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모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자하르와 팀원들은 쌍봉낙타에서 내려 고블린 부락으로 들어갔다.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는 고블린의 시신들이 보였다.
고블린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모래 폭풍이 피부를 갉고 지나갔는지 피부와 근육이 반쯤 뜯겨 나가고, 내장이 흘러나와 모래를 검붉게 적시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느꼈는지 고블린들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하르가 고블린의 시신에 손을 갖다 댔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죽은 지 한 시간도 안 됐어.”
“겨우 한 시간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까? 그럼 우리 눈에도 모래 폭풍이 보였을 텐데.”
펠릭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 폭풍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지평선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모래 폭풍의 공포는 겪어 본 자만이 안다.
제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거대한 모래 폭풍에 휩쓸리면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거대한 자연의 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정도 규모의 모래 폭풍이 불었다면 자하르와 팀원들이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거대한 모래 언덕들이 시야를 가렸어도 고블린 부락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정도의 모래 폭풍이라면 안 보였을 리 없다.
“진짜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팀원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살아 있는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이 천 마리가 넘게 있었는데,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다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맨디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블린의 시신을 살폈다.
그녀가 보는 고블린은 일반적인 개체가 아니었다.
“홉고블린이다.”
홉고블린은 일반 고블린을 수십 마리 합쳐 놓은 것보다 강했다.
어떤 놈들은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E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홉고블린의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강한 개체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살점은 다 뜯겨 나가고, 드러난 뼈마저 사포로 갈아 낸 것처럼 매끄럽다.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모래 폭풍에 당한 상처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홉고블린의 부릅뜬 눈에 남아 있는 공포의 빛이라니.
맨디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홉고블린이라면 분명 모래 폭풍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놈이 동지애 때문에 마을을 떠나지 못한 것도 아닐 테고. 모르겠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때였다.
“팀장!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세이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자하르를 불렀다.
그에 맨디를 비롯한 사람들이 세이도 쪽으로 달려갔다.
세이도가 바닥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말했다.
“지하 감옥인 것 같습니다.”
“감옥?”
자하르가 바닥을 바라볼 때였다.
“살려 줘!”
“우리 좀 꺼내줘.”
지하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고블린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자하르가 다급히 외쳤다.
“어서 모래를 파.”
“네!”
팀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이 힘을 모으니 순식간에 일 미터 이상 덮여 있는 모래를 퍼낼 수 있었다. 그러자 돌로 만든 감옥의 천장이 보였다.
대런이 주먹으로 감옥의 천장을 내리쳤다.
쾅!
폭음과 함께 천장이 부서지고, 안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하르가 그들의 얼굴을 알아봤다.
“로튼, 잭!”
로튼이라는 남자는 2팀장이었고, 잭은 팀원이었다.
둘 다 모두 무투계 각성자로 무시 못 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팔다리가 결박된 채 자하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검은 멍이 들고, 퉁퉁 부어 있었다.
7팀은 급히 두 사람을 끌어올리고, 결박을 풀어 줬다.
자하르가 로튼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급습을 받았어. 비겁하게 고블린 놈들이 덫을 놓고 우리를 기다렸어.”
“다른 팀원은?”
“모두 죽었어. 놈들이 잡아먹었지.”
“음!”
“우리도 꼼짝없이 잡아먹힐 뻔했어.”
로튼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팀원인 잭의 얼굴도 공포가 어려 있었다.
고블린들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동료들을 죽이고 잡아먹었다.
사람이 산 채로 찢겨 나가고, 고블린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제아무리 죽음을 가까이 접하며 살아가는 각성자들일지라도 동료가 잡아먹히는 광경을 경험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맨디가 로튼에게 물었다.
“모래 폭풍은요?”
“응?”
“모래 폭풍은 어떻게 된 건가요?”
“몰라! 갑자기 불어와서 고블린 부락을 덮쳤어.”
“갑자기요?”
“우리도 잡아먹히기 전이라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지.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모래 폭풍이 고블린 부락을 덮친 거야.”
“조짐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가요?”
“맞아!”
로튼의 대답에 맨디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로튼이 어떻게 생존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고블린 부락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였다.
그때 로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잠시 미쳤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인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
“네?”
“모래 폭풍 속에서 희미하게 인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
“인간의 목소리? 확실한가요?”
“확신할 순 없어. 말 그대로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로튼이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하르가 말했다.
“취조는 그쯤 하지. 그는 죄수가 아니야.”
“알았어요.”
“로튼과 잭을 데리고 쉘터로 돌아간다.”
자하르의 명령에 팀원들이 로튼과 잭을 데리고 고블린 부락을 빠져나갔다.
맨디는 제일 뒤에 처져 모래에 덮인 고블린 부락을 돌아봤다.
로튼과 잭을 구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인간이 이곳까지 진출하는 것은 아직 무리인지도…….”
***
패스파인더 팀이 구축한 쉘터는 사암 지대에 있었다.
모래가 오랜 세월 굳어 암석이 된 사암 지역에 쉘터를 만들었다.
네오 서울에서 특별히 개발한 소재로 만든 쉘터의 크기는 가로 오십 미터, 세로 오십 미터, 높이 오 미터에 달했다.
