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제온은 카에슈의 아홉 머리 중 하나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지리는 거대한 마수가 모래 위에 몸을 길게 누이고 있었다.
아홉 개의 머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널브러진 채 혀를 길게 내밀고 있었다.
카에슈의 어디에서도 생기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확실히 숨이 끊어진 것이다.
“이걸 내가 잡았다는 거지?”
제온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꼼수를 동원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잡은 거대 마수였다.
그것도 S급에 가까운 드래곤의 가디언.
네오 서울의 그 어떤 각성자도 이런 위업은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오든은 드래곤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제온은 거대한 카에슈의 사체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바닥에 깔려 있던 모래들이 마치 먼지처럼 일어나 제온을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이 꼭 불빛을 따라 움직이는 부나방 같았다.
그렇게 제온은 모래를 꼬리처럼 뒤에 달고 움직였다.
확실히 A급은 달랐다.
단지 운용할 수 있는 마나가 대폭 늘어난 것만이 아니었다.
감각, 모래에 대한 지배력, 육체의 활성도, 모두 예전과 비할 수 없이 상승했다.
이전에는 그가 모래를 부리기 위해서 힘을 억지로 쥐어짜 냈다면, 지금은 모래가 알아서 제온을 따라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을 관계가 역전되었다고나 할까.
지금 제온이 느끼는 기분이 그랬다.
제온이 문득 전방을 바라봤다.
지독한 어둠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온은 느낄 수 있었다.
저 어두운 통로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키메라들을 말이다.
카에슈 같은 가디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위협이 될 만큼 많은 수가 어둠을 엄폐물 삼아 대기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은밀히 숨어 있는 키메라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A급이 되자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적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방비 상태로 뛰어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제온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마침 제온에겐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
제온이 부나방처럼 따라오던 모래들을 움직였다.
가아앙!
모래들이 무섭게 회전하며 동굴 안쪽으로 날아갔다.
샌드 믹서를 응용한 것이다.
모래들은 비좁은 동굴 안을 가득 채우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에엑!
키악!
앞쪽에서 키메라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모래들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숨어 있는 키메라들을 갈아 버린 것이다.
제온은 모래가 휩쓸고 지나간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벽과 바닥엔 잔혹하게 갈려 나간 키메라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차박! 차박!
제온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고인 핏물이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마침내 모든 마수를 처리한 모래가 다시 제온의 주위로 돌아왔다.
구름처럼 제온 주위를 휘도는 모래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평소 이 정도 위력의 스킬을 썼다면 마나가 급속도로 고갈되어 힘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호수에서 양동이로 물을 몇 동이 퍼낸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걱정 없이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한참을 걷자 다시 거대한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이번엔 또 어떤 가디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기에 제온은 잔뜩 긴장한 채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안에 펼쳐진 풍경은 그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가디언으로 짐작되는 키메라가 존재하긴 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족히 이십 미터는 넘어 보일 듯한 거대한 괴물은 오우거가 분명했다.
다만 보통의 오우거와 달리 두 개의 머리통이 달려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정식 명칭은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통에는 여덟 개의 팔이 달려 있었고, 등 뒤엔 날개까지 붙어 있다.
놈도 다른 마수와의 결합으로 탄생한 키메라인 것이다.
외눈박이 거인인 싸이클롭스와 함께 이족보행 마수 중 위험도 최상으로 분류되는 것이 오우거였다.
거대한 육체와 막강한 항마력,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무장해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오우거의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는 평범한 오우거보다 몇 배나 강했다.
골드 드래곤 하이엘툰이 가디언으로 삼았을 정도면 이 녀석 역시 특수 개체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거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피부는 쩍 갈라져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두 개의 머리는 몸통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가 트윈 헤드 오우거 키메라를 이 꼴로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데이오든!”
트윈 헤드 오우거를 이렇게 장난감 부숴 버리듯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인물은 데이오든밖에 없었다.
데이오든이 이곳을 지나간 것이 분명했다.
제온은 급히 트윈 헤드 오우거를 지나쳐 뒤쪽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수많은 키메라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이 역시 데이오든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데이오든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모든 것을 모조리 분쇄했다.
그 어떤 키메라도 데이오든의 발목을 잠시도 붙들어 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제온은 키메라의 사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키메라의 사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키메라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악취와 비린내에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제온은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자 다시 거대한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지하 공동에도 마찬가지로 가디언처럼 보이는 거대한 마수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죽어 있는 것은 끔찍하게도 온갖 키메라의 사체들이 뭉쳐 있는 거인이었다.
“시체 골렘인가?”
카에슈와 트윈 헤드 오우거 키메라가 마수들을 조합해 만들어 낸 생명체라면, 시체 골렘은 하이엘툰이 아예 무에서 창조해 낸 괴물이었다.
키메라의 사체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생명체로 만드는 것은 카에슈나 트윈 헤드 오우거 키메라보다 몇 배나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체 골렘조차 데이오든의 발목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
시체 골렘 가슴 부위에 핵이 보였다.
카에슈의 것과 똑같은 마정석이었다.
하이엘툰이 마정석을 핵으로 삼아 시체 골렘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카에슈의 것과 달리 시체 골렘의 마정석엔 사악한 기운이 가득 느껴졌다.
