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제온의 주먹에서 엑시온이 마음대로 형태를 바꿨다.
어떨 때는 송곳이 되어 키메라 뱀을 꿰뚫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도끼가 되어 참수하기도 했다.
잠시도 숨을 돌릴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연계가 끊기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엑시온의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필사의 노력을 했다.
번쩍!
그 순간 다시 뇌전이 날아왔다.
특수 개체가 공격한 것이다.
뇌전을 모아 일점에 공격하는 라이데인(Lightthein)이라는 스킬이었다.
라이데인은 집요하게 제온을 노렸다.
제온은 엑시온으로 막을 만들어 라이데인을 막아 냈다.
새하얀 뇌전의 편린이 엑시온에 막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키에에엑!
크엑!
키메라들이 전기에 감전돼 살이 터져 나가거나, 새까맣게 탔다.
‘오호!’
제온이 눈을 빛냈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꼭 자신이 직접 움직여 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적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그 순간 특수 개체가 다시 라이데인을 날렸다.
제온은 엑시온을 막 형태로 만들어 비스듬히 기울였다.
파지지징!
뇌전이 엑시온 막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제온이 기울기를 조절해 뇌전이 더 잘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제온이 직접 움직여 싸울 때보다 훨씬 많은 키메라 뱀들이 죽어 나갔다.
몇 번이나 자신의 공격 때문에 키메라 뱀들이 더 많이 죽어 나가자 특수 개체도 제온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는 특수 개체와 제온 사이에 길이 열리고 난 후였다.
제온은 단숨에 공간을 단축해 특수 개체 앞에 도달했다.
“뒈져랏!”
제온은 건틀렛에 엑시온을 집중해 후려쳤다.
퍼억!
특수 개체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제온은 다음 특수 개체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특수 개체들을 찾아내어 파괴하고, 주변의 마수들을 휩쓸다 보니 어느새 제온 혼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하아! 하아!”
제온이 잠시 벽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단시간에 전력을 쏟아 내었기에 탈력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가하게 쉬면서 체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오든은 드래곤을 향해 전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제온 역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제온은 다시 움직였다.
통로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키메라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무려 드래곤의 레어였다.
겨우 이 정도 키메라로 가디언을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크고, 강력한 무언가가 저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온은 다시 한번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체력도 많이 남아 있었고, 마나도 조금씩이지만 착실히 회복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어떤 적을 만나도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온은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감각을 끌어 올린 채로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적이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제온은 방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제온의 눈앞에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고대의 콜로세움처럼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었다.
높이만 수십 미터에 직경이 수백 미터가 넘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모래였다.
‘뭐지?’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래술사인 그에게 가장 큰 무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당연히 반겨야 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기에 거대한 콜로세움 같은 공간의 바닥을 모래가 채우고 있을 것이다.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올려 모래 속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였다.
스르륵!
갑자기 무언가 모래를 헤치며 나타났다.
“뭐야?”
제온이 깜짝 놀라 모래를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몸이 저주에 당한 것처럼 굳었다.
실제로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래를 헤치고 나온 존재가 너무나 뜻밖의 것이라 놀란 것이다.
“여자?”
그것도 옷자락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여자였다.
머리는 신비한 푸른색 해초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눈이 내린 것 같은 새하얀 피부에는 은은한 광채가 나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과 입술은 마치 루비를 갈아 넣은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여인에게선 관능미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제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태어나서 여자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제온이었다.
생존하는 데 바빠 여자를 사귀기는커녕 손 한번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여자에 대한 내성이 전무한 것이다.
더군다나 갑자기 나타난 여자는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었다.
제온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어지럽게 방황했다.
“어어!”
진짜 저주에 당한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전라의 여인은 제온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인이 제온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뇌쇄적인 눈빛과 표정으로 제온을 홀리고 있었다.
여인의 눈동자에선 붉은빛이 짙어지고 있었고, 제온은 입을 떡 벌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소년에게 전라의 여인은 너무나 강렬한 유혹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하복부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두 손은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호호!”
여인은 그런 제온을 보고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 모습이 제온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저 여인을 안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의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은 처음이었다.
제온이 손을 뻗었다.
여인이 싱긋 웃으며 마주 잡았다.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욕망은 더 강해지고, 빨리 여인을 물고 빨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여인은 그런 제온을 애태우기라도 하듯이 잠시 주위를 맴돌았다. 제온은 그런 여인을 따라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초점을 잃고 있었다.
여인이 그제야 제온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과 얼굴이 닿을 정도로 말이다.
여인이 찬찬히 제온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입술에 접근했다.
그녀의 달큰한 숨결이 제온의 후각을 자극했다.
키스하기 직전 제온의 눈동자에 갑자기 초점이 돌아왔다.
