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4)
44화
“크헉!”
제온이 피를 토했다.
그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건틀렛을 낀 오른쪽 팔은 복합골절을 일으켜 덜렁거리고 있었고, 백 미터 상공에서 낙하한 충격으로 두 다리뼈도 부러졌다.
그래도 제온은 웃었다.
그의 건틀렛을 낀 주먹이 데이오든의 얼굴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오든의 고개가 약간 돌아가 있었고, 건틀렛이 닿은 부분엔 조그만 상처가 나 있었다.
목숨을 건 모험치곤 결과물이 보잘것없었지만, 제온은 만족했다.
기어이 데이오든의 얼굴에 한 방 먹였기 때문이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그 말을 끝으로 제온이 무너져 내렸다.
데이오든은 볼품없이 쓰러진 제온을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제온에게 일격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 미터 상공에서 몸을 던져 공격할 줄은 천하의 데이오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얼굴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제온이 그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무릇 각성자란 이래야 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과감하게 몸을 던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백 년 전의 각성자는 대부분 이렇게 몸을 던져 가능성을 찾아내고, 스킬을 발전시켰다.
“꺽! 꺼억!”
제온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몸을 던진 대가로 숨이 넘어가려는 것이다.
데이오든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는 아공간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제온에게 복용시켰다. 이어 포션 하나를 더 꺼내 제온의 전신에 뿌렸다. 그러자 제온의 상태가 급속도로 안정됐다.
그가 제온에게 사용한 포션은 네오 서울에서 만들어 낸 최상급의 힐링 포션이었다.
워낙 귀한 재료가 들어가고,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아 네오 서울에도 몇 병 존재하지 않는 귀한 물건이었다.
숨만 끊어지지 않으면 어떤 상처라도 단숨에 회복시키는 비약이었다.
데이오든의 아공간엔 그런 힐링 포션이 몇 병 더 있었다.
“하아!”
잠시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정신 차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제온은 잠시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완벽하게 정신을 수습한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아직 살아 있군요?”
“고작 그 정도 상처에 뒈진다면 살 가치가 없는 거지.”
“하여간…….”
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목숨을 건 모험의 대가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견딜 만했다.
데이오든이 제온을 보며 말했다.
“이제 겨우 쓸 만해졌구나.”
“고맙다고 할까요?”
“됐다. 이거나 받아라.”
데이오든이 아공간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제온에게 던졌다.
옷과 가죽으로 만든 갑옷, 로브였다.
옷은 네오 서울에서 구해 둔 것이었고, 갑옷과 로브는 던전에서 구한 아이템이었다.
갑옷과 로브 모두 A급 던전에서 구한 아이템으로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체불명의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잔뜩 적혀 있었다.
“물리적인 힘엔 조금 약하지만, 대신 마법 저항력이 큰 물건이다. 지금 네놈이 입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접 입지 않고요?”
“갑옷은 네놈 같은 약자나 입는 거지, 나에겐 필요 없다.”
“제기랄!”
제온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데이오든의 말을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더러워서라도 내가 강해지고 만다.’
제온은 옷을 갈아입고, 그 위에 갑옷을 걸쳤다.
갑옷을 입는 순간 전신에서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법적인 처리가 돼서 그런 것 같았다.
제온은 갑옷 위에 로브를 걸쳤다.
로브는 모래와 색깔이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모래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보호색인가?”
제온이 로브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다 입었으면 가자.”
“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머물렀던 죽음의 계곡을 떠났다.
그들이 머무는 사이 죽음의 계곡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자연이 만든 위대한 예술품은 볼품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 위에는 모래가 쌓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이곳은 모래로 뒤덮여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말이지.’
***
제온과 데이오든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말없이 걸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 집요하게 그들을 괴롭혔지만, 누구도 불평불만 한번 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백 년이나 이런 사막에서 지내왔고, 제온 역시 사막에서의 삶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응?”
갑자기 제온이 멈춰 섰다.
데이오든이 말없이 그런 제온을 바라봤다.
몇 달 동안 지옥의 계곡에서 머물면서 제온의 모래에 대한 감각과 지배력은 비약적인 상승을 이뤘다.
이제 사막에서의 감각만큼은 데이오든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제온이 저렇게 멈춰 섰다는 것은 무언가 느꼈다는 증거였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수원이 느껴지네요. 아무래도 이 근처에 오아시스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
데이오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 그 순간 갑자기 바닥의 모래에서 물기가 올라왔다.
처음엔 약간 축축한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바닥에 고이는 물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잠시 후엔 물에 젖은 모래가 바닥으로 푹 꺼지며 제법 커다란 오아시스가 생겨났다.
“호!”
제온의 말처럼 순식간에 오아시스가 생겨나자 데이오든이 살짝 놀랐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신기루와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가 또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막의 유사를 타고 엉뚱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제온은 미리 오아시스가 이곳에 생겨날 것을 감지했다.
일반적인 각성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제온이 데이오든에게 물었다.
“이곳에도 있겠죠?”
“모래 아귀 말이냐?”
“네!”
“있겠지. 이렇게 유사를 타고 이동하는 오아시스엔 꼭 한 마리씩 존재하니까.”