이런 마정석의 기운을 흡수해 봤자 부작용만 생길 것이 분명했다.
콰앙!
제온은 크레모아를 터트려 마정석을 날려 버렸다.
마정석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고, 안에 서려 있던 기운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제온이 시체 골렘의 사체를 지나갈 때였다.
콰르르릉!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하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과 벽에 균열이 가고, 그 사이로 모래들이 흘러 들어왔다.
콰릉! 콰르릉!
흔들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제온이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 지하 공간이 흔들리고, 앞쪽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이 짓이겨지고, 몸 전체가 날아갈 것 같은 거센 광풍이었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데이오든이 드래곤과 싸우고 있구나.”
지하 공동 안의 대기와 마나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직 그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기 전인데도 피부에 소름이 돋고,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제온의 육체가 먼저 공포를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의 머리였다.
일순 뇌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엄청난 존재감이 제온의 머리에서 생각을 날려 버린 것이다.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직 드래곤을 직접 대면하기 전인데도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그를 억눌렀다.
제온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선을 따라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것이 드래곤의 위력인가?’
왜 드래곤이 쿠라얀이라는 세상의 정점에 존재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도 A급 각성자인데,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보통의 각성자라면 벌써 피를 토하고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B급 이하의 각성자들이 제아무리 많이 모여도 드래곤에 타격을 주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제기랄!”
제온이 욕설을 내뱉으며 억지로 일어났다.
기합으로 드래곤의 존재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 그의 전신은 땀으로 목욕한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누가 이 정도로 겁먹는대?”
제온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쿠우우!
앞쪽으로 갈수록 강력한 바람이 불어왔다.
폭풍 같은 바람에 제온을 따라오던 모래가 산산이 흩어졌다. 그래도 제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제온은 마침내 거대한 지하 공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지하 공동은 온통 황금으로 이뤄져 있었다.
벽도, 천장도 온통 황금으로 된 거대한 공동 한가운데 길이만 무려 백오십 미터에 달하는 골드 드래곤과 조그만 인간 하나가 격렬히 싸우고 있었다.
하이엘툰과 데이오든이었다.
콰아아앙!
둘의 격돌에 광활한 지하 공간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나마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기에 버티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즉 붕괴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미친!”
두 존재가 싸우는 광경을 본 제온이 눈을 부릅떴다.
하이엘툰은 그 거대한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연신 마법을 쓰고 있었다.
때로는 허공에서 화염이 폭발하고, 전류 다발이 날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공격을 데이오든은 유유히 피하며 하이엘툰을 공격했다.
데이오든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벽을 박차고 움직였다.
타닥!
벽을 두어 번 박차는 것만으로 하이엘툰 지척까지 접근한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힘껏 휘둘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하이엘툰의 거체가 뒤로 주르륵 밀렸다.
절대 방어막인 앱솔루트 실드 덕분에 상처를 입진 않았지만, 무시 못 할 충격을 받았다.
앱솔루트 실드를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에 하이엘툰이 놀라 눈을 번뜩였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가진 거지?
“인간을 우습게 보지 마라. 도마뱀 새끼야!”
데이오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그런 그를 향해 하이엘툰이 리버스 그라비티를 펼쳤다.
순식간에 중력이 역전하며 데이오든의 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날개가 없는 이상 역전된 중력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데이오든에겐 크레이온이 있었다.
크레이온에겐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데이오든은 크레이온에 의지해 하이엘툰의 마법에서 빠져나왔다.
“챠앗!”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앞세워 전력으로 부딪혔다.
쩌어어엉!
앱솔루트 실드가 금방이라도 깨질 듯 크게 출렁였다.
이에 하이엘툰이 크게 놀랐다.
데이오든이 가디언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큰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의 조종이자, 최강의 육체를 가진 자신이 한낱 인간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이엘툰이 생각하는 데이오든은 조금 위험한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부딪힌 데이오든의 무력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내재된 전투력이나 무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뒈져랏! 병신 도마뱀!”
콰아앙!
데이오든의 강렬한 일격에 하이엘툰의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하이엘툰의 황금빛 두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콰콰쾅!
순간 지하 공동 전체에 뇌전 다발이 비처럼 내리꽂혔다.
엄청난 굵기의 뇌전이 데이오든이 피할 공간을 주지 않고 지하 공동 내부를 가득 채웠다.
“크하하! 이 정도로는 나를 쓰러트리지 못한다.”
그러나 데이오든은 뇌전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했다.
그는 광기를 발산하며 하이엘툰에게 달려들었다.
광전사와 같은 데이오든의 모습에 하이엘툰이 자신도 모르게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온은 주먹을 꽉 쥔 채 데이오든의 싸움을 지켜봤다.
분하지만 그가 감히 끼어들 수준의 전투가 아니었다.
“제기랄!”
“그렇게 분해 할 것 없어요. 머지않아 당신도 데이오든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해질 테니까요.”
그때 바로 곁에서 처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거미 여인이 상·하체가 분리된 채 바닥에 누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온은 데이오든의 솜씨임을 직감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이블리스 레이오니아. 그게 인간이었을 때 제 이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