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제온이 코를 찡그렸다.
“이게 키메라란 말이지?”
살아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죽은 키메라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죽은 곤충에서나 나는 옅은 비린내와 비슷했다.
제온은 쭈그려 앉아 키메라를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일반적인 인간의 근육과는 결이 달랐다.
겉 부분은 곤충처럼 키틴질로 이뤄져 있었고, 안쪽의 인대는 마치 철사를 꼬아 만든 것처럼 탄력과 강도가 엄청났다.
무엇보다 이질적인 것은 내부 장기였다.
인간의 장기처럼 복잡하지 않고, 모양도 단순했다.
똑같은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게끔 배치된 것이 느껴졌다.
제온이 손으로 장기를 헤집으며 내부를 살폈다.
예전 같았으면 끔찍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보다 더 처참한 경험을 많이 했기에 태연할 수 있었다.
“내부 장기도 마수의 것을 이식한 건가? 끔찍하군!”
제온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이 정도면 아예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 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온의 시선이 문득 키메라의 심장으로 향했다.
심장엔 강한 마나가 느껴지는 돌이 박혀 있었다.
“마정석? 그럼 마정석을 연료로 사용한 건가?”
새삼 드래곤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느껴졌다.
네오 서울에서도 마정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의 연료로 사용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미쳤구만.”
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섰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이종족들이 그러더구나. 드래곤은 마법의 조종이라고. 놈들에겐 마법을 쓰는 것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놈들의 마법이 폭풍이라면 인간들이 쓰는 마법 따윈 산들바람에 불과하다고.”
“으음!”
“이제 알겠느냐? 이제부터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은 그렇게 어마 무시한 놈이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몇십 배는 더 높을 것이다.”
“두려우면 돌아가라는 이야기 따윈 하지 마요. 이미 내 결심은 확고하니까요.”
제온이 먼저 데이오든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데이오든이 코웃음을 치며 아공간을 열었다.
“이거나 받아라.”
그가 아공간에서 조그만 병 하나를 꺼내 제온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정말 뒈질 것 같으면 마셔라. 어지간한 상처 따윈 단숨에 회복시켜 줄 것이다.”
“그럼 이게 엘릭서 같은 겁니까?”
제온이 눈을 크게 떴다.
엘릭서는 연금술 분야의 각성자들이라면 누구나 만들기를 꿈꾸는 전설의 영약이었다.
어떤 상태 이상도 단숨에 해제하고, 불로불사에 이를 수 있었다.
실제로 네오 서울의 연금술사들은 엘릭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코웃음을 쳤다.
“흥! 엘릭서가 진짜 존재할 리 없지. 미치광이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각성제다. 재생력과 회복력이 탁월한 마수들의 피를 이용해 제조했다고 하더구나.”
“마수의 피? 진짜 마셔도 괜찮은 겁니까?”
“그러니까 뒈질 것 같으면 마시라는 거다. 어차피 뒈질 거면 모험이라도 해 봐야 하니까. 각성 성분 때문에 고통을 이기는 데 오히려 힐링 포션보다 나을 거다.”
“알겠습니다.”
제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병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드래곤과의 결전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 강대한 데이오든이 이 정도로 자신을 챙겨 준다는 것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데이오든은 크레이온을 꽉 쥔 채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드래곤이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
제온과 데이오든은 오아시스가 사라질 때까지 머무르면서 모래 아귀의 고기를 모조리 먹어 치웠다.
모래 아귀의 고기는 훌륭한 영양소였다.
일생일대의 결전을 앞두고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데이오든이 말했다.
“이제 가자.”
“네!”
제온이 로브의 모자를 깊이 눌러쓰며 대답했다.
그동안 푹 쉬고, 양껏 먹었기에 몸 상태는 최고였다.
감각은 예민했고, 전신엔 활력이 넘쳐흘렀다.
이렇게까지 몸 상태가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데이오든은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머리카락이 사자의 갈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제온은 모래 걸음을 펼쳐 데이오든의 뒤를 따랐다.
뜨거운 뙤약볕에 모래가 달궈져 강렬한 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제온과 데이오든의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걸은 그들을 맞이해 준 것은 사막 한가운데 솟아 있는 기둥들이었다.
육각형의 기둥 수십여 개가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했다.
제온이 앞으로 나서며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고운 모래 입자를 타고 그의 감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지하겠군.’
제온은 감각을 지하로 집중했다.
백 미터, 이백 미터…….
그의 감각이 끝없이 지하로 파고들었다.
제온의 감각이 미치는 영역은 지하 오백 미터까지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걸리는 게 없었다.
제온이 지배력을 풀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하 오백 미터보다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도마뱀 새끼답게 구멍을 깊이 파고 숨었을 거야. 놈들은 겁쟁이거든.”
“겁쟁이라고요? 아닌 것 같은데.”
“놈들이 진짜 용기가 있었다면 이종족들을 부추겨 크라시아스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직접 움직였어야 해. 놈들은 강자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약자 앞에서만 강한 척하지. 그게 겁쟁이가 아니면 무어라고 할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제온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기둥 앞에 도착했다.
