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사막의 어둠 속에서 남자를 보는 순간 제온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
분명 눈앞에 서 있었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온은 자신의 느낌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대지다.
아마 이곳에 들어온 인간은 제온과 데이오든이 유이할 것이다.
두 사람조차 악전고투 끝에 겨우 이곳에 도달했다.
데이오든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강자이기에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제온은 정말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때문에 제온의 전신에는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가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에겐 상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기괴할 정도로 새하얘서 실핏줄이 다 비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막을 홀로 거니는 자가 어떤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제온처럼 갑옷이나 로브를 입고 있지도 않았고, 데이오든처럼 크레이온이라는 검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사막의 밤을 유유히 산책하듯 거닐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엄청난 강자라는 의미였다.
그런 강자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좋은 뜻이 있어서 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제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이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일세. 멀리서 불빛을 보고 찾아왔지.”
“그래서 이름이?”
“하이엘툰일세.”
순간 제온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그럼 드래……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손님이지.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네.”
스스로를 하이엘툰이라고 밝힌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데이오든이 입을 열었다.
“도마뱀 새끼가 겁도 없이…….”
“너무하는군.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한낱 도마뱀으로 비유하다니.”
“정말 이곳에 숨어 있었군.”
“숨어 있다니? 내가 뭐가 두려워서 숨어 있는단 말인가? 오래전부터 그냥 이곳에 머물고 있었을 뿐이지.”
데이오든의 살기에도 하이엘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이곳엔 무슨 일이냐? 도마뱀!”
“호칭이 조금 거슬리지만, 마음이 넓은 내가 이해하기로 하지. 자네 같으면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가만있겠는가? 나도 마찬가지라네. 내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으니 궁금해서 나와 봤네.”
“불청객? 우리가?”
어둠 속에서 데이오든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광기 어린 그의 눈빛에도 하이엘툰은 태연했다.
“이렇게 경우 없는 짓을 하는 이를 가리켜 불청객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게 아니면 지구에선 의미가 다르게 통용되는 건가?”
“너희들이야말로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다. 도마뱀 새끼야! 지구를 테라포밍한 후, 강제로 이주하려 한 것이 누군데?”
“그건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네.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네. 지구에 테라포밍을 시도한 크라시아스는 신 이상의 존재라네. 최소한 우리 세계에서는 그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 그가 행한 일에 누가 감히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도마뱀 새끼 아니랄까 봐 혓바닥이 더럽게 길군. 그래 봤자 같은 도마뱀 아닌가?”
“그분과 같은 선상으로 평가를 해 준다면 이쪽에선 그저 고마울 뿐이지. 하지만 나는 감히 그분과 비교할 수 없네. 우리 세상에서 그는 창조주와 동격의 존재니까. 다만 편의상 우리와 같은 껍데기를 택했을 뿐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크라시아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자랑하려고 온 거냐?”
“자네의 적개심과 투쟁심은 정말 대단하군. 이 몸이 떨릴 정도로.”
하이엘툰이 데이오든을 보며 웃었다.
말과 달리 전혀 긴장하거나 위축된 표정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그냥 불가항력의 재해였다고 생각하게. 태풍, 혹은 지진처럼 말이야. 그러면 조금은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나보고 그냥 돌아가라는 말이냐?”
“정중히 권유하는 바일세.”
“개 좆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구나. 너라면 잊고 살 수 있겠느냐?”
“불행히도 망각은 나에게 허용된 축복이 아니라네. 하지만 묻어 두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네.”
“혓바닥만 살아서 나불대는구나. 그러니까 네가 병신인 거야. 내가 네 혓바닥을 뽑아 버려도, 그 병신 같은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마.”
“으음! 그건 사양하지. 텔레파시 마법으로 뜻을 전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목소리로 전달하는 게 훨씬 간편해서 말이지.”
하이엘툰은 아무렇지 않게 데이오든 가까이 접근했다.
제온은 숨을 죽인 채 하이엘툰을 지켜봤다.
하이엘툰은 자연스럽게 모래 아귀 사체로 다가갔다.