여인의 숨결에서 나는 냄새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죽은 곤충에서나 나는 옅은 비린내.
분명 얼마 전에 맡은 냄새였다.
“키메라구나!”
제온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여인의 가슴에 주먹을 날렸다.
쾅!
폭음과 함께 키스하기 적진의 여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런 여인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씨발! 하마터면 키메라하고 그 짓을 할 뻔했네. 내 첫 경험을 키메라 따위에게……. 으으!”
제온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평생의 놀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용서 못 해!”
제온이 분노를 터트렸다.
분노한 것은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죽여 버리겠다.”
츄화학!
여인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감춰져 있던 실체가 드러났다.
“뭐야? 저게 말이 돼?”
제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래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마수 히드라였다. 제온이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부위는 사실은 히드라의 꼬리였다.
히드라와 서큐버스를 조합해 만들어 낸 거대한 키메라였다.
키메라의 이름은 카에슈.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삼대 가디언 중 하나였다.
하이엘툰은 자신의 레어 요지에 삼대 가디언을 배치했다.
카에슈는 그중 하나로 강력한 재생력과 독, 강력한 물리적 힘을 자랑했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비늘은 엄청난 항마력을 품고 있어 마법 공격에 내성을 가졌다.
히드라는 무려 A급으로 분류되는 마수였다.
겨우 C급에 불과한 제온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아! 미치겠네!”
아무리 근래 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해 C급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A급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C급과 D급의 격차보다 더 큰 것이 A급과 B급의 격차였다.
하물며 상대는 A급이었고, 제온은 C급에 불과했다.
노력이나 근성 따위론 절대 메울 수 없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다.
더군다나 서큐버스와 융합되면서 뛰어난 지능과 매혹이라는 스킬마저 얻었다.
조금 전 제온이 이성을 잃고 욕망에 휩쓸린 것도 서큐버스의 매혹 스킬에 걸렸기 때문이다.
키메라 특유의 비린내가 아니었으면 제온은 모든 정혈을 갈취당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히드라는 서큐버스와의 결합으로 A급이지만, S급에 가까운 엄청난 힘을 소유하게 됐다.
그런 존재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죽어랏!”
그 순간 카에슈가 공격했다.
아홉 개의 머리들이 독액을 토해 낸 것이다.
“칫!”
제온이 입술을 깨물며 급히 피했다.
치이익!
독액이 닿은 모래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독액에 직격당했으면 제온도 저렇게 됐을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등골에 소름이 올라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말의 희망을 봤다.
거대한 지하 공동을 모래가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히드라와 서큐버스가 융합된 카에슈가 있는 곳이 바로 모래 위였다.
모래는 그의 본질이자 무기였다.
비록 등급에서 현격히 차이 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딱!
제온이 손가락을 튕겼다.
가아앙!
히드라를 중심으로 모래가 고속 회전했다.
샌드 믹서를 펼친 것이다.
콰가각!
거친 모래 입자가 히드라의 표면을 무서운 속도로 긁고 지나갔다. 하지만 히드라의 비늘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B급 이상의 마수만 가질 수 있는 역장이 히드라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샌드 믹서는 히드라에게 상처를 입히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만 부채질했다.
쿠워어어!
아홉 개의 머리가 앞을 다퉈 제온을 공격해 왔다.
제온이 전면에 크레모아를 터트렸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쇠구슬처럼 뭉친 수천 개의 모래 구슬이 히드라의 머리들을 강타했다.
어지간한 각성자도 단숨에 골로 보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스킬이었다. 하지만 히드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쿠우우!
히드라의 머리들이 흩날리는 모래 먼지를 뚫고 나타났다.
“제기랄!”
제온이 급히 모래 걸음을 펼쳤다.
딱!
그가 있던 자리를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물었다.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저 커다란 이빨에 갈가리 해체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홉 개의 머리는 앞을 다퉈 제온을 공격했다.
제온은 샌드 미사일, 크레모아를 연달아 펼쳤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카에슈의 거대한 머리엔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제온은 필사적으로 카에슈의 공격을 피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호호! 죽어라.”
히드라의 꼬리에 융합된 서큐버스가 제온을 비웃었다.
순간 제온의 눈이 빛났다.
‘저 여자도 히드라와 같은 강도를 지녔을까?’
히드라야 엄청난 강도의 비늘로 둘러싸여 있다지만, 서큐버스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제온이 타깃을 수정했다.
서큐버스 뒤쪽에서 모래로 이뤄진 병사들이 소리도 없이 일어섰다.
제온이 히드라와 서큐버스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이 샌드 솔저 열 기가 움직였다.
샌드 솔저들이 은밀하게 서큐버스를 공격했다.
“꺄아아악!”
예상치 못한 공격에 서큐버스가 비명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