기둥 하나하나가 몇 사람을 합친 것만큼이나 굵었다.
육각형의 기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잔뜩 새겨져 있었다.
제온이 기둥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 수 없으니…….”
화학!
그 순간 제온이 손을 댄 기둥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뭐야?”
제온이 깜짝 놀라 손을 댔지만, 빛무리는 제온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진 자리엔 제온도 보이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중얼거렸다.
“기둥이 일종의 전송진 같은 건가 보군.”
그가 제온이 짚었던 기둥을 손으로 짚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빛무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기둥 하나당 전송할 수 있는 생명체는 하나라는 건가?”
데이오든이 다른 기둥을 손으로 짚었다.
순간 환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
제온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거대한 마수가 걸어 다녀도 될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동굴 안이었다.
암벽으로 이뤄진 벽은 금맥이 지나가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답게 금맥이 지나가는 암반 안쪽에 레어를 마련한 것이 분명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엄청난 양의 금을 보고도 크게 욕심이 동하지는 않았다.
지금 세상에서 금은 그리 큰 가치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데이오든은 다른 곳으로 전송된 건가?”
제온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서도 데이오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데이오든도 분명 기둥을 짚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전송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를 찾을 때까지는 혼자 움직여야겠군.”
데이오든과 헤어져 혼자 드래곤 레어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했지만, 드래곤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런 드래곤을 혼자 마주해야 할지 모르니 겁이 나는 것이 당연했다.
제온은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두렵다고 언제까지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설령 이 동굴의 끝에 드래곤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야 했다. 그래야만 데이오든을 만날 수 있었다.
제온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곳은 그에게 불리한 환경이었다.
광맥 안에 있기에 모래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엑시온이 있어 다행이었다.
제온은 언제든지 엑시온을 발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제법 깊숙이 들어온 것 같은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제온은 방심하지 않았다.
경험상 마음이 느슨해질 때쯤 꼭 사건이 터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스스스!
맞은편 동굴 쪽에서 무언가 미세한 소성이 들려왔다.
듣는 것만으로 전신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서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기분 나쁜 소음이었다.
“뭐냐?”
제온이 엑시온을 방출하며 전방을 노려봤다.
순간 어둠을 뚫고 소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뱀이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쌍두사에서부터 네 개 달린 놈까지 있었다.
어떤 놈들의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고, 또 어떤 놈들은 두 개, 혹은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머리가 뱀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달랐다.
형태도, 재질도, 색깔,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키메라구나.”
평범한 마수가 아니라 하이엘툰이 만들어 낸 키메라가 분명했다.
쿠워어어!
제온을 보자 키메라들이 괴성을 내뱉으며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미친 듯이 다가오는 키메라들을 보며 제온이 엑시온을 방출했다.
츠아아!
그의 전신이 엑시온에 둘러싸였다.
그 상태 그대로 제온이 키메라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콰가가가!
엑시온이 그를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하며 달려드는 키메라를 갈아 버렸다.
크에에엑!
케엑!
엑시온에 갈려 나가는 키메라들의 비명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살점이 터져 나가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치이익!
키메라의 피에 산성 독이라도 들어 있는지 바닥이 녹아내렸다.
제온의 전신에도 키메라의 피가 떨어졌지만, 데이오든이 준 로브와 갑옷 덕분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콰가가각!
그 순간에도 키메라들이 엑시온에 갈려 나갔다.
거대한 동굴 안에 순식간에 분해된 키메라의 사체들이 가득 찼다. 그래도 키메라들은 어디선가 계속 기어 나와 제온을 공격했다.
제온은 그 모든 키메라를 하나하나 분쇄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번쩍!
갑자기 동굴 안이 환한 빛으로 물들더니 한 줄기 뇌전이 제온을 강타했다.
쾅!
“크윽!”
폭음과 함께 제온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그런 제온의 전신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엑시온이 보호해 줘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 정통으로 맞았으면 그대로 몸이 터져 나갔을 뻔했다.
스아아!
그때 키메라들을 헤치며 유난히 큰 뱀이 나타났다.
큰 뱀의 머리엔 뿔이 나 있었다.
뿔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뇌전은 놈이 발사한 것이었다.
‘특수 개체인가?’
마수 중에서도 간혹 스킬을 사용하는 놈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나타난 큰 뱀도 뇌전과 관련된 스킬을 사용할 줄 아는 것 같았다.
번쩍!
그 순간 큰 뱀의 뿔에서 다시 뇌전이 터져 나왔다.
제온은 뇌전을 피해 몸을 날렸다.
쾅!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가며 바닥이 움푹 팼다.
비록 뇌전은 피했지만, 그 때문에 엑시온이 잠시 통제력을 잃고 흩어졌다.
키메라들은 그런 제온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제온이 건틀렛을 낀 주먹으로 선두의 키메라를 후려쳤다.
쾅!
폭음과 함께 키메라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제온은 미친 듯이 키메라들을 공격하며 소리쳤다.
“우습게 보지 마라. 뱀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