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
5화
제온은 손안에 들린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뭐지?”
그가 모래시계를 고른 것은 결코 홧김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방에 들어갔을 때부터 묘한 끌림을 느꼈다.
끌림의 근원에 바로 이 모래시계가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섬세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망하지 않았다면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었을 만한 물건이었다.
제온이 모래시계를 돌렸다. 그러자 고운 모래가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대략 십 분 정도인가?”
모래가 완전히 떨어져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한번 뒤집으면 십 분 동안 모래가 떨어져 내린다는 뜻이다.
제온은 묘하게 전신에 활력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진짜 뭐지? 내 각성과 관련 있는 물건인가?”
제온이 다시 한번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모래 입자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 보니 모래 입자가 유난히 고왔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붉은 사막의 모래보다 더 곱고 붉었다.
이런 모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제온은 혹시나 해서 모래시계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봤다.
정말 자신과 관계된 물건이라면 어떤 반응을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움직여라.’
모래시계 안의 붉은 모래에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붉은 모래는 무심히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제온이 다시 한번 집중해서 붉은 모래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제길! 내가 착각한 건가?”
제온은 신경질적으로 모래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쨌거나 소중한 마정석과 바꾼 물건이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버릴 수는 없었다.
제온은 하루의 시작이 정말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진짜 최악은 이제부터였다.
숙소에 돌아오니 웬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얼굴과 웃옷을 벗은 상체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제온과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제 온 애송이가 너냐?”
“네! 그런데 누구십니까?”
“씨발 새끼야! 아침에 왜 광산에 안 왔어?”
“그게 무슨?”
“일하러 왔으면 광산으로 제깍 달려와야지, 이 박만호가 너를 찾으러 이곳까지 와야겠냐? 개새끼야!”
남자의 이름은 박만호.
E급 각성자로 광산의 책임자였다.
마정석 광산 도시는 크게 두 개의 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다.
핵심 시설인 광산, 그리고 광산이 있는 도시를 운영하고 방어하는 경비대.
박만호는 그중 광산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갱도에 광부를 투입하고, 그들이 캔 마정석을 전적으로 관리한다.
광산 도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가 바로 박만호였다.
제온이 변명했다.
“그게 아무도 부르지 않아서…….”
“이거 웃긴 새끼네. 네가 뭐라고 부르러 와. 일하러 온 놈이 알아서 와야지.”
“아니, 그래도…….”
“됐고, 따라오기나 해. 새끼야! 짱구 굴리지 말고…….”
박만호는 광산 도시에 잔뼈가 굵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 봤고, 어떻게 해야 상대를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을지 잘 알았다.
제온 같은 애송이를 다루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마정석 광산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물에 빠진 먹이를 노리는 피라냐 떼였다.
만만한 먹이가 빠지면 한꺼번에 달려들어 뼈까지 갉아먹으려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 제온 같은 애송이는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제온도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클렉시 영감부터 박만호까지 모두 탐욕에 절어 있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각성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박만호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머리를 굴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들 그가 머리를 굴릴 여유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제온은 더럽게 걸렸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광산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광산 도시에 들어온 이상 박만호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박만호는 E급 각성자였다.
팔목에 있는 계급장이 박만호가 각성자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도 무투계.
가장 흔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부류가 바로 무투계였다.
지금의 제온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다.
‘제기랄! 광산의 책임자가 직접 찾아오다니.’
어제 버스만 무사히 들어왔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광부 지원자들이 많으니 제온 한 명 빠져도 티가 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불행히 모두 샌드웜에게 죽고, 제온 한 명만이 들어왔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도 제온이 따라오지 않고 머뭇거리자 박만호의 눈빛이 변했다.
“이 새끼가 진짜!”
퍼억!
박만호가 제온을 후려쳤다.
“큭!”
제온이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박만호가 그런 제온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개새끼야! 짱구 굴리지 말라고 했지? 엉!”
퍼억! 퍽!
제온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각성했기 때문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고통은 없었다.
반격하자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제온은 참았다.
지금은 반항할 때가 아니었다.
참고 힘을 길러야 할 때였다.
복수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제온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박만호의 폭력을 모두 감당했다.
분이 어느 정도 풀리자 박만호가 제온을 패는 것을 멈췄다.
“한 번 더 짱구 굴리거나, 내 말에 토를 달면 그땐 진짜 죽는다. 알겠냐?”
“예!”
“알았으면 따라와.”
박만호는 제온의 대답도 듣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힘겹게 일어선 제온은 말없이 박만호를 뒤따랐다.
뿌득!
제온이 이빨을 갈았다.
그의 얼굴은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고, 몸 곳곳에도 피멍이 졌다.
각성했으니까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거지, 예전이었다면 며칠을 몸져 누워 있었을 뻔했다.
제온이 박만호의 등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내가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반드시 죽인다.’
