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이블리스 레이오니아?”
“그냥 이블리스라고 불러 주세요. 하이엘툰도 그렇게 부르니까요.”
“당신은 하이엘툰의 부하 아닙니까?”
“맞아요. 하이엘툰에게 강제로 납치당해 키메라로 만들어졌죠.”
“납치?”
“어느 누가 좋아서 이런 꼴이 되었겠어요?”
이블리스가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녀는 쿠라얀의 귀족 가문의 후계자였다.
일찍이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가문을 부흥시킬 인재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재능을 만개하기도 전에 하이엘툰에게 납치됐다.
그 직후 하이엘툰과 함께 지구로 넘어왔다. 그리고 키메라로 개조됐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거미가 된 하반신을 보고 미쳐 날뛰었다. 하이엘툰은 그런 이블리스에게 정신 금제 마법을 써서 집사로 삼았다.
그렇게 이블리스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이엘툰의 집사로 살아왔다.
그녀의 머릿속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했다.
하나는 인간 이블리스 레이오니아의 자아, 또 하나는 하이엘툰의 집사 키메라 이블리스의 자아.
그중에서 키메라 이블리스의 자아가 더 강했기에 하이엘툰의 명을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이엘툰을 위해 데이오든과 싸우다가 이렇게 됐다.
데이오든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녀의 몸을 두 동강 냈다.
거미와의 결합이 풀어지자 그녀는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키메라가 아닌 인간 이블리스 레이오니아의 자아를.
“드디어 이런 날이 왔네요. 영원히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니까.”
“죄송합니다.”
“당신이 미안해할 것 없어요. 난 오히려 감사해요. 덕분에 안식을 얻었으니까.”
“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어요? 그럼 당신께 선물을 드리죠.”
“어떤?”
“혹시 내 가문의 사람들이 지구로 넘어왔다면 이 목걸이를 전해 주세요.”
이블리스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제온에게 건네줬다.
붉은 장미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였다.
장미 문양 한가운데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레이오니아 가문의 당주를 상징하는 물건이에요. 다른 사람에겐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레이오니아 가문엔 무엇보다 귀중한 물건이에요. 혈통에 담긴 능력을 개화할 수 있는…….”
“장담은 못 해요. 그래도 혹시라도 만나면 전해 줄게요.”
“고마워요. 그 대가로 이걸 드릴게요.”
푹!
이블리스가 갑자기 하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팔목까지 가슴을 파고든 모습에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그녀가 꺼낸 것은 피처럼 붉은 둥근 보석이었다.
“하이엘툰이 제 심장 대신 박아 둔 레드 드래곤의 눈이에요.”
“드래곤의 눈?”
“하이엘툰은 쿠라얀에서 레드 일족의 어린 드래곤을 사냥했어요. 훗날 키메라를 연구하기 위해서죠. 이 레어에 있던 모든 키메라에 그가 해부한 드래곤의 조직들이 들어가 있죠.”
“음!”
“그는 마지막 남은 눈을 조그맣게 가공해 내 심장을 대신하게 했죠. 비록 시간이 오래 흐르긴 했지만, 안에 담긴 마나는 그대로예요. 쓸 만할 거예요.”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드래곤의 눈이었다.
심장만큼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마수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엄청난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제온은 드래곤의 눈을 받았다.
레드 드래곤의 눈답게 손안에서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럼 부탁…….”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이블리스가 눈을 감았다.
그것이 이블리스의 최후였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뱉었다.
쿠라얀에서 건너온 인간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이블리스의 사정을 듣고 나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온은 이블리스의 목걸이와 레드 드래곤의 눈을 아공간에 수납했다.
그때였다.
콰아앙!
거대한 지하 공동을 송두리째 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데이오든이 그의 근처로 추락했다.
“크윽!”
“괜찮아요?”
제온이 급히 데이오든을 일으키려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데이오든이 제온의 손길을 거부하고 몸을 일으켰다.
“으음!”
그를 보는 제온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데이오든의 왼팔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깨 부위가 불에 지진 것처럼 뭉그러져 있었다.
하이엘툰의 브레스에 당한 것이다.
분명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데이오든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광기를 연료 삼아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며 제온에게 말했다.
“병신아!”
“네?”
“흐흐! 나는 아무래도 여기까진가 보다.”
데이오든이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을 처음 들었기에 제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데이오든이 하이엘툰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지독하게 강한 놈이다. 다른 드래곤들이 다 저놈만큼 강하다면 인간에겐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이엘툰은 살이 떨리게 강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막을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강해졌다. 그런데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놈의 마법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아득한 영역에 존재했고, 놈의 육체는 이제까지 데이오든이 상대했던 그 어떤 마수보다 강했다.
그나마 크레이온이 없었다면 놈의 비늘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이엘툰의 거체 곳곳에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데이오든의 공격에 놈도 비늘이 날아가면서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놈은 아직도 건재했다.
하이엘툰을 직접 상대해 본 데이오든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부턴 진짜 목숨을 걸어야 했다.
“병신아!”
“예!”
“뒈지면 뒈지는 거다.”
“네?”