“오! 모래 아귀군. 나도 무척이나 좋아한다네. 별미라고 할 수 있지.”
쩌적!
그는 손을 뻗어 모래 아귀의 살점을 한 움큼이나 뜯어냈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런 하이엘툰의 모습에서 품위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 그거 제 건데요.”
“음?”
“제가 잡은 건데 허락을 받고 먹어야 하지 않나요?”
“하하! 그런가? 미안하군!”
“정 미안하면 뭐라도 하나 주시죠?”
제온의 헛소리에 하이엘툰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하다 입을 열었다.
“내 물건을 주긴 좀 그렇고, 나중에 혹시 살게 되면 이곳에서 북쪽으로 백 킬로미터 떨어진 돌산을 찾게. 그곳에 주인 없는 던전이 하나 있는데, 쓸 만한 물건들이 꽤 있을 걸세.”
“던전?”
“자네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걸세.”
“던전의 정체가 뭡니까? 어떻게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는 거죠?”
“으음! 흥미로운 질문이군.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이는 자네가 처음일세. 간단히 말하자면 던전은 쿠라얀의 파편일세. 원래는 쿠라얀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어야 하지만, 테라포밍과 반작용의 여파로 잔재가 시간과 공간의 틈에 유리된 거지.”
“그러니까 쿠라얀의 찌꺼기란 말입니까?”
“자네는 어려운 말을 매우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구만. 키메라로 만들면 쓸 만하겠어.”
“네?”
“아닐세! 그냥 쿠라얀과 지구 사이에 남겨진 보물 창고로 보면 옳을 걸세. 잘만 찾으면 쓸 만한 물건들이 꽤 있으니까.”
“하면 그 안에 있는 마수들은?”
“그 역시 쿠라얀의 잔재라네. 시간과 공간의 틈에 유리되어 소멸하지도 못하는 불쌍한 것들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불쌍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제온은 몰랐지만, 드래곤은 본래 그런 존재였다.
쿠라얀이라는 세계의 정점에 서 있던 존재들.
크라시아스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그들 위에 없었다.
심지어 신이라는 존재도 말이다.
신은 믿는 이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믿음이 모여 신격을 형성하고, 비로소 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쿠라얀이라는 세계가 멸망하고 대부분의 사람, 이종족들이 죽었을 때 신들 역시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드래곤은 그런 것들이 없어도 스스로 오롯한 존재로 살 수 있다.
믿음이 없어도, 쿠라얀에서 발휘하던 힘을 백 퍼센트 쓸 수 있었다.
쿠라얀에서도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지구에서도 절대적인 존재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이엘툰이 말을 이었다.
“내 가디언인 아카루크를 쓰러트리고 여기까지 온 것은 높이 평가하네. 하지만 내 가디언은 그 하나가 아니네. 오히려 그는 실패작에 더 가깝지. 내 진짜 가디언들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하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도마뱀 새끼야!”
“아까부터 말하지 않았나? 그냥 돌아가라고. 그럼 용서해 주겠다고. 나는 관대한 드래곤이니까.”
“개 좆같은 도마뱀 새끼!”
“그 말도 자꾸 들으니 기분이 나빠지는군. 한 번 더 지껄이면 자네라도 용서하지 않겠네.”
“용서는 개뿔……. 직접 나설 용기도 없어 인형이나 보내온 주제에…….”
“뭐?”
쉬아아악!
순간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하이엘툰이 깜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크레이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거어억!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하이엘툰의 몸이 두 동강이 났다.
상·하체가 분리되어 나뒹구는 하이엘툰의 몸뚱이. 그런데 분리된 부분에서 피가 나지 않았다.
데이오든이 그런 하이엘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비겁한 도마뱀 새끼. 가짜를 보내 헛소리나 나불나불 지껄이기나 하고. 너희 족속들이 다 그렇지.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다.”
“하하! 이건 예상 못 했군. 어쨌거나 자네 뜻은 잘 알았네.”
허리가 잘린 채로 하이엘툰이 웃었다.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에 제온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높이 치켜들며 말했다.
“곧 보자, 병신 도마뱀 새끼야!”
푸욱!