“역시 그렇군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나타난 오아시스는 어느새 연못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제온은 오아시스를 들여다봤다.
저 깊은 곳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바라보는 사람을 홀리는 요사한 등불의 정체는 바로 모래 아귀였다.
오아시스로 찾아온 사람이나 마수를 홀려 잡아먹는 C급 마수.
제온도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했던 적이 있었다.
데이오든이 아니었다면 그때 잡아먹혀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래 아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그런 세상이었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용납되는 곳.
모래 아귀도 살기 위해서 홀리는 거고, 제온도 살기 위해서 모래 아귀를 잡으려 했다.
제온이 그대로 오아시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를 감지한 모래 아귀가 급속도로 다가왔다.
점점 또렷해지는 등불, 그 뒤에 비치는 거대한 입.
놈은 제온을 다 잡은 먹잇감으로 생각했는지, 경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최고 속도로 다가왔다.
제온은 모래 아귀가 다가오기를 기다려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엑시온이 건틀렛 위에 응집됐다.
드릴처럼 뭉친 엑시온을 그대로 모래 아귀의 입에 집어넣었다.
푸확!
마치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입천장이 뚫린 모래 아귀가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보통의 모래는 물속에 들어오면 응집력이 떨어져 허무하게 부서지지만 엑시온은 달랐다.
모래술사 전용 무기인 엑시온은 물속에서도 제온이 원하는 형태로 유지됐다.
‘지금!’
제온이 모래 아귀의 입에 집어넣은 엑시온을 회전시켰다.
가아앙!
엑시온이 모래 아귀의 뇌를 순식간에 분쇄했다.
C급 마수인 모래 아귀의 최후였다.
모래 아귀가 배를 드러내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온은 모래 아귀를 밖으로 끌어냈다.
‘제법이군!’
데이오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모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물이었다.
그런데 제온은 물속에서도 엑시온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잘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온은 밖으로 끌어낸 모래 아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선 뱃가죽을 벗겼다.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아 로브를 만들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먼저 챙긴 것이다.
다음엔 부위별로 고기를 잘라 냈다.
모래 아귀의 고기는 버릴 게 하나 없었다.
마수 고기에 으레 존재하는 독기도 거의 없었고, 맛도 좋은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 쓸개였다.
전에 모래 아귀를 잡았을 때 데이오든은 제온에게 쓸개를 가장 먼저 먹게 했을 정도였다.
제온이 어른 몸통만 한 쓸개를 데이오든에게 건넸다.
“드세요.”
천하에 다시 없을 귀한 약이다. 근골을 보강하는 데 모래 아귀의 쓸개만 한 놈이 없었다.
이미 복용해 봤기에 얼마나 효과가 좋은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오든은 제온의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
“필요 없다.”
“드래곤과 싸우려면 미리미리 몸을 만들어 둬야지 않습니까?”
“겨우 모래 아귀의 간 따위가 내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허약한 네놈이나 양껏 처먹어라.”
“에이! 꼭 말을 해도…….”
데이오든은 대꾸도 하지 않고 모래 아귀의 다른 부위를 집어 들었다.
화르륵!
그의 손 위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마나로 만든 불꽃이었다.
부드러운 모래 아귀의 고기가 순식간에 익었다.
데이오든은 잘 익은 모래 아귀의 고기를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온도 모래 아귀의 쓸개를 먹기 시작했다.
쓸개는 생으로 먹을 때 효과가 가장 좋았다.
이번에도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저번처럼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모래 아귀 쓸개를 복용한 적이 있는 데다가, 그만큼 제온의 육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어른 몸통만 한 모래 아귀의 쓸개를 모조리 먹어 치웠음에도 제온의 배는 그대로였다.
포만감은 느껴지지만, 배가 나오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신기한 것은 똑같았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양껏 음식을 섭취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곳에서 모래 아귀의 고기를 모두 먹을 때까지 머물 생각이었다.
제온은 모래 언덕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이렇게 누워 있으니 세상 부러운 게 없었다.
처음엔 강제로 데이오든을 따라다녔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강해진 후부터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데이오든과 동행했다.
그렇게 격류에 휩쓸린 것처럼 정신없이 사막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왔다.
‘드래곤과의 전투라니? 미쳤군! 아니, 출세한 건가? 정말 모르겠다.’
네오 서울, 그것도 빈민가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보잘것없던 소년이 드래곤이 있는 곳까지 왔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심지어는 모래술사로 각성한 제온까지도 말이다.
마치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그러나 제온의 감상적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저벅!
저 먼 곳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마수인가?’
급히 몸을 일으키니 데이오든은 어느새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오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떤 마수를 만나도 긴장을 하지 않던 데이오든의 표정이 마치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여차하면 바닥에 꽂아 둔 크레이온을 휘두를 기세였다.
덩달아 제온도 긴장했다.
마침내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모습을 드러낸 이는 뜻밖에도 인간이었다.
놀랍도록 풍성하면서 윤이 나는 금발, 마치 햇빛 한번 쐬지 않은 것처럼 새하야면서도 주름 한 점 없는 피부에 기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눈은 마치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붉었고, 얇은 입술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인상적인 새하얀 치아가 보였다.
그가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