“뒤를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재는 것도 많고, 눈치도 지나치게 많이 봐.”
“그건…….”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전력으로 부딪쳐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크레이온을 꽉 쥐는 데이오든의 양옆으로 거짓말처럼 환영이 나타났다.
한 명은 제온도 알고 있는 자였다.
‘아카루크!’
하이엘툰에 의해 강제로 언데드가 되었던 존재.
그가 환영으로 나타난 것이다.
반대편에 나타난 자는 제온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훤칠한 키를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남이었다.
“크레이온?”
제온의 말에 백인 미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오든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흐흐! 네 눈에도 보이는 거냐? 내 친구가…….”
“진짜였네요. 당신이 미쳐 혼자 떠드는 건 줄 알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병신!”
“저도 즐거웠어요.”
“마지막 가르침이다. 이제부터 내가 드래곤을 사냥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라.”
“네!”
제온이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
데이오든은 끝까지 제온의 참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손으로 하이엘툰을 사냥하려는 것이다.
제온은 그의 의지를 존중했다.
데이오든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뒈지면 뒈지는 거다. 목숨의 미련 따윈 네가 품은 모래처럼 모두 흘려 버리고, 전력을 다해 부딪쳐라. 그게 드래곤을 사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흐흐!”
데이오든이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데이오든이 크게 외쳤다.
“가자! 친구여!”
그의 양옆으로 크레이온과 아카루크의 환영이 같이 내달리다가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쾅!
죽음의 권능을 담은 일격이 하이엘툰의 몸통을 거세게 때렸다.
앱솔루트 실드로도 막아 내지 못한 거대한 충격에 하이엘툰의 거체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하이엘툰도 마냥 당하지만 않았다.
수많은 마법을 난사했고, 브레스를 발사해 데이오든을 공격했다.
쾅! 콰아앙!
그들의 격돌에 마법으로 강화된 레어가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암반이 붕괴되고 그 위에 덮여 있던 모래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부서지는 암반 뒤에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복장을 한 이들은 바로 하이엘툰이 분신으로 만들어 낸 키메라들이었다.
하이엘툰의 의지를 받아들인 키메라들이 일제히 데이오든을 공격했다.
“겨우 이 정도냐? 도마뱀!”
데이오든이 선두에서 달려드는 분신을 베어 내며 소리쳤다.
―오만한 인간이여! 너에게 신벌을 내리마.
“웃기지 마라. 누가 신이란 말이냐? 너 따위 도마뱀이?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
―이 몸이 새로운 세계의 신이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콰르릉!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벼락은 뻥 뚫린 지하 공동 천장을 통해 데이오든을 강타했다.
피할 틈도 없이 벼락에 강타당한 데이오든이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살이 모조리 익고, 모발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런 상태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데이오든은 품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병째로 와그작 씹었다.
미치광이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각성제였다.
순간적으로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하고,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켜 주는 물약.
데이오든은 망설이지 않고 유리 가루와 함께 물약을 삼켰다. 그러자 새까맣게 탔던 피부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아났다.
그야말로 미친 효능이었다.
“크아아!”
데이오든이 괴성을 지르며 크레이온을 휘둘렀다.
순간 크레이온의 거대한 검신에 엄청난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마나를 검에 응집한 소드 오러였다.
데이오든은 죽음의 권능을 소드 오러에 담아 하이엘툰에게 날렸다.
서걱!
하이엘툰의 거대한 육체에 큰 자상이 생겨났다.
엄청난 피 분수가 쏟아지며 하이엘툰이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
하이엘툰의 몸부림에 그렇지 않아도 반쯤 무너졌던 레어가 완전히 주저앉았다.
하이엘툰이 거대한 날개를 움직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데이오든도 크레이온을 앞세워 하이엘툰과 같은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쾅! 콰아앙! 콰르릉!
건조한 사막 하늘에 연신 뇌성이 울려 퍼졌다.
한 인간과 한 마리의 드래곤이 싸우는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레어가 완전히 무너져 모래에 파묻혀 사라졌고, 엄청난 양의 모래가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모래는 해를 가리고, 일대를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제온의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바닥의 모래가 기둥처럼 일어나 그를 떠받친 것이다.
아득히 높은 하늘로 올라가자 데이오든과 하이엘툰이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제온은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데이오든에겐 뒤가 없었다.
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흐흐! 뒈지면 뒈지는 거지.”
생애 마지막 전투.
데이오든은 모든 것을 불살라 하이엘툰과 싸웠다.
제온은 데이오든의 모습에서 인간의 끝을 봤다.
인간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독기를 품은 인간이 얼마나 진화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가능성을 데이오든에게서 봤다.
“개 같은 늙은이. 진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제온의 어깨에 잔경련이 일었다.
그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쾅! 콰아앙!
드래곤과 인간의 전투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몰아치는 광풍이, 쉴 새 없이 뇌전이 번뜩이는 하늘이,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제온의 눈에 하이엘툰과 데이오든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쾅!
종말이 찾아온 것처럼 사막 전체가 요동치고, 하늘의 구름이 찢겨 나갔다.
모래 폭풍이 해일처럼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후 거짓말처럼 세상이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