크레이온이 그대로 하이엘툰의 머리에 꽂혔다.
그제야 하이엘툰의 전신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데이오든의 능력인 죽음의 권능이 완벽한 죽음을 선사한 것이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키메라 따위를 보내 협박하다니.”
“이게 키메라란 말입니까?”
“그래! 비겁한 도마뱀 새끼가 직접 나타날 용기가 없어 인조 생명체를 보낸 것이다. 카악! 퉤엣!”
데이오든이 키메라에 가래침을 뱉었다.
제온은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
“크윽!”
하이엘툰이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뜨자 비늘이 부딪치며 기묘한 소음을 흘렸다.
촤르륵!
머리부터 꼬리까지 무려 백오십 미터에 달하고, 몸 전체에 눈부신 황금빛 비늘이 덮여 있다.
머리엔 두 개의 뿔이 나 있고, 몸통엔 한 쌍의 날개가 곱게 접혀 있었다.
네 개의 다리는 거대한 지하 공동을 떠받칠 수 있을 만큼 굵고 튼튼했다.
하이엘툰은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였다.
키메라와 링크가 끊어지면서 영혼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때 하이엘툰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괜찮으십니까?”
“키메라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 죽음의 권능을 가진 게 사실이었군.”
하이엘툰이 거대한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죽음의 권능 말입니까?”
“그래! 쿠라얀에서도 오직 크라시아스만 가지고 있던 권능을 한낱 인간 따위가 갖고 있다니 놀랍군.”
하이엘툰이 조그만 여자를 바라봤다.
상반신은 인간인데 하반신은 거미 몸통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생명체를 접붙여 새로운 생명체로 만들어 내는 키메라 마법이었다.
그의 특기 중 하나가 바로 여러 가지 생명체를 연구해 키메라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본래 쿠라얀에서도 키메라를 만드는 것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제아무리 쿠라얀의 정점에 존재하는 드래곤이라도 키메라 마법에 손을 대면 다른 드래곤의 제재를 받았다.
그 때문에 하이엘툰 역시 쿠라얀에서는 감히 키메라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 지구는 달랐다.
쿠라얀과 달리 이곳에선 어떤 제재도 없었다.
지구로 넘어온 드래곤은 각자만의 영역을 구축하느라 바빠 다른 개체의 삶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덕분에 하이엘툰은 평소 관심이 많던 키메라 마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거미 여인, 이블리스도 그렇게 만들어 낸 키메라 중 하나였다.
인간과 거미를 융합해 만들어 낸 그녀는 인간의 영민함과 거미의 교활함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레어를 관리하는 중책을 맡겼다.
이블리스는 고개를 숙인 채 하이엘툰의 눈치를 살폈다.
하이엘툰의 레어는 온통 황금으로 되어 있었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황금이었다.
테라포밍 반작용 여파로 지상 대부분이 모래로 변했지만, 지하 깊은 곳의 광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이엘툰은 골드 드래곤답게 황금이 가득한 광맥에 레어를 만들었다.
황금 레어 안에서 그는 키메라를 마음껏 연구했다.
마음에 드는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 하이엘툰은 각 종족의 여자들을 레어로 데려왔고, 직접 폴리모프해 교미했다.
그렇게 얻은 자식들을 마수와 결합해 키메라로 만들어 냈다.
이블리스도 동일 과정으로 만든 키메라였고,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도 모두 키메라로 이뤄져 있었다.
그는 황금으로 이뤄진 레어를 두고, 모래로 이뤄진 바깥세상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 그래서 본체 대신 키메라를 내보냈는데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데이오든!”
하이엘툰의 황금빛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감히 자신의 분신을 죽인 데이오든에게 분노한 것이다.
분신으로 만든 키메라는 매우 특별했다.
일부나마 그의 영혼을 담을 그릇으로 만들었기에 드래곤의 권능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키메라를 죽일 수 없었다.
링크가 끊겼다는 것은 키메라의 완벽한 죽음을 뜻했다.
키메라에게 완벽한 죽음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도 죽음을 내릴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그런 권능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했다.
하이엘툰이 이블리스에게 명했다.
“가디언들을 움직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