트럭에 싣고 온 격벽을 조립해서 만든 쉘터 안에는 개별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임시 거처였기 때문에 복잡하게 지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쉘터 내부 한쪽엔 거대한 트럭 십여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기술자들이 모래에 상한 트럭을 점검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각성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7팀이 쉘터 안으로 들어왔다.
자하르가 소리쳤다.
“2팀이 당했다. 어서 이들을 돌봐 줘.”
“뭐?”
“제기랄!”
각성자들이 급히 달려왔다.
힐러 두 명이 붙어 로튼과 잭을 치료했다.
1팀장이 자하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2팀이 왜?”
“고블린 무리의 기습을 받았다고 하더군.”
“고블린 따위에게 당했다고?”
“천 마리가 넘는 대부족이었어. 2팀이 아니라 1팀이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정말 고블린이 천 마리가 넘게 모여 있었다고?”
“내 눈으로 확인했어.”
자하르의 대답에 1팀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미쳤군. 고블린이 천 마리나 모여 있다니.”
네오 서울 근처엔 이렇게 큰 고블린 무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하급 마수라지만 천 마리나 모여 있으면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토벌하는 것이다.
1팀장도 경험이 많은 각성자였지만, 천 마리나 되는 고블린 무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고블린 대군이라니. 미치겠군!”
기본적으로 고블린은 최하급에 속하는 마수였다.
무리를 지을 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무리가 형성되긴 힘들다.
세를 이루기 전에 다른 마수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고블린은 마수들의 생태계 제일 밑바닥에 깔린 존재였다. 놈들은 다른 거대 마수들의 공격을 피해 도주하기 바쁘다.
그 때문에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도 대군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곳엔 무려 천 마리나 사는 커다란 부락이 존재했다.
고블린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였다.
1팀장의 우려를 알아차린 자하르가 말했다.
“다행히 모래 폭풍이 고블린 부락을 덮쳐 전멸시켰어.”
“무슨?”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
“진짜라면 그건 다행이군.”
뒤늦게 1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쿠웅!
갑자기 쉘터가 크게 흔들렸다.
“뭐냐?”
“무슨 일이야?”
쉘터 안에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쿠웅!
그 순간 쉘터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1팀장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
“예!”
1팀원들이 대답과 함께 쉘터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그들이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밖에 싸이클롭스가 쳐들어왔습니다.”
“뭐? 싸이클롭스?”
“네! 놈이 쉘터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쉘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싸이클롭스는 오우거와 함께 위험도 최상위 그룹에 속한 마수였다.
실제 등급은 B급에 불과하지만, A급 마수보다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칠 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에 압도적인 힘.
어지간한 마법은 그냥 튕겨 내는 엄청난 항마력.
무엇보다 놈은 이족보행을 하는 데다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그것이 본능이 이성을 앞서는 오우거보다 싸이클롭스의 위험도가 높게 만든 주된 이유였다.
쿠와앙!
싸이클롭스가 쉘터를 공격했는지 더욱 큰 진동이 느껴졌다.
충격을 받은 쉘터가 크게 구겨지고, 이음새가 벌어졌다. 그리고 외눈박이 거인의 눈이 보였다.
싸이클롭스가 분명했다.
“미친!”
쉘터는 네오 서울의 기술력이 응집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의 공격 따위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 쉘터가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겨 나가고 있었다.
싸이클롭스의 공격력이 쉘터의 방어력보다 강하다는 의미였다.
이 이상 싸이클롭스의 공격을 허용하면 쉘터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 전에 싸이클롭스를 제압해야 했다.
1팀장이 공격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콰앙!
다시 폭음과 함께 쉘터가 흔들렸다.
반대편 벽이 찢겨 나가더니 싸이클롭스 두 마리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고?”
“미친!”
쉘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한 마리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 싸이클롭스였다. 그런데 싸이클롭스 세 마리라니.
1팀장과 자하르가 눈빛을 교환했다.
1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쉘터는 포기한다. 팀별로 탈출한 후 네오 서울로 귀환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패스파인더 팀들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쾅!
도주하던 한 각성자의 머리 위로 거대한 방망이가 떨어졌다.
싸이클롭스가 공격한 것이다.
각성자는 비명 한번 내뱉지 못하고 즉사했다.
“크흐흐!”
싸이클롭스는 어육처럼 짓이겨진 각성자의 시신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놈은 인간 한 명을 잡아먹는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크악!”
“켁!”
쉘터 주위에 비명이 연신 울려 퍼졌다.
싸이클롭스들은 삼각형으로 쉘터를 포위한 채 각성자들을 공격해 만찬을 즐겼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싸이클롭스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앞으로 달려가는 7팀의 앞을 거대한 싸이클롭스가 막아섰다.
유난히 덩치가 큰 놈이다.
놈이 싸이클롭스 무리의 대장이 분명했다.
놈의 신경을 분산시켜야 했다.
자하르가 아니카에게 말했다.
“제물이 필요해.”
“오케이!”
오래 함께한 사이답게 아니카는 금세 자하르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아니카의 손에서 뇌전이 번쩍이더니 맨디의 등에 작렬했다.
그녀의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가 작렬한 것이다.
맨디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온몸이 마비된 맨디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니카가 그런 맨디의 뒤통수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난 처음부터 네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것이 맨디가 기억하는 마지막 상황이었다.
이내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렇게 맨디는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