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정신 차려요.”
누군가 맨디의 뺨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
그제야 맨디가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두컴컴한 동굴 천장이었다.
“여기는?”
“싸이클롭스의 둥지예요.”
“네?”
“조용히!”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하라는 시늉하는 이는 맨디도 아는 남자였다.
맨디와 달리 동양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얼굴엔 아직 여드름이 남아 있는 청년.
“한국계, 김상식 씨 맞죠?”
“맞아요. 목소리를 낮춰요.”
김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맨디의 말대로 그는 한국계 혈통을 이었다.
그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차량을 정비하기 위해 파견된 기술자였다.
맨디가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동굴 안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동굴의 높이는 무려 십 미터에 달했다.
싸이클롭스가 고개를 들고 다녀도 남을 만큼 높았다.
동굴 안에는 수많은 마수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싸이클롭스가 잡아먹고 남겨 둔 것이 분명했다.
맨디와 김상식은 동굴 천장에 달린 새장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새장은 무척이나 촘촘해서 도저히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맨디가 코웃음을 쳤다.
“흥! 이까짓 새장 따위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비록 아니카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아 기절했지만, 그녀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각성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오 서울에서 굳이 그녀를 슈퍼바이저로 파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마법계 각성자였다.
특기는 바람을 이용한 마법이었다.
맨디는 바람의 칼날로 새장을 잘라 버리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체내의 마나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이 안에선 마나를 쓸 수 없어요.”
“무슨 소리예요? 마나가 왜?”
“우리가 갇혀 있는 새장이 마나를 제어하는 아이템 같아요.”
“무슨? 싸이클롭스가 아무리 똑똑해도 이런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싸이클롭스가 만든 게 아니에요. 던전의 출토물을 우연히 얻은 것 같아요.”
“음!”
그제야 맨디가 납득했다.
던전에선 어떤 물건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의 네오 서울이 있는 것도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 덕분이었으니까.
“하! 그러니까 지금 우린 싸이클롭스의 도시락이 된 거군요.”
자신과 김상식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싸이클롭스들이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쉘터에 있던 인원을 모조리 잡아먹었다면 배가 부르고도 남을 것이다.
맨디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7팀은 어떻게 됐죠? 봤나요?”
“아뇨. 저도 정신을 잃어서…….”
“감히 내 뒤통수를 치다니. 이곳을 빠져나가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요.”
맨디가 복수를 다짐했다.
네오 서울의 슈퍼바이저란 직책은 포커 게임으로 딴 게 아니었다. 그만한 실력과 능력이 있었다.
일단 네오 서울로 무사히 귀환만 하면 7팀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전에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쿵! 쿵!
둔중한 발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싸이클롭스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분명했다.
김상식의 안색이 싹 변했다.
“싸이클롭스가……. 흐흑! 우린 죽을 거야.”
그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는 맨디 같은 각성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애써 냉정을 유지했지만, 싸이클롭스의 등장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맨디가 그를 다독였다.
“침착해요. 우린 죽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요? 각성자들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 저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
맨디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암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싸이클롭스라는 괴물은 각성자의 천적이었다.
특히 그녀와 같은 마법계 각성자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싸이클롭스를 처리할 수 있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쿵! 쿵!
싸이클롭스의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잠시 후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으!
외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싸이클롭스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공포스러웠다.
“으으!”
김상식은 아예 웅크리고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런 그의 눈에선 초점이 사라졌고, 입에선 침이 흐르고 있었다.
싸이클롭스가 발산하는 특유의 기운에 김상식이 미쳐 가는 것이다. 각성자가 아닌 이가 마수에게 대항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세 마리의 싸이클롭스는 또 어디서 한바탕 사냥하고 왔는지 입 주위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배가 고픈지 먹잇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싸이클롭스들의 시야에 새장에 갇힌 두 사람이 보였다.
크으으!
쿵! 쿵!
싸이클롭스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싸이클롭스는 셋인데, 먹이는 둘밖에 없었다.
서로 먹겠다고 싸웠다.
거대한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승자는 거대한 싸이클롭스였다.
놈은 다른 둘을 금방 제압한 후 거만하게 걸어왔다.
싸이클롭스가 가까워질수록 맨디의 얼굴도 시커멓게 변했다.
끼이익!
마침내 새장의 문이 열리고, 싸이클롭스의 거대한 손이 김상식을 덮쳐 왔다.
문이 열리면서 아이템의 효력이 사라졌는지, 그녀의 마나를 짓누르던 힘이 없어졌다.
“저리 치워!”
맨디가 급한 대로 바람의 칼날, 윈드 커터를 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허무하게 소멸했다.
싸이클롭스의 막강한 항마력을 뚫지 못한 것이다.
그녀의 공격은 싸이클롭스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크으으!