박만호는 제온의 상처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 광부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실컷 쓰다가 닳거나 고장 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그런 소모품.
소모품의 안위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박만호는 제온을 데리고 갱도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엔 광부 한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박만호가 그에게 말했다.
“이 새끼한테 장비 지급해.”
“알겠습니다.”
광부가 급히 제온에게 곡괭이와 전등이 달린 안전모, 그리고 며칠 치 식량이 든 배낭을 건네줬다.
박만호가 말했다.
“곡괭이와 식량값은 네 일당에서 제하겠다. 마정석을 캐면 그 배낭에 넣어 나오면 된다.”
“이게 끝입니까? 어떻게 마정석을 캐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 겁니까?”
“씨발! 곡괭이질을 배워야 아냐? 그냥 내리찍으면 되는 거지.”
또다시 박만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온에게 곡괭이와 배낭을 건네줬던 광부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멀찍이 물러났다.
박만호의 별명은 ‘갱도의 폭군’이었다.
조금만 수가 틀려도 폭력을 행사했다.
그 때문에 광부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제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작정 갱도에 들어가라고 떠미는 것도 황당한데, 기초적인 지식 하나 가르쳐 주지 않는다니.
이건 아예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거나 다름없었다.
박만호가 광부에게 말했다.
“야! 이 새끼 구백칠십이 번 갱도에 집어넣어.”
“구백칠십이 번이면 그…….”
“잔말하지 말고 집어넣어.”
“넵! 알겠습니다.”
박만호의 목소리가 또 높아지자 광부가 급히 대답했다.
그가 제온의 손을 잡아끌었다.
“야, 가자.”
“네? 네!”
그렇게 제온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갱도로 들어갔다.
박만호가 뒤에서 외쳤다.
“너, 이 새끼! 마정석 캐기 전에는 나올 생각하지 마. 내 말 명심해.”
제온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개새끼가 정말…….’
힘을 얻으면 반드시 박만호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온은 이제 마정석 광산의 생리를 확실히 깨달았다.
이곳에 자신 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약하거나 만만해 보이면 잡아먹힌다.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경계해야 했다.
제온은 마정석 광산에 도착한 후 잠시 해이해졌던 자신의 마음가짐을 탓했다.
제온은 각오를 다지며 갱도를 걸었다.
아직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갱도는 무척 비좁았다.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 힘으로 갱도를 파 내려가다 보니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광부가 말을 건넸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하필 대장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네가 걸린 거니까.”
“무슨 말입니까?”
“대장이 도박장에서 돈을 전부 잃었거든.”
“이곳에 도박장도 있습니까?”
“어디 도박장뿐일까? 창녀에 술, 마약까지 없는 게 없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그런 데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힘들게 일해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니까.”
광부는 이곳에서만 오 년이나 있었다.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모두 망가지거나 목숨을 잃었다.
제아무리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분위기에 휩쓸리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돈 모아서 나가고 싶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구백칠십이 번 갱도는 어떤 곳입니까?”
“가서 알려 주마.”
광부가 말을 얼버무렸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배정받은 갱도가 심상치 않은 곳임을 깨달았다.
‘제기랄!’
잠시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광산 도시 주위엔 끝없이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섣불리 도주하려다가 햇볕에 말라 죽고 말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야.’
너무 순식간에 일이 벌어져 아직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혼자 남으면 우선 능력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제온 앞에 수없이 많은 갈림길이 나타났다.
광부는 제온에게 갈림길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 줬다.
“자세히 보면 갈림길에 화살표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빨간 화살표는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가리키고, 파란 화살표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방향을 알려 준다. 그러니까 나올 때는 무조건 파란 화살표를 따라 나와라. 알겠느냐?”
“예!”
체감상 적어도 수백 미터 이상은 지하로 내려온 것 같았다.
그제야 제온을 안내해 주던 광부가 멈춰 섰다.
“이곳이 구백칠십이 번 갱도다.”
제온은 광부가 가리킨 갱도를 바라봤다.
갱도 안의 짙은 어둠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 안에 들어가서 일하면 된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안에서 벌써 네 명이나 변을 당했다. 조심해라.”
“변이라면?”
“죽었단 말이다.”
“네?”
“왜 죽었는지 이유는 모른다. 이곳에 배정된 자들 모두 죽어 나오니까 아무도 구백칠십이 번 갱도에는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장이 신입인 너를 집어넣은 것이다.”
“씨발!”
광부의 설명에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부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 역시 아직 어린 제온을 이곳에 집어넣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일개 광부에 지나지 않았다.
“부디 무사히 살아 나오길 비마.”
그 말을 끝으로 광부는 자신의 갱도로 향했다.
혼자 남겨진 제온이 구백칠십이 번 갱도를 바라봤다.
“모두 다 죽어 나갔단 말이지? 그런 곳에 일부러 나를 집어넣고? 그냥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박만호,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