졌구나.”
“네?”
“하지만 아직 많이 모자라다. 알고 있지?”
“네!”
“그 정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요?”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요?”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숨 가쁠 만큼 바쁘게 달려온 제온이었다.
지구에 출현했던 모든 각성자들 중에서 이렇게 빨리 등급이 오른 이는 제온이 유일할 것이다.
데이오든을 따라다니면서 단 한 순간도 방심하거나 쉰 적이 없었다.
덕분에 C급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데이오든의 눈엔 차지 않았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꺼내 들며 말했다.
“살아남아라.”
“네?”
“내 손에서 살아남아라. 그러면 지금보다 강해질 것이다.”
“뭐? 미친!”
제온이 그제야 데이오든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슈아악!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순간 엄청난 풍압이 제온을 덮쳤다.
제온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모래 장벽을 만들었다.
퍼석!
하지만 모래 장벽으로는 데이오든의 일격도 막을 수 없었다.
단단한 모래 장벽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고 제온이 드러났다. 그런 제온을 향해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제기랄!”
제온이 급히 모래 걸음으로 물러났다.
데이오든은 그런 제온을 향해 달려왔다.
그 어떤 마수에게도 느껴 보지 못했던 엄청난 압박감과 살기가 제온을 덮쳐 왔다.
데이오든의 눈빛과 살기에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슈와악!
크레이온이 다시금 제온을 향해 짓쳐 왔다.
스쳐도 중상, 제대로 맞으면 사망각이 나왔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제온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챠앗! 크레모아.”
제온이 새로이 터득한 스킬을 펼쳤다.
모래가 뭉쳐 구슬이 되고, 수많은 구슬이 탄환이 되어 데이오든에게 날아갔다.
타다다다당!
하지만 모래 구슬은 모두 거대한 크레이온에 막혀 우수수 떨어졌다.
“제기랄!”
나름 완벽한 대인 공격 스킬이라고 자부했던 크레모아가 이렇게 손쉽게 와해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설령 상대가 데이오든이라고 하더라도 조금은 당황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게 아니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쩌억!
데이오든의 검격에 거대한 사암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어떤 검술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제온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데이오든이 괴물 이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싸워 보니 상상을 초월했다.
단순한 일격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각성자들의 스킬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킬이 없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용할 필요가 없기에 펼치지 않는 것이다.
제온은 전력을 다해 데이오든에게 대항했다.
샌드 블라스터, 샌드 미사일, 크레모아까지 대인 스킬을 전부 사용했다.
하지만 그 어떤 스킬도 데이오든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데이오든이 물었다.
“그게 너의 전부냐?”
쉬악!
크레이온이 그의 몸을 단숨에 쪼갤 듯 날아왔다.
제온은 간발의 차이로 데이오든의 공격을 피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크레이온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데이오든은 진심이었다.
그는 제온의 성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원하는 수준까지 강제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진심으로 제온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죽고 말 것이다.
데이오든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제온의 전신에 소름이 올라왔다.
그는 투지를 끌어 올렸다.
자신이 아직 감히 데이오든에게 비벼 볼 만한 수준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데이오든의 검을 맞아 줄 생각 따윈 없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방법을 찾아내 공격한다.
그것이 데이오든을 따라다니면서 터득한 생존의 비결이었다.
그가 모래 지배력을 끌어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개 같은 늙은이야!”
“덤벼라! 병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