싸이클롭스는 타깃을 바꿔 맨디를 잡았다.
“으윽!”
거대한 힘이 옥죄이자 맨디가 침음성을 흘렸다. 엄청난 압력에 그녀의 정신이 흐려졌다.
싸이클롭스는 정신이 혼미한 맨디를 입으로 가져갔다.
‘엘로이!’
맨디가 간절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였다.
촤하하!
맨디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줄기가 좁은 통로를 지날 때나 나는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이곳은 사막 깊은 곳에 있는 동굴이었다.
물길이 지나갈 리 없었다.
맨디는 죽기 직전 환청을 들은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싸이클롭스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거대한 적이라도 쳐들어온 것처럼 싸이클롭스들이 방망이를 들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노려봤다.
콰아아!
그 순간에도 이상한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우두머리 싸이클롭스가 맨디를 다시 새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싸이클롭스 곁으로 가서 전방을 노려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겨우 목숨을 구한 맨디가 싸이클롭스를 바라봤다.
싸이클롭스에게 잡혔을 때 가해진 압력으로 눈의 실핏줄이 온통 터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콰아아!
엄청난 양의 모래가 동굴에 들이닥쳤다.
맨디가 물소리라고 생각했던 소음은 사실 모래가 동굴 안을 따라 흐르면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문제는 모래가 동굴을 흐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모래는 마치 해일처럼 그대로 싸이클롭스를 덮쳤다.
우워어억!
크워어!
싸이클롭스들이 포효하며 모래에 저항했다.
그러나 싸이클롭스가 제아무리 거대해도 동굴을 가득 채우며 밀려오는 모래를 모두 밀어낼 수는 없었다.
콰콰콰!
마치 고압으로 발사된 물줄기처럼 모래는 엄청난 기세로 들이닥쳤다.
싸이클롭스들은 닥치는 대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모래는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더 무섭게 그들의 몸에 부딪혔다.
쿠워어어!
싸이클롭스들이 포효를 했다.
적을 위협하는 포효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포에 질린 울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맨디와 김상식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직전에 모두 기절했기 때문이다.
가아아앙!
그사이 동굴 안에 들이닥친 모래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싸이클롭스들을 갈아 버렸다.
항마력으로 무장한 가죽이 모래에 갈려 나가고, 금세 시뻘건 근육이 드러났다.
압도적인 질량과 힘을 자랑하는 근육들이 모래에 뜯겨 나가고, 안에 숨겨져 있던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모래에 갈려 나갔다.
싸이클롭스에겐 불행히도 동굴은 모래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최악의 지형이었다.
빠져나갈 곳 없는 꽉 막힌 동굴에서 모래는 마치 믹서기 돌 듯 회전하며 싸이클롭스라는 거대 마수를 흔적도 없이 갈아 버렸다.
가아아앙!
모래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공포스러운 소음이 싸이클롭스의 처절한 비명마저 집어삼켰다.
***
맨디와 김상식이 거의 동시에 신음성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으음!”
잠시 눈을 끔뻑이던 그들의 시야에 곧 하늘을 가리고 있는 하얀 천이 들어왔다.
그때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렸군요. 다행이네요.”
“헉!”
본능적으로 경계 태세를 취하는 맨디의 시야에 한 사내가 보였다.
검붉은 로브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사내였다. 그래서 본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맨디가 윈드 커터를 펼칠 준비를 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군가요?”
“이곳을 지나던 사람입니다. 적은 아니니까 안심해요.”
남자가 머리에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대답했다.
어깨까지 늘어트린 긴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늘씬한 키에 제법 잘생긴 외모에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깊은 눈빛이었다.
마치 검은 보석을 박은 것 같은 눈동자는 속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맑았다.
그의 눈에 적의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맨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싸이클롭스에게서 우리를 구한 건가요?”
“설마요. 이 근처를 지나던 길에 우연히 쓰러져 있는 당신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를 발견했다고요?”
“네! 새장 같은 곳에 갇힌 채로 기절해 있더군요. 가만 놔두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이리로 모셨습니다.”
남자의 대답에 맨디가 잠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동굴 안에 엄청난 양의 모래가 쏟아져 들어오던 광경이 기억났다.
‘그럼 유사에 휩쓸린 건가?’
유사가 왜 싸이클롭스의 동굴에 쏟아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싸이클롭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엄청난 유사에 휩쓸리고도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운 좋게 밖으로 휩쓸려 나왔고,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에게 구함을 받았다.
이보다 운이 좋을 수 없었다.
남자의 등 뒤로 짐을 가득 실은 쌍봉낙타가 보였다.
그들이 누워 있는 곳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하얀 천으로 차양을 만들어 햇볕을 막고 있었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맨디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별말씀을.”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온! 내 이름은 제온입니다.”